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우선 다들 이렇게 만나서 반갑다. 하체펠 드웨이진이라고 한다.”
훈련 시작 전 다섯 명 앞에 선, 그가 자기소개 소개 겸 인사를 하였다.
단순 인사였지만, 그의 우람한 풍채는 왠지 모를 압박감을 선사했다.
“니 누구 닮아 큰가 했더니만 네 외할아버지 닮은 거였나.”
그러는 순간 서리스의 옆에 있던 스타리즈가 속닥거렸다.
핏줄이 이어져 있는 만큼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서리스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하체펠 드웨이진 님!”
그러는 순간 빅토르가 대뜸 손을 들었다.
드웨이진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빅토르는 두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대련 한 판 가능합니까!”
아카데미 대표 미친개다운 모습을 바로 드러내는 빅토르를 보고 드웨이진은 곧 호탕한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호전적인 이를 싫어하지 않은 그였기에 빅토르의 행동이 싫지 않았기 때문이다.
“걱정 말거라. 너희는 질릴 정도로 나와 싸우게 될 테니까.”
현역 월하십인과 싸울 수 있는 기회.
절대 흔하지 않은 일이었던 만큼 다른 이들의 눈도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씨익하니 웃은 드웨이진은 솥뚜껑만 한 손으로 멀리 떨어진 숲을 가리켰다.
“하체펠 가문에서 수련을 위해 조성한 숲이다. 너희 다섯 명은 오늘부터 온종일 저기서 지내게 될 거다. 물론, 나 또한 너희와 함께할 예정이지.”
“그럼 저희는 저 숲 안에서 드웨이진 님과 싸우면 되는 건가요?”
드웨이진의 말에 엑스널이 질문하자 그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침식자는 강한 만큼 협공을 기본 교전 수칙으로 친다. 그리고 출몰지 또한 세계 침식과 달리 일정하지 않지. 그런 만큼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조우한 강한 이를 상대하는 법을 너희에게 터득시킬 생각이다.”
오직 세계 침식자를 상대하기 위한 훈련이라는 소리였다.
“너희 다섯 명이 합을 이루는 건 이번이 처음이겠지?”
드웨이진이 질문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을 보는 그의 두 눈에는 악동 같은 짓궂은 장난기가 맴돌았다.
“구르는 만큼 합은 맞춰질 게다. 따라오너라.”
그 말과 함께 드웨이진은 곧장 숲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여름이 된 숲은 풀벌레들과 자라난 풀들이 무성했다.
여기저기서 들려 오는 풀벌레 소리는 괜히 신경을 거스르게 했고, 아크 단원 다섯 명은 서로를 보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드웨이진 님을 상대로 통하는 수가 있겠어?”
상대는 월하십인 중 한 명이다.
완성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그의 철벽의 육체는 웬만한 공격은 생채기조차 내지 못할 것이며 그가 휘두르는 공격 하나하나는 산이 부딪쳐 오는 것과도 같을 것이다.
이 중에서 그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서리스이기에 해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과연 드웨이진에게 자신의 공격이 통할까?
“그냥 한번 붙어 보면 되지. 뭐 하러 이런 고민을 하고 있냐?”
이내 빅토르가 고민하는 이들을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 그럼 빅토르가 제일 먼저 나서 볼래요?
디바쉬가 허공에 글자를 띄우자 이를 본 빅토르가 호기롭게 주먹을 쥐었다.
“좋아. 내가 나서주지!”
미끼로 써먹었군.
하지만 빅토르의 끈질김을 잘 아는 서리스로서도 그렇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당장, 드웨이진의 현재 위치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 마당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입장에서는 세계 침식자보다 이쪽이 더 까다롭단 말이지.’
검은별을 지닌 세계 침식자는 서리스가 본능적으로 그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드웨이진의 경우에는 그냥 사람이다 보니 그 위치를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 내가 드웨이진 님의 위치를 찾아볼게.
그러는 순간 디바쉬가 나서며 수색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는 모두에게 별까지 이용해 귀를 막으라는 시늉을 하곤 자세를 낮췄다.
“벌레들아. 이 숲에 들어와 있는 인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줘.”
그 순간 그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러갔다.
듣는 것만으로 기분이 멍해지는 그 목소리는 순식간에 주변으로 퍼져 나갔고, 잠시 후 여기저기서 벌레 우는 소리가 따라 울리기 시작했다.
쟈온의 언령 비기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어떠한 상대라고 한들 자기 의사를 심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미물이라고 해도 그 의사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 위.
벌레 소리가 디바쉬의 귀로 울려 퍼진 순간 그는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모두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을 때.
쿠웅―
뿌연 먼지구름과 함께 거구의 드웨이진이 일행 중앙으로 떨어져 내렸다.
“으랴악!”
그 순간 제일 가까이에 있던 빅토르가 기합과 함께 주먹을 내질렀다.
별이 담긴 그의 주먹은 드웨이진의 옆구리를 정확하게 강타했고, 그 일격은 누가 봐도 제대로 들어간 정타였다.
“아악?!”
그러나 비명을 지른 것은 빅토르였다.
평소 불굴의 정신으로 비명 같은 건 내뱉을 줄 모른다고 떠들던 빅토르도 자신이 비명을 내질렀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드웨이진의 옆구리를 가격한 그의 주먹이 마치 바위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때린 듯 퉁퉁 부어있었기 때문이다.
“단련이 부족하군. 그래서는 세계 침식자에게 죽는다.”
그 말 한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빅토르는 드웨이진의 주먹을 맞고 숲 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순간 엑스널과 서리스가 동시에 움직였다.
제각기 그림자와 얼음으로 된 검을 쥐고, 서로의 호흡에 맞춰 쇄도한 두 사람의 검이 드웨이진을 베고 지나갔다.
“호흡이 괜찮군. 둘은 합을 맞춰 본 적이 있는 모양이지?”
하지만 드웨이진은 옷깃이 조금 잘려나갔을 뿐, 그 사이로 드러난 육체에는 작은 생채기 하나 없었다.
짝!
하지만 전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스타리즈의 박수 소리와 함께 드웨이진의 발아래에서 강철이 치솟아 오르며 그의 다리를 옭아맸고.
뒤이어 수백 개의 얼음송곳이 땅에서 돋아났다.
그의 몸을 꿰뚫을 속셈으로 치솟은 얼음송곳이 드웨이진에게 찌르는 동시에 디바쉬 또한 입을 벌렸다.
지이이이잉!
마치 정신을 마비시킬듯한 고음의 음색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며 드웨이진을 강타했다.
누가 봐도 깔끔한 연계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에게 공격이 통할 때의 이야기였다.
“모두 피해!”
서리스가 모두에게 경고를 전했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가라앉은 먼지구름 사이에서 드웨이진은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강기수식(强氣守式)
이식(二式)
강파권(强破拳)
그가 허공에 주먹을 내지른 순간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일렁이기 시작한 대기의 파동이 순식간에 주변 모두를 덮쳤다.
휘몰아친 폭풍에 휘말린 이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드웨이진은 그 폭풍 속을 자유롭게 거닐었다.
퍼억!
뭔가를 때리는 소리가 폭풍 속에서 일정하게 들려왔다.
나름 까다로울 수 있는 디바쉬의 몸이 가장 먼저 기역 자 형태로 꺾이며 바닥에 축 늘어졌다.
디바쉬를 처리하자마자 바닥을 박찬 드웨이진은 어느샌가 엑스널의 앞에 도착해 있었고.
뒤늦게 엑스널이 얼음벽을 일으켰지만, 그는 주먹 한 번으로 이를 부수며 그를 잠재웠다.
순식간에 두 명이 추가로 넉다운 된 상황.
드웨이진의 두 눈이 게슴츠레하게 떠졌다.
서리스와 스타리즈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가시화……? 그렇군. 과연 마황의 자식인가.’
자신이 그 기척을 눈치챌 수 없을 만큼 고도의 마법이라.
속으로 훌륭한 아들을 뒀다고 칭찬하며 드웨이진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봤자.”
그 순간 그의 손이 허공에서 무언가를 잡듯 웅크려졌다.
마치 대기를 쥐어뜯듯 힘이 들어간 그의 손을 따라 공간이 일그러져 나가기 시작했고, 드웨이진의 두 눈이 호선을 그렸다.
“완성된 육체는 모든 영역을 뛰어넘는다.”
그의 손아귀에서 시작된 대기의 일그러짐이 숲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일그러진 공간 사이로 본래라면 보이지 않아야 정상인 스타리즈의 모습이 드러났다.
스타리즈의 두 눈이 크게 떠진 그 순간 드웨이진의 별이 담긴 주먹이 허공을 강타했다.
콰앙!
뒤늦게 스타리즈가 방어 마법을 펼쳤으나, 드웨이진의 주먹은 그걸 간단히 꿰뚫으며 그를 날려 버렸다.
순식간에 네 명을 쓰러트린 드웨이진은 잠깐 움직임을 멈추고, 남은 서리스를 찾으려 했다.
그 순간, 그는 등 뒤에서 느껴진 기운의 흐름에 팔을 휘둘러 이를 막았다.
서걱!
처음으로 그의 팔 위에 얇은 생채기가 생겨났다.
“호오.”
짧게나마 감탄한 드웨이진과 달리 악스판시온을 휘두른 서리스의 두 눈은 찌푸려져 있었다.
악스판시온을 통해 드웨이진의 별을 삼키며 휘두른 검이었건만.
그의 피부 겉에 있는 별을 조금 흡수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건 육체 자체가 사실상 하나의 별이잖아.’
별 하나가 통째로 들어앉은 듯한 드웨이진을 상대로 악스판시온은 좋은 수단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서리스는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악스판시온 위에 그림자를 둘렀다.
자신을 제외한 넷이 일격에 쓰러졌다.
금강잔월로 몸을 단련된 서리스라면 최소 한 방은 버틸 수 있겠으나.
후속타를 허용하면 그 순간 끝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서리스는 지금 한 방에 모든 걸 걸 속셈이었다.
검은 별이 그의 검 위에 깃듦과 함께 전에 없던 예기가 생겨났다.
그 타이밍에 맞춰 서리스는 망설임 없이 검을 내질렀다.
흑월귀명도(黑月鬼銘刀)
오식(五式)
흑월영도(黑月影刀)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르며 드웨이진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제왕월영도의 열화판이라곤 하나 드웨이진 또한 맨몸으로 맞서기에는 버거운 무게를 지닌 흑월영도다.
이거라면 피해를 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한 서리스의 눈에 어느새 흐려진 드웨이진의 모습이 보였다.
“서리스, 한가지 착각한 모양이구나.”
원을 그리듯 뻗어져 나간 그의 다리를 따라 드웨이진의 몸 전체가 흑월영도를 스쳐 지나갔다.
‘강능신보(强凌迅步)인가……!’
그 모습에 서리스의 두 눈이 부릅떠진 그 순간 드웨이진의 주먹은 이미 그의 갈비뼈 쪽에 닿아 있었다.
“내가 무슨 공격이든 다 맞아 준다 생각한 게냐?”
드웨이진은 분명 완성된 육체를 지니고 있다.
그 육체는 대부분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철벽에 가깝다.
하지만 그런 육체만을 믿고 단순 무식하게 모든 공격을 맞을 만큼 드웨이진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의 진짜 무서운 점은 자기 육체를 극한까지 잘 활용한다는 점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서리스는 갈비뼈가 우그러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날았다.
금강잔월이 아니었다면 내상을 입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강렬한 공격이었다.
“다른 애들이었다면 나도 손속에 사정을 뒀겠지만…….”
그 순간, 허공을 나는 서리스의 눈에 후속타를 위해 자세를 잡은 드웨이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보자마자 서리스는 쓰디쓴 웃음을 속으로 삼켜야 했다.
“그런데 너는 튼튼하잖냐?”
그의 주먹을 중심으로 몰려드는 대량의 별을 보며 서리스가 할 수 있는 건 금강잔월을 있는 힘껏 끌어 올리는 것밖에 없었다.
손자라고 더 가혹하게 몰아치는 모습이 그답다면 그다웠다.
‘이거…… 훈련하는 동안 진짜 죽도록 구르겠네.’
할아버지라는 사람들이 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짧게나마 요치아를 떠올렸던 서리스는.
그걸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