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31화 (231/275)

231화

사상지평과의 전투가 끝난 후.

한숨 돌린 서리스는 뒤늦게 발걸음을 옮기며 상황을 파악했다.

전투의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다.

서리스가 사전에 사상지평의 움직임을 전부 파악했던 만큼.

워너힐 아카데미에 숨어든 녀석들 전원을 잡아들이거나, 사살할 수 있었다.

“왔냐?”

강혼이 서리스 쪽을 돌아봤다. 이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박된 채 쓰러져 있는 자들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강혼에 의해 드러난 그들의 얼굴은 전부 평범했다.

이런 일과는 전혀 연관 없을 것 같은 그들의 생김새를 보고 있으니.

그들이 두 눈을 부릅뜨며 그를 노려봤다.

하나같이 마치 어떻게 열쇠가 자신들을 배신할 수 있냐는 표정이었다.

서리스는 그들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으며 다른 쪽을 보았다.

그쪽에는 중년 남성 한 명이 따로 격리되어 있었다.

성위 쪽을 암살하러 온 사상지평을 전부 정리한 강혼이 중간에 난입해 잡아 왔다고 한다.

그는 무려 사상지평의 중 고위 사제였다.

‘그의 직위가 고위 사제라는 건 사상지평의 인원이 이것 말고도 좀 더 있다는 소리겠지.’

그들은 사실상 용신을 믿는 종교에 가까웠다.

간부에 속하는 이를 사로잡았으니 당분간은 정보를 뜯어내는데 고생을 좀 할 것 같았다.

용신에게 눈이 돌아가 그를 맹신하는 만큼 웬만한 고문에도 정보를 쉽게 내어주지 않을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열쇠가, 열쇠가 감히 그분을 배반해!”

쓰러져있던 고위 사제 지오스가 서리스를 발견하고는 격렬히 몸을 떨었다.

그의 눈에서 느껴지는 혐오감과 배신감은 지독할 정도였다.

그러나 서리스는 이를 그다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믿는 그 용은 내가 날개부터 찢어 줄 테니까.”

“멍청한 놈! 그분이 기껏 은혜를 내려주셨건만. 네놈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자격이 없다!”

대체 어떻게 해야 용신을 이토록 맹신하게 되는 걸까.

놈이 세상을 집어삼키고 뜨는 날을 구원의 날이라 믿는 미치광이들을 보며 서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세계 침식자를 보면서 배운 것도 없는 건지 나원.

“강혼 님, 락스카 형님과 힐로즈 단장은 무사하답니까?”

“그놈들도 월하십인이니까. 네 녀석이 멀쩡한 걸 보면, 답이 나오지 않냐?”

“저도 썩 멀쩡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저 말을 하는 걸 보니 두 사람은 별문제 없는 모양이었다.

“이놈들은 이제 어쩔 거냐?”

“사전에 한 분께 연락을 해뒀습니다.”

서리스가 그리 말하는 순간, 때마침 허공에 문 모양이 하나 만들어졌다.

그걸 열고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마왕 아라만이었다.

“요요, 오랜만이야. 서리스.”

“오랜만입니다.”

아라만은 싱글벙글 웃으며 제압당한 사상지평들을 바라보았다.

“재밌는 것들이 많이 있네? 반은 내가 가져가고, 반은 불터렉스에 옮기면 되는 거지?”

“네,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서리스는 아라만과 독후 불터렉스 윈터에게 사전에 도움을 청해놨었다.

아라만은 검은별에 관련해서는 인간 쪽에서 가장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이였고.

윈터는 독과 암기를 이용한 심문에 가장 적합한 이였기 때문이었다.

천하오장성 두 사람 다 자신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준 덕분에.

서리스는 생포한 이들을 둘에게 맡길 수 있었다.

“흐음, 월하십인 두 명 때부터 알고는 있었다만, 네놈 발이 상당히 넓구나?”

그런 서리스를 보며 강혼은 꽤나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천상사성과 천하오장성, 그리고 월하십인이라는 자리는 분명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가문의 장들이 대부분인 그 자리는 세계를 위한 연합일 뿐이지.

그 아래에서는 물밀듯 경쟁하고 있다.

당연히 그렇다 보니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라도 실제로는 그리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리스는 그들과 달리 여러 인물과 상당히 연이 두터웠다.

마치 인류의 중심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직 어리니 다들 예뻐해 주시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리기는 무슨, 능구렁이 같은 녀석이.”

서리스가 장난으로 화답해 주자 강혼은 콧방귀를 내쉬었다.

서리스와 몇 번 대화해본바 그가 외형과는 다르게.

그의 속에 능구렁이 몇십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단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라만이 사상지평 일원을 옮기고 나자 어느새 저 멀리서 해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도 해는 뜬다는 걸까.

떠오른 해를 바라보던 서리스는 강혼을 돌아보았다.

“사상지평은 다 정리되었습니다만, 바로 돌아가실 겁니까?”

질문을 들은 강혼은 서리스를 따라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해 쪽을 보았다.

“아니, 꼴을 보아하니 내 수련에만 전념했다간, 세상이 남아나지 않을 거 같다.”

그의 말을 듣고 서리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천상사성도, 천하오장성도, 월하십인도, 모두 다 혼자서는 세상을 지킬 수 없다.

그렇기에 강혼 또한 이제 세상으로 나와 움직이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네놈을 좀 단련시켜두는 게 좋을 거 같군.”

이어진 말을 듣고 서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천상사성 자리를 제게 뺏기실지도 모릅니다?”

“요 며칠 봤다고 벌써 기어오르는 거냐? 아서라, 아직 멀었다.”

서리스는 거기에 관해서는 반박하지 않았다.

강혼의 말마따나 자신이 천사사성에 닿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은 언제부터 하실 겁니까?”

“내일부터다. 오늘은 이곳 전체가 좀 어수선할 테니까.”

확실히 그의 말대로 지금은 사상지평을 먼저 정리할 때였다.

“그리고 빅토르 그 어린놈도 같이 데려와라.”

그리고 이어진 말을 듣고 서리스는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빅토르가 기어코 그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세상이 바뀌어도 그는 결국 무황의 제자로 들어갈 운명이었다.

무투신을 익힌 빅토르는 언젠가는 무황과 같이 세상을 지킬 인물이 되겠지.

“이번 일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제 와서 말이냐?”

무황에게 한 차례 더 웃어 보인 서리스는 한 번 더 감사 인사를 하곤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가 향한 장소에는 익숙한 인물이 서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천구 아리즈 아리온이었다.

서리스와 마주하자마자 아리온이 천천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운명을 바꿔줄 별이라 판단한 제 생각이 옳았던 모양입니다.”

“자화자찬입니까?”

“조금은 해둬도 괜찮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 말하며 아리온은 서리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버지와 제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별의 운명을 볼 수 있지만, 자신의 운명만은 볼 수 없는 자들.

그게 바로 천체 관측자 아리즈 가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구한 것이 다름 아닌 서리스였다.

“감사 인사는 괜찮습니다.”

사상지평은 서리스에게도 걸림돌이었기에.

결국에는 적이 될 운명이었다.

“성위님께는 저도 빚을 진 적이 있거든요.”

비록 당시에는 그 조언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성위가 남긴 조언은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비록 지금의 성위는 그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겠지만.

서리스는 지금이라도 은혜를 갚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저는 그만 가보겠습니다. 성위님께는 안부 전해주세요.”

“서리스 님.”

그렇게 발을 돌리려던 서리스를 아리온이 갑자기 멈춰 세웠다.

그의 부름을 따라 서리스가 고개를 돌리자 아리온은 그를 바라보며 입을 때였다.

“언젠가는 운명을 바꾸는 별에도 정해진 운명이 들이닥칠 때가 있을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눈을 깜빡이었다.

“때로는 이미 정해진 운명을 따르는 게 좋을 때도 있는 법이겠지만.”

아리온의 등 뒤에서 후광이 살며시 올라왔다.

그가 성위와 같이 더 나아가 무언가를 보고 있음을 서리스가 눈치챘다.

“저는 서리스 님이 그런 운명에서조차 벗어나 나아가셨으면 합니다.”

“그건 예언입니까?”

“아뇨. 천체 관측자의 넋두리입니다.”

성위의 아들 아니랄까 봐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한다.

“새겨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답한 서리스가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다 떠오른 태양이 자신에게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음을 느끼며 말이다.

* * *

이틀 전 전투가 있었다는 소란 때문인지 조금은 뒤숭숭한 워너힐 아카데미 상황.

그러한 상황 속, 서리스는 오늘부터 하기로 한 무황과의 훈련을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서리스는 조금 피로를 느끼며 기다랗게 하품을 내뱉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제 마황 올스타드 스타로드의 실종에 관해 마제 올스타드 스타린과 대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스타린 님께서도 개인적으로 알아봐 준다 했고.’

전쟁이 코앞일 때에 스타로드의 실종 소식은 여러모로 마음에 걸렸다.

이제는 사상지평을 다 잡아들이긴 했지만.

과거, 세계 침식자와의 대전쟁 당시 스타로드도 함께 있던 걸 감안하면.

그가 이 시점에서 실종된 건 뭔가 또 미래가 바뀐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과거로 온 매리트는 사실상 없구만.”

서리스는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으며 워너힐 아카데미 쪽에서 좀 떨어진 숲속에 도착했다.

“서리스냐?”

“빅토르 선배, 얼굴 보니 그동안 잘 지내신 모양이네요.”

서리스가 도착한 숲속 쪽에는 이미 빅토르가 와 있었다.

예전보다 잔상처가 늘어난 그는 자기 턱 위에 손을 브이 자로 올리며 씩하니 웃었다.

“당연하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면 너도 까무러칠걸?”

“그것참, 기대되네요.”

실제로 빅토르는 그사이에 꽤나 강해졌다.

알게 모르게 강혼이 그를 단련시키고 있었던 거겠지.

“그것보다, 너도 그 아저씨가 부른 모양이네.”

강혼을 아저씨 취급하다니.

저 깡만큼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틀 전쯤에 저도 단련시켜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무려 천상사성이 해주는 단련이다.

서리스 입장에서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인 만큼 냉큼 온 것이다.

그런 서리스를 보며 빅토르는 안타깝다는 양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기에, 그 아저씨는 천상사성 같은 게 아니야.”

“네?”

빅토르의 말을 듣고 고개를 기울인 순간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어두워졌다.

“악마야. 그 인간.”

그 끈질긴 미친개 빅토르가 악마라고 표현하다니.

안 본 사이에 뭘 당했길래 그가 저렇게 되는 걸까.

서리스가 의문을 품는 순간 그는 등 뒤에서 한 인기척을 느꼈다.

“내 욕하고 있냐?”

거기에는 강혼이 있었다.

무투신의 기초인 정적 탓에 여전히 기척이 거의 안 느껴지는 그를 보고 서리스가 두 걸음 물러섰다.

“빅토르 선배가 했습니다.”

“와이씨, 서리스 날 팔아넘겨!”

“사실이잖습니까.”

빅토르가 억울한 표정을 짓는 사이 강혼은 별로 개의치 않은 표정을 지었다.

“상관없다. 오늘은 마굴로 갈 거다.”

워너힐 아카데미 밖으로 오라길래, 뭔가 했더니 마굴로 향할 줄이야.

“네놈에게도 그게 유용하겠지.”

서리스가 열쇠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강혼이다.

그가 자신을 배려해 주고 있음을 깨달은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검은별을 키우기에는 마굴만 한 곳이 없었다.

“그러니 가장 가까운 마굴에 도착할 때까지 나한테서 어떻게든 살아남아라.”

하지만 이어진 말은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 말이 떨어졌을 때, 빅토르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그는 벌써 당한 게 있는지 반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리스와 강혼의 두 눈이 마주쳤다.

강혼의 굵은 눈썹이 팔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순간 서리스는 대답 없이 달렸다.

월하십인이고 자시고 살려면 일단 달려야 한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리스의 인생에서 가장 지옥 같았다고 기억되는 무황과의 훈련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