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성위 아리즈 아테라와의 첫 만남.
성위는 소드란의 가주로서 갖은 고생을 다 하고 있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었다.
즐겨 먹던 술집에서 술에 절어 탁자에 코를 박고 있던 올드렌의 앞에 그가 인기척을 내며 나타났었다.
“누굽니까.”
별이 저주받아 금강잔월을 다룰 수 없어 취기에 절어있던 올드렌은 풀린 눈으로 물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던 아테라는 마른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별이 엉켜있군. 언젠가 큰 화를 당할 상이야.”
“화아? 화는, 이미 충분히 당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압니까?!”
취객이란 조그마한 일에도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법이다.
여타 다른 취객과 다를 바 없이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친 올드렌은 곧 울상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제가 뭘 그리 잘못했답니까. 저는 소드란에서 태어났을 뿐이고, 그렇기에 가주가 되었습니다. 가문의 뜻이기에 끝없는 초롱에 맞섰고요.”
올드렌은 자포자기한 듯 자기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그런데도 주위에서 들려오는 건 비웃음밖에 없습니다. 몰락한 놈들이 대가문에 기생한다고 여기저기서 손가락질만 해댄단 말입니다.”
아직은 모든 걸 포기를 하지 않은 시점.
그 당시 올드렌은 쭉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가세가 기운 가문을 붙잡고 조금이라도 버텨 보려고 안 간 힘을 썼었지만.
한 번 기울어진 가문은 돌이킬 수 없다는 듯 계속해서 아래로 향할 뿐이었다.
올드렌은 그 사실이 서럽고 분했다.
무얼 노력하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별이 원망스러웠다.
“저한테 대체 뭘 바라는 겁니까. 선조들께서는 무얼 위해 희생하신 겁니까.”
올드렌의 하소연은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가주이기에 다른 이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속은 썩어들어 가 진창이 나고 있었기에 그는 술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다 했나?”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던 올드렌의 말이 멈췄을 때 드디어 아테라의 입이 열렸다.
속에 있던 감정을 다 쏟아 낸 탓에 조금 취기가 가신 올드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이란 건 사람을 인도하듯이 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네.”
그리고 그의 귀에 아테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착각하곤 하지 별의 인도만을 따르는 것이 자기가 별이 되는 법이라고. 별은 스스로 빛나는 법을 아는 이만 되는 것인데 말이지.”
이해가 잘 안 가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테라는 올드렌이 이해하기를 바란 것은 아닌 듯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에게도 곧 그렇게 환하게 빛날 순간이 올 모양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별들이 저렇게 엉켜있을 수가 없지. 힘내게나.”
그리 말하곤 아테라는 떠나갔다.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올드렌은 서서히 올라오는 숙취에 이마를 잡았다.
분명,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얼굴이었는데.
그러는 순간 또다시 누군가가 그의 앞에 앉았다.
올드렌이 뭔가하고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황당하게도 방금 떠나갔던 아테라가 앉아 있었다.
뭔가 할 말이 아직 남아 있었나?
“별이 엉켜있군. 언젠가 큰 화를 당할 상이야.”
그리고 그는 처음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올드렌은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이 노인…… 그냥 노망난 인간이구나.
그 노망난 영감이 성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후, 신문에서 그의 얼굴을 보게 되면서였다.
* * *
과거 회상을 끝낸 서리스는 다시 아테라를 쳐다봤다.
그때보다는 좀 더 젊어져서일까, 아직 정신은 멀쩡해 보였다.
‘별들이 엉켰다라…….’
그 말이 계속 떠올라 줄곧 아테라와 만나고자 했었다.
왜냐하면, 그가 말한 것이 왜인지 소드란과 펜타니엄 그리고 검은 별을 가리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혹시 그라면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를 알까.
그런 의문을 가지고 지금까지 아테라를 찾아다녔던 거지만, 지금은 혼란에 혼란을 더할 뿐인 상황이었다.
“성위님께서는 어디까지 보이십니까.”
그렇기에 서리스는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아테라는 성위라 불릴 만큼 다양한 것을 보는 이다.
흑마녀와 자신이 대화한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에서 무턱대고 다 숨겨봤자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흑마녀의 정보가 확실한지 그의 입을 통해서 한 번 더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고.
‘성위는 나를 경계하거나 적의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어디까지 보이는지는 몰라도 흑마녀와 대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자신을 쫓아내기에는 충분했다.
그런 사람은 잠식자일 확률이 높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건 분명 그가 자신을 흑마녀의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보일 건 보이고, 안 보이는 건 안 보이는 걸세. 단지, 세계 침식자들이 말하는 용신이라는 존재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
용신.
그 단어가 나오자마자 서리스의 눈빛이 변했다.
그건 흑마녀가 말한 것 중 서리스도 확실하게 진실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의 목적을 알고 계십니까?”
서리스가 질문한 순간 아테라의 이마 위, 별자리가 더욱더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짙은 어둠, 언젠가 최흉마저 집어삼킬 진짜 악이지.”
사실상 전부 다 알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테라도 그 사실을 알려주고자 일부러 저런 대답을 한 듯하였다.
“천랑후의 도움은 잘 받았는가?”
“……여러모로 많이 받았죠.”
천랑후가 서리스의 곁에서 집사 역할을 하고 있었던 이유는 아테라의 지시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아테라가 서리스의 인생 첫 시작부터 관여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드렌으로 처음 만난 그날.
그는 자신에게서 무얼 봤던 걸까.
그리고 어디까지 봤던 걸까.
“아테라 님도 제가 용신을 막을 자로 보입니까?”
그렇기에 서리스는 물어보았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그에게 자신의 운명이 무엇이냐고.
그 질문을 듣고 아테라는 잠시동안 침묵했다.
“서리스 학생, 이 세상에 정해진 운명이란 건 없네.”
그리고 들려 온 말은 굉장히 뜻밖이었다.
남들과 다른 것을 보고, 예언하며 걸어갈 길을 점지하는 이가 바로 아테라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운명을 신봉할 거라 믿었지만 아테라는 운명을 부정하고 있었다.
“단지, 순간의 선택과 그로 인해 바뀌는 상황만이 존재할 뿐. 자네는 운명이라는 고리에 엮여 정해진 길을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세.”
어느새 아테라의 눈동자에는 인자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말은 왜인지 서리스의 가슴을 괜스레 어지럽혔다.
서리스의 삶은 꼬이고 꼬인 결과의 연속이었다.
소드란 올드렌으로 태어나 소드란의 가주가 되었지만.
그의 가문별은 저주받았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게 정해진 운명이라는 양 소드란의 명맥을 겨우 잇는 것 말고는 서리스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었다.
서리스에게 있어서 운명이라는 것은 저주였다.
벗어나려고 해도 자꾸 얽매이고, 얽매이는 끔찍한 저주.
그래서일까.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과거로 돌아오게 된 자신이 그 운명에 또다시 얽매인 거라면.
서리스는 자신이 해온 모든 일들이 또다시 부질없어질까 봐 항상 신경 쓰고 있었다.
자신이 기연과 노력, 재능을 모두 잡아먹고 이룩한 현재의 삶이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는 것만큼 허탈한 결말은 없었으니까.
“자네는 잘하고 있네.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걸어온 게야.”
아테라는 자신의 그런 속내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위로하듯 말해주었다.
감정이 뒤섞인 기분 때문에 주먹이 조금 떨렸지만, 서리스는 힘을 주어 그 떨림을 떨쳐내었다.
남에게 위로 좀 받았다고 울기에는 그가 살아온 삶이 너무 길었다.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해 눈물을 흘리던 삶은 어렸던 그때 다 버리고 왔다.
아테라가 말했듯이 이제는 그 스스로 여기까지 걸어왔기에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었다.
“용신을 노릴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도록 하게. 하지만 그것이 자네 인생의 전부가 될 필요는 없네.”
“말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름의 결심이 선 듯, 이 방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서리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세계 침식에 맞서는 게 저희 삶 아니겠습니까.”
올드렌 때부터 시작해서 서리스인 현재까지.
그는 평생을 세계 침식에 맞서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용신이 세계 침식의 근원이자 주축이라 한다면.
서리스는 기꺼이 그 용신의 멱을 따버릴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힘들걸세. 우리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이니.”
“제 짧은 인생을 비춰봤을 때, 진짜 힘든 건 포기조차 선택할 수 없을 때입니다.”
그러니 서리스는 아테라에게 물어야 할 것을 묻기로 했다.
“그 일의 시작을 위해서는 우선 용제의 거처를 찾아야 합니다. 성위님이시라면 그 위치를 알고 계십니까?”
원래는 요치아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지금 알아낼 수 있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겠지.
남들과는 다른 걸 보는 그이니, 용제의 거처 또한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서리스가 대답을 기다리자 아테라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기울였다.
“자네는 누군데 내 방에 있는감?”
마치 자신을 처음 본다는 듯 그의 눈동자는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었다.
서리스의 눈이 자연스럽게 그의 이마에 새겨진 별자리로 향했다.
빛이 꺼졌다.
그렇다.
아테라는 잠깐 멀쩡해 보였을 뿐인 것이다.
정작 가장 중요한 정보를 말해줘야 할 순간에 저리되다니.
“성위님께서 부르셔서 왔습니다.”
“내가? 흠, 왜 불렀나 모르겠군. 일단 앉게나. 자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당신 때문이잖아.
서리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느끼면서도 괜찮다는 양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 상태로 돌아가 버린 아테라에게 물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차라리 제 발로 뛰는 게 더 빠르지.
‘대체 어디까지가 성위의 진짜 뜻인지.’
사실 앞서 봤던 쪽이 노망난 쪽일지도 모른다.
“괜찮습니다. 그만 가보겠습니다.”
적어도 흑마녀가 말한 부분이 모두 거짓된 것은 아님은 확인했으니 됐다고 생각한 서리스는 이만 나가보기로 했다.
“서리스 학생.”
그렇게 서리스가 문고리를 잡은 그 순간 아테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마녀는 물론이고, 앞으로 자네 앞에 나타날 모든 이들의 목적이 전부 같은 것일 거라고만은 생각 말게. 그들 또한 각자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중일 테니.”
충고를 한 그를 돌아보았을 때 아테라의 눈에는 또다시 자신의 정체에 대한 의문만이 깃들어 있었다.
왜인지 또다시 자네는 누구냐고 물을 낌새였기에 서리스는 재빨리 목례하곤 방을 나섰다.
어쩐지 조금 후련한 느낌이 된 서리스는 앞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마지막에 해준 아테라의 말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건 일단 보류해두기로 했다.
‘그럼 우선 용제의 거처인가.’
요치아를 만나러 외출할 방법을 어떻게든 강구 해봐야 할듯싶었다.
그런 생각을 품은 채 복도를 걸어가던 중이었다.
“여∼.”
그러는 순간 서리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발걸음을 멈추자 거기에는 사성 사진산이 서 있었다.
“사진산 선배님? 제게는 어쩐 일로?”
서리스가 의아한 듯 돌아보자 그는 저번과 같이 안대가 얹어진 모래색 머리를 긁적이었다.
“우리 단장님이 말 좀 전해달라고 해서 말이야.”
그 말을 듣자마자 서리스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사진산은 발리움 소속이다.
그렇기에 그가 단장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었다.
펜타니엄 칼릭스.
서리스의 사촌 형이자 온갖 악연으로 이어진 바로 그 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