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급속 세계 침식이 정리된 후, 서리스와 학생들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마굴 대해의 입구가 자리한 해안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냄새.”
대해가 코앞이라서일까, 크라페는 코를 손으로 꽉 막은 채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긴, 서리스 자신도 대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검은별의 기운이 강렬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더 심해진 느낌이야.’
검은별은 날이 가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물론, 서리스가 이제 버릇처럼 세계 침식의 힘을 흡수하고 있는 거에 더해 워너힐 아카데미에 오고 나서는 그 횟수도 무척이나 늘어났으니 당연한 현상으로 봐도 좋았다.
‘그리고 아마.’
스타린이 해주었던 영혼과 육체를 일치시키는 것.
그 영향을 받은 건, 펜타니엄과 소드란만이 아닌 듯싶었다.
다행히 두 별과 같이 출력이 두 배로 늘어나 버리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검은별과 관련된 감각이 상당히 예민해졌음을 평소에도 체감할 정도였다.
‘더 이상 세계 침식의 힘을 흡수하는 건 좀 위험하려나…….’
서리스는 목 뒤를 손으로 잠시 눌렀다.
검은별을 쓰는 건 오래전에 스스로 다짐했던 사안이지만, 기억을 통해 자신이 세계 침식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나니.
새삼 망설여지기 시작했다.
‘가면 갈수록 고민만 많아지는 느낌이야.’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 검은별을 내려놓기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다.
당장 세계 침식자들과 맞서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직 닥쳐오지도 않은 위험을 신경 쓴다고 자신의 가장 큰 무기를 포기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리스,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진입한대!”
그런 여러 생각을 품은 채로 대해를 바라보고 있던 서리스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지금은 눈앞의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도록 하자.
서리스는 복잡해진 머리를 비우며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 * *
대해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야영이 끝나고 아침이 밝았다.
슬슬 야영도 익숙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모든 짐을 정리한 A반 학생들이 해안가로 모였다.
그들 앞에는 악스달 단장 불터렉스 윈터를 중심으로 학생 단장들과 교관이 서 있었다.
“오늘은 드디어 대해에 들어가는 날이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본녀와 학생 단장들 그리고 교관까지, 우리는 너희가 대해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개입하지 않을 것이지.”
그 뜻은 이곳까지 오면서 가장 든든했던 이들이 사라진다는 소리였다.
“파견은 실전, 본녀가 판단하기에 전멸을 면하지 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죽을 위기라도 나서지 않을 게다.”
이건 일종의 경고였다.
학생 단장 둘과 윈터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어디까지나 세계 침식자의 난입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마굴 청소는 어디까지나 1학년 A반 학생들의 몫.
그렇기에 학생들이 은연중에 품고 있을 안일함을 꼬집은 거였다.
“제 목숨은 자기가 지켜내도록. 남의 도움으로만 부지한 목숨은 언제 빼앗겨도 이상하지 않으니.”
그리 말하며 윈터가 벨리키를 돌아본 순간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지금부터 학생분들께 수중 이동 마법을 걸어 드릴 겁니다. 단순히 물에서 자유롭게 걸을 수 있도록 돕는 마법이니 방어적인 요소는 기대하지 마세요. 이걸 꼭, 기억해두세요.”
설명을 마치자마자 서리스와 모든 이들에게 희미한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버프형 마법에 걸리는 건 서리스도 처음이었기에 그의 눈동자에는 흥미가 감돌았다.
‘이거…… 지금 악스판시온을 꺼내면 어떻게 되려나.’
그리고 사람의 흥미는 간혹 이상한 방향으로 튀기도 했다.
어린애 같은 상상을 잠깐 했다며 헛웃음을 지은 서리스는 그사이 이동하기 시작한 윈터를 따라 바다로 향해 걸어갔다.
사람들이 하나둘 바다로 사라지는 것이 멀리서 본다면 단체 동반 자살로 보일 법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본인들은 물이 닿음에도 닿지 않은듯한 이 기묘한 느낌에 감탄하고 있었다.
“으으, 직계님, 느낌 이상해.”
물론 다른 이들과 달리 적응 못 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도로시와 같은 이들도 있었고 말이다.
“신기하네요. 이런 게 마법사들이 보는 세상인가요.”
때마침 옆을 지나가던 아이랑이 말하자 서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로 갈수록 점차 색이 변하기 시작하는 푸르른 바닷속.
흐릿하게 들어오는 태양 빛 아래로 온갖 물고기와 해저 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서리스는 서발광을 돌아보았다.
맹인인 그에게는 보이지 않을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서리스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서발광은 이쪽을 돌아보곤 미소 지었다.
“괜찮아. 서리스, 나도 느껴지는 게 있거든. 재미있어.”
“그러냐.”
그렇다면 다행이라고 서리스는 생각했다.
“윽.”
그러는 사이 크라페가 코를 질끈 막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래도 도착한 모양이었다.
대해다.
저 멀리 푸르른 바다와는 이질적인 공간.
바닷물은 없고 산호초 대신 붉은색 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난 광활한 숲.
저곳이 바로 대해였다.
직접 대면하니 진동하는 검은별의 기운이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느껴졌다.
주기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언젠가 최흉이 될지도 모를 마굴.
이곳 대해에는 온갖 잡다한 마수들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을 것이었다.
“들어가지.”
윈터가 먼저 대해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잇따라 모두가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다른 세계로 넘어온 듯한 그 이질감이 몸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과 함께 서리스는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붉은색 달이 떠 있었다.
분명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수면 위로 보이는 붉은 달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쁘기 그지없었다.
“너무 보지 않는 게 좋을기다. 저 달은 눈과 정신을 잇는 구간을 지워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 하게 되뿌니까.”
“알고 있어.”
어느새 다가온 스타리즈의 말을 들으며 서리스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마굴답게 초장부터 기분 나쁜 게 잔뜩 있었다.
“뭔가 메스껍군.”
“독입니다. 저 붉은색 잎들을 하나의 독초라 보면 됩니다. 잎에서 퍼진 포자들이 공기 중에 녹아들어 있네요. 기관지로 들어온다 해도 죽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장시간 노출은 피하는 게 좋겠군요.”
이바드라와 발렌타인 쪽에서도 이야기가 들려오는 사이 윈터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모두가 들어온 것을 확인하곤 그 입을 열었다.
“파견 임무의 주된 목적은 실전 경험, 그리고 주인 소탕이다.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후자인 만큼 주인 한 마리를 잡는 것이 목표이니 잘 기억해두거라. 밀리오레, 벨리키, 서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사람이 윈터의 옆에 섰다.
그녀는 그들을 돌아보며 학생들 쪽에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상, 일주일 뒤에 보도록 하마.”
그 말이 끝나자마자 네 사람이 동시에 사라졌다.
아마 우리의 시야 밖에서 계속 지켜보긴 하겠지만, 그들이 말했던 대로 일행이 전멸할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순식간에 덩그러니 남은 A반 15명은 잠시 침묵했다.
윈터와 학생 단장들이 여기까지 이끌어 주었던 만큼 갑자기 구심점이 사라진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 사이에서는 리더 한 명을 뽑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리더란 중요한 법이다.
리더의 의견으로 그 단체가 나아갈 방향성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보통 첫 파견 임무에서 A반은 이러한 리더 자리 때문에 종종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가뜩이나 실력 좋고 자존심 높은 이들이 뭉친 반이다.
교관이나 선배라면 모를까, 동급생을 자신의 위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힘든 일인 것이다.
당연히 알게 모르게 경쟁 구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리더 문제로 내부 분란이 일어나 갈라지는 경우가 더러 있기도 한 게 A반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이런 리더 문제가 무가치해지는 때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펜타니엄 락스카 때다.
그는 또래는 물론 전교생들을 통틀어서도 압도적인 강자였고, 당연히 1학년 A반 내에는 그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해 리더 자리는 당연하게 락스카가 맡아 파견 임무를 무사히 끝마쳤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연도 또한 같은 펜타니엄의 직계가 비슷한 절차를 밟고 있었다.
별 출력만으로 시험용 월석을 깨트리지를 않나.
세계 침식자를 상대로 두 번이나 맞서지를 않나.
무려 삼무제 중 한 명인 마제 올스타드 스타린에게 일주일간 폐관 수련을 받지를 않나.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사건을 써 내려간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내린 괴물은 어린 시절부터 남들이 평생의 업적이라 할 것을 수도 없이 이루는 법.
그리고 그 산증인이 지금 여기에 있었다.
그렇기에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서리스에게로 향해 있었다.
직접 말하지 않아도 느낌상 알 수 있었다.
네가 리더 해라.
그런 감정들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역시, 이렇게 되나.’
아무리 서리스가 철면피라도 이런 시선을 받고 모른 척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사냥할 주인부터 정하고 움직일까 하는데, 괜찮을까?”
“수색부터 하도록 하죠. 박쥐를 날려 보낼게요.”
“……냄새로 찾아볼게.”
“임시 거처부터 만들지. 셀링, 호라이즌 따라와라. 근처 독초라도 일단 처리해 놓는 게 좋을 듯싶다.”
“그것도 임시방편일 테니 저는 일단 해독제를 만들게요.”
서리스가 입을 열고 나서야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재빠르게 수행하기 시작했다.
뭘 해야 하는지 이렇게 잘 알고 있는 녀석들이 굳이 왜 자기 말을 기다린 걸까.
조금 얼빠진 표정이었던 서리스는 곧 쓴웃음을 지었다.
진정한 리더는 구성원의 실수도 품고 가야 한다.
뭔가 잘못되어도 그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그런 책임감.
다들 그 부분을 서리스에게 맡긴 거겠지.
“인망 두터운 거면 좋은 거 아니냐?”
“너도 일이나 해. 수색 쪽 도와.”
“하하, 알긋다.”
옆에서 뺀질거리는 스타리즈까지 수색 쪽으로 보낸 서리스는 다시금 붉은 달을 힐끗 보았다.
대해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 * *
1학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네 명은 벨리키가 띄워놓은 관찰 마법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상황을 지켜 보고 있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벨리키는 움직이는 학생들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
하지만 이 시간은 어디까지나 최대 시간일 뿐.
만약 그 시간을 다 쓰기 전에 주인을 쓰러트린다면 파견에서 복귀해도 되었다.
물론 대해가 워낙 크기에 복귀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리긴 하겠지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오 일까지는 줄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 벨리키의 질문에 답한 것은 자룡서진이었다.
이번 세대는 황금 세대라 불릴 만큼 뛰어난 이가 많았다.
그렇다면 얼추 그 정도 시간 안에는 끝낼 수 있지 않을까가 자룡서진의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서리스 후배가 있으니까.”
서리스의 실력에 관심이 가는지 그녀는 화면을 주의 깊게 보며 말했다.
그렇게나 소문이 무성한 후배이니 그 정도 시간은 줄일 수 있을 거란 확신이었다.
“이틀이면 꽤 빠른 기록이겠네요. 락스카 단장님이 며칠이셨죠?”
“삼일.”
그 락스카도 최대로 줄인 기간이 삼일이었다.
대해의 난이도 상 쉬운 일은 아닌 것이다.
“둘 다 꽤나 얕보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러는 순간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윈터가 즐거운 듯 말해왔다.
이틀이나 줄였음에도 얕보고 있다는 말에 두 사람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오 일보다 더 빠를 거란 말씀이십니까?”
“혹시, 락스카 단장과 동급으로 보시는 건가요?”
자룡서진과 벨리키가 동시에 묻자 그녀는 코웃음 치고는 밀리오레를 돌아보았다.
“밀리오레, 네 생각은 어떻지?”
“그러네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1학년 A반 담당 교관인 그는 학생들과 만나는 횟수는 적을지언정 가장 많은 정보를 듣고 있었다.
단에서는 학생들 평가를 꾸준히 그에게 갱신해 주었고.
그 결과 그는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1학년 A반을 가장 잘 꿰뚫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 그의 대답이어서인지 자룡서진과 벨리키도 조용히 귀를 기울였고, 밀리오레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대답했다.
“삼일.”
“락스카 단장님만큼 줄어든다는 소립니까?”
자룡서진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하자 밀리오레는 또다시 웃을 뿐이었다.
그의 의미심장한 웃음이 무슨 의미인지 눈치챈 벨리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대해를 클리어하는 데까지 사흘이 걸릴 거란 말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자룡서진의 눈이 놀란 듯 크게 떠졌지만, 그 대답을 한 이가 누군지 알았기에 그녀의 말문이 막혔다.
밀리오레는 사람을 병기 취급하는 이상한 교관이지만 교관 중 가장 냉철한 평가를 하는 이로 유명했다.
그리고 그 분석은 대부분 옳았고, 그렇기에 그가 1학년 A반 담당 교관으로 뽑힌 것이다.
그 말인즉슨 그는 지금 진심으로 자기 담당 반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어디 한 번 지켜보거라.”
윈터조차도 부정하지 않자 자룡서진과 벨리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이 두 사람의 평가는 1학년 A반의 평균을 기준으로 말한 게 아니라 변수와도 같은 단 한 명 때문에 내려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펜타니엄 서리스.
그가 펜타니엄 락스카 이상이라고.
그것이 이 두 사람이 내린 평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