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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63화 (163/275)

163화

마굴 파견 준비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필요하다.

제일 먼저 식량과 물.

사람은 밥과 물을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므로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인 항목이었다.

이번 파견 임무는 개인의 경험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식량 조달도 학생 개인에게 일정량의 돈을 지급한 뒤, 스스로 구해오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상황과 부적절한 식량을 구해 온다면 감점과 함께 무엇이 문제 되는지를 설명해 주고, 제대로 된 전투식량 고르는 법을 익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고를 수 있는 식량은 불과 나흘 치.’

그럼 남은 삼일은 어떻게 하느냐.

‘답은 간단하지. 마수를 식량으로 활용하는 것.’

마수는 분명 규격 외의 존재라곤 하나 기본 틀은 생명체이다.

세계 침식 속에서 극한 상황에 놓여 먹을 것이 전부 떨어졌을 때의 상황을 미리 연습해두려는 목적이겠지.

아무리 마수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도 세계 침식 속에서 사흘씩이나 굶고 있다 보면, 싫어도 자연스럽게 먹게 된다.

‘못 먹을 정도가 아니기도 하고.’

일이 좀 꼬여서 끝없는 초롱에 고립된 경험이 있는 서리스는 마수를 먹는 것에 큰 거부감은 없었다.

생존율과 생환율을 올릴 수만 있다면 그는 뭐든지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부류였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이들은 모두 한 명, 한 명이 세계 침식에 대항할 소중한 인재들이다.

그런 인재들이 조금이라도 세계 침식에서 생환할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교육 커리큘럼을 짠 거겠지.

‘실전 경험도 되고, 생존 방법도 몸으로 직접 체득하고, 괜찮네.’

그리 생각하며 서리스는 근처 음식점을 찾았다.

나흘 치 식량을 구해오는 것은 전부 개인 과제인 만큼 그는 모두와 따로 떨어져 움직이고 있었다.

‘구매할 건, 건식 계열 위주겠지만.’

대해는 기본적으로 바닷물 속이다.

비록 세계 침식이 되어 있다곤 하나 습기가 가득한 공간이라는 소리였다.

‘식량으로 짐이 무거워지면 그것도 감점 요인이지.’

나흘 치나 되는 식량이다.

가방이 무거워지면 움직임도 둔해지는 법.

게다가 지급된 돈도 그렇게 썩 여유롭지 않았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식료품점을 돌며 여러 음식 재료를 구매했다.

여윳돈이 없고, 식량의 부피 및 무게도 조절해야 한다면 답은 간단하다.

‘직접 만들면 그만이지.’

끝없는 초롱에서 몇 년을 구른 서리스가 전투식량 하나 못 만들까 봐.

“주인장, 주방을 좀 쓰고 싶은데, 총금액의 10 프로를 더 내지. 어떤가?”

“그러지.”

자연스럽게 주방까지 빌린 서리스는 눈앞에 놓인 재료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열량은 최고로 하되 부피는 작게.

맛은 보장 못 하지만, 생존에는 최적화된 요리법을 서리스는 잘 알고 있었다.

딱 하나. 이것만 있으면 된다.

서리스는 손에 쥔 검은색 병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서리스의 요리 교실 시작이다.

* * *

서리스가 한창 전투식량 만들기에 열을 올리는 와중.

학생들은 하나둘 자신들이 사 온 식량을 두 학생 단장에게 보여주며 검사를 맡고 있었다.

“육포만 사 와서 어떻게 해요. 단백질만 챙길 생각입니까?”

“육포, 가볍고 맛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은 비싸고, 열량과 포만감은 떨어지죠. 이 양이면 3일이면 다 먹어요.”

그중에는 별생각 없이 육포만 덜렁 사 오는 이도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뇌성 호라이즌이었다.

“너는 바보냐? 이 몸처럼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이바드라, 당신도 별반 다를 바 없어요. 이 양을 대체 어떻게 들고 가려고 가져온 건가요.”

그리고 바구니에 건조 식량이란 식량은 돈이 되는 대로 전부 사 온 사람도 있었다.

부피는 크고, 먹는다 한들 배는 차지 않을 것 같은 구성.

두 사람 다 감점이었다.

하지만 저 두 사람이 딱히 이상한 건 아니었다.

우습게도 귀족 중에는 대대로 이런 이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계 침식에서 구르는 이들이라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귀족이었다.

남들이 해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렇기에 음식 같은 분야에서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실수를 종종 하고는 했다.

‘직계라 해서 평생 자기 영지에만 묶여 있는 건 아닌데 말이죠.’

벨리키는 그런 이들을 훈계하고 제대로 된 조언을 해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귀족인 만큼 교육이 되어 있는 그들은 상급자의 조언은 금방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종종 자존심 센 이들 몇 명이 반발하기도 하나 그건 학생 단장이라는 이름으로 찍어누르면 그만이었다.

“이건 내단 같은 건가?”

“불터렉스에서 내려오는 조합법으로 만든 보존식입니다. 싼 가격에 부피도 작고, 열량은 높죠.”

그러는가 하면 훌륭한 답을 가져오는 이도 있었다.

악스달 학생 단장인 자룡서진은 그녀가 가져온 여덟 개의 환단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종종 윈터 님께서 드시는 게 혹시 이거였나?”

“네, 어렵지 않은 조합법인데. 알려 드릴까요? 딱히 비밀도 아닙니다.”

“아, 부탁한다!”

발렌타인의 말에 자룡서진은 기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확실히 발렌타인이 말해준 대로라면 가지고 다니는 것도 유용하고, 먹기에도 쉬울 듯싶었다.

‘이번에는 발렌타인의 점수가 제일 높겠네요.’

워너힐 아카데미의 점수 제도는 다음 학기에서의 반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재능이 가득한 A반은 반이 바뀔 일이 적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높은 점수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점수가 가장 좋은 이에게는 워너힐 아카데미 측에서 직접 보고를 열어 명장이 만든 보물을 수여하기에 학생들도 높은 점수를 얻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는 순간 그의 앞으로 한 사람이 걸어왔다.

그는 다름 아닌 서리스.

스타린과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함께하고, 끝내 그가 아카데미를 떠난 원인을 제공한 거로 의심되는 자.

남들이 보기에는 좀생이 같은 이유였지만 그를 미워하고 있는 벨리키는 두 눈에 힘을 주었다.

만약 허튼 걸 가져왔다면 된통 혼내주겠다고 생각한 채 말이다.

“전투식량은 구해오셨나요.”

“예, 여기 있습니다.”

그런 그가 벨리키의 앞에 내민 것은 콩알만 한 검은색 찰흙 네 개였다.

그걸 보고 벨리키는 고개를 기울였다.

‘뭐지, 이게?’

발렌타인은 대대로 내려오는 조합법을 사용해 하루에 두 개만 섭취하면 되는 환단 여덟 개를 만들어 왔었다.

혹시 이건 펜타니엄에서 내려오는 조합법일까?

‘하지만 개수가.’

고작해야 네 개.

가뜩이나 세계 침식 내에서 장시간 머물러야 하는데 콩알만 한 걸 하루에 하나만 먹고, 식사를 해결하겠다니.

솔직히 미심쩍기 그지없었다.

“서리스 학생, 이게 뭔지 말해줄 수 있을까요?”

결국, 해답을 찾지 못한 벨리키가 먼저 물음을 던졌다.

“제 나흘 치 식량입니다만?”

“그거야 당연히 그렇겠지만요.”

“드셔 보시겠습니까? 여유분이 있거든요.”

그야 이런 작은 걸 가져왔으니 여유분이 남았겠지.

“깨물지 마시고, 물과 함께 삼키면 됩니다.”

“아, 네.”

벨리키는 미심쩍어하면서도 그가 건네는 물과 콩알을 하나 받았다.

만약 제대로 된 게 아니라면 정말로 크게 혼내 줄 생각이다.

그런 결심을 한 채 그는 입안에 콩알을 넣은 뒤 물로 꿀떡하고 한 번에 삼켰다.

“다 먹었습니다만?”

당연히 이거론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가 서리스를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읍?”

그는 갑자기 뱃속이 무언가로 가득 차는 듯한 느낌에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배를 가득 채운 포만감 때문에 한순간 트림이 나올 뻔했기 때문이다.

“뭐, 뭔가요 이거?”

그가 당황한 눈빛을 보내자 서리스는 미소와 함께 콩알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장귀게의 피를 사용해 만든 압축형 전투식량입니다.”

“예? 장, 장귀게요? 그거, 마수잖아요.”

“네, 해안 쪽 세계 침식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녀석이죠.”

당황한 벨리키의 모습에도 서리스는 신경 쓰지 않고, 설명을 계속했다.

“장귀게의 피는 검은색인데 녀석의 피는 공기와 만나면 기이할 정도로 응집성이 강해집니다. 그걸 조리할 재료 겉에 얇게 바른 뒤 계속 굴려 나가면 그런 크기까지 줄어들죠.”

“하지만 위에 들어가자마자.”

“산에 약하거든요. 위액에 녹아서 안에 들어있던 식량이 터져 나온 거죠.”

“소화에는 문제가 없는 건가요?”

“물론 주재료는 소화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도록 거의 죽과 같은 형태입니다. 대신 장귀게 말고도 마수 재료를 몇 개 쓴 덕분에 영양은 확실하죠. 한 알로 하루 정도는 충분히 버팁니다.”

그 말대로 벨리키는 상당한 포만감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식량을 사 오라고 했더니 마수를 이용해 직접 만들어 올 줄이야.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던 벨리키의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서리스 학생, 그 재료들에 관해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실 수 없을까요?”

그 질문을 듣자마자 서리스는 빙그레 웃음 지었다.

“그야 물론이죠.”

그는 미소와 함께 곧이어 마수 재료에 관한 여러 설명을 벨리키에게 해주었다.

그때마다 벨리키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사를 내뱉다가 이내 수첩까지 꺼내 기록하기 시작했다.

세계 침식에 관심이 많은 그에게 서리스의 정보는 그야말로 신세계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모르겠지만 서리스가 말하는 정보는 실제로 십 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려질 정보들이었다.

세계 침식자의 전쟁이 심화하고 세계 침식을 막을 전력이 줄었던 만큼 여기저기서 마수가 문제를 터트렸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몇 년간 마수와 관련된 정보가 극도로 많이 쏟아져 나왔고, 이러한 조리법들도 끝없이 개량된 것이었다.

즉, 미래에는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많이 알려진 정보들이나 현재로서는 천금을 주더라도 쉽게 구하지 못할 귀중한 내용인 것이다.

“와, 와, 정말, 정말 대단하네요. 서리스 학생, 대체 이런 정보를 어디서 얻은 건가요! 존경스러울 정도예요.”

어느새 자리까지 깔고 서리스와 이야기를 나누던 벨리키는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고 있었다.

서리스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별거 아니라는 양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끝없는 초롱은 다른 곳보다 마수가 훨씬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뿐입니다.”

“끝없는 초롱,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최흉이었죠. 이런 고급 정보의 출처가 그곳이라니……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되면 펜타니엄에 방문해도 괜찮을까요?”

“어렵지 않죠. 오신다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진짜입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벨리키는 정말 순수한 미소를 그리며 기뻐했다.

그러다가 문뜩 지금 상황이 무언가 이상해졌음을 깨달았다.

‘어, 어라, 이게 아니지 않았나요?’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스타린 때문에 그를 미워하고 있던 그였다.

원래대로라면 틈을 잡아 호통을 칠 목적이었는데 자신의 관심이 쏠릴 만큼 완벽한 해답을 가져와 버린 통에 그것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당황한 그를 보고 서리스가 의문스럽게 물은 순간 벨리키는 헛기침하며 정신을 차렸다.

“그, 흠, 그게 말이죠.”

“아, 예전에 펜타니엄 서재에서 마수에 관한 괜찮은 책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못 보던 정보도 꽤 있었는데, 나중에 한 번 빌려드릴까요?”

“좋습니다! 꼭 좀 부탁드릴게요!”

서리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벨리키는 넙죽 절까지 할 기세로 외쳤다.

그런 그를 보며 서리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벨리키는 그 미소를 보고 나서야 자신이 그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스타린 님께서 일주일이나 시간을 들여 지도해줄 가치가 있는 사람.

‘내 오해였어요.’

이런 좋은 후배를 미워했었다니.

스스로를 한심하게 여기며 그는 서리스에게 품었던 나쁜 감정을 모두 털어내었다.

“아, 저희 수업 중이었죠. 이 이야기는 나중에 계속하죠!”

그러는 순간 식량 검사 중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그는 서리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학생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리스는 자신의 옆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니 대체 뭐했노? 그 잠깐 사이에 벨리키 선배를 어떻게 구워삶았길래.”

인기척의 주인은 스타리즈였다.

벨리키가 그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던 그다.

그런데 웬걸 어느샌가 마치 죽마고우처럼 친해져 대화하는 둘을 보고 황당함을 느끼며 다가온 것이다.

“그냥 좋아하는 이야기에 장단 맞춰줬을 뿐이야.”

상급자 비위 맞추기.

소드란에서 구른 정치 경력을 무시해서 쓰나.

학생 단장으로서 이제야 정치판에 발 조금 올려본 정도론 자신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한다.

“그럼 난 이만 가본다.”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는 양 서리스가 걸어가자 스타리즈는 묘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스타리즈, 너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때, 어느새 다가온 서발광이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자 그는 고개를 기울였다.

“서리스, 겉으로는 저런 모습이어도 말로 사람 몇 명은 해치웠으니까.”

마치 경험해본 적이 있다는 듯 해탈한 미소를 짓는 그를 보고 스타리즈는 어이없이 웃어야 했다.

점마 진짜 골 때린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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