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20화 (220/275)

220화

다음날이 밝았다.

워너힐 아카데미 마지막 입학시험을 위해 합격자들이 모두 모여 단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제로와 뮤리널도 있었다.

“으, 강제로 회복 당한 느낌이라 더 피곤하잖아.”

“회복된 걸 다행으로 여겨라.”

뮤리널이 자기 팔을 비비며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제로가 말했다.

그 말대로 어제 시험 이후 서리스와 추가 훈련까지 하게 된 두 사람은 정신적 피로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육체 쪽은 서리스가 어디서 구한 건지 모를 영약을 줘서 말끔히 회복되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육체만 놓고 본다면 어제보다도 더 쌩쌩한 상태였다.

“3차 시험은 또 뭐일는지.”

어제 고생한 게 있어서인지 뮤리널은 시험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는 순간 단상 위에 올라온 조교가 드디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3차 시험 주제를 발표하겠다.”

수험생들 눈에 긴장이 서렸다.

그런 그들을 보며 발표가 시작되었다.

“이번 3차 시험은 세계 침식자를 상대하는 것이다.”

세계 침식자.

그 말을 듣고 모두의 얼굴 위로 아주 잠시 의문이 스쳤다.

그러는 순간 그의 등 뒤로 다섯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은 전원 색색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워너힐 아카데미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금방 알 수 있었다.

학생 단장.

학생 신분으로 가장 높은 신분까지 올라간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 유달리 시선을 가장 모으는 이가 있었다.

그건 흰색의 가면을 쓰고 뒷짐을 쥔 남자였다.

“흰색 가면 저 사람.”

“혹시…….”

다른 이들이 수군거리는 건 다름 아닌 그의 체형 때문이었다.

옆에 있는 학생 단장들과 달리 머리 하나는 더 컸기 때문이었다.

“……제로, 왼쪽 끝에 사람.”

“서리스 형이야.”

아무리 가면을 썼다고 한들 체형으로 전부 드러나는데, 가리는 의미가 있을까.

서리스의 정체를 눈치챈 사람들은 모두가 생각했다.

저 조에 들어가는 순간 끝장이라고.

“재밌는 짓을 하네.”

그런 서리스를 보며 샬롯이 한차례 웃음을 흘렸다.

“서리스, 이래서는 우리한테 향할 관심도 다 너한테 뺏기잖아. 너무한걸?”

그러는 사이 서리스는 옆에서 투덜거리는 악스달 단장 자룡서진을 달래주고 있었다.

“키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뭘 먹어서 그리 큰지. 키만이 아니야. 분위기도 다르잖나.”

8성이라는 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주목받기 마련이다.

그렇다 보니 서리스는 학생 단장 사이에서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칼릭스 녀석, 하필 대타를 보내도 서리스라니.”

자룡서진 말대로 그는 이번 시험을 발리움 단장인 칼릭스의 대타로 참가했다.

칼릭스는 무슨 일인지 워너힐 아카데미를 잠시 비웠고.

그 때문에 서리스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저 수험생들만 불쌍하게 됐네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로렐라이 학생 단장인 세리나 벨리키도 그리 말했다.

“우리들이야 이제 곧 졸업이니 적당히 하겠지만요.”

학생 단장은 대부분 4학년이 맡는다.

그렇다 보니 이번 연도를 끝으로 여기 있는 학생 단장은 전원 졸업이었고.

이번 시험을 나름의 추억거리로 삼으려고 나와준 것이었다.

“서리스 학생은 진심으로 할거잖아요?”

“동생들이 있어서요.”

벨리키의 말을 듣고 서리스는 가면 아래로 입꼬리를 올렸다.

칼릭스 대타까지 하면서 나온 자리다.

시험은 철저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그럼 조를 발표하겠다.”

그러는 사이 조교가 조 발표를 시작했다.

서리스의 눈도 위로 향했고, 하늘에는 조가 표시되기 시작했다.

서리스가 담당한 것은 A조.

그리고 그 A조에는 무려 뮤리널, 제로, 샬롯 모두가 속해 있었다.

저 멀리 제로와 뮤리널이 절망 섞인 표정을 짓는 게 보였다.

서리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샬롯이 이쪽을 보며 스산한 웃음을 짓는 걸 보았다.

저쪽도 자신과 싸울 마음이 가득한 모양이다.

“그럼 첫 번째 A조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서리스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서리스를 따라 A조에 속한 다른 학생들도 이동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얼굴은 썩 밝지 않았다.

월하십인인 검룡이 세계 침식자 역할을 맡았으니.

다른 조보다 훨씬 험난할 것이란 걸 모두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척이나 넓은 콜로세움 같은 공간에 들어선 서리스는 눈앞의 인원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A조 인원은 총 100명.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상당한 수다.

하지만 그런데도 100명 모두의 얼굴을 펴질 줄은 몰랐다.

서리스에게서 흘러나오는 별의 기운이 100명 전원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이번 시험이 마지막이다.

여기서 떨어지면 끝.

그러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 시작.”

그러는 순간 조교가 시험 시작을 알려왔다.

어차피 이 정도 수가 1명을 상대하는 것이다 보니 시험 시작 알림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러는 상황에서도 A조는 섣불리 움직이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괜히 먼저 나서서 탈락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순간 그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걷기 시작하자 모두가 마치 파도가 갈라지듯 양쪽으로 밀려났고.

잠시 후 99명 앞에 한 사람이 섰다.

검성, 펜타니엄 샬롯.

그녀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온 것이었다.

“오빠, 그때 이후로 두 번째네?”

청랑단 당시에도 시험관과 응시자로 만났던 두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그와 같은 형태로 만났음에 샬롯이 웃음 짓고 있자 서리스는 말없이 빌려 온 검을 쥐었다.

샬롯은 서리스가 그림자 검이 아닌 일반 검을 들었다는 것에 고개를 기울였다.

펜타니엄 사람이 그림자 검을 쓰지 않겠다는 건 비기를 쓰지 않겠다는 소리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뭐 하는 짓이야?”

샬롯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서리스가 강한 건 알지만 지금 행동은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서리스는 말없이 검을 샬롯에게 겨눌 뿐이었다.

마치, 너 따위는 이걸로도 된다는 식이었다.

“나는 오빠를 그리 싫어하지 않는데.”

그러는 순간 샬롯의 손아귀에 그림자 검이 쥐어졌다.

마치 장인이 한 땀 한 땀 깎아서 일궈낸 명검과 같이 샬롯의 그림자 검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자꾸 왜 내가 싫어할 짓을 할까!”

그 말을 끝으로 샬롯의 인영이 사라졌다.

그림자의 탄성을 이용해 그녀가 자신을 서리스를 향해 날려 버린 것이었다.

마치 포탄처럼 날아드는 그녀를 보며 서리스는 검을 비스듬히 쥐었다.

채엥!

그 순간 둘의 검이 맞부딪쳤다.

샬롯이 검에 가속력을 더했음에도 서리스는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샬롯을 밀어낼 정도였다.

샬롯은 서리스에게 힘으로는 안 된다는 걸 예전부터 잘 알았다.

그렇기에 샬롯은 애꿎은 힘 싸움은 진작 내려놓고 바로 검술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청운귀명도(淸雲晷銘刀)

이식(二式)

청운귀검로(淸雲晷劍路)

예전 서리스 때와 마찬가지로 샬롯의 청운귀검로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림자가 꽃을 피우듯 그녀의 검은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서리스의 검과 맞부딪쳐 갔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샬롯의 검술을 상대로 서리스가 조금도 밀리지 않고 맞서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때와 다르게 특별한 검술을 사용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요치아에게 배웠던 검술을 그저 순수한 육체 능력으로 끌어내 샬롯에게 맞서고 있던 것이다.

그녀의 두 눈이 살벌하게 떠졌다.

예전의 서리스는 그저 육체가 강하고, 별만 가득한 이였다.

샬롯의 눈에 비친 서리스는 검술에는 그다지 재능 있는 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샬롯의 검술을 좇아 올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다.

‘고작 5년 정도가 지났을 뿐인데.’

서리스와 청랑단에서 마주한 이후 지난 시간은 불과 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리스는 그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런 그를 보니 샬롯의 마음속에서 왠지 모를 감정이 치솟았다.

쩌엉!

서리스의 검에 샬롯이 크게 밀려났다.

그 순간 서리스는 틈을 타 주먹을 내질렀고, 샬롯은 가까스로 그 주먹을 검으로 막았으나, 한참을 미끄러졌다.

검에서 오는 저릿한 충격이 서리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게 하였다.

샬롯은 계속 마음속에 맴도는 감정이 그녀를 조금씩 옥죄어왔다.

“이것뿐이냐.”

가면 너머에서 서리스가 그렇게 고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샬롯의 얼굴 위에 이죽거림이 피어났다.

“그럴 리가.”

그 순간 샬롯의 발아래에서 시작된 그림자가 순식간에 주위를 뒤덮어 나갔다.

그림자 선포.

샬롯이 최근에 만들어 낸 최강의 기술이었다.

“나를 어디까지 얕보는지는 몰라도.”

샬롯은 쥐고 있던 그림자 검을 지웠다.

대신 오른손을 서리스에게 겨누었다.

“그림자를 안 쓰는 거, 후회하게 될 거야.”

이윽고 샬롯의 손이 움직였다.

뮤리널과 제로 때와는 그 위력이 차원이 달랐다.

정말로 상대를 절단시키고자 하는 검격.

샬롯은 둘을 상대로는 나름 조절하며 싸울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서리스를 상대로는 여유 부릴 생각이 없었다.

쩌엉!

하지만 샬롯의 전력이 무색하게 서리스는 검을 휘둘러 그녀의 검격을 분쇄했다.

샬롯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서리스 오빠, 보이는구나?”

일반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그림자 세계를 서리스가 볼 수 있음을 깨달은 샬롯은 이를 깨물었다.

유일하게 가진 이점을 그가 파훼하였기 때문이었다.

샬롯은 그날 서리스에게 패배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때는 분명 간발의 차였고, 판정승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너무 달랐다.

“샬롯.”

그 순간 서리스가 그녀를 불렀다.

샬롯이 어깨를 움찔거렸다.

자신이 한 5년간의 노력이 그의 앞에서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아니, 사실 예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른다.

서리스가 세계 침식자에게 맞섰다는 소식부터 월하십인 중 한 명이 되었다는 것까지.

샬롯은 줄곧 서리스의 소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마다 샬롯은 은연중에 마음이 흔들렸다.

오만함의 상징인 그녀라 할지라도 그 자신감을 유지할 실력이 필요했으니까.

서리스는 그런 샬롯을 상대로 모든 걸 앞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자 그녀는 견디기 힘들었다.

“전력으로 와라.”

그리고 깨달았다.

이 감정이 시기심이라는 걸.

서리스를 마주 본 샬롯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시기심이든 뭐든 상관없어.’

그리고 그 감정을 깨달은 순간 샬롯의 눈빛이 변했다.

이 감정이 시기심이라면.

자신은 그런 감정조차 밟고 올라서는 천재다.

그것이 검성 펜타니엄 샬롯이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