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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64화 (164/275)

164화

서리스는 짐 가방을 들고, 본관으로 향했다.

어제는 마굴 파견 준비로만 시간을 다 썼던 만큼 오늘 아침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이동 거리만 해도 삼일 정도였지.’

서리스는 꽤나 강행군이 될 거로 생각되는 일정임에도 어느 정도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도 대규모 세계 침식인 마굴에 직접 가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세계 침식 파견을 기대하고 있다니, 누가 봐도 미친놈 같긴 하지만.’

사람에게는 호기심이라는 게 있는 법이고, 자신이 마굴까지 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 감개무량하기도 했다.

그래도 세계 침식인 만큼 너무 가볍게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건데 말이다.

“소풍 가는 것 같아!”

그러는 와중에 자기보다 훨씬 이번 일정을 가볍게 생각하는 도로시가 옆에 있었기에 서리스는 마음이 좀 편해졌다.

“항상 그렇게만 있어다오.”

도로시는 한결같아서 좋았다.

“서리스 님, 이쪽이에요.”

“아이랑 님.”

그렇게 서리스와 일행이 교문을 지나쳤을 때 입구 쪽에 모인 이들이 보였다.

워너힐 아카데미 제복 차림의 그들은 전부 1학년 A반이었다.

대부분 익숙한 얼굴이긴 했지만, 그중에는 아직 말 한 번 못 섞어본 이들도 몇 명 있었다.

‘A반 애들은 워낙 찢어져서 다니니.’

얼굴만 알뿐인 녀석들이 더러 있었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면식 정도는 좀 터주는 게 좋겠지.

서리스는 일행과 함께 곧장 아이랑에게 다가갔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이바드라와 셀링이 모여 있었다.

“이바드라, 웬일로 네 쌍둥이를 안 데리고 다니냐?”

“쌍둥이? 그게 뭔 헛소리냐.”

“있잖아. 호라이즌 님이라고.”

“이 몸이 왜 그딴 녀석이랑 쌍둥이 취급을 받아야 하냐!”

단순한 녀석 같으니.

장난 좀 쳤더니 불같이 달려드는 이바드라였다.

“맞아요. 이바드라 님이 더 잘생겼습니다.”

“셀링이 맞는 말을 다 하는군.”

그런 와중에 셀링이 바로 이바드라의 불을 꺼트리며 그를 잘 달래주었다.

가면 갈수록 이바드라가 셀링에게 조련당하는 느낌이었지만, 서리스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그러는 순간 서리스는 자기 어깨 위에 턱 하니 올라오는 팔 하나를 쳐다봤다.

“요, 좋은 아침.”

“스타리즈, 넌 또 왜 이렇게 일찍 온 거냐?”

“내라고 맨날 지각할 수는 없다. 아이가.”

그래도 마굴 파견을 가는 날이라고, 늦지 않게 출석한 모양이었다.

뒤이어 발렌타인과 호라이즌까지 오게 되자 1학년 A반 정예 인원이 전부 다 모였다.

무려 일곱별만 4명인 초호화 멤버였다.

그러는 사이 학생 단장인 벨리키와 자룡서진이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출발할 시간이 다가온 듯하였다.

“인원 체크 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와있던 교관 밀리오레의 인원 체크를 마지막으로 출발 준비가 끝났다.

그런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발렌타인 님.”

서리스가 발렌타인을 돌아보자 그녀도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악스달 단장인 윈터가 아직 오지 않은 탓이었다.

“본녀를 찾았느냐?”

그러는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서리스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렸고, 거기에는 아니나 다를까,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를 윈터가 서 있었다.

서리스가 기척을 못 느낄 만큼 그녀의 은신술은 뛰어났다.

“음음, 두 사람 다 잘 지내는 걸 보니 보기 좋구나. 그래, 비녀는 전해줬느냐?”

“아, 여기 있습니다.”

그녀의 물음에 발렌타인이 머리를 묶어 꽂아 놓은 비녀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그걸 보며 만족스럽게 웃고는 자룡서진에게 다가갔다.

“윈터 님!”

“서진아 출발 하자구나.”

자룡서진이 뒤늦게 화색을 보이자 윈터가 미소로 답했다.

“독후님이다.”

“처음 봐.”

그러는 사이 아이들 쪽에서 윈터를 동경 섞인 눈으로 보는 이들이 나타났다.

하긴, 그녀는 월하십인 중 한 사람이다.

비록 천하오장성과 천상사성에는 밀릴지라도 손에 꼽히는 강자라는 건 변함없었다.

하지만 그런 동경 섞인 시선을 받으면서도 윈터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당당하게 행동했다.

위에서 군림하는 자다운 모습이었다.

“이번 일정의 대표를 맡게 된 불터렉스 윈터다. 마굴 앞까지는 큰 문제 없이 도착할 테니, 일반 학생들은 마굴에서의 활동에 대비해 힘을 잘 비축해 놓도록 하거라.”

그러면서 그녀가 밀리오레 쪽에 눈짓하자 그는 경례 자세를 취하곤 출발을 알렸다.

그리고 윈터는 조금 전 힘을 비축해 놓으라는 말이 무색하게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뒷모습을 아이들이 허망하게 보고 있자 교관 밀리오레가 호통쳤다.

“어서 윈터 님을 쫓아가셔야죠! 다들 뭐 하십니까?”

왜인지 모르게 청랑단 시절이 떠오르는 서리스였다.

세계 침식을 향해 가는 과정까지도 전부 실전이라는 말.

그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서리스는 서발광과 도로시를 돌아보았다.

이미 두 사람은 몸을 다 푼 듯 바닥을 신발로 슥슥 비비고 있었다.

청랑단에서 오래 달리는 법은 죽도록 익혔었기 때문에 둘 다 당황한 기색은 없어 보였다.

반면 오래 달리는 요령을 모르는 놈들은 마굴에 도착할 때쯤이면 녹초가 되어있겠지.

‘아무리 1학년이라고 해도,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A반으로 분류된 애들이니.’

사흘 동안 잘 버티리라고 생각한 채 서리스는 바닥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 * *

예상했던 대로 윈터는 꼬박 사흘 동안 쉬지도 않고 달렸다.

아무리 두 달간의 훈련으로 다져져 있다곤 해도 초장거리 달리기에는 나름의 요령도 필요한 법.

그 결과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뒤처지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잘 달리는 사람은 여전히 잘 달렸다.

윈터와 학생 단장 둘은 물론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쳐지지 않고 달리는 서리스처럼 말이다.

“서리스 후배는 생각 이상으로 쌩쌩하군!”

“체력이 특기라서요.”

자룡서진은 자신의 옆에서 단 한 번도 뒤처지지 않고, 쭉 달려온 서리스를 보고 대견하다는 듯 칭찬했다.

금강잔월로 다져진 체력은 고작 3일을 열심히 달린다 해서 떨어질 리가 없었다.

참고로 도로시와 서발광은 물론이고 다른 일곱별들도 별문제 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그걸 보니 두 달간의 훈련을 통해 전투 실력만이 아니라 기본 체력 또한 많이 다져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계속 달리는 건, 자신의 체력 한계를 파악하게 하기 위함입니까?”

“눈치가 좋은걸? 맞아. 서리스 후배 말대로 이번 달리기는 두 달간의 훈련을 확실하게 체감시켜 주기 위함이지.”

동시에 자신의 한계점을 스스로 깨달아 페이스 조절하는 법을 알게 한다.

무식하지만 단순 명쾌한 방식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마굴 진입 전에 알아 두면 더 유연하게 체력을 분배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러면 가기 전에 진이 빠지는 사람도 나올 텐데요.”

“서리스 후배는 워너힐 학생이면서도 우리 아카데미를 얕보는 모양이군.”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서리스의 의견을 부정했다.

“워너힐 아카데미, 그것도 A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건 동년배 최고의 15인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그러면서 자룡서진은 달리는 와중에 시선을 뒤로 옮겼다.

“이 정도로 쓰러질 일도 없을뿐더러 어느 시점부터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달리고 있어.”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어느 순간부터 다들 순수 체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각자가 가진 능력을 이용해 달리고 있었다.

“오히려 순수 체력으로 계속 따라오고 있는 서리스 후배가 특이한 케이스인 거지.”

그랬었나.

역시 사람은 뭐든 자기 기준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전방에서 묘한 흐름이 느껴지는군.”

그러는 순간 자룡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의 눈앞에서 급격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한 공간.

“이건.”

“급속 세계 침식이다.”

미개척 지역에서 종종 발생하는 급속 세계 침식은 순식간에 주위 경치를 집어삼켜 갔다.

그걸 본 서리스가 악스판시온을 뽑으려 하자 자룡서진이 그를 제지했다.

“자룡서진 님?”

“아까 윈터 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느냐. 우리 단장급이 할 일은 너희들이 온전한 힘을 가진 채 마굴에 도착하게 하는 거라고.”

그야 그랬기는 했다만.

서리스가 더 말하기도 전에 자룡서진은 자주색 보석으로 만들어진 듯한 검을 뽑았다.

“벨리키!”

그리고 사자후와 같은 목소리로 그녀를 부르며 앞으로 쇄도했다. 그의 옆에는 어느새 앞으로 붙은 벨리키가 있었다.

“후배들이 지쳐 있다.”

“빨리 끝내도록 하죠.”

이미 수없이 많은 사선을 함께 넘어 본 듯, 둘은 그렇게 말하고는 동시에 세계 침식 안으로 발을 들였다.

콰앙!

두 사람이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급속 세계 침식의 약점은 너무 빠른 속도로 퍼지다 보니 그 공간이 발생 초기에는 내부 구조가 극도로 단순화되어 있다는 거였다.

이를 잘 활용하면 입장과 동시에 그곳의 주인과 조우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들어서자마자 빠르게 주인을 찾아 나선 듯했다.

뒤늦게 온 1학년생들은 갑자기 생겨난 급속 세계 침식에 놀란 눈치였다.

그 순간 나무 사이에서 치솟은 자주색 수정이 흩날렸다.

하늘을 가득 메운 수정은 마치 각자의 의지를 가지라도 한 양 꽃가루처럼 휘날렸다.

자룡가에서 내려오는 가문비기 천본자화(千夲紫華)가 분명했다.

동시에 그 사이로 붉은색 낙뢰가 떨어졌다.

위력은 같지 않으나 스타린의 마법을 많이 닮아 있는 번개는 벨리키의 것이었다.

그러는 순간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은색의 무언가가 보였다.

길쭉한 뱀의 형태를 한 놈은 비늘에서 돋아난 수십 개의 날개를 최악 하니 펼쳤다.

은익사(銀翼巳)라는 이름의 세계 침식의 주인이었다.

‘7성급 주인.’

한눈에 은익사의 별 수준을 깨달은 서리스의 눈이 커졌다.

지금의 자신이 검은별 없이는 혼자서 절대 못 쓰러트릴 상대였기 때문이다.

미개척 지역답게 다른 곳에서는 재앙 취급받을 주인들이 급속 세계 침식에서 태어나 버렸다.

“걱정 말거라.”

그러는 사이 가장 앞서갔던 윈터가 세계 침식 방향을 보며 다가왔다.

“서리스, 네가 2학년 정도가 되었으면 또 모를까.”

그녀가 학교를 대표하는 두 인재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지금이라면 아무리 너라도 저 두 사람을 이기기 힘들 터이니.”

이어진 윈터의 말과 함께 자수정으로 만들어진 폭풍을 타고 자룡서진이 하늘로 솟구쳤다.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에 자수정이 은익사의 비늘을 강렬하게 두드렸다.

“끼이이이익!”

덕분에 열이 단단히 오른 은익사가 소리를 내지르며 그 몸을 동그랗게 만 채 난동을 피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룡서진은 계속해서 놈을 몰아붙였고, 그 순간 붉은 번개가 다시 한번 치솟았다.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한 듯하지만 서리스는 금강잔월을 통해 강화된 안력으로 그걸 포착했다.

붉은 번개의 중심에는 벨리키가 있었고.

그는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어느새 은익사의 머리 위에 도착해 있었다.

은익사가 그 존재를 뒤늦게라도 눈치챘지만, 벨리키는 이미 붉은 번개가 담긴 주먹으로 놈의 머리를 내려치고 있었다.

콰앙!

아래쪽으로 머리가 급격히 꺾인 은익사가 추락했다.

그 틈을 타 하늘 위에서 흩날리던 자수정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은익사를 집어삼켜 갔다.

은익사를 봉인하듯 감싼 자수정 폭풍 안에서는 놈의 비명이 계속 들려왔다.

이내 그 옅은 비명마저 사라지고, 사방에 내려앉은 고요를 깨트리며 두 발소리가 점차 이쪽으로 다가왔다.

“벨리키, 수고했어.”

“서진이야 말로요.”

1학년들 앞에서 자신들의 무위를 드러낸 둘은 뿌듯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상처 하나 없는 두 명을 멍하니 보는 학생들과 눈이 마주친 둘은 별거 아니었다는 양 웃어 보였다.

“다시 출발하자. 후배들.”

“다시 달릴 준비들 하시죠.”

여유가 느껴지는 그들의 모습은.

1학년생들에게 학생 단장과 그들의 격차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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