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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44화 (144/275)

144화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서리스는 거친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크라페가 자신의 존재를 숨겨줬기에 사용할 수 있었던 제왕월영도.

그 위력은 발군이었고, 무장공주의 모습은 흙먼지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찌르르르―

팔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서리스는 정신을 다잡고자 혀를 깨물었다.

앞에서 십칠 번을 상대할 때 검은별을 육체에 넣은 후유증을 다 회복하기도 전에 제왕월영도를 사용했더니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크라페!”

서리스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이번에도 코피를 쏟았는지 코 쪽을 닦고 있는 크라페가 옆으로 다가왔다.

무장공주는 지금의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제왕월영도가 완성되었다면 모를까, 미완성인 기술로 쓰러트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그런 만큼 잠깐 시간을 벌었을 때, 최대한 멀리 도주하는 게 답이었다.

콰가가가각!

그 순간 또 한 번의 섬광이 흙먼지를 휩쓸었다.

서리스가 뒤늦게 그림자를 끌어 올리고, 크라페가 황금의 방패를 세운 순간.

두 사람은 섬광에 휩쓸리며 함께 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커헉!”

충격이 내부를 흔들어 놓은 듯.

서리스는 핏물을 내뱉으며 급히 몸을 일으켰다.

“크라페!”

서리스가 크라페의 이름을 다시 불렀을 때, 그도 성치 못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팔이 부러지기라도 한 듯 크라페는 고개를 다시 땅에 박았다.

“도, 망.”

“이제 충분해. 크라페, 먼저 빠져나가.”

그런 크라페를 보며 서리스는 입안에 모인 핏물을 뱉었다.

그가 제왕월영도를 사용하며 도주가 아닌 공격을 택한 이유는 엑스널과 알리즈가 도망갈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흙먼지 사이로 엑스널을 부축하고 달리고 있는 알리즈의 모습이 점차 멀어지고 있는 걸 보면 그 계획은 훌륭하게 먹힌 모양이다.

이제 크라페만 도망치면 끝.

무장공주는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자신의 악스판시온을 탐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가 노릴 것은 서리스 자신뿐이라는 소리였다.

크라페가 도주할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 수 있겠지.

“무슨 말. 같이 가.”

“같이 가면 무장공주가 우리를 따라올 뿐이야. 그랬다간 워너힐 아카데미가 쑥대밭이 될 거야.”

크라페는 서리스를 보며 눈이 흔들렸다.

“그러니 너라도 일단 도망쳐. 무장공주의 목적은 나인 듯싶으니까.”

지금 저 말은 아무리 봐도 자신이 희생하겠다는 거로 들렸다.

그 와중에도 서리스의 눈은 변함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건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한 듯.

그의 눈에서 느껴지는 굳건한 의지는 크라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크라페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이들을 보았었다.

신왕 그라말테 세라 에이징.

그녀의 아들인 크라페는 그녀의 곁에 모인 무수한 사람들을 보고 자랐다.

귀족은 계산적이고, 권력에 따라 움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그들에게서는 세계 침식과는 다른 악취가 났다.

간혹 괜찮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소수일 뿐.

대부분 사람은 크라페의 기준으로 악취에 뒤덮인 이들이었다.

크라페의 아버지가 떠난 후 어머니가 실의에 빠진 몇 달간의 기억.

크라페는 어머니가 지닌 권력을 뜯어 먹고자 야금야금 몰려드는 이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구더기와 같은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악취를 느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는 종적을 감추지 않았을 텐데.

동시에 어머니 또한 그렇게 힘들어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라말테도 흔들리지 않았을 텐데.

그 뒤로 크라페의 말수는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었다.

크라페는 본질적으로 사람이 싫었다.

사람이란 언제나 음흉한 꿍꿍이가 있는 존재와 같이 느껴졌고, 실제로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 자기 몸에 흐르는 피의 반이 세계 침식자의 것이기에 이런 사고관이 생기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서 풍겨오는 세계 침식자와는 다른 의미의 악취도 권력이란 것에 뒤섞인 모략도.

전부 학을 뗄 정도로 끔찍했다.

그리고 그런 그에 눈에 서리스 또한 그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듯해도 거기에는 대부분 그럴듯한 명분이 있었고, 항상 그에 걸맞은 결과를 내놓았다.

여타 다른 귀족들이 그렇듯 그 또한 귀족으로서 높은 자리를 얻고자 하는 그런 사람처럼 느껴졌다.

단 하나, 특이한 점은 그에게서는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

크라페는 이 점이 신기해서 그의 곁을 맴돌았었다.

그래도 그는 일반 사람들보다는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흑마녀 사건 당시 그 엄청난 정신력으로 자신이 위기에서 빠져나오게 도와준 것은 서리스였다.

여태껏 봐온 사람 중에서는 신뢰로 손에 꼽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눈에는 어떠한 계산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크라페와 모두를 살리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양.

그는 흑마녀 때와 같이 위기를 앞에 두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크라페의 코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무장공주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만약 흑마녀 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그 악취를 견디지 못하고 크라페가 혼절해 버렸을 정도로.

무장공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지금도 크라페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벌벌 떨고 있었다.

저건 재해다.

인간이 맞설 수 없는 재해.

이 공포 앞에서 그나마 이렇게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이러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물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생존 본능 덕이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함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과 같은 스무 살밖에 안 된 서리스가 자기한테는 도망치라 하고, 자신은 무장공주와 맞서려고 하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이런 류의 사람을 보는 것은 그의 어머니 이후로 처음이었다.

언제나 최흉에 맞서 사람들을 지키고자 성벽 위에 서 있던 어머니의 뒷모습과 같이.

서리스의 등에서 그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크라페는 깨달았다.

그가 어째서 악취가 느껴지지 않았는지.

어머니에게서는 악취가 아닌 따스한 향이 났었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곁에 머물렀던 이유도 그러한 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향은.

오직 영웅적인 자태를 지닌 이들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세계를 위협하는 일이 생긴다면 자신의 안위 따위는 모두 내버리고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설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런 거였어.’

크라페가 양 주먹을 꽉 쥔 채 서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상황이 급박한 탓인지 서리스에게서 악취뿐만 아니라 다른 어떠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는 것을 망각했다는 것도 잊은 채.

크라페는 서리스의 영웅적인 모습을 두 눈에 새기고 있었다.

예전 어머니가 그러했듯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이는 숭고하고, 강했다.

크라페는 서리스를 보고 전율했다.

마음속에서 일렁거리는 감정이 오랜만에 그를 고양시켰다.

그리고 그런 고양감에 휘말려 자기가 내린 판단에 섞여든 오류를 떠올리지 못했다.

서리스는 분명 크라페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자신이 살아간 땅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적 있는 사람이다.

단지, 크라페에게 먼저 도망치라고 한 이유에는 다소 계산적인 부분이 들어가 있었다.

‘그동안 나는 검은별을 항상 일정 이상 억눌러 두고 있었다.’

물론, 최근에는 요치아 덕분에 그림자로 안정감을 얻어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해졌다고는 하나.

서리스가 지닌 검은별은 지금까지 삼켜온 세계 침식을 담아둔 폭탄이다.

서리스가 지금까지 사용한 검은별의 힘은 극히 일부.

만약 내부에 있는 것들을 전부 꺼내 쓴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기에 그 선을 넘은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몸속에 깃든 폭탄에 스스로 불을 붙이는 것만큼 미친 짓은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지금은 뒤를 생각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강한 상대와 만났다.

당연하지만 만약 그걸 크라페 앞에서 쓴다면 그가 자신을 무어라 생각할지 뻔했다.

간간이 검은별을 써도 크라페가 자신이 지닌 힘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까지 쓰게 되면 크라페가 자신을 세계 침식자로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서리스에게 무장공주를 상대할 만한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상황이니 일단 그를 먼저 보내려는 것이다.

“크라페! 당장 내 말 들어! 내가 신경 쓰이면 후퇴해서 누구든 불러와!”

흙먼지 속에서 느껴지는 무장공주의 존재감이 점차 가까워졌다.

이 이상 시간이 끌리면 끝장인 것이다.

“……살아.”

“여기서 죽을 생각 없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난 크라페가 무장공주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과 반대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후우―

그 뒷모습을 본 서리스는 후우하고 긴장된 숨을 내뱉었다.

이쪽도 죽을 마음은 없다.

단지, 아까 했던 말처럼 무작정 도망쳐봤자 금방 따라 잡힐 게 뻔했다.

오래전, 요치아가 산을 탈 때 따라 달렸던 서리스였기에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만한 수준 차이에서 도주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정도 소란이 일어났어.’

워너힐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단은 눈뜬장님들이 아니다.

당연히 이미 이쪽으로 움직였을 것이 분명했다.

희망적인 생각이긴 하나 지금쯤이면 무장공주의 존재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남은 건.’

그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었다.

기약 없는 싸움이란 생각은 버렸다.

사람은 끝이 없다고 느낄 때, 쉽게 포기해 버리니까.

‘태악룡 때처럼 간발의 차로 뒤지는 건 이쪽도 사양이라고.’

후욱!

그 순간 눈앞 흙먼지가 갑자기 한 지점으로 빨려 들어가는 게 보였다.

그것을 보자마자 서리스는 반사적으로 그림자 망토까지 사용하며 도약했고, 그 순간 그가 있던 곳을 광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흙먼지를 모조리 휘감고 사라진 광풍 사이로 검 길이의 부채를 쥐고 있는 무장공주가 보였다.

그녀는 순식간에 부채를 넣고, 손도끼를 꺼내더니 서리스 쪽으로 도약했다.

서리스가 급히 검을 들어 올리며 가드하자 그 위를 손도끼로 연달아 내려쳤다.

콰앙, 콰앙, 콰앙!

그 충돌 지점에서는 불꽃이 튀어 올랐고, 서리스는 분명히 그 공격을 막고 있음에도 그 힘의 여파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서리스는 어떻게든 금강귀명로를 사용하여 힘의 흐름을 억지로 흘려냈다.

그런데도 팔이 덜덜 떨리는 것이 상대와 자신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썅, 너 때문에 눈이 자꾸 지끈거리잖아!”

무장공주는 단단히 화가 난 듯 서리스에게 미친 듯이 도끼를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며 서리스는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악착같이 모든 공격을 막아내었다.

한 번의 휘두름에 한 번의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한 손으로 도끼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무장공주였지만 그 공격을 파훼할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잘 판단해야 한다.’

모든 오감을 공격을 막는 데에만 집중하며 서리스는 필사적으로 무장공주의 정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얼굴에 내비친 여러 가지 감정.

분노, 원한, 탐욕.

이 세 가지 감정은 지금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그중 둘은 내게 보이는 요치아의 흔적을 향한 것.

나머지 하나는 악스판시온을 향한 감정.

즉, 그녀에게 있어서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존재였다.

세계 침식자 무장공주는 수많은 무기를 강탈하며 그 소유자들의 목숨을 빼앗은 사냥꾼이다.

좋은 무기를 지닌 이들은 모두 그녀의 사냥감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라는 사고 자체를 하지 않는 이이다.

그녀는 다혈질적인 사람이다.

동시에 동물적 감각을 타고났다.

기습적으로 펼쳐진 제왕월영도를 보았을 때, 그녀가 반사적으로 취하던 자세는 방어.

요치아에 비하면 한없이 모자란 제왕월영도이나 그녀가 방어를 택한 것은 몸에 각인된 버릇과도 같은 것이었다.

동물은 한 번 각인된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렇기에 자기 한쪽 눈을 앗아간 것과 똑같은 형태의 공격이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수세를 취한 것이다.

서리스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격렬하게 움직인 탓에 흐르는 땀방울이 시야마저 흐릿하게 만들었지만 옅은 빛을 그는 보았다.

서리스가 그동안 억눌러 놓은 검은별의 힘은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검은별을 풀어내는 순간, 이 장소는 세계 침식으로 뒤덮일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그 폭발력으로 이 일대는 쑥대밭이 될 거라고.

그렇기에 서리스는 줄곧 검은별을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이것밖에 답이 없음을 알고 있는 서리스는 철저하게 기회를 노렸다.

상대는 자신을 개미 취급조차 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반드시 물어뜯을 기회가 온다.

“이제 그만 예쁜이 내려놓고 뒤지자!”

그때, 짧은 포효와 함께 무장공주가 손도끼 대신 등 뒤에 찬 대검을 쥐고자 손을 들었다.

거기서 느껴지는 기운을 보니 저게 바로 그 섬광을 쏘아내던 무기 같았다.

코앞까지 붙어 있는 지근거리.

당연히 맞는 순간 즉사다.

그리고 무장공주가 손을 뻗는 짧은 틈.

악스판시온을 쥐고 있던 서리스가 손목을 튕기며 검을 위로 던졌다.

빙글 회전하며 악스판시온이 허공으로 떠 오른 순간 무장공주의 시선이 검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악스판시온에만 관심을 둔 그녀였기에 반사적으로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그리고 그 찰나에 맞춰 서리스는 아래로 후욱 자세를 꺼트렸다.

그의 팔은 발검 자세와 함께 아래로 내리그어졌고, 동시에 그의 손아귀 속에서 뻗어 나온 그림자가 검 형태로 변했다.

청운귀명으로 만든 검과 함께 서리스는 별빛을 강렬히 끌어모았고, 그 아주 찰나 같은 순간을 이용해서 허공에 거대한 그림자 검, 제왕월영도의 형상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악스판시온을 따라 자연스럽게 시선이 하늘로 올라갔던 그녀의 눈동자에도 맺혔다.

그 즉시 무장공주는 뻗은 손 그대로 대검을 잡고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려고 했다.

분명 서리스의 제왕월영도는 요치아에게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이것은 과거의 상처로부터 각인된 버릇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 각인된 버릇은 또 한 번 서리스에게 찰나의 시간을 주고 말았다.

아차 하는 그녀의 하나 남은 눈이 서리스에게로 향한 순간.

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서리스의 검은 이미 그림자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토옥―

청운귀명으로 만들어진 그림자에서 흘러나온 어둠이 그림자 아래로 스며들었다.

“씨발.”

무장공주의 나지막한 욕설과 함께 어둠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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