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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88화 (188/275)

188화

서리스와 함께 안으로 들어온 도로시는 아라만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주로 도로시의 어머니인 제나디아 에리미에 관한 것이었다.

아라만은 도로시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그 사실은 에리미가 아라만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는 소리와 같았다.

“에리미는 내가 제나디아에 남기를 바라지 않았었어.”

그때를 회상하듯 아라만은 자기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자유롭게 다녀야 한다며 나와의 만남은 잠깐뿐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했었으니까.”

아라만에게 있어도 도로시의 어머니는 소중한 사람이었는 듯하였다.

그는 자기 딸의 존재를 진짜 이제야 알게 된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가 죽은 걸 몰랐었어?”

“알고는 있었어. 뭐, 한참 뒤에야 알게 된 거지만. 에이미는 원래 몸이 약했었으니까. 이유까지는 알아볼 생각은 안 했었어.”

아라만은 괴짜이긴 하나 기본적으로 악인이 아니었다.

그도 천하오장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라말테와 함께 최흉을 막고 있는 영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자신이 책임지지 못했던 것을 제대로 마주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도로시는 침묵했다.

오랜만에 보는 생각이 많은 표정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아마 아버지 역할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 거야.”

도로시가 기대하고 있는 것에 못 미칠 거라며 아라만은 자기 속내를 털어놓았다.

부모 역할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그다.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난 딸을 보고 바로 부모 역할을 하기에는 그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상관없어. 딱히 그런 거 안 원하니까.”

그 사실을 알아서인지 도로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도로시는 아라만이 아버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마왕화를 좀 더 잘 쓰고 싶어. 직계님이 자꾸 앞서 나가니까 이대로면 쫓기 힘들어!”

도로시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서리스에게 외쳤다.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아라만은 곧 실소를 흘리곤, 서리스를 돌아보았다.

“남의 딸을 막 홀리고 그러면 안 돼.”

“헛소리하지 마시죠.”

이제 와서 아버지 행세를 하려 드는 그였다.

“흐흐, 그래, 좋아. 서리스를 보면서 같이 봐줌 되겠네. 어려울 건 없지.”

그 말을 듣고 도로시가 눈을 반짝이었다.

독학으로 마왕화를 익혀 나가던 도로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성장이 정체되는 일이 자주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뛰어난 스승이 생긴 셈이니 당연히 큰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잘됐네. 도로시.”

“응!”

갑작스레 생긴 부녀관계가 이것만으로 가까워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걸로 조금은 서로를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도로시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은 서리스는 곧장 훈련을 시작했다.

도로시는 서리스의 훈련을 우선 지켜보기로 했다.

그녀는 서리스에게 용인화에 관한 설명을 들었고, 거기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검은 별까지는 설명해 주지는 못했지만, 자세한 설명까지는 도로시도 관심 없어 했다.

“직계님, 화이팅!”

“오냐.”

도로시의 응원에 답하며 서리스는 악스판시온을 쥐었다.

동시에 그의 전신을 타고 그림자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간의 성과를 증명하듯 그의 용인화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빨라져 있었다.

지금까지 아라만의 말대로 명확한 이미지를 확립시키고자 부단한 노력을 해온 서리스다.

자신이 기억하는 태악룡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모습을 인간형에 맞춰 개량하며 서서히 전신에 입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서리스의 팔을 타고 새까만 비늘들이 솟아났다.

하나하나가 그림자로 만들어졌지만, 검은별의 힘이 담긴 만큼.

그의 육체에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서서히 몸 전체로 뻗어져 나간 비늘과 함께 서리스의 머리 위로 두 개의 뿔이 우뚝 치솟았다.

치아열도 송곳니가 날카로워지는 등 일부가 바뀌었고.

비늘로 뒤덮인 양손과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자라나며 점차 용을 떠올릴만한 형태로 전신이 바뀌어 갔다.

그렇게 모든 변화가 끝나고, 서리스의 열린 눈꺼풀 밑에서 용을 떠올리게 하는 동공이 번뜩였다.

“후우.”

조그맣게 흘러나온 숨과 함께 서리스는 자기 몸속에 자리한 폭발적인 힘을 느꼈다.

그리고 이를 기다렸다는 듯 아라만의 옆에 강철로 덧댄 인형 하나가 세워졌다.

보기만 해도 단단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인형을 노려보며 서리스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서리스의 모습이 사라졌다.

금강잔월과 검은별이 합쳐진 만큼, 그는 한 번의 도약만으로 몇십 미터를 훌쩍 달릴 정도였다.

오죽하면 처음에는 그 힘을 조절 못 해, 몇 번이고 고꾸라질 정도였다.

지지직!

서리스가 인형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이었다.

강철의 인형이 마치 종잇장처럼 수십 개로 갈라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뒤이어 날아든 후폭풍에 머리카락이 휘날린 도로시의 두 눈동자가 커다랗게 떠졌다.

‘못 본 사이에.’

또 서리스가 성장했다.

이제는 자신의 기술이었던 마왕화와 비슷한 용인화라는 것까지 해서 말이다.

정말 질투 나기 그지없었다.

그러면서도 도로시의 가슴속에서 자라난 감정은 뿌듯함과 기쁨이었다.

저 사람이 자기 동료라며 자랑스러운 감정이 솟아난 것이었다.

“직계님, 대박이네!”

서발광이 옆에 있었다면 호들갑을 떨었을 거로 생각하며 도로시가 서리스에게 달려가 말했다.

그런 도로시를 보며 그는 풀려나가는 용인화 속에서 힘겨운 미소를 지었다.

“유지 시간이 고작해야 10초 남짓인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야.”

“나는 마왕화로 한 시간 이상 버텨!”

“대단하네.”

서리스가 도로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좋아했다.

그런 도로시를 보면서 서리스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용인화는 분명 자신에게 있어 히든카드에 가깝다.

개선할 여지는 있지만 월하십인에 들은 드웨이진에게도 크게 한 방 먹인 기술이다.

그 말은 즉, 자신보다 별이 높은 8성급 무인을 상대로도 어느 정도 먹히는 무기를 손에 넣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지속시간과 함께 변신이 풀리면 찾아오는 극심한 탈력감이었다.

막히는 순간 끝장인 양날의 검.

‘가능하면 제왕월영도와 함께 사용하고 싶지만.’

서리스는 자신이 두 가지를 동시에 운용하는 순간 모든 힘을 다 쓰고 기절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금강잔월에 강기수식을 접목해 육체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도 아직 이 꼴이었다.

‘게다가 신룡월단도 아직이야.’

매일 같이 신룡월단을 단련하고 있긴 하나 서리스는 아직 그걸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은 연습 대련에서조차 꺼내지 못할 정도.

용제가 모든 것을 집약시켜 만들어낸 비기인 만큼 사용하는 것도, 배우는 것도 여간 쉽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성취를 보건대 월하십인 수준에는 도달해야 얼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금강잔월 자체는 강해지는 중이라 그런대로 납득하고 있었다.

“직계님, 생각 많아 보여.”

“그러게. 요즘 머리가 좀 복잡해지네. 최근에 배울 게 갑자기 늘어나서 그런 모양이야.”

“행복한 고민을 하네!”

확실히 예전에는 금강잔월 하나 배우지 못해 쩔쩔맸던 걸 생각해 보면 행복한 고민일지도 모르겠다.

“흐음, 이제 용인화는 더 이상 내가 건드릴 건 없는 거 같긴 하네.”

“그렇습니까?”

그러는 사이 강철 인형을 살피던 아라만이 말했다.

“사용하는 데 문제는 없는 거잖아? 이제는 그 출력을 어떤 식으로 감당할지가 문제겠지.”

그러면서 아라만은 그 부분도 함께 고민해 주려는 듯하였다.

끝까지 신경 써 주는 그의 모습은 서리스가 보기에도 감사한 것이었다.

“아빠, 출력 감당하는 거 마왕화처럼 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러는 순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도로시가 말을 걸어왔다.

자연스럽게 아라만을 아빠라 부르는 게 그녀다웠다.

“마왕화처럼?”

도로시의 이야기를 들은 아리만은 다시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곧 뭔가 떠오른 게 있는지 서리스를 돌아보았다.

“가능하려나?”

“무슨 이야기입니까?”

마왕화를 쓰는 두 사람은 무언가 깨달은 게 있는 듯하였지만.

서리스는 아직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리스가 의문을 보이자 아라만이 이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마왕화가 마수의 부산물 일부분을 매개체로 사용한다는 건 그림자 아이도 알고 있지?”

“도로시가 하는 걸 자주 봐왔으니까요.”

그 증거로 도로시는 가방 안에 마수의 부산물을 잔뜩 들고 다닌다.

“그림자 아이도 같은 방식을 쓰는 거야. 용인화를 사용하는데, 마수 부산물을 매개체로 쓰는 거지.”

“저도 마왕화처럼 가능하다는 겁니까?”

“불가능하지는 않지. 애초에 내가 그림자 아이한테 가르치던 방식도 마왕화랑 거의 유사하긴 한걸?”

은연중에 마왕화를 배우고 있었던 거였나.

그런 걸 막 가르쳐도 되냐는 듯 아라만을 보자 그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차피 가르쳐도 다들 못써. 나나 딸래미나 그림자 아이처럼 타고난 재능의 영역인 거지.”

게다가 검은별의 영향도 있긴 할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나 딸내미처럼 마수 자체로는 불가능할 거야. 가공을 좀 해야 할 듯싶은데. 이건 명장들한테 맡겨야겠지.”

명장 토르게아를 언급하는 말을 듣고 서리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토르게아 쪽에 주문 제작을 맡기겠다는 소립니까? 그들의 주문 제작은 몇십 년이 걸린다고…….”

“서리 마탑주에 이름을 너무 낮게 보고 있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들으니 순식간에 납득이 되었다.

도로시 같은 성격이라 서리스가 무심코 아라만과 친숙하게 지낸 거지 그는 서리 마탑주이었다.

명장 토르게아라도 아라만의 부탁이라면 우선하여 검토해 줄 게 분명했다.

“남은 건 가공할 재료를 구하는 건데. 내 실험실에는 그림자 아이랑 어울리는 게 없어.”

“제가 찾아야겠군요.”

“맞아.”

“어떤 걸 찾으면 되겠습니까?”

이쪽은 아라만이 전문가다.

그의 의견을 주의 깊게 듣고자 질문을 던지자 아라만은 씨익 하고 웃었다.

“그림자를 보강해줄 마수의 재료를 구할 곳은 딱 한 군데밖에 없어.”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서리스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

오대가 중 하나인 윌즈베르크가 막고 있는 세계 침식이자 최흉.

“그곳에 있는 밤의 자식 밤피르의 부산물이 필요해.”

서리스가 다음으로 향해야 할 곳이 정해진 순간이었다.

* * *

“그래서 소녀를 찾아오신 건가요?”

아라만에게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에 가야 한다고 들은 이후 서리스가 곧장 찾은 이는 바로 아이랑이였다.

아라만은 손쉽게 워너힐 아카데미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주었고, 서리스는 아이랑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서리스를 마주한 아이랑은 무척이나 기쁜 표정으로 이쪽으로 뛰어왔지만.

그의 용건이 자신이 아닌 최흉이라는 것에 살짝 삐졌지만 내심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 상황이 기회라는 생각을 말이다.

“네, 아무래도 최흉이니까요.”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은 윌즈베르크가 관리하는 만큼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그렇기에 직계인 그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흐음, 그래요. 서리스 님의 부탁인데, 제가 같이 따라가 드려야죠.”

“네? 아뇨. 그런 수고를 끼칠 수는 없죠. 아이랑 님은 가문에 허락만 맡아 주시는 거로 충분합니다.”

아이랑의 말을 듣고 서리스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은 자신 혼자서 들어가도 충분하다.

아직 학기 중인데, 그녀가 무리해서까지 따라올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사냥꾼의 눈이 된 아이랑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아뇨. 서리스 님은 흑마녀에게서 소녀를 구해주신 은인이시잖아요. 이번 기회에 그 은혜를 갚아야죠.”

그 일이 벌어진 원인이 서리스였으니…… 은혜라고 할 것도 없건만.

“무엇보다 영원히 그치지 않는 밤은 윌즈베르크 직계의 안내 없이 들어갈 만한 곳이 아니랍니다.”

자신의 의견을 거절하지 못하도록 아이랑이 덧붙이자 서리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이 너무나 진심이었기에 서리스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후후, 확실하게 안내해드릴게요.”

그렇게 아이랑의 속내도 알지 못한 채 서리스는 최흉 탐사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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