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신룡월단.
용제가 용신을 죽이기 위해 만든 비기이자 세계의 흐름마저도 잘라낼 수 있는 기술.
금강잔월의 기본 모토인 흐름만을 알고 있는 서리스에게 신룡월단은 생각 이상으로 익히기 까다로웠다.
분명 금강잔월의 다음 비기임에도 불구하고.
서리스는 신룡월단을 완벽하게 사용하는데 번번이 곤욕을 겪고 있었다.
그것은 신룡월단과 금강잔월이 완전히 다른 선상에 있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흐름을 절단하는 힘.
그것이 무엇인가를 서리스는 계속 고민했다.
세상 어디에서든 고유의 흐름은 존재한다.
바람의 흐름.
물의 흐름.
하물며 작은 벌레마저도 자기 삶의 흐름이 존재한다.
금강잔월은 그러한 흐름을 모두 받아들이고.
내면에 있는 자신의 흐름을 보다 강하고 빠르게 만들어 육체를 강화한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에 흐름이 있듯이.
별 또한 흐름이 있다.
서리스가 자주 하던 운성조식이 바로 그러한 별의 흐름을 자신에게로 끌어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룡월단은 다름 아닌 그런 흐름을 끊는 힘이다.
‘용제는 신룡월단으로 시간마저 끊어 버렸다.’
그리고 끊어진 시간에서 온 것이 다름 아닌 소드란의 가주 올드렌이었다.
시간마저 절단하는 기술이 바로 신룡월단.
용제는 이러한 신룡월단으로 용신을 죽이고자 하였다.
‘강혼 님은 무투신이 정적인 비기라 하였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
그것이 바로 무투신의 극의.
어찌 보면 무투신은 금강잔월의 반대 선상에 있었다.
금강잔월이 모든 흐름을 느낀다면.
무투신은 반대로 모든 흐름을 느끼지 않게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러한 극의에 오른 강혼 조차도.
자신의 모든 흐름을 지우지는 못하였다.
금강잔월이 깃든 서리스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아주 미세하게 그의 몸 위에 흐르는 흐름만을 주시하며 서리스가 숨을 삼켰다.
힘 대 힘, 혹은 별 대 별 승부는 강혼 앞에서 무의미하다.
공격 자체가 통하지를 않는 시점에서 서리스가 그를 이길 방법은 없었으니까.
그러니 방법을 바꾼다.
그를 베는 게 아니라.
그에게 흐르고 있는 정적을 벤다.
‘신룡월단의 극의는 세상의 흐름 그 자체를 베는 것.’
정적이라 할지라도 못 벨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서리스는 신룡월단 하나에만 오롯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탓에 검은별과 청운귀명도가 밀려나며 그 힘이 약해지긴 했지만.
지금은 그 둘의 힘을 빌릴 때가 아니었다.
그러는 서리스의 의도를 따라 신룡월단의 기운이 더더욱 거세게 그의 전신을 뒤덮어 가기 시작했다.
서리스의 정신력이 고조되었다.
신룡월단을 이 정도로 끌어 올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서리스는 신룡월단의 진짜 사용법을 깨달았다.
‘내가 미숙했다.’
서리스는 늘 신룡월단을 단독으로 사용하지 않았었다.
자신의 힘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늘 다른 기술에 덧대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룡월단은 월하십인에 오른 서리스에게도 버거운 비기였고.
그렇기에 서리스는 늘 다른 힘의 보조로 신룡월단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 순간 서리스는 그것이 무척이나 잘못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룡월단은 용제가 만들어낸 마지막 비기다.
그 말은 즉, 이미 완성된 기술이라는 소리와 같았다.
‘단독으로 사용해야 했어.’
무형이 기운이 겹치고 겹쳐 새하얀 빛이 악스판시온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일대를 밝히는 그 빛에 강혼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그조차 서리스의 검 위에 서린 기운이 범상치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서리스는 그 검을 쥔 채 강혼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리석었어.’
언젠가 용제를 넘어선다면 신룡월단 또한 다른 비기와 함께 사용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자신은 겨우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과거 영웅 중 용제라는 최강의 인물이 고심 끝에 만들어 놓은 비기를 어리숙하게 고쳐 봤자다.
‘모든 걸 개척 해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길을 밟고 올라가 그 길이 끝났을 때에서야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도 된다.
그 사실을 자각하며 나는 이 순간 오직 신룡월단만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았다.
파삭―
용인화가 부서져 나가고 그림자가 숨을 죽였다.
그 속에서 나는 강혼의 정적을 깨고자 검을 휘둘렀다.
신룡월단(神龍狘斷)
이식(二式)
천룡(天龍)
하늘 위 상공.
어떠한 소리조차 존재하지 않을 하늘을 벨 용이 강혼을 덮쳤다.
언제나 정적만이 존재하던 강혼의 팔 위로 기다란 자상이 남겨졌다.
그것을 본 강혼의 눈이 희미하게 번뜩였다.
신룡월단이 그의 정적을 꿰뚫고, 상처를 남긴 것이었다.
고작해야 작은 생채기 정도.
내 미숙함을 보여주듯, 정말로 옅은 상처였다.
자신의 팔을 내려다본 강혼은 어쩐지 거센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였군.”
어째서 스승인 제라드가 무투신이 용제의 비기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는지.
이 순간 강혼은 깨달은 듯하였다.
“좋은 걸 봤다.”
그리 말한 그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
신룡월단의 진짜 힘을 본 것은 본 것이고.
“결과는 확실히 내주마.”
강혼의 주먹이 별을 담기 시작했다.
서리스는 그런 그를 보며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무자비하기는.
* * *
강혼과의 전투가 끝나고, 서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맞기만 해놓고 뭐 그리 배웠다고?”
그 말대로 서리스의 온몸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강혼은 말 그대로 일말의 자비도 없이 그를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것을 배운 건 사실이었다.
‘때로는 과한 게 독이 되기도 한다.’
신룡월단을 아직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는 상황인 만큼 하나만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신룡월단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날, 자신은 크게 성장하리라.
“그래서 나한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온 모양인데. 그게 가르침은 아닌 거 같고. 뭐냐?”
그러고 보니 사상지평 이야기를 아직 꺼내지 않았다.
강혼한테 일단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그게 늦었음을 깨달은 서리스는 서둘러 설명을 시작했다.
모든 설명을 다 들은 강혼은 턱을 매만졌다.
“사상지평이라…….”
“알고 계십니까?”
“아니, 나도 처음 듣는다. 세계 침식자는 여럿 쓰러트렸지만, 그런 놈들은 보지 못했었으니까.”
강혼은 다른 이들과 달리 소속된 가문이 없다.
그러니 비교적 정보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마황이라면 알고 있으려나.”
“마황이라면 새벽 마탑주 말씀이십니까?”
“그래, 올스타드 스타로드다.”
천상사성 중 하나이자 스타리즈의 아버지.
“새벽 마탑은 여기저기를 자주 옮겨 다니니까. 마황은 아는 게 많다.”
“워너힐 아카데미에 스타린이라고 마황님의 아들이 있습니다. 한 번 물어보겠습니다.”
뭣하면 스타린도 있긴 하니 말이다.
“그래서 사상지평이라는 놈들에게서 성위를 지키면 된다는 거냐?”
“예, 사상지평과 용신은 아직 저를 열쇠로 여기고 있고, 그런 그들이 직접 알려준 사실이니 확실합니다.”
“놈들이 널 시험해 보고자 속인 거라면?”
서리스는 그 말을 듣고 스산한 웃음을 흘렸다.
“그럼 대가를 치르게 되겠죠.”
용신과 관련된 시점에서 자비는 없다.
그들이 만약 그런 수를 던진 거라면 자신에게 사상지평의 존재를 알린 시점에서 악수였다.
자신은 어떻게든 놈들의 뿌리를 뽑고 말 거니까.
“그리고 애초에 그렇다고 한들 일단 성위님부터 지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이 들은 계획이 거짓이든 아니든 그들이 성위를 노리고 있다면 지키는 데 우선이었다.
그 말을 듣고 강혼은 피식하고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래, 큰 뜻이 있는 놈이라면 자고로 그래야지.”
당연한 말을 했건만 아무래도 그 나름대로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워너힐 아카데미로 가주마.”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겨우 안도했다.
성위 곁에 강혼이 있다면 그것만큼 든든한 것도 없으니까.
“그런데 내가 바로 나타나면 그놈들도 더 조심할 텐데?”
천상사성인 무황 강혼이 근처에 있다면 당연히 사상지평의 행동도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그 경우 괜히 성위의 목숨이 노려지는 기간만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저도 그 부분은 압니다. 그래서 하나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강혼은 말해보라는 양 서리스를 보았다.
그런 그를 보고 서리스는 허리춤에서 검은색 브로치를 꺼내 들었다.
“흑마녀.”
그리고 그가 부르자마자 브로치에서 검은색 개구리가 튀어나왔다.
그걸 보자마자 강혼의 두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세계 침식자 아니냐?”
“맞습니다. 용신을 쓰러트리겠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용제 때부터 협력해 주던 세계 침식자입니다.”
자세한 걸 설명하기에는 복잡하지만.
대전쟁에서도 우리 쪽 편을 들기로 한 세계 침식자가 있다는 건 그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따로 나를 돕는 이들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쩝, 그리 달갑지는 않다만. 그래서 그 녀석을 내게 보여준 이유는?”
“흑마녀는 공간 이동이 가능합니다.”
“흐음, 사상지평이 습격하는 순간에 나를 부르겠다?”
“예, 제가 다시 놈들에게 접촉해서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겠습니다.”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강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리하도록 하지.”
다행히 강혼은 협조적으로 나와 주었다.
‘남은 건.’
사상지평 놈들을 확실하게 조지는 것뿐이다.
서리스의 의지가 그렇게 조용히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