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스산하게 들려오는 마수의 발소리.
조금만 방심해도 덮쳐 오는 마수와 인간이 살아남을 수 없는 자연 지형.
최흉 바로 직전이라 불리는 세계 침식 마굴 속에서 서리스와 빅토르는 벌써 이 주째를 맞이했다.
“그윽, 쩝, 이놈도 먹을 만하네.”
자기 손만 한 뱀고기 조각을 우물우물 먹으며 빅토르가 말하자 서리스도 그를 따라 한 입 베어 물었다.
익히지도 않은 뱀고기였지만 먹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생으로 무언가를 먹은 지도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불을 피워 고기를 익히면 냄새를 맡은 마수들이 몰려와 제대로 식사도 못 할 게 뻔해서.
그냥 생으로 먹는 게 일상이 된 것이었다.
“빅토르 선배, 별로 위장 보호 잘하세요. 기생충 감염됩니다.”
“첫날부터 열심히 하고 있어.”
마수 관련 공부를 열심히 했던 서리스기에 그나마 먹어도 별 탈 없는 놈들 위주로 먹고 있긴 하나.
익혀 먹을 방도가 없는 만큼 그쪽은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
“마법사가 있으면 편할 텐데.”
입가에 묻는 뱀 핏물을 대충 닦는 빅토르의 말에 서리스도 동의했다.
생존에 관해서 마법사만큼 유용한 이들이 없다.
불을 피우거나 마실 수 있는 물을 만들 수 있는 시점에서 마법사의 전력은 이런 환경에서 최강이었다.
그에 반해 서리스와 빅토르는 몸 쓰는 것밖에 못 하니 답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쯤 나갈 수 있는 거냐?”
“주인을 잡으면요.”
“그 주인은 어디 있는데?”
“제가 알았으면 진작 그리로 향했죠.”
빅토르의 질문에 답하며 서리스는 씁쓸하게 웃었다.
주마의 숲은 끝없는 초롱만큼은 아니어도 그 크기가 대가문의 영토와 비슷할 정도다.
마굴은 본래 여러 세계 침식들이 합치고 합쳐져 만들어진 곳이다.
그런 만큼 주마의 숲에도 여러 주인이 존재한다.
하지만 주마의 숲은 마굴 중에서는 가장 커다란 숲이었기에.
주인 중 하나를 만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서리스와 빅토르는 이 주 째 마수와 싸워나가며 숲을 계속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아무리 서리스가 검은별로 마수의 기척을 자세히 알 수 있다 한들.
이 정도 넓이면 주인의 위치를 알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 따뜻한 수프에다가 빵 찍어서 먹고 싶다.”
“탄수화물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거면 이거 드세요.”
“그거 생 밀가루 먹는 거 같아서, 맛없어.”
서리스가 주마의 숲에서 구한 콩 모양의 열매를 건네자 빅토르가 질색했다.
확실히 겉모습은 콩이어도 씹는 순간 으스러져 밀가루처럼 돼버리기에.
서리스도 이걸 먹는 게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라도 균형잡힌 영양소 흡수는 필수였기에 서리스가 그걸 하나 입에 넣고 있자 빅토르가 짜증스레 나무를 주먹으로 쳤다.
“그 아저씨, 우리를 여기다 버리고 간 게 분명해.”
이 주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강혼이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일까.
빅토르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성난 표정을 지었다.
주인을 못 찾아서 답답하니 괜히 화풀이하는 거였다.
“뭐, 그래도 착실히 성장하고 있으니, 딱히 상관없지 않나요?”
“난 마수 놈들의 생태계만 파악하고 있는 느낌인데.”
툴툴거리는 빅토르긴 했지만, 서리스가 보기에 그 역시 이 이 주간 또다시 성장한 듯했다.
소수 민족 카론은 본래 별 대신 자연의 힘을 몸 내부에 담아 사용한다.
그러나 빅토르는 같은 카론임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힘을 몸에 담지 못하는 체질을 지녔으며.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별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서리스는 빅토르의 내부에 무언가 서서히 쌓여가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저게 자연의 힘인지는 나로서도 잘 모르지만.’
분명 저 힘은 빅토르가 마굴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쌓이기 시작했다.
‘주마의 숲은 자연 덩어리니까. 빅토르의 체질이라도 자연의 힘이 쌓이기 시작한 건가?’
본인은 아직 못 알아차린 듯싶지만.
서리스는 강혼이 빅토르를 굳이 주마의 숲에 넣은 이유가 바로 저게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빅토르는 주마의 숲에서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더 활기차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아! 화딱지 난다! 마수 놈들 덤벼! 화풀이라도 좀 하자!”
아니, 그냥 짐승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인가?
저 멀리 지나가던 뿔 달린 호랑이 마수에게 달려드는 빅토르를 보며 서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빅토르는 자연의 힘을 채우고 있다 치고.
서리스가 주마의 숲에서 채우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검은별이었다.
마굴에서 태어난 놈들답게 주마의 숲에 있는 마수들은 세계 침식의 힘을 듬뿍 머금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그들에게서 열심히 세계 침식을 흡수해 검은별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삼킨 세계 침식의 힘들이 워낙 거대해서였을까.
이렇게 조금, 조금 삼켜 나가는 것은 어쩐지 성에 안 차는 느낌이 들었다.
‘주마의 숲에도 대해와 같이 높은 급의 마수가 있는 거로 안다.’
대해에서 쓰러트렸던 도올과 같은 녀석들이 분명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빅토르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한 시라도 더 빨리 강해질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니 서리스는 쉴 시간도 쪼개어 주마의 숲을 더 열심히 나아가고자 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빅토르와 서리스는 어느새인가 주마의 숲에 완전히 적응을 마쳤다.
서리스를 따라 최근에 태화조식 자세를 취해보기 시작한 빅토르는 무언가 깨달은 게 있는지.
태화조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연의 힘을 내부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자연의 힘을 몸 내부에 담지 못한다고 알고 있었으나, 사실 알고 보니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빅토르는 자연의 힘을 못 담는 체질이 아니었다.
그는 자연의 힘을 담는 그릇이 너무 깊디깊어 십 년을 담아도 그것을 끌어 쓰는데 효율이 안 나왔던 것뿐이었다.
빅토르가 그걸 깨달은 것은 주마의 숲에 들어온 지 삼 주째가 되던 날이었다.
그는 얼떨떨해하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난날 부족에서 겪었던 서러움이 떠올라서인지.
빅토르답지 않게 한동안 조용히 있기도 했다.
그러나 곧 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카드가 생겼다고 판단한 것인지.
적극적으로 자연의 힘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멀리서 지켜보던 강혼이 턱을 매만졌다.
‘저놈 저거, 또 성장했군.’
한 달 사이 빅토르의 눈빛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눈치챈 강혼은 그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끈기 하나만큼은 인정했지만, 여러모로 부족했던 빅토르다.
그러나 주마의 숲에서 자연의 힘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본인이 평생 없이 살았기에 더더욱 간절하게 자연의 힘을 끌어 쓰고 있는 것이었다.
빅토르가 주마의 숲에서 나갈 때쯤.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이다.
본인은 이걸 아직 모르는 모양이지만 자연의 힘을 흡수해나가며 빅토르는 키와 덩치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카론 족은 본래도 큰 키를 지니고 있었으니, 그는 자연의 힘을 얻으며 이제야 제2의 성장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리스 저놈은.’
그리고 그런 강혼의 눈이 이번에는 서리스에게로 향했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주마의 숲에서도 매일 같이 태화조식을 반복하고 있는 서리스를 보며 강혼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처음 서리스는 주마의 숲에서 나오는 마수들의 세계 침식만을 흡수했었다.
그 과정에서 검은별은 착실히 성장했으나.
서리스는 계속해서 부족함을 느꼈다.
그렇기에 어느 시점부터 서리스는 그 갈증을 채우고자 방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마수는 세계 침식에서 탄생한 괴물들이다.
그런 마수들이 태어나는 곳이 애초에 어디던가.
그건 바로 지금 서리스가 들어와 있는 주마의 숲 그 자체였다.
거기까지 사고가 도달한 서리스는 사고방식을 바꾸었다.
그건 바로 마수에게서 뿐만 아니라 마굴이 지닌 세계 침식 자체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어차피 이곳은 세계 침식으로 만들어진 공간.
주변이 세계 침식으로 꽉 채워져 있는데, 뭐 하러 마수에게서만 세계 침식을 흡수한단 말인가.
서리스는 그 생각을 하자마자 즉시 태화조식을 시작하였다.
본래는 별만을 흡수하던 태화조식이었으나 서리스는 거기에 세계 침식도 덩달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왔다.
서리스의 몸으로는 날이 가면 갈수록 많은 주마의 숲이 지닌 세계 침식이 흘러들어왔고.
그는 하루를 거듭할 때마다 검은별의 총량을 터무니없이 늘려나가고 있었다.
서리스는 지금 마굴을 직접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강혼이 보기에 지금 주마의 숲은 서리스를 중심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최근 주마의 숲의 마수들이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사나워지는 것도 다름 아닌 그 이유였다.
자신들의 터전이 서리스에게 먹혀 나가고 있으니 그들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기껏해야 주인 녀석들의 힘을 흡수하겠거니 생각했더니.’
설마 마굴 자체를 흡수하기 시작했을 줄이야.
저 말은 즉, 서리스는 이제 마굴에 던져 놓기만 해도 알아서 혼자 쭉쭉 성장해 나올 것이란 소리였다.
‘한가지 걱정인 건, 마굴에서 흡수한 힘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가 없는가인가.’
강혼은 자기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거대한 힘은 지닌 것만으로 분명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온전하게 다루지 못한다면 그 힘음 오히려 독이 되고 만다.
서리스는 그런 부분을 펜타니엄이 지닌 그림자로 어느 정도 해결하는 듯하나.
펜타니엄의 별이 같이 성장하지 않는 이상 그 한계점은 명확하게 정해져 있을 것이다.
“후, 이런 건 락로드 놈이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검황 펜타니엄 락로드를 떠올리며 강혼은 한차례 혀를 찼다.
아무리 강혼이라 할지라도 펜타니엄의 비기는 도울 방법이 없었다.
그림자는 오직 펜타니엄의 전유물이었으니까.
‘됐다. 이건 락로드든 검왕 녀석이든 알아서 해주라 하고.’
강혼은 고개를 들어 시선을 숲의 저편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정적을 깨고 들려오는 소리가 무슨 의미인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주마의 숲이 서리스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것을 알아챈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이 집의 주인들.
그들이 자기 집에 들어온 침입자를 제거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까지 알고, 한 짓인지는 모르겠다만.’
훨씬 더 오래 걸릴 거로 생각했던 주마의 숲 클리어가.
의외로 금방 끝날지도 모르겠다.
* * *
“후우.”
기다랗게 내뱉은 숨과 함께 서리스는 자기 몸에 감도는 검은별의 힘을 느꼈다.
얼마 전, 주마의 숲에 깃든 세계 침식 자체를 흡수하기 시작하고 나서.
검은별의 총량이 끝없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도 가능했을 줄이야.’
본래 마수에게서만 빼앗던 세계 침식의 힘이.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도 흡수하게 될 수 있단 걸 알게 되고.
서리스 또한 상당히 놀랐었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금강잔월과 신룡월단의 역할이 컸다.
금강잔월을 통해 세계 침식의 흐름이 보였고.
그것을 신룡월단으로 끊어 검은별로 인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분명 다른 열쇠도 할 수 없는 방법이야.’
금강잔월과 신룡월단, 두 가지를 익혔기에 할 수 있었던 훈련.
용제가 여기까지 생각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서리스는 덕분에 검은별이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채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생각보다 내가 더 빨리 성장할지도 모르겠는데.’
오늘은 주야의 숲에 들어온 지 한 달 하고도 이 주가 되는 날이다.
그걸 감안하면 정말로 엄청난 성장 속도였다.
한가지 문제는 검은별만 무작정 흡수한다 해서 답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거지만.
어쨌든 강해지는데 수단을 가릴 필요는 없었다.
오싹!
그러는 순간 서리스는 자기 몸을 타고 흐르는 감각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숲의 끝자락.
무언가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는 감각이 전신을 스친 것이다.
“빅토르 선배.”
“어, 어, 으엉?”
자연의 힘을 흡수하다 졸기라도 한 건지 빅토르가 침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를 보며 서리스는 악스판시온을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제가 놈들의 코털을 좀 세게 건드린 모양입니다.”
서리스는 오랜만에 몸을 감싸는 긴장감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빅토르 또한 이 대량의 기척을 느낀 건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 씨, 이거 우리 죽는 거 아니야?”
“죽을 겁니까?”
“절대로 안 뒤져.”
빅토르의 거친 대답을 들으며 서리스 또한 동감했다.
쿠웅! 쿠웅! 쿠웅!
“끼이이이이이이익!”
“케라라라라라라라라락!”
그리고 두 사람이 대화를 마치는 순간, 눈이 뒤집힌 주마의 숲의 주인들이 숲을 박살 내며 나타났다.
“먼저 죽는 쪽이 밥 사기입니다.”
“저승에서 밥은 얼어 죽을!”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던진 서리스와 빅토르가 동시에 전신에서 힘을 터트렸다.
둘과 주마의 숲이 주인들의 생사를 건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