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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60화 (160/275)

160화

만둣집으로 향하며 서리스는 발렌타인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예전 불터렉스 때의 일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독왕은 좀 무서웠지.’

어째 선지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그를 떠올린 서리스는 살짝 소름이 돋아 팔을 문질렀다.

“왜 그러십니까?”

“오한이 살짝 들어서요.”

“여름인데, 혹시 감기 증상이 아닌가요.”

“아뇨. 아마 아닐 겁니다.”

발렌타인이 걱정스레 묻자 서리스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금강잔월이 있는 이상 그가 감기에 걸릴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서리스 님, 그 이야기 들으셨나요?”

“어떤 이야기죠?”

“세계 침식자 습격 이후 수업 형식이 바뀌게 될 거라고 합니다.”

이건 서리스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이자 그녀는 간단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워너힐 아카데미를 포함해서 최근 세계 침식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서리스는 세계 침식자와의 전쟁을 떠올렸다.

거기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던가.

천상사성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아래에 자리한 천하오장성과 월하십인은 전쟁 동안 수없이 바뀌었었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에 서리스는 탐탁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 또한 지금은 세계 침식자였기 때문이었다.

‘가능하면 막고 싶다.’

과거로 귀환한 이상 세계를 위협하는 대사건이 터지는 것을 그냥 두고 보고 싶지는 않았다.

문제는 자기 코가 석 자라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천하오장성은커녕 월하십인에도 오르지 못한 자신이기에 세계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이 제로에 가까웠다.

‘아마 앞으로 2년 뒤면…….’

한 사건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쟁에 서리스는 주먹을 쥐었다.

그 안에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터무니없이 높아 보였던 7성이라는 경지가 지금은 한참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여기까지 와서도 안달이 날줄이야.’

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지 서리스는 공감할 수 있었다.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조바심내지 말자.

비록 막지는 못할지언정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라도 나서봐야 하지 않겠는가.

‘망아꾼에게 던져 놓은 씨앗도 있고.’

습격 당시 망아꾼의 분신에게 던져 놓은 미끼를 떠올리며 서리스는 발렌타인을 돌아보았다.

“수업 형식이 어떻게 바뀌게 되나요?”

“우선 곧 있을 마굴 파견은 알고 계시죠?”

그 말을 듣자마자 서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마굴이란 미개척 지역 전역에 존재하는 10개의 대규모 세계 침식을 말한다.

최흉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거나 위험도가 낮으나.

크고 작은 여러 세계 침식들이 얽히고설킨 탓에 처리하지 못하고 방치된 대규모 세계 침식이었다.

‘분명 끝없는 초롱처럼 여러 주인이 있다고 했었지.’

마굴은 끝없는 초롱의 하위 호환 격인 세계 침식이라 봐도 무방했다.

“파견이라 하면…… 정기적인 마굴 청소가 주 임무였죠?”

“네, 1학년 A반은 2개의 단 훈련을 끝마치면 교관과 함께 가도록 일정이 잡혀있죠.”

마굴은 그 크기가 너무 큰 만큼 처리하려면 대규모 인원 파견이 필요하다.

그러나 언제나 골칫거리인 최흉이 당장에는 더 문제였기에 그 정도의 인원 파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마굴에는 이렇듯 정기적으로 사람을 파견해 그 규모가 더 커지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파견을 취소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만.”

세계 침식자 탓에 혼란스러워진 만큼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는 의견도 나왔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워너힐 아카데미였다.

세계 침식에 맞서기 위한 영웅들을 길러내는 곳.

그런 곳에서 세계 침식자의 습격이 두렵다고 해서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많이 쌓아야 할 전투 경험의 장을 회피한다?

그거야말로 완벽한 본말전도였다.

세계 침식자들 때문에 영웅을 길러내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하지만 워너힐 아카데미에서는 수업을 강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발렌타인도 서리스의 생각과 같은 답을 내주었다.

“이번 파견지가 어디였죠?”

“대해입니다.”

대해인가.

미개척 지역 바다에서 발생한 세계 침식으로 마법사가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장소였다.

조금 골치 아픈 곳으로 가게 된 모양이다.

“파견지가 대해인 만큼 원래라면 로렐라이 쪽 마법사 한 분을 모셔서 같이 움직일 예정이었습니다만.”

“뭔가 바뀌었군요.”

“네, 세계 침식자들이 더 기승부리는 만큼 추가 인원이 배정될 예정이라 합니다. 듣기로는 학생 단장들과 단장분도 한 분 오신다고 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높은 수준의 이들이 명단에 들어가 있었다.

“일종에 호위 인력인가요.”

“비슷하다고 봐도 될 겁니다.”

대해를 나아가는 건 파견된 학생들의 몫이지만, 아카데미 측에서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A반은 워너힐 아카데미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할 인재들이었다.

실전 경험은 중요하게 생각하되 그들을 그냥 잃을 생각은 없다는 뜻이겠지.

‘겸사겸사 대가문들도 마음을 좀 놓을 수 있을 테고.’

언젠가 최흉과 맞서야 하는 직계들이긴 하나 그 이전에 소중한 자식들이다.

대가문 가주 중에서도 부모인 이상 자식의 정을 뗄 수 없는 이들도 다수 있을 테니.

그들로서도 가능한 자식들이 살아 있기를 바랄 것이기에 워너힐 아카데미에서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괜찮네요. 학생 단장과 단장분들이 와주신다면 저희도 배울 게 많을 거고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가 배정될지는 몰라도 그들이 마냥 호위만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1학년 학생들에게도 좋은 이야기였다.

“거기에 다음 단 수업부터는 학생 단장분들이 직접 수업에 참여해 학생들을 가르칠 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것도 관심이 가네요.”

학생 단장은 워너힐 아카데미 학생 중 가장 뛰어난 이들을 가리킨다.

한 학년 위인 엑스널만 해도 그 정도였다.

학생 단장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교관들은 아쉬워하겠지만.’

워너힐 아카데미 졸업생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학생 단장들은 미래의 단장 후보들이자 진짜배기 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니까.

그들은 전부 일곱별 출신의 인물들이기도 했다.

‘이번 학년의 학생 단장들은 누가 되려나.’

황금 세대 취급을 받을 만큼 워낙 뛰어난 이들이 많았기에 서리스는 살짝 궁금해졌다.

그래도 로렐라이 쪽 학생 단장 한 명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타리즈겠지.’

그라면 반드시 학생 단장 자리에 오르리라.

남은 단은 누가 뽑힐지 서리스도 짐작할 수 없었다.

‘조만간 내가 어느 단으로 들어가야 할지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던 서리스의 머릿속으로 한 인물이 번뜩 떠올랐다.

그는 다름 아닌 칼릭스였다.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인물이자 당대의 가장 뛰어난 이가 맡는다는 발리움의 단장.

‘학생 단장들이 온다면.’

혹시 이번에 칼릭스가 오게 되는 걸까.

그에게 당한 것이 있는 만큼 갚아줄 생각이었던 서리스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로 돌아온 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참 오래 악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는 다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생각 이상으로 발렌타인이 아는 게 많았기에 서리스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자 그녀는 옅게 웃음 지었다.

“작은 할머님께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발렌타인의 작은 할머니가 악스달 단장인 윈터였지.

아무래도 두 사람은 꽤나 친하게 지내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발렌타인은 윈터의 이야기를 하며 서리스의 눈치를 슬쩍슬쩍 살폈다.

무언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도 있는 걸까.

하지만 말하기를 고민하는듯하였기에 서리스는 굳이 먼저 물어보지 않고, 그냥 저번에 부탁하기로 한 일을 언급하기로 했다.

“발렌타인 님, 그때 제가 윈터 님께 드릴 답례품 고르는 걸 도와달라고 했었는데, 혹시 기억나시나요?”

“아, 네, 기억하고 있어요!”

어쩐 일인지 발렌타인은 화색을 보이며 반응했다.

서리스는 떨떠름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조심히 말했다.

“혹시 식사 후에, 고르는 걸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윈터가 무얼 좋아할지는 서리스보다 발렌타인이 더 잘 알 테니까 말이다.

그 말을 듣고 발렌타인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거였던 걸까 하고 서리스는 생각했다.

“아, 다 왔네요. 식사부터 하시죠.”

때마침 만둣집에 도착했기 때문에 서리스는 일단 밥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 * *

식사하고, 발렌타인에게 부탁했던 대로 윈터에게 줄 답례품을 고른 서리스는 꽤 시간이 남자 곧장 악스달로 향했다.

윈터에게 이 선물을 바로 전하기 위함이었다.

발렌타인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할 일이 있었는지 도중에 헤어졌다.

‘혹시나 자리 비우셨으면 책상 위에 두고 와야겠다.’

웬만하면 직접 대면해 감사 인사와 함께 드리고 싶긴 하지만, 시간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지.

참고로 고른 선물은 40도짜리 술이었다.

그녀가 종종 잠들기 전에 한 잔씩 마시는 고급술이라고 하니 분명 만족하리라.

그렇게 서리스가 발걸음을 옮기던 중, 그는 익숙한 얼굴과 마주했다.

그는 다름 아닌 엑스널이었다.

“서리스.”

왜 보자마자 인상부터 찡그릴까?

그와는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엑스널은 아닌 모양이었다.

“엑스널 선배님, 저희는 생사를 함께한 사이인데 그런 표정이라니…… 너무하네요.”

“그전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우리가 썩 좋은 사이는 아니지 않을까?”

이쪽도 악연이라면 악연이지.

서리스가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거리자 그는 혀를 찼다.

그러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서리스를 돌아보았다.

“학생 단장들이 직접 1학년을 가르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이야?”

“예,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조금 전에 발렌타인에게 듣고 온 이야기이기에 그리 대답하자 엑스널은 무언가 고민하듯 생각에 잠겼다.

“너한테 딱히 조언해주고 싶지 않긴 한데.”

“그럼 해주지 마시죠.”

“기껏 내 쪽이 좋게 대해주고 있는데, 그게 무슨 태도야?”

“앞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많길래요. 그래서요? 얘기 계속하시죠?”

서리스와는 늘 이렇게 지내왔던 만큼 이제는 이런 게 익숙해진 듯한 엑스널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로렐라이 학생 단장은 조심하도록 해.”

“그쪽을 제가 말입니까?”

“그래, 내가 해줄 충고는 여기까지. 나머지는 네가 직접 알아봐봐.”

“왜 그러십니까? 기왕 말하는 거 이유까지 다 말해주시지. 좀생이처럼 굴지 마십쇼.”

“시끄러워. 알고 싶으면 정중하게 부탁하던가.”

아웅다웅하던 두 사람의 대화는 엑스널이 먼저 떠나며 끝이 났다.

이렇게 지내고 있긴 하지만 서리스는 엑스널과 사이가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첫 만남은 좀 그랬어도.’

미운 정도 정이라지 않는가.

몇 달간 그와 얽혔던 만큼 서리스는 엑스널이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결국 한 번 넘어진 사람일 뿐이었으니까.

‘무엇보다 피해 당사자가…….’

서리스는 엑스널이 가자마자 뒤따라 들려온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알리즈가 뛰어오고 있었고, 그는 서리스를 보자마자 반가운 듯 환한 표정을 지었다.

“서리스! 악스달에는 어쩐 일이야?”

“독후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번 일의 답례를 좀 하려고요.”

“아, 그렇구나. 혹시 엑스널 봤어?”

그 말을 듣자마자 서리스는 뒤를 가리켜 보였다.

“조금 전에 이쪽으로 갔습니다만.”

“정말? 아, 진짜…… 잠깐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또 혼자 먼저 가기는.”

알리즈는 살짝 투덜거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엑스널과 알리즈는 이제 예전에 관계가 아니었다.

이렇듯 당사자끼리 해결했기에 서리스는 더 이상 엑스널에게 악감정을 품지 않기로 했다.

간접적으로 본 피해는 있어도 진짜 피해를 본 이는 알리즈였으니까.

그가 더 이상 그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면 서리스도 엑스널과의 관계를 망가트릴 생각이 없었다.

“미안, 그럼 먼저 가볼게!”

엑스널을 뒤따라가는 알리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리스는 짧게 웃었다.

알리즈는 알고 있었을까? 원래대로였다면 그가 엑스널은 물론이고 2학년 전원을 살해할 예정이었다는 걸.

참 많이 바뀌었구나.

그런 생각을 품은 채 서리스는 악스달 단장실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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