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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212화 (212/275)

212화

8성.

그 아득한 영역에 도달한 지도 벌써 며칠.

서리스는 그릭슨의 장례식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곤 불터렉스를 떠날 준비를 하였다.

장례식을 마지막까지 지켰던 건, 그릭슨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일부 있다는 생각에 취한 마지막 예의였다.

장례식이 끝났으니, 이제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요치아 님과 스타린 님은 둘 다 제파림을 쫓겠다고 했으니까.’

제파림은 지금 만악의 질병 내부에 있다.

그 두 사람이라면 그 안을 아무런 문제없이 다닐 수 있는 만큼.

신룡월단으로 영혼이 잘리며 본체에도 피해를 보았을 그를 이 틈에 쫓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제파림의 진정한 힘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는 만큼 무리는 하지 않기로 하였다.

“서리스, 장례식에 끝까지 남아줘서 고맙구나.”

“윈터 님.”

서리스는 자신에게 다가온 윈터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형식적인 것은 됐다는 양, 손을 내젓고는 품에서 곰방대를 하나 꺼내어 불을 붙인 뒤, 입에 물었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는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였다.

“이번에 천하오장성에 오르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됐더구나. 당장 전쟁이 일어날 판국에 그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부지리로 본녀가 거기에 오르게 되었어.”

그녀는 월하십인 중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이다.

거기다 이번에 그릭슨이 살해당하며 생긴 자리이니만큼 그녀에게 천하오장성의 자리가 온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 사실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듯하였다.

친오빠의 죽음으로 얻은 자리이니 좋아할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악스달 일은 그만두고, 불터렉스로 돌아오기로 하였지.”

“그럼 악스달은…….”

“젊은 아이들에게 넘겨주기로 했단다. 본녀도 슬슬 나이가 있긴 하니 말이다.”

천하오장성이라는 이름은 한 가문을 대표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

불터렉스에 그릭슨이라는 빈자리가 생긴 이상 누군가 그 자리를 메꿔줄 인물이 필요했고.

그 인물로 윈터가 택해진 것이었다.

“불터렉스로 돌아올 생각은 딱히 없었다만. 일이 이렇게 됐구나.”

“분명 그릭슨 님께서도 윈터 님 덕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셨을 겁니다.”

“본녀한테 꾸중만 하던 오라버니라, 이 결과를 그리 반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였지만, 평소와 다르게 목소리에 힘이 없어 보였다.

그녀로서도 그릭슨의 죽음에서 헤어 나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내가 천하오장성에 올랐으니 월하십인 자리가 하나 공석이겠구나.”

그런 순간 그녀는 이게 본론이었다는 듯 서리스를 보며 미소 지었다.

“본녀는 너를 추천할 생각이다.”

“저를 말입니까?”

“원래도 이름은 거론되고 있지 않았느냐. 힐로즈가 있어 순서가 조금 뒤로 미뤄지긴 했지만, 결국 올라올 자리였다. 게다가.”

윈터의 두 눈이 휘어지며 서리스를 빠르게 훑었다.

“오르지 않았느냐.”

서리스가 8성에 오른 것을 눈치챈 그녀의 말에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20살에 7성이더니. 몇 달 안 가 8성이라. 아주 새역사를 쓰는구나. 너 때문에 당분간 나올 아이들은 아무도 천재 소리를 못 들을 게다.”

“저는 반칙 같은 걸 좀 쓰고 있거든요.”

“그게 뭐가 중요하겠느냐. 결과가 지금 이런데.”

아무리 서리스가 용제의 별과 펜타니엄의 별이 있었다고 한들.

수많은 기연과 검은별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올라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번 1년이 참 다사다난하다고 서리스는 생각했다.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니 서리스도 그에 맞춰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졸지에 쫓기는 몸이 되었으니. 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마.”

“열심히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열심히는 하지 말고.”

싱긋 웃은 윈터는 곰방대의 재를 툭툭 털어내었다.

“오늘로 아카데미 복귀인가?”

“예.”

“그럼 갈 때 발렌타인, 그 아이도 같이 데려가려무나.”

“원래도 그럴 생각이긴 했습니다.”

그녀나 서리스나 가는 방향은 같다.

워너힐 아카데미 쪽에서 미리 비룡을 불러둔 만큼 금방 복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왕 같이 가는 길, 좀 더 느긋하게 가도 좋고.”

“고려는 해보겠습니다.”

“후후, 쉽게 쉽게 가주지는 않겠다는 거구나.”

딱히 재촉할 마음은 없었다는 듯 윈터는 그리 말하며 떠나갔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볼 수 없겠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나, 언제고 다시 만날 일이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품고 서리스는 챙겨온 짐과 함께 불터렉스 입구로 향했다.

거기에는 비룡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는 발렌타인이 있었다.

“발렌타인 님.”

“아, 서리스 님.”

지난날 서리스의 품에 안겨 온 적이 있어서일까.

그녀는 서리스와 다시 만난 것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걸 본 서리스는 신경 쓰지 않고, 그녀가 짐을 싣는 걸 도와 주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짐이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짐이 상당히 많으신데요?”

“네, 독에 관한 연구를 위해 재료를 좀 구매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발렌타인의 두 눈에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그릭슨의 죽음 때문인지 그녀도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저 마음이 유지된다면 발렌타인은 분명 성장하겠지.

미래에 불터렉스의 가주가 된 그녀는 무척이나 강인할 것 같았다.

“올라오시죠.”

준비된 비룡은 한 마리뿐.

비룡에 올라탄 서리스가 예의상 그녀에게 손을 뻗어 보이자 발렌타인은 얼굴을 붉히며 그 손을 맞잡고 위로 올라왔다.

그런 발렌타인을 앞에 태운 채 서리스는 앞에 있는 비룡사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비룡사는 곧바로 줄을 당기며 비룡을 하늘에 띄웠다.

“서리스 님.”

“예.”

앞을 보고 있는 발렌타인의 은발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서리스가 대답하자 발렌타인은 양 주먹을 꾸욱 쥐었다.

“이번에 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해요.”

“아뇨. 친구의 일인걸요.”

그녀와 서리스는 이래 보여도 꽤나 오래된 인연이다.

그가 청랑단에 있었을 무렵부터 그녀와 알고 지냈으니 말이다.

“서리스 님이 없으셨으면 아마 저는 크게 좌절했겠죠.”

“제가 보기에는 저 없이도 금방 일어나셨을 겁니다.”

서리스의 자상한 말투에 발렌타인은 조그맣게 달뜬 숨을 내쉬었다.

“……저는 불터렉스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 분명히 그리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서리스 님에게도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지막에 이어진 말을 듣고 서리스는 침묵했다.

다름 아닌 그녀가 속마음을 솔직하게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그 말에는 차마 바로 답하지 못한 서리스는 한차례 쓴웃음을 지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앞에 앉은 발렌타인의 온기 때문인지 겨울이 되었음에도 참 따뜻하구나라고 생각한 채로 말이다.

* * *

워너힐 아카데미로 돌아온 서리스는 발렌타인의 짐 옮기는 걸 도와준 뒤에 숙소로 향했다.

요즘 들어 큼직한 일들이 연달아 터져서 그럴까.

워너힐 아카데미로 돌아왔음에도 좀처럼 편히 쉴 시간이 없다.

물론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거였지만 말이다.

“오, 항상 바쁜 직계님, 왔어?”

“내 별명이 언제 바뀐 거냐?”

“주기적으로 바꿔 주려고 노력해!”

자신을 반겨주는 도로시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방에 돌아온 서리스는 짐을 풀었다.

그러곤 한차례 스트레칭을 한 서리스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최근 8성에 오르며 서리스는 또 다음 벽을 넘었다.

8성에 도달한 육체는 이전보다도 훨씬 강해졌고.

그에 따라 별 또한 더 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당연히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건 검은별이었다.

제파림의 힘을 삼켜낸 후, 최근 검은별은 몸집을 급격하게 불리며 서리스 몸 내부를 여기저기서 두드리고 있었다.

마치 사춘기에 접어들기라도 한 양, 난리를 치는 통에 서리스도 좀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여유가 있을 때, 한 번 제대로 눌러 놔야 한다.’

그리 생각한 서리스는 몸 전체에 별을 고르게 돌리기 시작했다.

8성에 오른 만큼 할 수 있는 영역이 늘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부분은 운성조식이 한 단계 더 나아갔다는 것이었다.

8성은 별의 흐름뿐만 아니라 세계 그 자체의 흐름을 느끼게 되는 경지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신룡월단에 적혀 있던 운성조식의 다음 단계인 태화조식(台化調息)으로 넘어왔다.

덕분에 보이던 시야가 예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훨씬 넓어졌다.

별의 흐름을 넘어서 세계의 흐름을 볼 수 있다 보니 마법과 같이 기이한 것들의 공격도 전부 기감으로 알아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거였나.’

그동안 월하십인과 얽힐 일이 여럿 있었던 서리스는 그들과 전투할 때마다 자신의 모든 행동이 읽힌다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꽤 불합리하게 느껴졌었는데 8성에 오르고 나니 왜 그게 가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는 영역 자체가 달랐던 거였어.’

어째서 8성의 영역을 초인의 영역이라 부르는지 깨우치며 서리스는 태화조식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공중으로 살짝 띄워진 몸에서 흐르는 별들이 몸 전체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최근, 8성에 막 오른 만큼 서리스도 몸 내부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도중 아주 오래전에 벌모세수 때, 겪었던 잔재물들이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한 잔재물들을 별로 부수며 나아가고 있으려니 서리스는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언젠가 이 잔재물들을 전부 다 제거하는 순간 흔히들 말하는 환골탈태(換骨奪胎)의 영역에 오를 것임을 말이다.

‘세계의 흐름이 보이니, 비로소 내 몸 안에 흐름이 보인다.’

깨달음이란 참 신묘한 것이었다.

금강잔월을 통해 누구보다 자기 육체에 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서리스였다.

그러나 경지에 오르고 보니 또다시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 되니 앞으로 9성에 오르고 더 나아가 10성에 오르게 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것들이 보일지 서리스는 궁금해졌다.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8성이라는 영역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서리스는 아직도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

왜 천상사성과 같은 이들이 최흉에 틀어박혀 오로지 자신의 무위 상승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겠다.

무위에는 끝이 없다.

그것은 천상사성이라는 인류 정상의 위치에서도 변함없는 것이었다.

‘언젠가 닿을 수 있다면.’

아니, 닿아야만 한다.

용신을 막기 위해서라도 서리스는 세상 누구보다 강해질 필요가 있었으니까.

서리스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태화조식을 쓴 몸에서 나른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똑똑―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서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거기에는 못 보던 인물이 한 명 서 있었다.

안대를 두르고 백색의 제복을 입고 있는 그는 서리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펜타니엄 서리스 님 맞으십니까?”

“예.”

“저는 천하월의 대행자 아이즈입니다. 오늘 서리스 님을 찾아뵙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월하십인의 자리 이야기 때문입니다.”

올 것이 왔나.

“모든 월하십인과 천하오장성 분들이 서리스 님이 월하십인 자리에 오르는 것에 찬성표를 올렸습니다.”

의외다.

한 명쯤은 반대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곧 전쟁이니.’

괜히 반대해서 공석으로 둘 바에야 믿을만한 한 명을 빨리 채워 놓는 게 옳다고 생각한 거겠지.

무엇보다 서리스는 자격 자체는 충분했으니 말이다.

“남은 의사는 서리스 님의 의사입니다만. 어쩌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예, 오르겠습니다.”

월하십인(月下十人).

그가 그 자리에 오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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