235화
주마의 숲 일대가 모조리 날아가며 부서진 나무 잔해들이 휘날리는 공간.
“후우우―”
서리스는 악스판시온을 내려친 자세 그대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진정한 별의 힘을 썼다는 느낌이 손을 타고 저릿하게 느껴졌다.
‘이런 느낌이구나.’
세 개의 별이 하나로 합쳐지는 그 순간.
서리스는 마치 새로운 영역을 본 듯싶었다.
지금은 아직 조금 그 조절이 미숙하긴 하지만.
그리 머지않은 시간 내에 세 개의 별을 다 다룰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실마리를 잡은 그 순간부터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 서리스의 눈에 박살이 난 궁기와 여러 주인이 들어왔다.
세계 침식을 흡수해야 하기는 하지마는.
서리스는 우선 빅토르부터 찾아보았다.
“으랴아아아아!”
그러는 순간 기합성과 함께 검은색 솜뭉치가 하늘 위로 치솟았다.
전신이 세계 침식의 독을 머금은 가시로 되어 있는 놈은 월묵(月墨)이라는 네임드 마수로.
근접해서 권격을 날리는 빅토르에게는 무척이나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러나 월묵은 온몸을 난타당해 모든 가시가 박살 난 채 혀를 내밀고 죽어 있었다.
그런 월묵을 보고 서리스가 빅토르를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그의 손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인간, 독이 스며들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월묵을 주먹으로 두들겨 팬 것이다.
“빅토르 선배, 그러다가 저보다 먼저 저승 가십니다?”
서리스가 황당한 기분으로 물어보자 빅토르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곤 흥하고 콧방귀를 내쉬었다.
“이딴 거, 기합으로 이겨내면 돼.”
아무래도 뇌가 독에 벌써 절여진들 하였다.
서리스가 항상 구비 해놓는 약을 꺼내려던 순간, 빅토르는 양 주먹을 쥔 채 흡하고 힘을 주었다.
그러자 꽈아아악하고 쥐어진 그의 손이 터질 듯이 부풀었다.
그 황당한 광경을 그냥 보고 있으려니 빅토르의 손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푝!
설마 핏줄이라도 터진 걸까.
그런 생각을 한순간 빅토르의 손이 서서히 원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서리스는 그걸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순간 빅토르가 불터렉스에 내려오는 만독불침(萬毒不侵)의 경지에라도 오른 걸까? 라는 말도 안 되는 잡생각이 들었다.
“자연의 힘이 지닌 자체 치유 능력이다.”
그러는 순간 서리스의 옆에서 갑자기 강혼이 나타났다.
무투신의 정적은 그가 입을 열 때까지 알아차릴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저 녀석은 그 자체 치유력을 방금 자기 손에 압축해 쏟아부은 거다.”
“……카론은 보통 다 그렇답니까?”
“그럴 리가 있나. 잘못하면 지 손이 터져 나갔을 텐데. 저놈이 정상이 아닌 거지.”
역시 빅토르가 비정상이었다.
“그런데 그러는 너야말로 남 말할 처지냐?”
그러는 순간 강혼 쪽에서 핀잔이 들어왔다.
“세계 침식 자체를 흡수한다는 발상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냐?”
강혼은 이미 열쇠에 관해 알고 있다.
아마 스승인 제라드가 제파림을 보며 알게 된 것을 말해준 것이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그가 언급하는 걸 보니 서리스는 자신이 지금 정상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역시, 보통은 안될 거 같긴 했습니다.”
애초에 금강잔월과 신룡월단을 이용한 방식이니 당연한 거긴 했다.
그러는 사이 빅토르가 이쪽을 보곤 두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그는 바닥을 박차며 강혼을 향해 발차기를 날려왔다.
“정의 구현 킥이다!”
아무래도 마굴에서 구르며 쌓인 게 꽤 많았던 듯, 그는 다짜고짜 강혼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강혼은 슬쩍 몸을 틀며 그의 멱살을 잡은 뒤, 그대로 던져 버렸다.
“으아아아악!”
빅토르가 주마의 숲에서 강해졌다곤 하나, 상대는 천상사성인 무황 강혼이다.
저 멀리 날아가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려니, 강혼이 질문 하나를 던져왔다.
“그래서 좀 성장한 느낌이 드냐?”
“성장한 수준이 아닌데요.”
강혼과의 훈련이 설마 이 정도로 극적인 효과를 보여줄 거로는 생각 못 했던 서리스는 고양감에 주먹을 쥐었다.
강혼이 어디까지 자신의 훈련을 고려해주었는지는 몰라도.
이번 훈련이 자신에게 무척이나 중요하게 작용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럼 됐고. 이제 흡수할 수 있는 용량은 얼마나 남았냐.”
그리고 이어진 질문에 서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그것도 눈치채고 있었을 줄이야.
“그리 많이 남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흐음, 마굴 하나를 다 삼키기에는 아직 모자라다 이건가.”
“예, 아무래도.”
서리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리스는 세계 침식을 흡수해 검은별을 키울 때, 일부를 그림자에 담고 있었다.
아직 한참 더 성장해야 하는 서리스는 은연중에 검은별이 다른 별들보다 더 커진다면 위험해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조절이 필요해.’
별을 균등하게 받아들여야 지금과 같이 확실하게 강해질 수 있다.
그런 만큼 과하게 들어온 검은별은 그림자에 감당시키고 있었지만.
무한할 거로 생각했던 그림자도 슬슬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서리스는 마굴을 흡수하며 이 부분에 관해서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 되겠군. 네 본가에 한 번 가라.”
“펜타니엄으로 말입니까?”
뜻밖의 말에 서리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래, 그림자에 관한 전문가는 누가 뭐라 해도 펜타니엄이지. 그러니 네 본가에서 배우면 될 일 아니냐.”
가문에서 배우라는 말을 듣고 서리스는 아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 서리스는 월하십인까지 올랐다.
그런 그가 가르침을 청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주 잠시 요치아가 떠올랐지만, 서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최근 반로환동에 오른 요치아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훈련에 돌입하였다고 들었다.
정확히는 제왕월영도를 완성 시키고자 그는 온종일 검만 휘두르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거기에 질린 반응을 보이던 스타린을 통해서 들은 것이니 확실한 정보였다.
제자가 돼서 스승이 다음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는데, 거기에 끼어드는 건 예의에 어긋났다.
그렇기에 남은 보기는 딱 두 사람이었다.
서리스의 삼촌이자 칼릭스의 아버지인 천하오장성 검왕 펜타니엄 렐리즈.
그리고 서리스의 아버지인 천상사성 검황 펜타니엄 락로드.
두 사람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서리스는 다른 천하오장성과 천상사성들 보다도 두 사람이 멀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나는 늘 몰락해버린 소가문의 가주로서 그들을 마주해야 했으니까.’
은연중에 나는 그들에게 짓눌려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유달리 더 어려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원래 가족한테 배우는 게 더 어려운 법이다.”
그런 서리스의 모습을 다른 이유로 받아들였는지 강혼이 그리 말해왔다.
“하하, 그러네요. 가족이죠.”
늘 멀게만 느껴졌던 그들이 이제는 자기 가족이자 같은 가문의 사람이었다.
여기서 더 강해지고자 한다면 펜타니엄의 힘을 더 잘 다룰 필요가 있었다.
서리스는 이후에 본가로 돌아가 다시 한번 그림자를 배워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저희 훈련은 이제 다 끝난 겁니까?”
“그래, 얼추 생각한 것들은 다 가르쳤다.”
강혼은 이 이상은 딱히 필요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놈만 무투신을 이으면 되겠지.”
그리고 결국 빅토르를 다음 계승자로 완전히 받아들인 강혼을 보고 서리스가 옅게 웃음 지었다.
“만족 그 이상을 보여줄 겁니다.”
“지금은 불만족투성이다.”
어느새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빅토르를 보며 강혼은 한차례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래도 끈기는 있는 놈이니까.”
언젠가 빅토르는 강혼의 무투신을 완전히 익히고 새로운 강자로 탄생할 것이다.
서리스는 그것이 그리 멀지 않은 미래라 생각하며 한 차례 더 웃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워너힐 아카데미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그 뒤 서리스는 빠르게 주마의 숲에서 빠져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주마의 숲을 전부 흡수하고 싶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서리스의 검은별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그 때문에 서리스는 구태여 주마의 숲을 다 흡수하지 않았다.
단지, 주인들만 흡수하고 언젠가 주마의 숲은 물론 다른 마굴도 전부 흡수해주겠다고 다짐할 뿐이었다.
그런 서리스가 빅토르를 짐짝처럼 들어 올린 강혼과 숲을 나왔을 때였다.
그들 앞에 갑자기 문 같은 게 생겨났다.
그것이 아라만의 공간 마법임을 알아차린 서리스는 강혼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강혼 또한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걸 보니 그가 아라만을 부른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끼익―
곧이어 문이 열리며 아라만이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그는 서리스와 강혼을 보곤 다급하게 말했다.
“서리스, 큰일 났어!”
갑작스러운 말에 서리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나 곧 서리스는 지금이 무슨 시기인지 깨닫곤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전쟁이야!”
아니나 다를까, 아라만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세계 침식자와의 대전쟁.
그것이 결국 시작되고 만 것이었다.
“전세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습니까?”
저쪽이 먼저 공격할 것을 생각해 수많은 가문이 미리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서리스가 빠르게 되묻자 그는 무척이나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잠시 뜸 들이듯 침음성을 흘린 아라만은 기다랗게 한숨을 내쉬었다.
“워너힐 아카데미가 점령당했어.”
워너힐 아카데미.
설마 그 이름이 나올 줄 몰랐던 서리스의 두 눈이 경악하듯 떠졌다.
“네? 그게 무슨…… 워너힐 아카데미라면 웬만한 대가문보다도 그 방비가 뛰어날 텐데. 어째서.”
서리스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아라만도 쓴 표정을 지었다.
“내부에 세계 침식자와 내통하는 이가 있었어. 세계 침식자가 내부에서 터져 나오며 순식간에 점령당했어.”
“내통자 말입니까? 대체 누가.”
서리스가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워너힐 아카데미에는 서리스의 지인이 많이 있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워너힐 아카데미가 관련되자 전에 없던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 서리스의 질문을 듣고 아라만은 기다란 한숨과 함께 말했다.
“펜타니엄 칼릭스.”
그리고 그 이름이 나온 순간 서리스의 주먹에서 힘이 빠졌다.
설마 여기서 그 이름이 튀어나올 거라곤 생각 못했기 때문이었다.
“네 사촌 형이야. 서리스.”
항상 의심하고, 경계했던 그였지만.
세계 침식자와의 내통이라니.
‘칼릭스의 미래가 이렇게 바뀌었다고?’
그러면서도 서리스의 머릿속에 의문이 깃들었다.
칼릭스가 자신이 계획한 일들이 잘 안 풀리며 초조해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가 이런 식으로 세계 침식자와 손을 잡는 건 비정상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칼릭스는 그렇게 멍청한 인물이 아니다.
대전쟁의 흐름만 봐도 누가 이길지는 그도 잘 알 것이었다.
“범인이 칼릭스라는 건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그야 검왕이 그를 직접 잡아 와 범인이라고 말하였으니까.”
검왕.
그 이름이 나온 순간 서리스는 자신이 모르는 방향으로 세계가 나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번 대전쟁.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