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지옥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다.
서리스는 강혼에게 훈련받으며 그런 생각을 종종 했다.
무투신의 정적을 이용해 쫓아오는 강혼은 그야말로 귀신과도 같았다.
기척이 안느껴지니 그가 언제 어디서 공격해오는지를 모르고.
그러다 보니 온종일 몸이 긴장 상태에 놓여야만 했다.
문제는 기척만 없지, 그 주먹은 강철도 뚫어버릴 만큼 강력한 것이라.
서리스는 조금만 방심해도 가해지는 강렬한 충격에 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아무리 그가 급격히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강혼에게는 어림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리스여서 이 정도지 빅토르의 경우에는 더 심각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그냥 맷집으로 버티겠다고 마음먹은 건지.
강혼의 주먹세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맞섰다.
물론 두들겨 맞는다는 결과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지만.
빅토르의 맷집만큼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바퀴벌레는 비교 대상도 못되겠군.’
서리스는 강혼의 주먹을 무려 열 대나 견디는 빅토르를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서리스가 지금까지 딱히 그를 무시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서리스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한 인물이었다는 걸 깨달아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서리스가 사실 빅토르도 금강잔월을 익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빅토르와 같이 서리스 또한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강혼의 훈련 방식은 생각보다 더 효과가 좋았다.
서리스의 기감은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예민해졌고.
그 결과,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 수백 장 하나하나의 기척을 모두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기감이 그만큼 발달 된 것이다.
물론, 훈련의 성과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후웅!
소리 없는 곳에서 휘둘러진 강혼의 주먹을 악스판시온으로 받아쳐 낸 서리스가 역으로 검을 내질렀다.
강혼은 가볍게 그 검을 피함과 함께 서리스를 바라보더니 한차례 웃었다.
“후발 선제의 묘리의 감을 잡았군.”
히죽 웃은 강혼의 말을 듣고 서리스는 자신이 쥔 악스판시온을 바라보았다.
후발 선제의 묘리.
상대가 먼저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자신의 공격을 닿게 하는 기술이다.
무예의 극치라 불리기도 하며 익히는 순간 무궁무진한 응용법이 존재하나.
서리스는 후발 선제를 익히지 못했었다.
왜냐하면, 서리스의 몸은 금강잔월로 인해 타고난 강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공격에도 뚫리지 않는 강인한 육체.’
웬만한 공격은 당해도 버티거나 회복해 버리는 육체를 지닌 서리스이다 보니.
상대의 공격을 그냥 받아낸 다음 되돌려 주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러나 강혼의 경우에는 그게 불가능했다.
금강잔월로 단련된 서리스의 육체조차 그의 주먹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 결과, 서리스는 육체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번번이 그의 공격에 당했었다.
그렇기에 서리스의 몸이 서서히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을 그대로 받아내는 것은 포기한다.
대신 날이 가면 갈수록 올라가는 기감을 이용해 상대의 공격이 들어온 그 시점에.
보다 빠르게 상대에게 검을 닿게 한다.
“아직 멀었습니다.”
서리스는 악스판시온을 쥐고 숨을 한차례 내쉬었다.
후발 선제의 묘리는 상대방이 먼저 공격했음에도 자신의 공격을 먼저 닿게 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강혼의 주먹이 서리스의 검보다 빠르다.
“허어, 욕심 가득하기는…… 내 주먹이라 이렇지. 이제 네놈에게 웬만한 녀석의 공격은 닿지도 못할걸?”
“그 웬만한 녀석들을 상대하기 위해 익히는 기술이 아니니 그렇죠.”
서리스가 앞으로 상대해야 할 이들은 세계 침식자와 사상지평, 그리고 용신이다.
그들은 절대로 웬만한 녀석들이라 평가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더 부탁드립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서리스가 오히려 훈련을 더 재촉하는 형태가 되었다.
강혼은 그런 그를 보며 콧방귀를 내쉬곤 옆에 쓰러져 있던 빅토르를 들어 올렸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 할 거 같은데.”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이 나무가 치솟아 오른 거대한 숲이 있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숲의 중심에 우뚝 선 나무 하나는 정말로 하늘에 닿을 것처럼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마굴, 주마의 숲.”
“그래, 너희 펜타니엄에 있는 최흉, 끝없는 초롱에 비하면 별거 아닐지는 몰라도. 여기가 숲 형태의 마굴 중 최고 규모일 거다.”
끝없는 초롱과 같은 숲의 형태를 지닌 주마의 숲을 보고 서리스는 뒤늦게 자신들이 어느새 마굴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강혼과의 훈련에 심취한 나머지 여기까지 온 것도 몰랐다.
“그 집중력은 잘 챙겨둬라. 언젠가 네 목숨을 구할 날이 있을 거니까.”
그리 말한 강혼은 빅토르의 뺨을 한 대 툭 쳤다.
“아아아악! 덤벼라악!”
그러자 빅토르가 눈을 번쩍 뜸과 함께 강혼을 향해 주먹을 휘둘러 왔다.
뺨을 치는 게 무슨 그를 깨우는 신호라도 되는 걸까.
강혼은 그런 그를 대충 던져두곤 고갯짓했다.
“오늘부터 마굴을 정리한다.”
“마굴을 말입니까?”
서리스는 조금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하니 마굴을 정리하겠다는 소리를 바로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최흉이야 천상사성도 불가능한 세계 침식이나, 마굴은 과거에 몇 번 정리 된 적이 있긴 했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인력 투자와 혹은 천상사성급 인물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정리할 수가 없으니.
마굴은 지금까지 중간중간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청소할 뿐이었다.
“그래, 나도 원래 마굴 청소는 손이 많이 가니까. 굳이 하지는 않는데. 지금은 네놈이 있잖냐.”
서리스는 세계 침식을 흡수할 수 있다.
그 말은 곧 세계 침식을 제거하는 데도 가장 제격이라 할 수 있었다.
강혼은 그 점을 노리고, 서리스를 강화할 겸 겸사겸사 마굴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주마의 숲은 네놈들이 경험 쌓기에 괜찮은 놈들이 득실거리거든.”
월하십인에 올라선 서리스지만 주마의 숲은 그도 방심할 수 없는 마수들이 많다.
“최근, 세계 침식자를 상대한다고 대인전을 중점으로 익혀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강혼은 그렇게 말하며 주마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숲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무 위에서 사람 보다 수십 배는 큰 거대한 도마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놈은 줄곧 나무에 동화되어 숨어 있었던 듯, 그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기척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강혼은 이를 진작 알고 있었다는 듯, 그 도마뱀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끼이이익!”
강혼의 주먹에 얻어맞은 도마뱀이 나무 한 그루를 쓰러트리며 즉사했다.
그것을 보며 강혼은 서리스와 빅토르를 돌아보며 씩하니 웃어 보였다.
“그놈들이 가진 능력은 마수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마수는 그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니 실전 경험을 쌓는 데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그리고 마수들은 쉴 틈도 주지 않고 공격만 하겠죠.”
“잘 아는군. 더불어 나는 이 순간부터 너희들 전투에 개입하지 않을 거다.”
무투신의 기본은 정적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무투신을 사용한다면 마수는 그가 자신의 옆에 다가오는 것조차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마수의 공격에 노출되는 것은 서리스와 빅토르였다.
“와씨, 아저씨, 개 치사하게 구네.”
“저 어린놈이…… 이건 네놈들 훈련이잖아!”
빅토르가 항의해봤지만, 강혼은 오히려 코웃음 치며 팔짱 꼈다.
“잘 기억해라. 너희들의 적은 세계 침식자만이 아니다.”
더 본질적인 것을 보라며 강혼은 두 사람을 일깨워주었다.
“세계 침식자에서 더 나아가 최흉을 막는 것, 그리고 그 최흉을 언젠가 이 세상에서 지우는 것.”
코앞에 있는 세계 침식자와의 대전쟁에 한 눈이 팔려 본질을 잊지 마라.
“그것이 너희가 최종적으로 나아갈 길이다.”
강혼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서리스 쪽을 보았다.
그는 이를 통해 용신 또한 포함된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었다.
용신은 최흉을 넘어 그다음의 이야기였으니까.
결국, 서리스는 세계 침식자만을 염두에 둬서는 안 된다는 소리였다.
“그럼 지금부터 너희 둘이서 마굴을 정리해라.”
터무니없는 과제를 남긴 강혼은 그 말과 함께 숲으로 사라졌다.
그가 무투신을 사용하며 기척을 지워 버린 것이다.
한순간에 빅토르와 둘만 남게 된 서리스는 그를 돌아보았다.
“빅토르 선배, 죽으면 안 됩니다.”
“뭔 소리냐. 너야말로 몸 잘 사려. 나중에 울고불고해도 안 도와준다.”
빅토르의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알지는 못해도 최소한 저 자신감이 절대로 꺼지지는 않으리라고 서리스는 확신했다.
“가보죠.”
언젠가는 들어갔어야만 하는 마굴이다.
그러한 마굴을 제 손으로 흡수할 기회.
서리스는 이걸 절대로 놓칠 생각이 없었다.
세계 침식자와의 대전쟁이 코 앞이다.
‘이번 마굴에서 확실하게 강해져서 돌아간다.’
천하오장성을 목표로 서리스는 그렇게 주마의 숲으로 들어섰다.
* * *
서리스가 주마의 숲으로 들어선 시점.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사상지평의 소란 이후 2학년생들 여럿이 마왕의 저택에 모였다.
서리스가 떠나고 난 뒤, 그들은 아카데미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을 크라페를 통해 들었다.
서리스가 세계 침식자와는 또 다른 이들과 싸우고 있고.
그 과정에서 월하십인과 천상사성과 함께 그들을 무찔렀다는 것을 말이다.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황금 세대라 불리는 그들이었으나, 그들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
서리스가 나아가는 행보에 비하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아니란 걸 말이다.
서리스는 용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서리스가 날아오르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는 건, 그들도 싫었다.
모두가 그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이다.
“서리스 님도 참, 이제는 저희가 안중에도 없는 건지. 아주 그냥 혼자서 팍팍 나아가시네요.”
아이랑이 살짝 삐진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번에도 아무런 말도 없이 훌쩍 떠나가 버린 서리스를 떠올리니 괜히 심술이 났다.
그러면서도 그를 향한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는 건, 아무래도 자신이 그에게 단단히 홀렸기 때문인 거 같았다.
“서리스 님도 계속 노력하시는 거니까요. 현재의 자리에 안주하지 않는 것은 언제나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랑의 말에 발렌타인이 이어 답했다.
“부정은 안 하겠지만요. 그래서 저희가 이런 자리까지 만든 거고요.”
그리 말한 아이랑은 고개를 들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전원 서리스와 연이 닿은 사람들이었다.
염성 바르크 이바드라와 그의 연인인 셀린부터.
도로시, 서발광, 크라페 심지어 뇌성 일렉시즘 호라이즌까지.
2학년 상위 멤버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올스타드 스타리즈까지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모인 건 그런 한탄을 나누자고 모인 게 아니다 아이가.”
스타리즈가 입을 열자 모두가 동감했다.
“맞아요. 저희가 이렇게 모인 건, 앞으로 서리스 님 못지않게 더 성장하기 위함이에요.”
그런 그의 말을 아이랑이 이어받았다.
이들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단 하나.
변해가는 세상에 맞춰 자신들도 더 강해지기 위함이었다.
“원래는 이런 자리 가문을 생각하면 좋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저희는 각자의 비기를 보다 보완할 필요가 있어요.”
대가문과 소가문, 혹은 개인이 가진 비기를 공유하며 성장하기 위한 자리.
이것이 그들이 이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언젠가 장차 자신의 가문에서 중요 요직을 차지할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쌓아 올린 비기는 절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것을 공유한다는 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진심으로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나도 끼워줘.”
그러는 순간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검성 펜타니엄 샬롯이었다.
설마하니 샬롯까지 여기에 낄 줄은 몰랐던 이들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이랑만은 그 이유를 잘 알기에 미소를 지었다.
“환영해요. 샬롯.”
“그리고 아마 두 녀석도 올 거야.”
그 두 녀석이 영성 마키나 뮤리널과 펜타니엄 제로라는 걸 잘 아는 아이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곱별, 아니, 신성들끼리 한 번 뭉쳐서 별빛의 세기 좀 올려보죠.”
먼 미래.
그들이 신성이 아닌 하나의 별로 자리 잡았을 때 이루어질.
미래의 천상하월 화합이 미니 사이즈로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