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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59화 (159/275)

159화

콰과과광!

휘둘러진 그림자 대검이 일으킨 폭풍 속.

그림자 대검 안에 잠들어 있던 악스판시온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서리스가 계획했던 대로 락스카의 그림자 세계마저 뚫고 도달한 흑월영도 속 악스판시온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락스카의 내부 별을 모조리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 탐욕스러움은 보는 서리스조차 질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건 그가 원하던 바이기도 했다.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한 것이다.

악스판시온이 내부 별을 삼켜 버린 이상 락스카는 별이 없는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펜타니엄의 별을 다시 불러들이면 그 자리를 금방 메꿀 수 있겠지만.

‘내가 그걸 그냥 두고 볼까 봐?’

락스카의 검술에 당한 몸이 삐걱거렸지만, 상대는 별도 없는 상태다.

그 증거로 락스카가 쥐고 있던 그림자 검이 파편처럼 깨져 나가며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평온하던 락스카의 눈이 처음으로 살짝 커진 것 같았다.

‘내가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

서리스는 악스판시온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다시금 별을 끌어 올렸다.

삐걱거리는 육체에 강제로 활력을 불어넣음과 함께 서리스의 발이 바닥을 쿠웅 내려찍었다.

그 전 동작을 강제로 멈춘 만큼 온몸에 부하가 왔지만, 서리스는 그걸 감내해냈다.

모든 것을 다 쏟아 만든 아주 짧은 기회.

그렇기에 서리스는 가장 빠르고, 가장 쉬운 기술을 꺼내 들었다.

과거로 돌아온 첫날.

자신이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가장 간단한 그 비기를.

금강잔월(金强虥狘)

박살(撲殺)

벼락같은 참격이 내려쳐 졌다.

마치, 별을 다루지 못했기에 별을 지닌 이들을 동경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울분을 토해내듯.

위압적이고 패도적인 그 참격은 락스카를 분쇄해 버릴 듯하였다.

스륵-

그런데 그 순간, 락스카의 몸이 마치 춤을 추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서리스는 넋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내부 별마저 사라진 극한의 상황.

흑월영도에 이어진 박살은 서리스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연계기였다.

뇌가 내린 동작 명령이 그 부위에 닿기도 전에 조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고 봐도 좋을 정도였는데.

락스카는 아주 조금의 얼굴 변화만 있었을 뿐, 그것을 아무런 피해도 없이 회피했다.

그것도 별이 없는 일반인의 몸으로 말이다.

피잇.

그리고 그가 지금 일반인이라는 증거인 듯, 박살의 여파에 그의 볼에 얕은 상처 하나가 생겨났다.

벌써 수분이 흐른 대련 중에 생겨난 상처는 고작 저것뿐.

자신은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건만 상대는 고작 볼에 생긴 옅은 생채기뿐이라는 사실에 서리스는 허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옘병.’

콰앙!

박살로 애꿎은 훈련장 바닥만 분쇄한 서리스는 어느새 별의 힘을 되찾고 자신을 향해 검을 내지르는 락스카를 그저 바라만 보아야 했다.

서리스는 조금 전 공격의 반동으로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럽게 강하네.’

샬롯 때와 같다고?

정정하자.

이건 자신의 완벽한 패배다.

퍼억!

몸을 강타한 충격 속에서 서리스는 그 분한 마음을 가슴에 담은 채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 * *

기절한 그를 내려다보며 락스카는 그림자 검을 지웠다.

그러다 문뜩 볼에서 오는 아릿한 느낌에 손을 들어 핏물을 손가락으로 훑었다.

하루만 지나도 없어질 얕은 생채기 정도의 상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락스카는 그 상처가 신경 쓰였다.

서리스가 마지막에 내질렀던 그 검술.

그것은 분명 미완성이었다.

락스카가 놀란 것은 내부에 담아둔 별이 사라진 것도, 서리스가 연계기로 사용한 박살도 아니었다.

‘흑월영도라…… 한순간 그림자 세계가 찢어졌었지…….’

샬롯은 백귀명을 락로드를 통해 배웠지만, 락스카는 수련 과정에서 스스로 자연스럽게 깨우친 케이스였다.

그렇기에 샬롯과 락스카의 검술은 본질적으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락스카가 스스로 갈고 닦은 그 백귀명을 서리스가 한순간이나마 뛰어넘은 것이었다.

‘미완성된 검술의 위력이 이 정도라니…….’

토옥―

어느새 턱에 맺힌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상처가 이상하리만치 쓰라리기 때문일까.

락스카는 스타린이 경고했던 그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 * *

벌떡.

눈을 뜨자마자 상체를 일으킨 서리스는 눈꺼풀을 한차례 움직였다.

얼마나 기절해 있던 거지.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시야에 락스카가 들어왔다.

그가 아직 있는 걸 보니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건 아닌 모양이다.

“간단하게 치료는 해놨다. 아마 하루 정도 요양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다.”

어쩐지 눈 감기 전보다 몸이 수월하게 움직인다 싶었다.

꽤 좋은 약을 썼는 듯 서리스는 제힘으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묘한 탈력감과 아직 몸에 남아 있는 통증이 그를 괴롭혔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순간 락스카의 볼에 나 있는 얕은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서리스는 피가 흐른 흔적만 남아 있는 저 상처를 만든 게 자신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저거 하나.’

서리스가 전력을 다해 뻗은 검이 락스카에게 닿은 흔적은 볼에 남은 작은 생채기 하나였다.

‘지금은 저거 하나뿐이겠지만.’

서리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패배감이 가슴을 맴돌았지만, 서리스는 초연했다.

항상 고비를 넘어왔던 그에게 인제 와서 패배 하나 새겨진다 한들 달라질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다음을 향해 걸어갈 뿐이다.

“대련 중에 내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순간 락스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든 락스카와 마주한 서리스는 곧 핫하고 소리 내 웃곤 허리춤에 양손을 올렸다.

어느새 또래 중에서는 자신을 쫓아 오는 이들밖에 안 남은 지 오래여서일까.

누군가를 따라잡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내뱉은 그 말.

서리스는 그걸 자기 입에 담는 것임에도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저나 다른 이들을 그렇게 조금도 신경 쓰지 않으셨다간 언젠가 크게 당하실 겁니다.”

그 말을 내뱉은 서리스는 피식하고 웃더니 그대로 훈련장을 걸어 나갔다.

락스카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스타린이 했던 것과 똑같은 말.

과연 우연일까?

그런 의문을 락스카에게 남긴 채 서리스는 테르넬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었음에도 어쩐지 배가 고픈 기분이었다.

분명 락스카를 상대하느라 한바탕 움직였기 때문이리라.

‘오늘이 테르넬에서 마지막 수업이었고.’

오직 알렉산도르만 눈물겨운 송별회를 점심시간 전에 끝냈으니 이제 남은 오후는 자유 시간이었다.

‘아이랑 님이랑 크라페는 돌아갔겠지.’

악스달 지부에서 적당히 음식이라도 사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 보니 아마.’

독후 불터렉스 윈터가 추천해 준 만둣집 하나가 떠올랐다.

‘불터렉스에서 직접 데려온 요리사라고 했던가? 매운 만두라던데.’

지리적으로 가까운 가문이라도 식습관이 꽤나 다르다고 생각하며 서리스가 거기에 가볼 속셈으로 이동하던 도중이었다.

“좋아합니다. 사귀어 주세요!”

갑자기 들려온 고백 멘트.

아무래도 누군가가 청춘을 부르짖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제 고작 이십 대 초반인 애들이 잔뜩 모여있으니 그럴 수야 있다만은.’

세계 침식이나 훈련으로 매일 같이 구르느라 딴생각이 전혀 안 날 텐데도 사랑은 싹트는 모양이다.

힘들어서 오히려 더 이성에게 끌리는 건가?

“좋을 때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리스는 아주 잠시 그쪽을 흘겨보았다.

그러나 그쪽을 보자마자 서리스는 발걸음 속도를 서서히 줄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의 눈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살짝 후미진 길, 거기에는 은발의 머리카락을 지닌 한 여성이 서 있었다.

처음 만났던 그 날이 떠오를 만큼 무표정의 그녀는 누군가와 마주하고 있었고.

딱 보아도 아까 전 고백 멘트를 날린 그 친구인 것 같았다.

같은 학년에서 본 기억이 없으니 선배인 걸까.

“죄송합니다. 저희 가문은 데릴사위를 들이기에 아무에게나 고백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발렌타인의 거절이 이어졌다.

이런, 같은 남자로서 서리스는 그 선배를 짧게 동정했다.

그건 그렇고, 자신과 함께 그렇게나 표정 연습을 했던 발렌타인인데 지금 얼굴을 보면 그 모든 게 다 부질없었던 것처럼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고백받는 순간에도 한없이 도도하게만 보였다.

그 성격을 생각해 보면 아마 속으로는 많이 당황했을 것 같지만 말이다.

‘그래도 얼굴이 예쁘니 거기에 홀리는 녀석들이 많은 거겠지.’

그러는 순간 발렌타인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너무 대놓고 쳐다본 모양이었다.

자신을 발견한 발렌타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하자 서리스는 무안한 표정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서리스 님!”

방금까지 차가웠던 얼굴은 어디 가고 발렌타인은 환한 웃음과 함께 그에게 달려왔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본 선배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지만, 서리스는 그를 위로해줄 수 없었다.

“그, 발렌타인 양이, 웃어?”

거기가 놀랄 포인트였나.

서리스는 자기 앞으로 달려온 발렌타인을 보곤 슬쩍 물어보았다.

“발렌타인 님, 평소에 잘 안 웃으십니까?”

“저 잘 안 웃습니까?”

“아뇨. 저야 볼 때마다 웃고 계시는 것 같긴 한데.”

발렌타인은 의문을 가지며 자기 볼을 손으로 매만졌다.

예전에 표정을 만들어주겠다고 만져본 기억이 있어서일까.

다시 봐도 부드러워 보인다고 서리스는 짧게 생각했다.

“서리스 님, 다치셨나요?”

그러던 순간 발렌타인은 서리스의 모습을 보곤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먼지를 최대한 털긴 했지만, 락스카에게 호되게 당한 만큼 서리스의 옷은 엉망진창이었다.

“대회 보상으로 락스카 형님과 지도 대련을 했거든요. 치료는 했으니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아, 락스카 님과.”

발렌타인은 그제야 안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남에게 걱정 받는 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기에 서리스는 미소를 짓곤 말했다.

“아, 참, 제가 배가 고파 만둣집을 가려고 했거든요. 혹시…….”

“저도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서리스가 채 묻기도 전에 발렌타인이 먼저 말해왔다.

그녀도 배가 고픈 걸까.

서리스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먼저 권유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발렌타인 님이랑 대화도 좀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그렇습니까?”

발렌타인은 눈에 띄게 기쁜 표정을 지었다.

“가시죠. 안내하겠습니다.”

서리스는 그렇게 발렌타인과 함께 만둣집으로 향했다.

어느새 잊힌 선배 한 명이 그들을 닭을 쫓다 놓친 개처럼 허망하게 쳐다보던 것도 모른 채로.

한 사랑이 져버린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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