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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52화 (152/275)

152화

별을 써보면 알 거야. 불러들이는 느낌이 달라졌을 테니까.

스타린이 했던 그 말.

서리스는 그 말을 머릿속에 떠올린 채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힘을 좀 썼다곤 하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별의 힘이 두 배 이상 늘었어.’

육체와 영혼의 화합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그 힘을 드러내기 시작한 별.

본래 지금의 반 정도 되는 출력에 적응하고 있었던 서리스에게 갑작스러운 별의 총량 증가는 그라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거 다시 적응해야 하겠는데.’

설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서리스는 악스판시온을 쥔 손을 내려다보았다.

요치아가 가르쳤던 별을 다루는 훈련법을 다시 병행해야 할 듯싶었다.

‘스타린 님의 도움이 분명 힘이 돼줄 거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큰 효과를 보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펜타니엄 서리스 승.”

그러는 사이 싸한 침묵 속에서 겨우 정신을 먼저 정신을 차린 교관이 서리스의 승리를 선언했다.

“와, 미친, 저게 뭐야.”

“저 정도였어? 방금 별이 무슨.”

“대체 몇 성이야?”

“저 정돈되어야 세계 침식자와 맞선다 이건가?”

“이델로니, 괜찮냐!”

뒤늦게 단원들 사이에서 소란이 터져 나왔다.

졸지에 더 이목을 끌게 된 서리스는 보건실로 이송되는 이델로니 선배에게 속으로 사과했다.

“서리스 님, 대체 마제님과 어떤 폐관 수련을 하신 거예요?”

서리스가 대련장을 내려오자 아이랑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물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서리스의 힘은 조금 과해 보였기 때문이다.

“저도 지금 꽤 놀란 상태입니다.”

“이 정도면 대회 우승도 노리실 수 있을 거 같아요.”

어째서인지 아이랑은 자신이 다 뿌듯하다는 표정을 다시 지었다.

“나중에 가르쳐줘.”

그러는 사이 크라페도 서리스의 성장에 관심이 있는 모양인지 말을 걸어왔다.

“매일 삼시 세끼 잘 먹고, 열심히 훈련하면 이렇게 돼.”

“거짓말.”

아쉽지만 믿지 않아도 하는 수 없다.

영혼과 육체를 결합하면 된다는 말을 해봤자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될 테니 말이다.

‘남들과 이제야 동일 선상에 서게 된 셈이긴 한데.’

그동안 너무 열심히 노력했던 걸까.

조금 과한 결과물에 서리스는 얼떨떨함을 느끼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야 자신이 강해진 건 사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크라페 입장에서는 서리스가 갑자기 강해진 것처럼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회에서 일 등 하면 가르쳐 줄게.”

“약속.”

그 말을 듣자마자 크라페의 표정이 달라졌다.

크라페는 최근 세계 침식자와의 조우를 몇 번 연달아 겪더니 조금 기가 죽어 있었다.

평소에도 나른한 얼굴인 그이기에 크게 티는 안 났지만.

아무래도 세계 침식자 같이 규격 외의 강자들과 연달아 마주하고 나면 기분이 가라앉겠지.

‘그리고 크라페의 힘도.’

그 출저가 그러하니 말이다.

‘조금 걱정되긴 했는데, 그래도 이걸로 기합이 들어간다면야.’

크라페가 유달리 약한 체력 훈련이라도 좀 도와주면 되겠지.

“두 번째 순서 참가자를 호명하겠다.”

그러는 사이 대련장이 정리된 것을 확인한 교관이 말을 해왔다.

그는 종이를 팔락팔락 넘기다가 곧 멈칫하였다.

“두 번째 대련 참가자 윌즈베르크 아이랑, 그라말테 세라 크라페.”

아이랑과 크라페가 동시에 서로를 돌아보았다.

설마 첫 경기부터 두 사람이 맞붙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교관도 살짝 아쉬운 눈빛을 취했다.

대련 대회 취지 자체가 모두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보니.

1학년 생도들에게는 2학년이나 3학년 생도들과 대련해 보며 보다 많은 경험을 쌓기를 바랐을 테니.

1학년 끼리 대련하게 된 상황이 썩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대회는 대회다 보니 공정하게 제비뽑기로 대진표를 정한 만큼.

이 부분을 바꿔줄 수는 없었다.

“두 사람 다 올라오도록.”

“갈게.”

교관이 지시를 내리자 크라페가 먼저 움직였다.

그 사이 아이랑은 가볍게 숨을 내쉬더니 대뜸 면사포를 벗었다.

그러자 그녀의 숨겨졌던 고운 얼굴이 드러났다.

서리스에게 몰렸던 시선이 단번에 아이랑 쪽으로 쏠릴 정도였으나 그녀는 그것이 익숙한 듯 면사포를 고이 접어 서리스에게 건넸다.

“잠시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네, 주세요.”

어려운 것 없다는 듯 서리스가 면사포를 받자 그녀는 그것을 빤히 쳐다보다 장난스럽게 웃었다.

“면사포의 온기가 식기 전에 돌아오겠소.”

“그건 또 어디서 나온 말을 인용하신 건가요.”

“세계 침식에서 발견된 책이랍니다. 삼국이 싸우는 재밌는 이야기였어요. 나중에 빌려 드릴게요.”

그리 말한 아이랑은 눈웃음과 함께 대련장 위로 올라섰다.

거기엔 평소와 달리 꽤 날카로운 기세의 크라페가 있었다.

최근 서리스가 너무 압도적인 면모를 자주 보이며 알게 모르게 비교가 돼서일까.

아이랑은 크라페에게 그동안 그리 큰 감흥은 느끼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하고 나니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별의 기운이 더 와닿았다.

그는 절대로 약하지 않다.

오히려 A반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할 정도.

그가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긴 했으나, 그 비밀을 드러내 보이지 않아도 크라페는 강했다.

마음먹으면 일곱별에도 속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서리스 님 때문에 자꾸 눈이 높아져서 말이죠.’

서리스가 너무 터무니없는 체력을 지닌 탓에 자연스럽게 훈련 강도가 올라가, 훈련 중 지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 크라페이긴 하나.

그 말인즉슨 그는 항상 리타이어 할 정도로 훈련에 열심히 임한 것이다.

거기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높은 강도의 훈련에 적응해 따라올 정도다.

‘소녀도 조금 자극받긴 했었죠.’

윌즈베르크 가문에 대대로 전해 오는 혈귀.

한때 저주로 인한 갈증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윌즈베르크 직계들은 대대로 이 혈귀 부작용을 앓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낮에 활동 능력이 매우 저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윌즈베르크 직계들은 이런 혈귀를 떼어내고자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아직 전부 해결한 건 아니지만.’

그간에 노력을 통해 일부나마 혈귀를 떼어낸 아이랑은 이제 면사포 없이도 낮에 활동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물론 그 행위 자체가 아직 어색한지라 여전히 쓰는 걸 선호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나 이겨.”

그러던 순간 크라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아무래도 서리스가 수련 법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자극받은 듯.

그는 평소와 다르게 강렬한 투기를 내뿜고 있었다.

“너무 자신만만한데요.”

“밤만 아니라면 괜찮아.”

크라페는 정확하게 아이랑의 약점을 지적해왔다.

역시,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낮 동안 아이랑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걸 아시면 좀 쉬엄쉬엄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바라지도 않잖아.”

그 또한 정확했다.

이래 보여도 아이랑 또한 윌즈베르크의 직계로서 그 자존심이 굉장히 높았다.

자신을 봐주는 상대를 통해 얻은 승리 따위는 그녀 쪽에서 사양이었다.

“좋아요. 어디 한 번 마음껏 해보세요.”

내리쬐는 태양 볕을 피하며 아이랑은 소매 사이로 붉은색의 손톱을 드러냈다.

“저도 전력으로 상대해 드릴 거니까요.”

그쪽이 서리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만큼 이쪽도 이번 기회를 잡고 싶기 때문에.

아이랑 또한 전력을 보일 것을 다짐했다.

“시작.”

그리고 교관의 말이 울리자마자 아이랑의 모습이 사라졌다.

윌즈베르크가 자랑하는 그림자 이동이었다.

그걸 보자마자 크라페는 제일 처음 자신의 그림자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그림자에서 아이랑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을 때, 바로 뒤에서 아이랑이 손톱을 휘두르며 나타났다.

자신의 그림자와 한참 떨어진 거리.

대련장은 천장이 뻥 뚫린 구조인데.

“아.”

“맞아요.”

무언가 눈치챈 듯 크라페가 탄성을 내뱉는 순간, 아이랑의 손톱은 이미 그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태엥!

하지만 그녀의 손톱은 크라페에게 닿지 못했다.

그의 얼굴 바로 앞에 나타난 황금의 방패에 막혔기 때문이다.

‘구름.’

태양을 가린 구름에 의해 생겨난 그림자.

분명 그 그림자는 진하지 않았지만, 아이랑이 이동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그러는 사이 아이랑은 또 한 번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역시 까다롭네요.’

기습적인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손쉽게 막힌 걸 떠올리며 아이랑은 고민에 잠겼다.

윌즈베르크와 같은 오대가인 그라말테의 가문비기 아우레우스 파르마.

황금의 방패라 불리는 그들의 가문비기는 방어에 최적화되어 있다.

현존하는 가문 중 그들의 방어 능력은 최강.

방어 능력이 뛰어난 소드란의 가주인 서리스조차 그라말테 앞에서는 한 수 접어주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 빛줄기는 위험하죠.’

크라페가 쏘아내는 빛의 탄환.

그건 어둠을 다루는 아이랑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아이랑은 서리스에게 배운 게 있었다.

가장 강한 빛에는 가장 짙은 어둠이 있는 법이다.

다시금 그림자 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아이랑의 손톱이 크라페를 향해 뻗어졌다.

크라페가 연이어 황금색 방패를 꺼낸 순간.

아이랑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이어서 그녀의 다리 근육으로 혈액이 몰리더니 이내 팽팽하게 부풀었다.

순식간에 펌핑된 근육은 순간적인 수축과 함께 그녀의 각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줬다.

쿠웅!

그 순간 아이랑의 몸과 크라페의 방패가 동시에 부딪쳤다.

아이랑은 다리의 모인 힘을 최대로 활용하며 크라페를 밀어붙였다.

콰가가가가가각!

아이랑의 몸집만 한 황금색 방패가 바닥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힘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졸지에 방패 뒤에 있던 크라페 또한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그 순간 크라페는 어느새 자신이 대련장 끝까지 밀려나고 있음을 눈치챘다.

아이랑의 목표는 자신을 방패와 함께 그대로 벽에 처박아 버리는 것.

그 사실을 눈치챈 크라페는 자신이 더 코너에 몰리기 전에 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방패가 그의 앞에서 사라졌다.

아이랑의 인영이 보이자마자 크라페는 손에 모아둔 빛의 탄환을 그대로 발사했고.

곧이어 섬광이 대기를 찢으며 그녀에게 쏘아졌다.

하지만 공격을 끝낸 크라페의 눈에 비친 것은 아이랑이 빛의 탄환에 쓰러지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에 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다름 아닌 빛줄기에 꿰뚫린 검은색 박쥐 떼들이었다.

놈들은 서로 뭉치며 검은 지붕을 만들고 있었다.

빛줄기가 지나간 자리로 잠깐 하늘이 보였지만 이내 다른 박쥐가 날아와 순식간에 빈자리를 메꾸었다.

박쥐로 인해 만들어진 밤이 어느새 도래해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크라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졌다.

만들어진 밤 아래.

마치 사족 보행을 하는 동물처럼 깊게 몸을 낮춘 아이랑이 거기에 있었다.

“찍찍찍찍찍!”

사방에서 들려오는 박쥐 소리와 함께 새빨갛게 물든 손톱이 허공을 갈랐다.

어둠 속에서 윌즈베르크는 최강의 육체 능력을 지닌다.

크라페의 인지 능력은 아득히 뛰어넘는 밤의 사냥꾼은 사냥감의 목을 취하고자 그 손을 내뻗었다.

이대로 승부가 나는 듯했다.

그의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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