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
그곳을 탐험하기 위한 준비물로는 일반적인 여행용 물자들 외에도 필요한 것이 하나 존재했다.
그건 바로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에서만 사는 반딧불을 가둬놓은 랜턴이다.
이 반딧불은 꽁지의 불이 꺼지지 않는 한 죽지 않는 무한한 수명을 지닌 특이한 마수인데.
오직 이 반딧불만이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 내부에서 빛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아이랑이 들고 온 랜턴과 함께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 입구 앞에 서 있었다.
저 멀리 성벽 너머 그곳에는 오직 어둠만이 존재했다.
별빛도 햇빛도 들지 않는 그곳을 바라보며 서리스는 살짝 긴장했다.
같은 최흉인 끝없는 초롱의 위험성을 잘 아는 서리스이기에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그럼 열겠습니다.”
입구를 지키던 병사의 목소리에 아이랑이 서리스 곁으로 다가갔다.
“서리스 님도 긴장하시는군요.”
“그야 최흉에 진입하는 거니까요.”
“서리스 님의 새로운 면모를 볼 수 있어 좋네요.”
아이랑이 그리 웃는 동안 입구가 완전히 열렸다.
그 앞은 그야말로 칠흑 그 자체였다.
태양 빛은 한 줌도 들어오지 못하는…… 오직 밤만이 존재하는 공간.
랜턴을 든 아이랑이 앞서 걸어가자 서리스도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 속을 걸어 나갔다.
짙게 깔린 어둠 아래.
마치 누군가 하나하나 심어 놓은 듯한 돌길이 그들의 발아래로 펼쳐졌다.
“밤피르를 사냥해야 한다고 하셨었죠?”
“예, 맞습니다.”
아이랑과 서리스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안으로 들어갔다.
그 대화 내용은 대부분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에 관한 것들이었다.
서리스가 사냥해야 할 존재인 밤피르.
2m 정도의 크기에 굽은 등을 지닌 놈들은 외피가 없어서 그 몸 내부가 그대로 드러난 기괴한 외형이었다.
거기에 그림자 속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까지 한다.
그 점에서 윌즈베르크의 비기 노스페라투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슬슬 보이네요.”
그러는 순간 아이랑이 랜턴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어느새 돌길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서리스가 랜턴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는 처음 보는 건축 양식과 함께 거대한 지하 공간이 나타났다.
밤 속에 둥지를 튼 탑들이 제멋대로 솟아나 지하 끝자락까지 서로 엉키고 엉킨 건물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묘한 기분을 들게 했다.
랜턴 속 반딧불과 같은 불빛들이 탑 주변을 날아다니며 그 근처를 약하게 밝히고 있었다.
“저리로 내려가면 되겠습니까?”
“네, 이제부터 마수들이 등장할 테니 주의하시고요. 그리고.”
그녀는 경고하듯 서리스에게 말했다.
“절대로 별을 풀면 안 돼요. 꼭 유의하세요. 까딱 잘못하면 어둠에 잡아먹혀 마수가 되어 버릴 테니까요.”
별을 가지지 못한 자는 들어 올 수조차 없는 곳.
그게 바로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이었다.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이곤 절벽 끝자락에 그림자로 자기 다리를 고정한 뒤, 밑으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랑은 그림자 이동을 통해 손쉽게 서리스를 따라왔고, 두 사람은 얼마 안 가 지하 공간에 발을 들일 수가 있었다.
아래에서 보니 하늘로 솟은 탑들이 더더욱 기괴해 보였다.
“기기기긱.”
그와 동시에 침입자를 알아차린 존재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무언가로 이루어진 것들은 생김새도 다 제각각이었다.
한가지 공통된 것이라면 삐죽삐죽 솟은 새하얀 이가 드러나 있다는 것이었다.
“서리스 님.”
“예.”
이미 악스판시온을 뽑은 서리스가 대답과 함께 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수들은 그런 별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노성을 토해내며 서리스와 아이랑에게 쏟아져 달려왔다.
“첫 시작은 가볍게 가보죠.”
들어 올린 검과 함께 서리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애용하는 기술 사용 준비를 끝마친 서리스는 대량으로 몰려오는 놈들을 향해 땅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금강잔월(金强虥狘)
박살(撲殺)
지하 공간 속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 * *
쩌억! 쩍!
지하 공간 속, 강렬한 소음과 함께 마수들이 하늘을 날고 있었다.
마치 개미 떼 같이 몰려들던 그들은 절대적 다수였으나 지금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한 인물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그 인물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서리스였다.
악스판시온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듯한 그의 검술 앞에서 마수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편에서 또 다른 인영이 나타났다.
맨손이었으나 타고난 육체를 이용해 마수를 학살하고 있는 아이랑이였다.
그녀의 눈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는데 마치 밤의 폭군이 재림하기라도 한 것처럼 마수들을 박살 내놓고 있었다.
‘바깥보다 훨씬 더 강해진 것 같은데.’
그런 아이랑을 바라보며 서리스는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별이 바깥보다 더 강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윌즈베르크는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을 막기 위해 비기를 특성화시켰다.
그 결과 오로지 밤만 존재하는 이 최흉 자체가 그들에게는 최적의 전장이 되어 버렸다.
어둠 속을 제 마음대로 날뛰며 마수들을 학살하는 아이랑의 모습은 서리스조차 감탄할 정도였다.
하지만 밤에 강한 것은 서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어둠만이 깔린 그곳에서 서리스의 그림자 또한 손쉽게 최고 출력에 도달하며 주변 마수들을 잡아먹었다.
“서리스 님!”
그 순간 아이랑이 마수들의 머리를 밟으며 서리스에게 다가왔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싸워 봤자 별 의미가 없단 걸 두 사람 다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물량전으로 나오는 건, 우리의 체력을 빼겠다는 속셈.
아무리 아이랑과 서리스라도 최흉 내에서 체력을 낭비하는 건 위험했다.
“휘익!”
그의 곁으로 다가온 아이랑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천장에서 어둠으로 뭉쳐진 거대한 박쥐 떼가 나타났다.
아이랑은 박쥐 떼가 나타나자마자 그 위로 도약했고, 곧이어 서리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잡으세요!”
아이랑의 목소리에 서리스는 달라붙는 마수를 발로 뻐엉 차버리며 도약했다.
그러곤 아이랑의 손을 잡아 박쥐들 위로 올랐고, 이를 본 마수들이 서로를 타고 오르며 뒤쫓아 왔다.
하지만 이족 보행을 하는 그들에게는 날개가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탑을 만들었던 그들은 금세 무너져 내리며 닭 쫓던 개처럼 서리스와 아이랑을 향해 그르릉 소리를 내었다.
“징그럽게도 많네요. 원래 이 정도로 모이지는 않는데, 아무래도 서리스 님의 별에 반응한 모양이에요.”
“제 별말입니까?”
“네, 저 마수들은 어스모나라 불리는데, 별빛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거든요.”
“그래서였군요.”
타고난 별이 많은 자신이니 숨어 있던 녀석들까지 죄다 이쪽으로 몰려들었던 모양이다.
“어쩌죠? 계속 쫓아올 거 같은데.”
서리스는 여전히 자신들을 쫓아오는 어스모나들을 보며 말했다.
달빛에 홀려 하늘로 날아가는 나방처럼 그들은 서로 뒤엉키며 서리스를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리스 님은 인기가 너무 많으시네요.”
“과찬이십니다.”
이 상황에도 가벼운 농담을 나누는 두 사람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곧 1구역을 통과할 테니까요. 어스모나들은 2구역부터는 따라올 수 없을 거예요.”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은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지하 공간이다.
윌즈베르크는 그간의 조사로 위험도를 따져 구역을 나눠 놓았고, 우리가 사냥하려는 밤피르는 4층 구역에 있는 녀석이었다.
“대신 하늘을 나는 것도 여기까지 이긴 하지만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저 멀리, 천장 부근에서 헤엄치고 있는 백골 물고기들이 보였다.
그들은 이쪽을 보자마자 입을 뻐금거리며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고.
아이랑은 그 즉시 하강하기 시작했다.
“내리시죠.”
아이랑의 말을 따라 밑으로 뛰어내린 서리스는 가뿐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그러는 사이 아이랑도 박쥐를 지우곤 바닥으로 내려왔고, 그런 그들을 어스모나들은 저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었다.
탐욕이 가득 담긴 눈빛은 여전했으나 이리로 넘어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남은 별은 괜찮으십니까?”
“음, 조금은 쉬고 가는 게 좋겠네요.”
그만한 거리를 비행했다.
당연히 많은 별이 소모됐을 게 분명했기에 서리스는 아이랑의 쉬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쉴만한 곳을 찾았다.
워낙 어두운 곳이라 적당한 장소가 보이지 않았지만, 서리스는 2구역에도 세워져 있는 탑 중 하나를 골라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랑의 랜턴을 이용해 내부를 살펴봤는데, 다행히 마수는 없어 보였다.
“여기서 잠깐 쉬다가 움직이죠.”
그 말을 듣고 아이랑은 벽에 몸을 기댄 채 앉았다.
자신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온 아이랑인만큼 그녀가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쉬기를 바라는 마음에 서리스가 입구 앞에 털썩 앉았다.
“이렇게 있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의 무서운 점이죠.”
아이랑은 이미 몇 번 들어온 적이 있는 듯 익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 안에서는 시간 개념이 마비돼요. 길을 헤매다가 운 좋게 탈출했는데, 이미 수년의 시간이 흘러있다든가 하는 일도 종종 있죠.”
그것참 무서운 이야기다.
“혹시 안과 밖의 시간 흐름이 다른 거 아닙니까?”
“그럴 가능성도 부정은 못 하겠어요. 7층 구역부터는 저희 직계들도 들어가기를 꺼리니까요.”
그렇게 들으니 최흉은 최흉이다.
‘용신은 이런 최흉의 힘을 흡수하고자 한다 했었지.’
게다가 그런 최흉을 흡수하고자 움직이는 용제의 동생 제파림도 있다.
그를 막으려면 자신도 언젠가 최흉을 흡수해야 한다는 소리일까?
서리스는 그건 너무 까마득하게 먼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서리스는 뒤에서 들려오는 고른 숨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어느새 머리를 꾸벅거리며 졸고 있던 아이랑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그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다 이내 양손으로 볼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그, 그게 조금 피곤해서요.”
“짧게나마 눈을 붙이면 피로 해소에 좋죠. 차라리 좀 더 자두세요. 그게 회복이 더 빠르지 않습니까.”
“하아, 창피하네요. 죄송해요. 조금만 부탁드릴게요.”
그리 말한 아이랑은 이내 벽에 머리를 기대곤 스르륵 잠들었다.
세계침식에서 장기간 움직이는 일이 일상다반사인 만큼 직계들은 다들 머리만 붙이면 자는 법을 익혀두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빨리 잠들지 않으면 체력을 회복하는데 손해를 보기 때문이었다.
그런 아이랑을 보고 서리스는 주머니에서 슬쩍 브로치를 꺼내 보았다.
“흑마녀.”
서리스가 조용히 속삭이자 브로치에서 비적비적 검은 개구리가 솟아 나왔다.
검은 개구리는 브로치에서 빠져나와 서리스의 무릎 위에 앉더니 말했다.
“응, 불렀어?”
“내가 최흉의 주인을 쓰러트리려면 지금보다 얼마나 더 강해져야 하지?”
흑마녀의 말에 의하면 제파림은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그가 용신의 진정한 열쇠로 거듭나기 전에 막아야 하는 만큼 서리스는 이를 확인해둬야 했다.
“마굴을 전부 흡수할 수 있다면, 도전은 해볼 수 있을 거라고 봐.”
마굴인가.
“그리고 세계 침식자를 흡수하는 것도 방법이야.”
서리스가 고민하는 사이 흑마녀에게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세계 침식자를?”
“몸에 지닌 세계 침식이 마굴만큼 많으니까.”
“넌 그래도 괜찮은 거냐?”
그들과 같은 세계 침식자인 흑마녀다.
그가 노릴 세계 침식자가 그녀와 아는 사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상관없어. 나는 용신만 쓰러트리면 되니까.”
그리고 이어진 말에서는 어떠한 집념이 느껴졌다.
자기 세계를 멸망시킨 용신을 향한 그녀의 원한은 상상 이상으로 깊은 듯하였다.
“생각은 해볼게.”
아크에 들어온 이상 세계 침식자와 조우하는 날은 얼마 안 가 있겠지.
무엇보다 곧 있으면 대전쟁이 시작된다.
그 순간이 오면 싫어도 세계 침식자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그런 세계 침식자와 제대로 맞붙을 수 있는 힘.’
그때까지 최소한 월하십인에는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상기하며 서리스는 그렇게 홀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