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서리스는 무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가 제일 먼저 정보를 알아봐 달라 부탁한 것은 붉은이리 용병 단장 잔루크였다.
워너힐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오던 당시 만났던 그는 서리스를 위해 빠르게 무황의 정보를 모아주었고.
그 결과 서리스는 무황이 절벽 마을 달리드에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고맙다. 찾느라 고생 좀 했을 텐데.”
[ 아뇨. 늘 신세 지고 있지 않습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
하루 만에 정보를 찾아다 준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한 서리스는 빠르게 나갈 채비를 하였다.
사상지평 녀석들이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마당이니 빠르게 갔다 와야만 했다.
“서리스, 어디가?”
거실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서발광이 가방 하나만 들고 내려오는 서리스를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 옆에는 도로시도 있었는데 녀석은 양손에 아이스크림을 쥐고 있었다.
서리스는 둘을 보다가 도로시가 쥐고 있던 아이스크림 하나를 한입에 뺏어 먹곤 말했다.
“달리드 마을이라고, 거기에 좀 다녀와야 해.”
“악! 직계님! 내 아이스크림 뱉어!”
자기 입을 뜯으려 드는 도로시를 피한 서리스를 보고 서발광이 고개를 기울였다.
“거기는 왜?”
“무황님이 거기 있으셔. 개인적으로 부탁드릴 일이 좀 있어서.”
“그럼 우리도 갈래!”
어느새 서리스의 등에 업힌 도로시가 그의 머리를 잡은 채 외쳤다.
같이 간다라.
“단 일이 있지 않아?”
“휴가 내면 돼.”
서발광이 그리 말하자 서리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기를 따라 오는 일에 아까운 휴가를 쓰는 게, 아깝지 않을까 싶다만.
둘의 표정을 보아하니 무조건 따라올 생각인 모양이었다.
“알았어. 같이 가보자.”
무엇보다 무황이 달리드 마을에 있다는 것만 알 뿐, 그를 직접 찾아내려면 사람이 많은 편이 좋았다.
“뭐야. 오빠가 왜 여기 있어?”
그러는 순간 1층에서 뮤리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리스가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엑스널이 있었고.
그는 뮤리널에게 오빠한테 무슨 말버릇이냐고 혼내다가 이쪽을 보았다.
“서리스 후배.”
서리스가 세 명과 함께 내려오자 도로시가 엑스널을 보며 외쳤다.
“얼음쟁이!”
“저 친구는 선후배 개념을 대체 어디 두고 왔길래, 매번 그렇게 부르는 거야?”
“내 마음이야!”
서리스와 아는 사이인 만큼 도로시와 서발광도 그와 면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는 모양이네?”
“네, 뭐, 도로시, 서발광 너희도 짐 싸고 내려와.”
엑스널이 묻자 서리스는 두 사람에게 간단한 옷가지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달리드 마을까지 가려면 비룡을 타고 가야 하는 만큼, 최소한의 여행 준비는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순간 서리스는 엑스널의 얼굴에 짜증이 조금 담겨 있는걸 보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엑스널 선배님, 후배 집 와서는 왜 그리 얼굴을 구기고 계세요.”
“서리스 후배, 내가 지금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이해 좀 해줘. 서리스 후배도 곧 얼굴 구길걸?”
뭔가 골치 아픈 걸 들고 왔군.
어차피 도로시와 서발광을 기다릴 겸 서리스가 말해보라는 양 고개를 끄덕이자 엑스널은 한숨을 내쉬었다.
“빅토르 선배가 자기 혼자 훈련하겠다고 뛰쳐나간 거 기억하지.?”
“기억하죠.”
현재 아크단은 개인 훈련을 위주로 하고 있다.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이 코앞인 만큼 천하오장성이나 월하십인 모두가 바쁜 상황이고.
아크단도 상황이 터졌을 때 즉각 대처하기 위해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상주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각자 개인 훈련 시간이 넉넉하게 있었는데, 빅토르는 이 순간에 바깥으로 가버리고 만 것이었다.
원래 들개 같은 그이니 그냥 어련히 알아서 돌아오겠거니 하고 보내 놨다만.
엑스널을 보아하니 뭔가 사고를 하나 친 듯하였다.
“그래서 뭔 일입니까?”
“덤볐어.”
덤볐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서리스는 저게 무슨 말인지 알아챘다.
왜냐하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누구한테요.”
“무황, 강혼.”
그리고 그 대답을 듣자마자 서리스도 엑스널을 따라 쓴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미친개 선배님은 기어코 무황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것도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이 코앞인 이 상황에서 말이다.
‘이 타이밍에 무황한테 덤빌 줄이야.’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해야 할까.
빅토르를 찾으면 무황을 찾기 쉽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힐로즈 단장님은 어쩔 거랍니까?”
“아무리 빅토르 선배님이라도 생각 없이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고, 일단 지켜보자고는 하시는데.”
엑스널은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지켜 보고만 있을 일은 아닌 거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나한테 온 거군.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그럼 가보죠, 뭐. 어차피 저도 무황님께 볼 일이 있었거든요.”
“무황님께? 가르침이라도 청하려고?”
가르침이라.
확실히 그런 걸 받을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게 먼저였다.
‘성위를 지켜야 해.’
그렇게 생각하니 빅토르가 이번 사건에 낀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만약 무황이 빅토르를 제자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를 가르친다는 명분으로 아카데미에 올 수 있다.
‘일단 나는 사상지평이 나를 의심하지 않게 하는 게 가장 좋다.’
무엇보다 뜬금없이 이 시점에서 무황을 찾으러 가는 이유 또한 빅토르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었다.
‘물론 사상지평 놈들이 내 저의를 의심하는 걸 피할 수는 없겠지만.’
어떤 식이든 시간을 버는 것 정도는 될 거다.
“서리스, 준비 다 했어.”
서발광과 도로시가 가방 하나씩을 들고 내려오자 서리스는 엑스널을 바라보았다.
“같이 가실 겁니까?”
“그럴게. 손 놓고 있기도 뭐하니까.”
어쩌다 보니 예전 청랑단 때가 생각나는 인원수였다.
* * *
변방에서도 변두리 절벽 마을 달리드 상공 위.
두 마리의 비룡이 날고 있었다.
한쪽은 서리스와 서발광이었고.
다른 한쪽은 엑스널과 도로시였다.
“도로시 후배, 비룡 흔들지 마.”
“왜?”
“그야 떨어지니까! 서리스 후배는 대체 이런 친구랑 어떻게 잘 지내나 몰라.”
“직계님은 착하거든.”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있다가 엑스널을 한 대 걷어차 주기로 하고, 서리스는 비룡사에게 아래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절벽 근처에 내려온 서리스는 서발광과 함께 땅을 밟았다.
절벽 마을 달리드는 절벽 틈 사이를 쭉 타고 이어진 마을이었다.
마을 구조가 이런 이유는 다름 아닌 이곳이 비룡의 최대 생산지였기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비룡의 고향.
그게 바로 달리드였다.
“와, 비룡 짱 많다.”
절벽 아래로 날아다니는 비룡이 신기한 듯 도로시가 말했다.
“……떨어질 것 같아. 바람이 엄청나게 부네.”
반면에 서발광은 절벽이 익숙지 않다는 듯, 창백한 안색으로 현기증을 호소했다.
하긴, 서발광은 눈이 안 보이니 더 아득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엑스널 선배님, 그래서 그 미친개 씨는 어디 계신답니까.”
“달리드 마을에서 무황님한테 도전하고 있는 거 말고는 나도 잘 몰라.”
“어디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면 빅토르 선배겠네요.”
엑스널은 이에 동의했다.
어쨌든 무황을 찾으려면 빅토르부터 먼저 찾아야 했다.
그라면 무황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꽤 미래를 많이 바꿨는데도 빅토르는 무황의 일인전승을 이어받을 운명인가.’
세상이 바뀌어도 빅토르는 늘 빅토르인 모양이다.
그 우직한 점이 서리스는 싫지 않았다.
“일단 가보죠.”
서리스 내는 곧장 달리드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근래에 있었던 사건을 물어가며 이동해나갔다.
어디서 매일 시끄럽게 소란을 일으키는 인물이 없냐 하니 다들 위치를 잘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어딜 가든 유명한 빅토르 선배님답네요.”
서리스가 말하자 서발광이 고개를 기울였다.
“빅토르 선배가 그 정도야?”
서발광은 소문으로만 그를 접했을 뿐, 제대로 대면해본 적이 없었다.
서리스는 그런 서발광을 보며 저 멀리 절벽 끝에서 떨어지기 직전까지 몸을 내밀고 있는 도로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도로시보다 더 심할 거다.”
“직계님, 착쁜놈, 저기 비룡은 금색이야! 잡아보자!”
“……더 심하다고?”
충격을 받은 서발광을 보며 서리스는 대답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도로시가 진짜로 비룡을 잡아보고 싶어 하길래 그녀의 뒷덜미를 끌고 와야 했긴 했지만 말이다.
“여기네.”
그 뒤 수소문을 통해 결국, 빅토르가 머문 곳을 알아낸 서리스와 모두가 한 여관 앞에 멈추어 섰다.
바람이 스쳐 가는 곳이라는 낡은 팻말이 있는 여관의 외관은 상당히 허름했다.
아무래도 절벽에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거센 바람에 헤진 모양이었다.
“들어가자.”
엑스널이 앞서서 들어가자 서리스도 그 뒤를 따라갔다.
내부는 여관답게 1층에는 술집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낮임에도 단골이 꽤 있는 듯 벌써 술판을 벌이는 이들이 이곳저곳에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다.
덩치는 가장 왜소하지만, 식탁 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열심히 먹고 있는 이.
몸은 온통 붕대 투성이었는데, 군데군데 보이는 멍이 그가 얼마나 자주 상처를 입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딱 봐도 무황한테 덤볐다가 두들겨 맞은 모양이다.
서리스와 엑스널은 두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그의 뒤로 살금살금 접근하기 시작했다.
우적우적!
열심히 밥을 먹는 빅토르는 두 사람의 접근을 전혀 모르는지 배를 채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 그를 보고 서리스와 엑스널은 동시에 손을 뻗어 양쪽에서 그의 팔을 붙들었다.
“으입?”
입에 고기를 가득 문 빅토르가 불의의 습격에 놀라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다 상대가 서리스와 엑스널이란 걸 알아차리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외쳤다.
“뭐야! 니들 왜 여기 있냐!”
그의 입에서 고기 조각이 튀어나왔기에 서리스와 엑스널은 기겁하며 몸을 뺐다.
이런 거에서는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둘을 보며 빅토르는 냅킨으로 아무렇지 않게 입을 슥슥 닦았다.
“새끼들 도련님들답게 깔끔 떨기는. 그래서 여긴 왜 왔냐?”
“빅토르 선배가 아주 거한 사고를 치고 있다고 전해 들었거든요.”
서리스의 대답에 빅토르는 이해 못 할 표정을 지었다.
“사고? 뭔 사고?”
이 인간…… 정말로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혀 자각이 없었다.
‘하긴 그런 걸 생각했으면 애초에 무황한테 덤비지도 않았겠지.’
앞뒤 생각 없이 일단 되는대로 움직이는 게 빅토르란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빅토르 선배님, 제정신이에요? 어쩌자고 요즘 같은 때에 무황을 건드려요.”
그러자 엑스널이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서리스는 그런 점을 딱히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별 상관없었지만.
엑스널은 그런 그를 두고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아시잖아요. 곧 무슨 일이 생길지.”
엑스널이 답답하다는 듯 말하자 빅토르는 새끼손가락으로 자기 귀를 후벼 팠다.
“야, 엑스널. 원래 인생이라는 건 전쟁의 연속이야.”
그러면서 자기 귀지를 후 불곤, 이를 질색하는 엑스널에게 말해주었다.
“힐로즈 단장이 한동안 개인 훈련하라 했으니까, 나도 그 말 따라 개인 훈련하러 온 거라고.”
“그렇다고 무황한테 박치기해요? 별명이 미친개긴 했지만, 진짜 미친 거 아니에요?”
“어쭈, 이게 뚫린 입이라고 막말하네.”
빅토르가 그를 한 번 손봐줄까 하며 팔을 걷어붙이자 엑스널도 얼음 검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싸울 분위기가 되자 서리스는 한숨을 내쉬곤 도로시와 서발광을 돌아봤다.
“우리 뭐 시켜 먹고 있을까?”
“어? 서리스, 안 말려도 돼?”
“맨날 저러니까 상관없어.”
저러면서 은근히 죽이 잘 맞는 인간들이니 말이다.
“직계님, 착쁜놈 뭐해! 빨리 밥 먹자!”
마이 페이스답게 도로시는 이미 자리 하나에 앉아서 음식 시킬 준비 중이었다.
덜커덩!
서리스도 도로시 따라 자리에 앉으려던 그 순간,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들은 인원이 다섯 정도 되었는데, 험상궂은 모습에 비룡 가죽까지 입은 것이 꼭 건달 같은 모양새였다.
“형님, 저놈, 저놈입니다!”
그러는 순간 무리의 한 놈이 빅토르를 가리키며 외쳤다.
빅토르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른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