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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55화 (155/275)

155화

빅토르가 나가떨어졌다.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빅토르가 뒤로 튕겨 날아갔다.

그가 또다시 일어났다.

빅토르가 벽에 처박혔다.

그게 몇 번이나 반복되었을까.

온몸을 멍으로 도배한 빅토르가 붉게 물든 이를 드러나며 바닥을 기듯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또다시 주먹을 쥐었고, 서리스는 담담히 검을 겨누었다.

다시금 자세를 잡는 둘은 그야말로 누구 하나는 끝이 나야 멈출 듯싶었다.

“빅토르 이 자식아 너 그러다 죽어!”

“포기할 때도 됐잖아!”

그리고 그런 그들을 보며 소리치는 건 다름 아닌 대련장 주변을 둘러싼 다른 단원들이었다.

이제는 두 다리로 서는 것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임에도 또다시 일어선 빅토르를 보고, 모두가 입을 모아 외친 것이다.

확실하다.

이대로 가다간 빅토르가 잘못 되도 크게 잘못될 것이다.

서리스는 빅토르의 도발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진지하게 대련에 임하고 있었고.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테르넬 학생 단원인 그들조차 엄두를 못 낼 만큼 강렬했다.

저 앞에 선다면 자신들도 분명 꺾일 거다.

그런데 빅토르는 몇 번이나 그의 공격에 당했음에도 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보는 이가 다 안타까울 정도로 처절한 그 정신력은 그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빅토르가 미친 짓거리를 자주 하긴 하지만 그들과 동고동락하는 녀석이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해라! 지금 말한 놈들 전부 보충 훈련이다!”

그 순간, 호통을 치는 교관의 목소리가 대련장에 울려 퍼졌다.

이번 대회 담당자인 히즈마 교관은 화를 안 내는 성격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그만큼 멍청한 짓을 저질렀을 때다.

“빅토르가 품은 투지를 너희가 마음대로 재단하지 마라.”

히즈마 교관은 빅토르의 1학년 시절을 떠올렸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그는 입학식에서 변변찮은 성적을 냈었다.

뒤에서 1, 2위를 다툴 만큼 아슬아슬한 성적.

그때의 그는 승리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집착하는 좀 특이한 성격의 학생으로만 보였었다.

아카데미에 들어간다면 얼마 안 있어 진짜배기 천재들에게 꺾여 버릴 그저 그런 수준의 학생.

‘실제로 빅토르는 그 자신의 한계에 몇 번이고 부딪혔었다.’

그는 대련 수업은 물론 세계 침식에서도 죽을 위기를 번번이 겪었었고, 그 과정에서 매번 엉망진창으로 당해 병원을 찾기 일쑤였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청소 담당 하녀 장이 그의 얼굴을 기억할 정도이니, 말 다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패배할지언정 그 승리에 대한 집념만큼은 꺾이지 않았었다.

손가락 끝도 까닥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니면 그는 미친 듯이 상대에게 달려들었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를 독종 혹은 미친개라 불렀다.

‘하지만 독종도 독종 나름이야.’

그는 패배를 겪을 때마다 한 단계씩 더 성장했다.

아카데미에서 2년이나 버티며 3학년이 된 지금.

F반으로 입학했던 그가 현재 B반에 속해 있는 것만 봐도 그 성장 속도는 꽤 빠른 편이라 볼 수 있었다.

그가 아카데미를 졸업할 때쯤이면 어디까지 올라가 있을지 궁금할 정도로 빅토르는 아주 느리지만, 꾸준히 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빅토르는 그런 녀석이다.

그리고 오늘도 여지없이 그는 거대한 벽을 만났다.

천재들만 다닌다는 워너힐 아카데미에서조차 괴물이라 취급받는 신성.

그것도 자신보다 두 살이나 어린 하급생.

‘확신할 수 있다. 저 녀석은…….’

3학년 A반을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저 정도의 별 출력이라면 그들조차 능가할 것이 분명했다.

‘천재 중에서도 진짜 난놈.’

그게 바로 펜타니엄 서리스였다.

그런 그가 빅토르를 상대로 어느 순간부터 한 치의 방심도 없이 정면 승부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 달라진 모습에서는 학기 중 두각을 보이던 천재들이 으레 보이던 오만함이 사라지고,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엿보였다.

동시대에 태어난 이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신성이 빅토르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 것이다.

성장한다.

이 싸움이 끝나면 빅토르는 확실하게 성장할 것이다.

그렇기에 히즈마는 겉에 드러난 상황만 보고 판단하는 단원들에게 호통친 것이었다.

그 또한 빅토르의 몸은 걱정되었지만, 이런 기연 같은 순간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 테니까.

‘먹어라. 삼켜. 이 순간을 곱씹어야 한다. 빅토르.’

너의 뜀박질은 언젠가 하늘을 나는 녀석들에게도 닿을 게 분명하니까.

그리고 또 한 번 빅토르가 달렸다.

서리스를 향해 달려드는 그의 시야는 어느새 흐릿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이마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눈을 맺혀 그런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자신은 카론 빅토르다.

워너힐의 미친개.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다.

“흐앗!”

힘 빠진 기합성과 함께 휘두른 주먹이 서리스의 검에 또 한 번 막혔다.

이제는 별도 제대로 못 두른 탓인지 그 주먹은 강화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빅토르가 연격을 포기하고 한차례 몸을 뒤로 빼었다.

호흡이 가쁘다.

하지만 가쁜 호흡 속에서도 빅토르는 필사적으로 서리스를 이길 방법을 떠올렸다.

“빅토르 선배.”

그런데 그때, 줄곧 조용히 있던 서리스의 입이 열렸다.

그는 조용히 검 끝을 바닥으로 향하며 지금과는 다른 자세를 취했다.

“이번 거는 좀 다를 겁니다.”

그 말에는 이제 이 대련을 끝내겠다는 의지와 약간의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렇다면 이게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터.

그는 빅토르를 향해 패배라는 현실을 들이밀었다.

빅토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분하지만 서리스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음 공격으로 자신은 무조건 패배할 것이다.

그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후우우.”

기다랗게 숨을 내쉰 빅토르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중간에 내지른 자신의 호통 이후로는 끝까지 자신을 진지하게 상대해 준 서리스다.

검이 떨릴 정도로 힘을 끌어올린 그의 모습은 빅토르조차 질릴 정도였다.

그렇다면 자신도 끝까지 발버둥 치는 게 예의겠지.

“이건 내가 뒤지겠다 싶으면 꺼내는 필살기 같은 건데 말이야.”

그의 제복 사이로 보이던 팔의 문신들이 갑자기 연해지더니 이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서리스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점차 더 커지는 걸 느꼈다.

소수 민족은 본래 별을 사용하지 않고, 부족 내에 전해지는 특유의 방법을 이용해 별과 유사한 힘을 사용해 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빅토르는 특이하게도 별의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 부분이 의문이었는데 이걸로 다 해소되었다.

소수 민족인 카론족의 문신.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 소문은 들었었다.

그들이 몸에 새기는 문신은 별이 아닌 자연의 힘을 담는 것이다.

단점은 그걸 새기는 데 너무 오래 걸리고, 한 번 사용하면 모두 사라져 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힘은 웬만한 별을 통째로 삼킨 듯한 파괴력을 지닌다고 했다.

그렇기에 카론족은 지금까지도 대가문의 보호 없이 미개척 지역에서 살아온 것이고.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카론에서도 특이한 케이스다.”

주먹을 세게 쥔 빅토르가 스산한 기운을 흩뿌리며 말했다.

그건 일종의 경고였다.

자신도 제힘을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경고.

그리고 그 경고와 함께 빅토르는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고 왼손은 자신의 허리춤으로 당겼다.

“난 자연의 힘을 몸에 못 담거든.”

씨익하고 웃는 그의 왼쪽 주먹을 중심으로 그의 몸에 새겨진 모든 문신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문신이 몰려든 탓에 이제는 새까맣게 변한 그의 주먹은 그것 하나로도 명장의 무기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서리스는 한가지 알 수 있었다.

그가 왜 이리 독종과 같이 행동하는지.

자기 육체에 자연의 힘을 못 담는 그는 분명 카론에서도 외면받거나 좋지 않은 취급을 당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전쟁인 미개척 지역을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자연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빅토르는 골칫거리였겠지.

하지만 빅토르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악착같은 성격을 타고난 그는 카론에서의 일을 통해 더더욱 독종인 성격으로 변했다.

패배하면 무시당하고, 쓸모없는 취급을 받는다.

그 사실이 은연중에 각인된 그는 오직 승리만을 갈구하고 있었다.

스스로가 지닌 조바심이라 봐도 좋았다.

그것은 그를 강하게 만들었고, 여기까지 오르게 했으니까.

승리를 향한 집착은 그에게 진리고 모든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 힘을 쓰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자그마치 10년 치다.”

자연의 힘을 자기 몸에 담을 수 없기에 직접 만들어낸 빅토르의 비기!

전살필살권(全殺必殺拳)

한 방이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기술.

오직 그것 하나만 생각하며 빅토르는 모든 문신을 주먹에 끌어모았다.

이내 그의 주먹을 중심으로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단원들조차 대체 얼마나 많은 힘이 저기 담긴 것인지 몰라 경악할 정도였다.

그 강대한 힘을 손에 쥔 채, 땀을 폭포수처럼 흘리는 빅토르와 담담히 검을 쥐고 있는 서리스의 눈이 마주쳤다.

와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하, 새끼.’

쿨해서 좋네.

그 생각 하나를 끝으로 빅토르의 전살필살권이 내질러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악!

대기가 압축될만한 강렬한 힘의 폭풍이 서리스를 덮쳐 왔다.

쏘아진 기운을 뒤늦게 따라온 굉음에 공기가 찢어지며 그 힘의 강렬함을 드러냈고, 뒤이어 불어 닥친 광풍이 대련을 구경하던 단원들을 수수깡처럼 날려버렸다.

그 힘을 앞에 두고 서리스는 옆으로 검을 틀어쥐었다.

세계 침식자와 같은 진짜 강자들에게만 사용하는 검술.

제왕월영도(帝王月影刀).

그러나 제왕월영도는 지금의 서리스가 그 힘을 전부 끌어내지 못할 정도로 강한 기술이었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꼼짝없이 방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던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이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완숙하게 다루지 못하는 제왕월영도는 찰나의 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실전에서는 사용하지 못한다.

시전 리스크가 너무 크고, 완전히 다루지 못하는 만큼 적에게 적중하지 못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왕월영도를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했다.

‘미완성의 제왕월영도를 휘두른다.’

완성되지 못한 제왕월영도조차 광견을 긴장하게 만들고, 무장공주를 물러서게 했었다.

그렇다면 완성되지 못한 제왕월영도 또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녔다는 소리였다.

악스판시온 위에 새까만 그림자가 휘감기기 시작했다.

그림자에서 묻어나온 검은별이 그 정교함을 올리고, 서리스의 팔목까지 그림자가 휘감기며 마치 검과 한몸이 된 듯 변했다.

서리스의 몸보다 조금 더 길어진 그림자 대검이 그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이 기술은 분명 제왕월영도의 열화판에 불과했다.

그러나 거기에 담긴 힘은 서리스조차 휘두르는 것이 버거울 정도로 응축된 것이었다.

몰아쳐 오는 전살필살권을 앞에 두고.

서리스는 그렇게 검을 휘둘렀다.

흑월귀명도(黑月鬼銘刀)

오식(五式)

흑월영도(黑月影刀)

전살필살권이 일으킨 폭풍을 가르며 검은 선이 그어졌다.

그리고 그 검은 선이 남긴 잔상을 중심으로 전살필살권의 폭풍이 모조리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힘의 충돌로 대련장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양 흔들렸고, 여기저기서 비명이 난무했다.

그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던 서리스는 보았다.

전살필살권을 내지름과 함께 그 사이로 달리고 있는 빅토르를.

그는 처음과 같이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자기 주먹을 서리스에게 닿게 하고자.

그 엄청난 집념에 서리스는 감탄하며 검을 잡았다.

과연 강혼이 그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며.

이윽고 빅토르의 주먹과 서리스의 검이 부딪친 그 순간.

승패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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