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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81화 (181/275)

181화

다음날, 서리스는 곧장 힐로즈가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아카데미의 빈 교실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최근에 창설된 단이기도 하고, 첫 시범 운영에 가깝다 보니 전용 건물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탓이었다.

‘아마 다른 단원을 소개받지 않을까 싶은데.’

칼릭스와의 거래 때문이긴 했지만, 서리스는 지금 상황이 썩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이대로 간다면 세계 침식자와 싸울 일이 더 늘어날 거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용신이 만든 열쇠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맞서게 될 게 분명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런 식으로 단련을 해두는 건, 서리스에게도 무척이나 환영인 일이었다.

‘신룡월단도 익혀야 하니 말이지.’

어젯밤 신룡월단의 초입부를 익히기 시작한 서리스는 자기 몸에 흐르고 있는 금강잔월의 기운이 이에 동조하는 걸 느꼈다.

최근 여러 성장 가능성을 보게 된 서리스였기에 하루하루가 단련으로 바쁜 실정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을까.’

괜히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는 사이 서리스는 교실에 도착했다.

드르륵―

그 문을 연 순간 서리스는 뜻밖의 인물과 마주했다.

“엑스널 선배?”

“역시 너도 왔구나.”

그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리스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발리움 쪽에서 뽑혀 온 거니, 그는 악스달 쪽에서 뽑혀 온 게 분명했다.

“왜 알리즈 형님 말고 엑스널 선배께서 오신 겁니까.”

“서리스 후배, 아무래도 선후배 관계를 확실히 할 때가 오긴 한 모양이지?”

“앞으로 저를 선배라 부르시겠네요.”

엑스널과 간단하게 농담을 나누던 서리스는 뮤리널이 잠시 떠올랐다.

혹시 엑스널은 자기 여동생이 샬롯에게 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엑스널 성격이라면…….’

왠지 뮤리널을 그녀를 무릎 위에 엎어 놓고 볼기짝을 내려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던 서리스는 반 안에 한 명이 더 있음을 깨닫곤 고개를 돌렸다.

단발에 수려한 외모를 지닌 그는 백호 문양이 그려진 제복을 입은 것이 엑리시즘 소속인 듯하였다.

그는 서리스를 보더니 옅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앞에 흰색 빛의 글자가 써졌다.

― 쟈온 디바쉬에요. 비기 특성상 말을 하는데, 문제가 있어 양해 부탁드려요.

쟈온은 특이하게도 언령 비기란 걸 가진 가문으로 서리스도 익히 알고 있는 곳이었다.

“3학년 선배님이셔.”

“펜타니엄 서리스라고 합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엑스널의 말을 들으며 서리스도 고개 숙여 인사하자 그는 작게 웃음 짓곤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인지 신비한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덜커덩!

“이 몸 등장!”

그 순간,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덜컥 열린 문에서 빅토르가 나타났다.

그는 내부를 슥 둘러보더니 서리스와 눈이 마주치자 곧 화색을 띄웠다.

“그래, 썅, 역시 너도 있을 줄 알았어! 하긴, 무려 나를 이겼는데, 여기 없을 리가 없지!”

테르넬 쪽은 빅토르인가.

왜인지 짬 처리당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미친개 선배잖아. 하아, 큰일 났네.”

“뭐? 마키나 직계 자식아! 다시 말해봐. 내가 왜 큰일이야!”

등장하자마자 조용했던 교실을 순식간에 시끄럽게 만드는 건 그의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남은 건 로렐라이지.’

빅토르가 엑스널에게 달려들기 직전 서리스는 어렴풋이 누가 마지막으로 올지 예상이 갔다.

드륵―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앞문을 열고 따분한 표정의 남자가 교실로 들어섰다.

그는 서리스와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손을 들어 보였다.

“여, 니도 역시 왔나.”

올스타드 스타리즈.

로렐라이 쪽에서 보낸 사람은 다름 아닌 그였다.

이로써 각 단에서 차출된 다섯 명이 다 모인 셈이었다.

“오자마자 열로 불려 오고 니도 고생이 많다.”

서리스가 워너힐 아카데미를 잠시 떠났었던 건 1학년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발리움 단장인 칼릭스가 허락해준 것이긴 해도 괜히 소문나서 좋을 건 없었기에 다들 쉬쉬해주었다.

그 사실을 알고 서리스도 모두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러는 순간 또다시 문이 열리며 힐로즈가 나타났다.

그는 모두가 왔음을 확인하곤 인자한 미소를 띤 뒤 말했다.

“다들 잘 와줬네. 오느라 고생들 했어.”

성품 자체가 바른 듯 그는 다들 편히 앉으라는 양 의자를 가리켰다.

그를 보고 모두가 착석하자 힐로즈는 단상 위에 서서 입을 열었다.

“다들 인사는 나눴지? 아직은 인원수가 적긴 하지만 일단 시범 삼아 이렇게 다섯 명으로 움직이게 될 거야.”

다섯이서 팀인가.

서리스 입장에서는 나쁜 거 없었다.

무려 다섯 명 중 네 명이 아는 사이기도 하고.

각 단에서 보내온 만큼 실력 하나는 뛰어난 이들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성장 가능성과 실력 두 가지를 다 쥔 구성원인 셈이다.

“그럼 새로 창설된 단, 아크에 목적 겸 앞으로 어떤 훈련이 있을지 설명해 줄게.”

그러는 사이 힐로즈가 바로 본론을 꺼내왔다.

“우선 너희도 들었다시피 우리 단은 세계 침식자 상대를 전문으로 할 거야. 최근 벌어진 사건들은 유명하니까, 다들 잘 알고 있지?”

그 말이 나오자마자 모두의 시선이 서리스에게로 향했다.

최근에 발생한 두 사건에 모두 연관된 관계자가 여기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내가 그 흑마녀랑 협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서리스는 세계 침식자를 적이라 판단하고 있다.

그들의 처지가 어떠하든 저지른 악행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흑마녀와도 이해관계가 일치해서 같이 움직이고 있을 뿐 서리스는 그녀와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세계 침식자를 상대할 수 있을 때까지 너희의 성장이 우리 단의 주목적이야.”

말 그대로 세계 침식자를 상대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 내겠다는 소리였다.

“덕분에 훈련 커리큘럼이 꽤 호화롭게 짜였어. 다름 아닌 월하십인과 천하오장성 쪽에서 훈련을 봐주겠다고 하셨거든.”

그 말을 듣고 다섯 명 모두가 놀란 눈이 되었다.

월하십인까지는 윈터라는 케이스가 있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설마 했던 천하오장성이 튀어나올 줄이야.

펜타니엄의 부가주인 검왕을 제외한다면 모두가 대가문에 가주인 자들이다.

그런 이들이 직접 훈련을 봐주겠다는 건 힐로즈가 말한 대로 교관 인선이 무척이나 호화롭게 구성된 상황이었다.

“힐로즈 단장!”

그 순간 빅토르가 번쩍 손을 들어왔다.

“천하오장성이랑 붙어봐도 괜찮습니까!”

“그쪽이 허락한다면야.”

빅토르의 두 눈이 번뜩였다.

과연 미친개다운 행동력이었다.

저 정신머리로 무황 강혼에게도 덤벼든 거겠지.

‘그러고 보니 강혼의 비기가 용제의 형과 이어졌었지.’

혹시 그와 마주치게 될 날이 올까.

강혼이 어디까지 알고 있을지는 몰라도, 한 번쯤은 이야기해 보는 게 좋을 듯했다.

만약 그의 협조를 얻을 수 있다면 천상사성이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생기는 셈이니까.

“그럼 이번 첫 훈련을 도와주실 분이 어떤 분인지 가르쳐 줄게.”

힐로즈의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월하십인으로 오르신 하체펠 드웨이진 님이야.”

그리고 전혀 예상 못 한 이름이 나온 순간 서리스의 두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드웨이진의 이름이 여기서 나올 줄은 전혀 예상 못 했기 때문이었다.

‘드웨이진도 성장했다는 건가.’

과거로 돌아온 후, 그를 처음 만났을 당시 드웨이진은 7성의 무인이었다.

그때 당시에도 현재의 자신이 붙으면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강자였는데.

월하십인에 들어갔다는 건 그가 8성에 올랐다는 소리와도 같았다.

‘내가 달리고 있는 만큼 다른 이들도 달리고 있다는 소리겠지.’

다시 만나게 될 것이 조금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날 밤 그와의 한 수는 서리스의 기억 속에도 진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부터 하체펠로 가게 될 거야. 월하십인이나 천하오장성이나 다들 바쁘신 분들이니까.”

하지만 곧이어 들려 온 말은 서리스의 기운을 쭉 빠지게 하였다.

얼마 전에 펜타니엄을 다녀왔건만 또 그리로 간단다.

* * *

펜타니엄의 소가문 하체펠.

철벽이라는 별호를 가진 하체펠 드웨이진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에 자기 방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오랜만에 자신이 점찍어둔 손자 얼굴을 본다는 생각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워너힐 아카데미를 가서도 매일 같이 소란을 일으키고 있던 모양인데.’

들려 오는 것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것투성이였다.

최근엔 대해에서 주인 중 하나인 도올까지 쓰러트렸다지 않는가.

외할아버지로서 이만큼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자신도 손자 보기 부끄럽지 않게 훈련에 빠져 기어코 8성의 벽을 넘어 월하십인에 들어갔겠는가.

다른 손자들보다 유달리 서리스를 아끼는 드웨이진은 팔짱을 낀 채 발로 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소식은 꾸준하게 듣고 있긴 하나 얼굴을 직접 보는 건 몇 년 만이다.

15살, 서리스가 바뀌기 시작했을 당시 그를 보았던 드웨이진은 그가 천상사성조차 뛰어넘을 인재라 여겼다.

5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어디까지 성장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었다.

똑똑―

그러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드웨이진 님, 아크단이 방금 막 도착했답니다.”

“오, 왔구만!”

집사장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화색을 띤 드웨이진은 곧 헛기침하며 들뜬 표정을 갈무리했다.

아무리 오랜만에 보는 손자가 있어도 그가 속한 단의 사람들과 함께 보는 자리다.

서리스가 보기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체통은 지켜야지.

그렇게 생각한 드웨이진은 거울을 보며 옷깃을 확실히 정리하곤 복도를 거닐기 시작했다.

하체펠의 철벽다운 덩치를 가진 그인 만큼 표정을 바꾼 것만으로 그 기세가 한 번에 달라졌다.

월하십인다운 기세를 풀풀 흘리며 그가 밖으로 나오자 거기에는 아크단 여섯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곧이어 단장으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걸어 나와 그에게 귀족식 인사를 해 보였다.

“하체펠 드웨이진 님, 단장인 아바리안 힐로즈라고 합니다. 이번 훈련 일정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바리안인가. 훌륭한 가문이지. 반갑네. 나야말로 뛰어난 인재를 가르칠 기회를 줘서 감사하네.”

적당히 덕담을 나눈 드웨이진은 곧장 단원들 쪽으로 시야를 돌렸다.

그에게 있어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서리스를 살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순간 또래 아이들보다 더 좋은 체격과 키를 가진 서리스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10cm는 더 크지 않았을까.

180 후반대에 육박하는 키를 가진 서리스는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들어왔다.

거기다가 옷 위로도 드러나는 강건한 육체는 또 어떠한가.

신체를 극한까지 단련해 강철의 육체라 불리는 드웨이진이 보기에도 서리스는 찬사를 날릴 만큼 훌륭한 몸을 만들어내었다.

‘거기다가.’

못 본 사이에 대체 얼마나 성장을 한 건지.

서리스의 몸에서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별들이 흘러나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자신이 본 어떤 인물들도 저 나이대에 저 정도 수준에 이른 이는 없었다.

그것이 설령 펜타니엄 가주인 검황 락로드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찬사를 아끼지 않을 만큼 서리스는 엄청난 성장을 이룩한 것이었다.

‘나를 넘는 것도 조만간이겠어.’

서리스를 보고 다시 단련에 돌입했던 드웨이진이었지만, 그는 이 현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좀 더 단련을 해뒀어야 했다고 말이다.

그러는 사이 드웨이진의 강렬한 눈빛을 느낀 서리스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표정을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자신에게 쏘아지는 눈빛에 담긴 감정이 강렬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수준이었다.

‘또 하체펠을 이으라고 하는 게 아닌지 몰라.’

여러모로 피곤한 훈련이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아크의 첫 훈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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