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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74화 (174/275)

174화

서리스의 질문을 들은 후 잔루크는 이유를 묻지 않고 곧바로 서류를 뒤졌다.

그러더니 무언가 찾은 듯 손을 멈추곤 종이 몇 장을 서리스에게 건넸다.

“직접 읽으시는 게 더 편하실 듯합니다.”

고작 몇 달 사이에 이렇게 성장해 주다니.

아니, 정정하자.

원래 능력이 있었던 그인데 칼릭스와 한순간의 자만 때문에 능력이 묻혀 있었다고 봐야겠지.

서리스는 잔루크에게 받은 서류를 열어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용제 제롬.

성이 없는 일반 평민이자 대가문 출신인 요치아, 스타린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인물.

그는 삼무제 사이에서도 으뜸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던 중 갑자기 돌연사.

사인은 불명.

그 이후로 삼무제조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대가 오며 서서히 잊혔다.

‘딱 여기까지가 일반인이 아는 내용인가.’

서리스는 서류를 계속 넘기며 쭉 읽어 보았지만 새로운 내용은 그다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딱 자신이 아는 그 정도였다.

한가지 눈에 띈 건 용제가 마키나 가문의 여식과 한때 연인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연인 관계였다면, 그의 거처가 마키나 쪽에 있을 수도 있으려나.’

가능성은 열어두자.

혹시나 요치아 또한 그의 거처를 모를 수도 있을 노릇이니까.

“고마워. 큰 도움이 됐다.”

“예, 다행입니다.”

서리스는 잔루크에게 서류를 돌려주었다.

“아, 서리스 님 그러고 보니 최근 괜찮은 걸 들여서 말입니다.”

“뭔데?”

서리스가 관심을 보이자 잔루크는 곧장 그 물건을 꺼내왔다.

그런데 그건 서리스도 잘 아는 것이었다.

“마화라는 건데, 연결되어있는 수신기에 멀리서도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물건입니다.”

“오, 편리한 게 나왔네.”

들떠 있는 잔루크를 보며 서리스는 일부러 관심 있는 척 행동해 주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마화는 몇 년 뒤면 전 세계 사람들이 애용하는 필수품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었다.

‘이걸 보자마자 바로 구매해두다니. 잔루크 눈썰미가 생각 이상인데.’

서리스는 자신이 활동했던 시간대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 느끼며 잔루크가 건넨 휴대용 수신기를 받아 두었다.

앞으로 이걸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와 새로운 정보를 건네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혹시 용제와 관련된 거나 그의 거처에 관해서 좀 알아봐 줄 수 있을까?”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잔루크는 서리스의 부탁을 최우선 목표로 등록해두었다.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지켜본 서리스는 부하의 유능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으며 그렇게 첫날 일정을 마쳤다.

다음날 서리스는 곧바로 비룡을 타고 펜타니엄으로 향했다.

비룡을 타고도 펜타니엄까지 오는데 며칠을 소모했는데, 이것만 보아도 워너힐 아카데미와 펜타니엄 사이의 거리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공간 이동 마법이라도 있으면 좋겠건만.’

그런 게 없는 서리스 입장으로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오랜만이네.”

아래로 펼쳐진 가문의 전경을 바라보며 서리스는 곧장 엘리자 산맥으로 향했다.

비룡에서 내린 서리스는 라이더에게 이틀 정도의 여관비와 비룡 관리를 할 수 있는 돈을 미리 지불하곤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엘리자 산맥은 몇 달 전과 다를 것 없이 험준했다.

특히 이제 여름이 코앞임에도 산을 오를수록 느껴지는 한겨울 같은 한기는 여전했다.

평소 산을 타던 이들이 아니라면 오를 엄두도 못 낼 험준한 산이리라.

하지만 서리스에게는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이 엘리자 산맥에서 무려 1년 이상을 살며 수련에 매진했던 그이기 때문이었다.

숲에 사는 동물들을 구경할 정도로 처음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손쉽게 산을 오른 서리스는 덩그러니 지어져 있는 한 집 앞에 멈춰 섰다.

천능선목으로 지어진 집은 여전히 그 제값을 하듯 서리스가 떠날 때와 그리 달라지지 않아 보였다.

문 앞으로 다가간 서리스는 노크 없이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그러곤 부츠를 벗어 정리해두곤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이곳을 떠난 지 고작 몇 달밖에 안 되었지만, 왜인지 정말 오랜만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마 이곳에서 단시간에 배운 게 많기 때문이었겠지.

“요치아 님, 계십니까?”

복도를 거닐며 서리스는 요치아를 찾기 시작했다.

지금 시간대면 검을 다 휘두르고, 차를 한잔하고 계실 때이건만, 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제가 너무 늦었습니까? 제자가 성장한 모습은 보고 가셔야 하는데. 결국, 나이는 못 이기신 모양입니다.”

서리스는 그 말을 하자마자 자기 머리를 향해 날라오는 목검을 느끼며 상체를 틀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예상했다는 듯 목검은 그대로 휘어져 어깨를 후려쳤고, 서리스는 덕분에 바닥을 굴러야 했다.

“쯧쯧쯧, 죽기 직전인 노부에게 얻어맞고 사는 놈이 입만 살아서는.”

“모습을 안 드러내시니 어쩔 수 없잖습니까.”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서리스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집 내부에서 처음부터 요치아의 기운이 팍팍 느껴졌기에 해본 말이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아직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정정하신 모양이었다.

“그래서 왜 온 것이냐. 설마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한 게냐? 하긴, 네놈 성깔이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긴 하지.”

“왜 멋대로 제자를 퇴학시키고 그러십니까. 그런 거 아닙니다.”

요치아가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표정이었기에 서리스는 이를 정정하며 말했다.

“정식으로 잠깐 외유 시간을 받은 겁니다.”

“흐음, 변명치고는 좀 이상하다만, 그래서 여긴 왜 온 게야? 스승 얼굴 보러 오지는 않았을 테고.”

예리 하시구만.

저렇게 나와주신 이상 서리스는 바로 본론을 꺼내기로 하였다.

“용제가 살던 거처에 관해 알고 계신 게 있으십니까?”

“……용제?”

마치 왜 그 이름이 서리스 입에서 나오냐는 양 요치아의 두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그러곤 서리스를 바라보다 무언가 생각났는지 물었다.

“혹시 마제 놈에게 뭔가 들은 게냐?”

“스타린 님께 말입니까?”

“그래, 그놈이 아직 용제의 시체를 찾고 있으니 말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서리스는 스타린이 떠난 이유를 깨달았다.

‘용제의 시체를 찾으러 갔다?’

혹시 스타린도 용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걸까.

한발 먼저 떠나 버린 그를 떠올리며 서리스는 아쉬움을 표했다.

만약 스타린이 용신에 관해 아는 게 있었다면,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줬을 테니 말이다.

“아뇨.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적인 목적에 가깝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을 위협하는 용신이라는 존재를 알아내는 것도 있으니 세상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당장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이긴 했다.

“흐음.”

요치아는 잠시동안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서리스를 보고 용제에 관해 말해줄지 말지를 고민하는 듯하였다.

그러다 곧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는 양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일단 따라와 보거라.”

그리 말한 요치아가 복도를 걷기 시작하자 서리스는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용제에 관해 어디까지 아느냐.”

그가 질문을 해오자 서리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대답했다.

과거 삼무제의 일원이었고, 그가 무척이나 강했다는 것 정도.

서리스의 대답을 듣고 요치아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겠지. 하지만 네놈은 하나 잘못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명심하거라. 우리는 삼무제라 묶여 불리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셋의 실력이 엇비슷한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그건.”

“그 당시 그나마 그와 묶을 수 있는 게 우리 두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요치아는 방문 앞에 우뚝 서고는 그 말의 진의를 가르쳐 주었다.

“용제는 우리보다 훨씬 강했다. 지금의 우리조차 닿을 수 없을 정도로.”

그 말을 들은 서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스타린과 요치아는 지금의 서리스가 보기에도 압도적인 괴물이었다.

세대를 거칠 때마다 더욱 강해지는 별의 특성상 천상사성이 지닌 별만큼은 아니겠으나 두 사람에게는 오래도록 쌓아온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두 사람조차 닿을 수 없었다니.

대체 용제는 어떤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 말을 하며 방문을 연 요치아는 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거기에는 편지 한 통과 낡은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녀석이 어느 날 다 죽어가는 꼴로 나를 찾아왔다. 이미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를 입고서 말이다.”

용제는 죽었다.

삼무제라는 이름이 희미해지기도 전에 먼저.

그런데 그것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것이라면 그를 죽인 사람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용신.’

흑마녀와 성위의 이야기 속 인물이자 서리스를 세계 침식자로 만든 자.

그자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 죽어 가던 녀석이 친우였던 노부에게 부탁을 한 가지를 했지. 자신의 별을 담은 그릇이라는 보석을 주더니 그걸 펜타니엄 영지에 심어 달라고 하였다.”

“……별을 담은 그릇.”

그 말을 곱씹은 서리스의 앞에 요치아는 종이를 불쑥 내밀었다.

서리스가 그 낡아 보이는 종이를 받아 들자 거기에는 웬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길이 많이 바뀌었을 테지만, 용제 놈이 살던 곳의 약도다.”

“마키나로군요.”

염두에 두곤 있었지만 정말로 거기였을 줄이야.

“그래, 근처에 놈이 사귀던 여자가 있었으니까. 쯧, 자기 연인 품에서나 눈을 감을 것이지. 뭣 하러 노부를 찾아와서는…….”

오래전에 이별한 친우를 떠올린 듯 요치아의 눈동자 속에는 쓸쓸함이 깃들었다.

그런 요치아를 보고 서리스는 약도를 조심히 접어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펜타니엄 영지에 심은 별의 그릇이란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른다. 내가 펜타니엄을 떠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말이다. 적어도 노부가 그곳에 지낼 때까지는 별다른 일이 없었지.”

별일이 없었다라.

분명 그 용제가 한 일일 텐데 아무 일 없었다는 게 서리스는 믿기지 않았다.

‘잠깐만.’

그러던 중 갑자기 그의 눈이 천천히 커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갑자기 떠오른 게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제가 심은 별의 그릇이라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가리키는 게 아닐까?

흑마녀 또한 용제가 자신을 불러들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의문을 가진 서리스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요치아 님, 용제께서 사용하시던 비기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비기 말이더냐?”

그는 딱히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서리스의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금강잔월, 아마 그런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 이름을 들은 순간 서리스의 눈동자 속에 경악이 깃들었다.

금강잔월.

소드란의 비기가 용제가 사용한 비기와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의문이 떠올랐지만, 서리스는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소드란의 가주였던 서리스조차 용제가 금강잔월과 관련되어 있다는 말은 그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드란이 소가문으로 편입된 시기는 용제 때와 분명하게 일치했다.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금강잔월이 용제에게서 나온 것임을 몰랐던 이유는 아마.’

소드란이 용제의 비기를 이은 것을 요치아가 비밀로 했었고, 윗세대 선조들도 거기에 동조해 함구했다.

그런 와중 요치아는 은거했고, 그 사이 소드란은 가문별을 저주받아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 뒤로 요치아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쯤에는 그 자신이 이미 오늘내일할 때쯤이었으니, 친우의 비기를 이은 소드란을 신경 써줄 여력이 없었겠지.

그러다 보니 금강잔월과 용제의 연관성을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요치아의 입으로 사실을 확인한 순간 서리스는 벼락을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이 세계에서는 용제가 살해당했기에 소드란 가문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용제는 분명 그 미래를 알고.

‘나라는 존재를 염두에 두고, 과거를 바꾸었다.’

소드란이 이 세계에서 사라진 비밀이 풀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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