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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90화 (190/275)

190화

독특하게 휘어진 콧수염.

깔끔하게 다려진 선이 눈에 띄는 검은색 바탕에 보라색 포인트가 들어간 옷.

거기에 윌즈베르크를 상징하는 보라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머리색까지.

윌즈베르크 살롱.

그가 집무실 중앙에 앉아 서리스와 아이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 소파에는 다른 인물도 한 명 있었다.

마치 화려함을 그린다면 이런 느낌일 거라는 느낌의 그녀는 풍성한 치마가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아이랑의 어머니인 윌즈베르크 아이리스였다.

“우리 딸 왔네.”

“오랜만에 뵈어요.”

싱긋 미소를 지은 아이리스는 아이랑과 무척이나 똑 닮아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외모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대로 물려받은 듯하였다.

‘이곳이 윌즈베르크인가.’

소드란 시절에 다른 가문들과 교류를 안 한 건 아니나, 윌즈베르크 가주와 직접 마주하는 건 처음이다.

윌즈베르크 또한 오대가 중 하나인 만큼 서리스가 살짝 긴장하고 있자 살롱의 입이 열렸다.

“서리스라고 했었나?”

“예, 펜타니엄 서리스라고 합니다.”

“괜찮군.”

그러는 순간 대뜸 살롱의 말이 이어졌다.

‘괜찮다고? 뭐가?’

서리스가 두 눈을 깜빡이고 있자 살롱은 어째서인가 콧수염 아래로 드러난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본 순간 서리스는 윌즈베르크가 가진 가장 큰 장기를 떠올렸다.

‘윌즈베르크의 특기는 정보전.’

사실상 인간 사회의 모든 비밀을 손에 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인 윌즈베르크다.

그들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몰라도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펜타니엄 서리스라는 인물의 그간 행적부터 시작해서 웬만한 정보는 다 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는 그 정보를 토대로 이미 자신에 관한 결론을 내놓은 것이겠지.

“나는 영웅심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지. 마음에 들어.”

왜인지 정곡을 찌르는 듯한 말이었다.

혹시 그는 용신의 존재까지 알고 있는 걸까?

‘아니, 거기까지는 아닐 거야.’

그가 말한 영웅심이라는 건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행보만 보아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정보전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아는 것처럼 행동해 상대를 속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니 살롱을 상대로 너무 비약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았다.

“감사합니다.”

그렇기에 서리스도 별말 하지 않고 감사 한마디만 건넸다.

“살롱, 가만 보면 여보는 글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려고 해요.”

그러는 순간 아이리스가 살롱의 언행을 지적하듯 이야기해 왔다.

살롱이 모든 것을 자신의 손에 들린 정보로 판단하는 이라면.

아이리스는 사람을 직접 대면해서 판단하는 이였다.

그렇기에 아이리스는 서리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를 아직 신용하고 있지 않았다.

다른 가문과 달리 윌즈베르크에서 아이리스의 입김은 강하다.

천하오장성이라는 무력을 지닌 살롱 또한 그녀의 안목을 매우 높게 사고 있으며.

실제로 사람을 보는 그녀의 눈은 정확하기로 유명했다.

정리된 정보로 다른 이를 판단하는 살롱.

자신의 안목으로 다른 이를 판단하는 아이리스.

아주 오래전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온 두 구렁이를 마주한 서리스는 어느새 땀으로 축축해진 손을 남들 모르게 바지에 닦았다.

‘살롱 쪽은 괜찮은 모양이지만, 아이리스의 신용을 얻지 못한다면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에 못 들어갈 수도 있다.’

윌즈베르크의 안주인에게도 그 정도 권한은 있는 법이다.

자신은 외부인이고, 살롱이 그녀의 눈을 높게 사는 이상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한다면 살롱 또한 그 의견을 들어 줄 테니까.

“펜타니엄 서리스 군, 일단 앉으시겠어요?”

“예, 아이리스 님.”

“어머, 제 이름을 아시는 모양이네요.”

“윌즈베르크의 안주인분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적당히 입바른 말이었지만, 이런 자리에서는 필수였다.

고작 짧은 대화만으로 서리스의 화술 실력을 눈치챈 그녀는 자신의 앞에 앉는 서리스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슬쩍 아이랑을 흘기기도 했다.

아이랑은 자기 딸인 만큼 자신의 성격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서리스가 말실수할까 조마조마할 법도 한데 그녀의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마치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 보게. 우리 딸이 이렇게나 신용하고 있는 애가 다 있네?’

아이랑은 자신의 성격을 닮아 짓궂은 부분이 있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남을 잘 믿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자신을 전부 내보이는 법이 없는 아이다.

윌즈베르크의 특성상 상대의 정보는 모으되 자신의 정보는 드러내지 않는다가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런 아이랑이 저 아이에 한해서는 상당한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이건 아이리스에게도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서리스 군은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에 들어가고자 한다고 하였죠. 무려 마왕 아라만 님을 통해 저희에게 부탁이 들어왔죠.”

“예, 그렇습니다.”

“그 이유에 관해 들어 봐도 괜찮겠나요?”

살롱은 이미 이와 관련된 정보를 다 모아 놓았을 테지만, 그녀는 구태여 질문을 던졌다.

이 물음은 그녀에게 있어서 확인이었다.

말투, 언동, 행동거지, 마음가짐, 눈빛, 버릇.

사람을 직접 대면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많았다.

하나씩 놓고 보면 분명 사소한 것들이나 이런 것들을 하나둘 모아 대조하다 보면.

상대의 행동에서 거짓과 모순을 가려낼 수 있는 법.

그 사실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기에 아이리스는 이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살롱은 말없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리스 님이라면 최근 세계 침식자에 대항하기 위해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새로운 단, 아크를 창설한 걸 아실 겁니다.”

“그렇죠.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가문들도 다 아는 내용이지요.”

아크 단의 창설은 상상 이상으로 큰 의미가 있었다.

오직 세계 침식자만을 상대하기 위한 단이라는 것은 사실상 미래의 천하오장성과 천상사성을 모아뒀다는 이야기와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에 들어가려는 이유는 그러한 아크 단의 목적과 상이합니다.”

“과거 삼무제, 용제와도 관련된 일인가요?”

정보전의 대가답게 윌즈베르크는 이미 서리스가 용제의 거처를 다녀왔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서리스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묘수가 떠오른 듯 미소를 지었다.

“아이리스 님께서는 용제라는 인물에 관해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정보전의 대가인 윌즈베르크에게 역으로 던진 질문.

그것은 어떻게 보면 그녀가 도발로 느낄 수도 있는 질문이었다.

내가 이만한 정보를 알고 있는데 너는 어디까지 알고 있냐는 그런 의미를 담은 도발 말이다.

‘당돌하네요.’

서리스의 도발을 앞에 두고 아이리스의 눈동자에는 다른 의미로 흥미가 깃들었다.

“아는 만큼은 알지요. 과거 삼무제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이였다는 것과 그가 세계침식과 관련된 것에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요.”

아무리 윌즈베르크라도 그 시절의 정보를 다 쥐고 있을 수는 없다.

하물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기로 유명한 용제에 관한 정보다.

실마리를 쥐어도 놓치기 일쑤인 그의 정보는 무척이나 적었다.

“그렇군요. 그럼 용제가 지닌 비기가 무엇인지도 아십니까?”

“금강잔월, 분명 그런 이름이었죠.”

그 말이 나온 순간 옆에 있던 아이랑이 흠칫하고 몸을 굳혔다.

지금까지 서리스와 많은 훈련을 함께한 아이랑이다.

펜타니엄의 청운귀명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력을 지녔던 서리스다.

그것에 관해 늘 의문점이 있었던 아이랑은 이 순간 그 비밀을 눈치채고 만 것이다.

“용제의 비기를 이었군.”

그리고 좀 전의 대화로 이를 파악한 살롱의 입이 열린 순간 아이리스의 두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서리스를 마치 분석하듯 똑바로 바라봤다.

진실.

단 하나의 거짓조차 그에게서 느껴지지 않았다.

“용, 제의 비기를 이었다고요?”

비록 과거의 인물로 취급받고 있긴 하나 삼무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마제 올스타드 스타린만 보아도 아직 현역이라 평가받고 있다.

그런 스타린보다 한 수 위라 평가받던 용제의 비기를 그가 이었다는 건, 엄청나게 큰 파란을 일으킬 만한 내용이었다.

하물며 그는 오대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펜타니엄의 직계다.

청운귀명도는 검술 비기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런 청운귀명도와 용제의 금강잔월이 합쳐진다면?

그는 어쩌면 이십 대 초반의 나이로 월하십인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지도 모른다.

아이리스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범의 새끼도 크게 쳐줬다고 생각했건만.

이건 용의 새끼였다.

“아이리스, 그쯤 하지.”

지금까지 걸어온 행적만 보아도 서리스는 후에 천상사성을 노려볼 인물이다.

하물며 그 용제의 뒤를 이었다니.

그를 적대하는 것이 얼마나 손해 보는 일인지 이 순간 모두가 알아차렸다.

“여보, 하지만.”

“당신도 알잖나. 지금 서리스 저 친구가 용제의 이야기를 스스로 한 시점에서 우리 쪽에 보인 호의가 어떤 의미인지.”

아이리스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그 말 그대로 서리스는 아이리스의 탐색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먼저 스스로를 드러내 보였다.

그만큼 윌즈베르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소리였다.

서리스가 지금보다 더 성장할 것이란 건,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다.

그런 그가 먼저 호의를 보이는데, 쓸모없는 탐색전을 계속 이어가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었다.

거기다가 아이리스는 용제가 아니더라도 서리스를 이미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아이리스를 상대로 시종일관 침착했고, 슬쩍 떠보는 질문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해왔다.

스무 살이 보일 법한 어리숙한 모습이 아니라 노련함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펜타니엄에서 용이 한 미리 태어난 모양이로군.”

“과찬이십니다.”

살롱의 칭찬에 서리스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 여유로운 미소를 보고 아이리스는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알았어요. 서리스 군, 제가 너무 몰아붙였죠. 미안해요. 옛날부터 이렇게 해오던 게 버릇이라.”

“괜찮습니다. 오히려 아이리스 님과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이런 부분이 노련하다는 거였다.

서리스를 보며 아이리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그의 옆에 있는 아이랑이 마치 홀린 듯 그를 힐끔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쉽게 넘어가지 않도록 교육한 딸이건만, 이런 상대가 나타나서야.

‘만약 우리 딸이 서리스 군을 놓치면…….’

눈이 너무 높아져 버린 아이랑의 눈에는 어떤 혼삿감도 차지 않겠지.

그것도 벌써 큰일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살롱 쪽에 시선을 옮기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서리스가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에 들어가는 것을 자신도 허락한다는 의미였다.

“아이랑, 그를 안내해주거라.”

“예, 아버님.”

살롱의 말을 따라 아이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곤 서리스와 함께 나섰다.

밖으로 걸어 나온 서리스는 조였던 숨통이 이제야 조금 풀리는 느낌에 한차례 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옆에 있던 아이랑을 돌아보며 웃음 지었다.

“감사합니다. 아이랑 님, 덕분에 일이 수월하게 풀린 거 같네요.”

“제 덕분이라뇨. 전부 서리스 님이 뛰어나셔서 이렇게 잘 풀린걸요.”

“아뇨. 아이랑 님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윌즈베르크에 올 수도 없었을 거예요. 신세를 졌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이랑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별말씀을요. 서리스 님이 부탁하시는 거라면 소녀는 뭐든 들어 드릴 수 있답니다.”

“그것참 든든하네요.”

“……무덤덤하게 반응하시는 게, 참 서리스님 다우시지만요.”

그리 말한 아이랑은 장난스럽게 치마 끝자락을 잡으며 살짝 무릎을 굽히고 말해왔다.

“그럼 따라오시지요. 소녀 윌즈베르크 아이랑이 직접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의 안내역을 맡아 드릴 테니까요.”

“이런, 무려 윌즈베르크 아이랑 아가씨께서 안내역이라니. 가문의 영광으로 삼겠습니다.”

장난에는 장난으로 맞받아주자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이를 본 서리스도 따라 웃었고, 둘의 분위기는 곧 최흉에 들어갈 것임에도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저희 꽤 죽이 잘 맞지 않나요?”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림자를 다루는 공통점이 있다는 점에서도 말이다.

“후후, 마음이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럼 얼른 가시죠.”

“예, 부탁드릴게요.”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으로 진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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