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서리스는 강혼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골랐다.
그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지 잘 몰랐기에 신중해야 했다.
단지, 그가 천상사성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세계 침식을 막았다는 것만 알 뿐.
‘만약 세계 침식자나 열쇠와 관련된 걸, 문답무용으로 죽이는 인물이라면.’
언행에 신중을 가할 필요가 있었다.
서리스는 실제로 드페리널 때 꽤 험한 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강혼 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저는 금강잔월을 익혔습니다.”
그러니 서리스는 우선 강혼이 직접 짚어준 문제부터 언급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눈앞에 있는 사자는 서리스조차 긴장할 수밖에 없는 괴물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무투신을 사용하시는 강혼 님이라시라면 금강잔월이 용제로부터 이어진 비기라는 것도 아실 겁니다.”
“그래, 내 스승이신 제라드의 동생분이시니까.”
이 부분에 관해서는 강혼도 손쉽게 동의해 왔다.
애초에 사실관계만 짚고 넘어간 거니 당연하였다.
“열쇠에 관해 아신다면, 용신도 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알고 있다.”
서리스가 용신을 언급한 순간 강혼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그는 제라드에게서 뭔가 직접 들은 게 있는 듯했다.
천상사성인 그가 용신에 관해 알고 있음에도, 직접 움직이지 않는 건.
그 스스로가 용신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용제는 용신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용신과 똑같은 힘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그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는 사실만 알게됐죠.”
“그래서 열쇠가 된 거냐.”
“예, 제가 열쇠가 된 이유는 용제의 뜻을 잇기 위해서입니다.”
정확히는 자신이 죽었을 때, 가장 강하게 끌어 쓴 소드란의 별이 빛나는 그 순간에 용제가 이렇게 이어준 것이지만.
거기까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남은 의지를 통해 용신에게 대적할 대적자를 만드셨습니다. 저는 그 의지를 이었고요.”
이것만큼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진실이었다.
그렇기에 서리스가 올곧은 눈으로 말하자 강혼은 한차례 생각에 잠긴 듯하였다.
그는 제라드가 아니다.
용제는 그저 스승의 동생일 뿐이고.
이름만 들어봤을 뿐, 용제라는 자가 어떤 이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용제의 비기를 이은 서리스의 말만 덜컥 믿기에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럼 한 가지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다.”
그러니 강혼은 서리스에게 자신의 확고한 신뢰를 얻을 기회를 주기로 하였다.
“스승님께서는 무투신은 용제가 만든 금강잔월에 결국 미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리 말한 강혼의 손에서 무형의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디 스승께서 인정한 금강잔월을 내게 보여봐라.”
서리스는 그 말을 듣고 한차례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저보고 무황님과 한 판 해보라는 겁니까?”
“겁먹었냐?”
“아뇨. 그것보다는 조금 걱정되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서리스는 그리 말하며 그림자에서 악스판시온을 꺼내 들었다.
“제가 사용하는 건 금강잔월 한 개가 아닙니다.”
그와 동시에 용제의 별과 펜타니엄의 별이 동시에 빛나기 시작했다.
그 강렬한 별빛은 무황이라 불리는 강혼 조차 꽤 놀랄 정도였다.
겉에서 흘러나오는 별의 힘이 예사롭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만.
이놈 상상 이상으로 별의 총량이 컸다.
“허어, 그래, 쓸 수 있는 수는 다 써도 된다. 어차피 네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은 거니까.”
“그렇습니까? 그럼 하나 더 꺼내도 되겠군요.”
그리고 이어진 도발적인 말과 함께 서리스는 검은별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먹물 같은 어둠이 별빛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둠의 파도였다.
별빛조차 집어삼킬 만큼 거세게 쏟아져 나오는 검은별을 보고 강혼은 두꺼운 눈썹을 꿈틀거렸다.
“여간내기가 아닌 거야 알고 있었다만. 네놈…… 많이도 집어삼켰구나.”
“일단, 열쇠의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서리스가 이토록 단기적으로 강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검은별의 덕이 무척이나 크다.
서리스는 검은별을 삼키면 삼킬수록 강해진다.
물론, 과하게 흡수하면 그것을 소화하는데 상당한 고생을 하긴 해도.
이제 최흉을 제외하면 서리스는 삼키지 못할 검은별이 없을 거라 장담하고 있었다.
“하지만 융화가 덜 됐군. 세 개 다 따로 놀고 있어.”
그 순간, 강혼은 서리스의 결점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설마 그걸 바로 알아차릴 줄이야.
서리스가 최근 고민하고 있던 부분인 만큼 그는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과연 무황.
보는 눈 자체가 다른 것 같았다.
“……혹시 제가 시험을 통과한다면, 저도 가르침을 조금 받을 수 있겠습니까?”
“무투신을 가르쳐 달라는 거냐?”
“아뇨. 그건 아닙니다. 무투신의 제자는 이미 정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서리스가 질문을 하자 강혼은 눈을 꿈뻑이었다.
하지만 마치 무슨 헛소리를 다 하냐는 듯한 표정을 보고 서리스는 조금 당황했다.
“빅토르 선배를 제자로 점찍어 두신 거 아닙니까?”
“그 어린놈을? 내가 뭐 하러 말이냐.”
시큰둥한 강혼의 표정을 보고 서리스는 그가 진심으로 그리 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빅토르, 그 인간…… 아직 강혼에게 인정받지 못한 건가.
불찰이다.
“깡따구 하나는 인정한다마는. 아직 멀었다. 그놈은 약해도 너무 약해. 무투신을 이으려다가 죽는다.”
신랄하게 빅토르를 비판하는 그를 보고 서리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인간이 과거 세계에서는 결국 빅토르를 제자로 들였는데 말이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의외로 그는 빅토르를 꽤 신경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보니 강혼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서리스는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솔직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뒤로 뭔가를 꾸미는 타입도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진심이 어떤지는 몰라도 점차 알게 되실 겁니다.”
빅토르가 어떤 인물인지 말이다.
그리 말한 서리스는 악스판시온을 쥐고 들어 올렸다.
“저는 무투신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네놈 몸에는 더 이상 별이 들어갈 틈도 없어 보이니까.”
그 말대로 서리스의 몸은 이미 별들로 꽉 차서 한계였다.
여기서 무투신이 들어와 봤자 자리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다른 별들에게 삼켜질 것이 뻔하였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서리스는 지금 신룡월단을 익히기도 벅찬 수준이었다.
“단지, 무투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비기인지는 알고 싶습니다.”
“아주 맛있는 부분만 골라 먹겠다는 속셈이렷다?”
“제가 원래 반찬 투정이 좀 심합니다. 그리고 무황님 눈에 보이는 제 문제점도 좀 조언해 주시면 좋고요.”
“생각보다 더 욕심쟁이였군.”
“그런 놈이라 여기까지 아득바득 올라온 거죠.”
그리고 자신은 아직도 그 욕심을 가득 가지고 있다.
월하십인에 올라와서도 만족감보다는 더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상승 욕구로 눈을 번뜩이고 있으니까.
그런 서리스의 깊은 욕망을 보며 강혼은 한 손으로 주먹을 텁하니 포개었다.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은 강혼도 마음에 들었다.
저런 놈이 강해지는 법이니까.
“최근 세계 침식자가 전쟁을 일으키는 걸 막고자 네가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건 들었다.”
“그게 여기까지 들려왔습니까?”
“그야 나도 자유롭게 살고 있긴 하지만 천상사성이니 말이다.”
대전쟁에서 강혼이 세계 침식자의 머리를 몇 개고 터트리고 다니던 소식은 미래를 아는 서리스가 가장 잘 안다.
그런 만큼 그 또한 이번 전쟁을 절대 손 놓고 있을 리 없었다.
“용신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 열쇠를 완성 시킬 필요성이 있겠지?”
“예.”
그걸 본 강혼의 입가에 호탕한 웃음이 걸렸다.
“나한테 인정받으면 밥 먹을 수저 정도는 하나 쥐여주마.”
그 말은 서리스의 의지를 최고조로 이끌었다.
그 순간 서리스의 전신에서 휘몰아친 검은별이 순식간에 그의 모습을 뒤바꿔 나가기 시작했다.
서리스는 칠흑 같은 한 마리의 용이 되었다.
그 모습을 직접 본 강혼은 또 생각지도 못한 걸 봐서 어이없어했다.
“아주 진심 잔뜩이로군.”
그렇다면 진짜로 진지하게 임해주는 게 맞겠지.
“단판 승부다.”
일격으로 끝내겠다고 강혼은 그렇게 선언했다.
그 말을 듣고 서리스가 악스판시온을 옆으로 뻗었다.
그 순간 악스판시온에는 강혼도 잘 모르는 무형의 기운이 서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 무형의 기운에 닿은 대기마저 일그러져 가니, 한눈에 보기에도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악스판시온이 마치 대검의 형태로 길어짐과 함께 그 무형의 기운을 검 전체에 덮였다.
“준비됐습니다.”
용인화, 제왕월영도, 그리고 신룡월단까지.
서리스가 지닌 두 개의 별의 최대치를 담은 그 검은 대기를 연소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강혼 또한 오른손을 허리춤에 당김과 동시에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오고 싶을 때 와라.”
아까 전부터 그에게서 느껴지던 사자 같은 맹수의 기운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그저 조용히 바람이 불어오는 들판이었다.
일순간 강혼이 그곳에 없다는 느낌마저 받은 서리스는 우수수 소름이 돋았다.
용인화를 발동한 그의 기감은 이미 최대치였는데, 눈앞에 있는 그의 기척을 똑바로 느끼지 못할 지경이라니.
‘역시 천상사성…….’
세계에서 단 네 명뿐인 괴물이 어느 정도인지 서리스는 똑바로 느꼈다.
그리고 서리스가 발을 내뻗었다.
후욱!
뒤늦게 터져 나오는 소리와 함께 서리스의 인영이 사라졌다.
그의 시야 속 대기가 압착 되듯 줄어들며 서리스와 강혼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근육과 신경 말단 하나하나가 지금 강혼의 약점을 찾고자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금 자신의 공격이 닿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
서리스의 모든 감각이 강혼에게 쏠렸다.
하지만 그런데도 강혼의 기척은 여전히 서리스에게 똑바로 잡히지 않았다.
그 사실에 서리스는 어쩐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터무니없는 강자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서리스의 감정을 고조시켰다.
과연 지금의 자신은 천상사성을 상대로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서리스는 강혼을 향해 그대로 검을 향해 내질렀다.
어느 인간이든 목은 약점이다.
그것은 무황이라 불리는 강혼도 마찬가지다.
검을 강혼을 향해 내지른 그 순간, 무언가 검 끝에 닿았다.
그리고 서리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까지 허리춤에 당겨져 있던 강혼의 오른 주먹이 어느새 움직여 자기 검을 막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더 해라.”
재촉하듯 강혼이 말한 순간 서리스의 눈빛이 변했다.
그 순간 서리스의 검이 다음 검로를 그리기 시작했다.
세 개의 비기를 합친 서리스의 검로는 천하오장성이라도 버거울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재차 쇄도하는 검을 향해 강혼은 아까와 똑같은 자세로 주먹만을 움직였다.
그리고 서리스는 자신의 검이 바람조차 남기지 않고, 모두 강혼의 주먹에 막혔음을 깨달았다.
서리스는 전율했다.
강혼의 주먹에 닿은 그의 검은 마치 허공에 생긴 투명한 벽에 부딪혀 막힌듯했다.
“무투신의 기본은 정적(靜寂)에 있다.”
소리도, 기척도, 움직임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를 상대하는 느낌.
그것이 무투신의 기본이다.
“하지만 네 녀석에게는 소리가 너무 크군.”
서리스의 별 전체에서 들려온 맥박을 느낀 무황이 그리 고하는 동안에도.
서리스의 검은 반복해서 움직였다.
하지만 그 검은 또 번번이 막힐 뿐이었다.
“이것뿐이냐?”
강혼이 질문을 하자 서리스는 숨을 삼켰다.
그러곤 대답 대신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무황은 말했다.
스승인 제라드가 무투신보다도 뛰어나다고 평가한 금강잔월을 보여주라고.
‘그렇게 원한다면.’
보여주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