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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35화 (135/275)

135화

일이 생겨 조금 늦게 천옥지회에 도착한 엑스널은 기이한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알리즈를 중심으로 1학년, 2학년생들이 몰려든 모습이었다.

자신의 무리가 그를 은근히 괴롭히던 걸 제외하면, 모두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었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알리즈는 모두에게 주목받고 있었다.

“알리즈, 내가 저번에 교본 같이 봤던 거 기억해?”

“알리즈 그때 말이야.”

여기저기서 알리즈, 알리즈.

엑스널은 얼굴 위로 불쾌감을 여실히 드러내다가 서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서리스는 그를 보며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고 있었고, 엑스널은 이게 전부 그가 의도한 바임을 눈치챘다.

‘역시.’

저놈은 싫다.

그렇게 생각한 엑스널은 이마를 손으로 쓸어 올렸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

엑스널이 심복 중 한 명에게 상황을 묻자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설명을 잠자코 듣던 엑스널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이런 거였어?”

지금 알리즈에게 모인 주목은 금방 사그라들 일회성 화젯거리일 뿐이었다.

지금 알리즈에게 모인 이들은 어디까지나 인맥 쌓기를 원하는 것일 뿐.

아직 1학년과 2학년 사이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형성이 안 된 학기 초에나 가능한 것이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전부 부질없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주제에 이런 거로 이겼다는 양 웃고 있다니.

‘애초에 저 관심도.’

알리즈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서리스가 의도한 것일 뿐.

아무리 환경을 만들어줘 봤자 범재인 알리즈는 변함없는 것이다.

“쓸데없네.”

내버려 두면 자연히 없어질 관심.

엑스널은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문제는 그게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으득-

자신도 모르게 엑스널은 턱에 힘이 들어갔다.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알리즈를 보고 있자니 불쾌감이 가시지를 않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엑스널은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가졌다.

그는 머리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즉, 머리가 나쁘지 않기에 알리즈에게 품고 있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았다.

알리즈와 엑스널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펜타니엄 첫째 락스카라는 존재였다.

펜타니엄의 라이벌인 마키나의 첫째.

펜타니엄의 직계인 둘째.

이 두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락스카의 존재감에 짓눌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가지 못할 뛰어난 천재의 존재는 두 사람의 정신을 좀 먹었고, 망가트렸다.

그런 과정에서 엑스널의 감정에는 자연스레 펜타니엄을 향한 분노, 시기심, 두려움이 새겨졌다.

그중 두려움은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엑스널은 마키나에서 자라나며 가문의 사람들에게 수없이 펜타니엄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것은 일종의 세뇌에 가까웠다.

영혼에 새겨진 각인.

그렇기에 마키나에게 있어서.

락스카를 평생 뛰어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떨쳐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다름 아닌 알리즈였다.

락스카와 같은 펜타니엄이나 그보다는 한참 모자란.

그러면서도 어딘가 자신과 유사한 위치에 있는 그를.

그런 그를 짓누를 수 있다면 엑스널은 같은 처지에 놓인 이들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고.

동시에 펜타니엄을 향해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 또한 털어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었다.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님을 알고 있어도.

엑스널은 자신의 정신이 압박감에 무너지지 않도록, 그런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엑스널은 알리즈를 보며 깊은 불쾌감과 함께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를 이용해 해소했다고 여겼던 여러 감정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안 좋은 방향으로의 충동이 제멋대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엑스널의 발이 앞으로 뻗어지기 시작했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해야만 했다.

자신은 알리즈가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것 따위는 조금도 인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이런 놈이야.’

스스로가 불쾌하기 짝이 없게 느껴지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알리즈를 찍어누르며 얻은 정신적 안정감이 너무 편했기에.

“알리즈.”

엑스널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방금까지 왁자지껄하게 떠들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주변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엑스널에게 찍혀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알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흉흉한 기세를 주변으로 내뿜는 그와 가까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 성격은 괜찮으나 알리즈와 펜타니엄만 관련되면 발작하듯 날카롭게 구는 그이기에 다들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엑스널.”

엑스널과 마주하게 된 알리즈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자신에게 향하는 불의를 쳐낼 수 있게 된 알리즈다.

그러나 엑스널만은 달랐다.

작년 첫 학기가 시작할 때가 떠올랐다.

입학식 때부터 변변찮은 성적을 보였던 자신과 달리 눈부신 성적을 보여준 엑스널.

그는 노골적으로 알리즈를 고립시켰지만, 알리즈는 변변찮은 반항 한번 할 수 없었다.

A반과 B반이라는 그와의 격차는 명확했고, 엑스널은 실력과 인성으로 모두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교관들에게도, 동년배들에게도 엑스널은 항상 알리즈보다 뛰어난 이로 평가받고 있었다.

“천옥지회에 나오다니 무슨 생각이야?”

엑스널이 한 발짝 다가올 때마다 알리즈는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아무리 변하려고 노력을 했어도, 그동안 당해 온 것들이 낙인처럼 남아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작년에 그런 꼴을 당하고도 다시 여길 찾다니.”

얼굴을 들이밀며 엑스널은 알리즈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장 여기서 떠나라고.

네가 있을 자리는 이곳에 없다고.

그는 스스로에게 느낀 불쾌감조차 알리즈에게 전가하며 그를 짓누르려 했다.

“너는 자존심도 없어?”

엑스널의 얼굴에 비웃음이 서렸다.

그는 폭주하고 있었다.

그동안 알리즈를 고립시키고 비난하긴 했지만 이렇게 사람 많은 자리에서 대놓고 한 적은 없었다.

특히 사람들의 시선이 이만큼 많이 모여 있는 자리라면 더더욱.

많은 사람 앞에서 이러면 자신의 평판에도 악영향이 갈 거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금 이 주변에는 알리즈에게 잘 보이고자 모여든 사람들로 가득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을 멈출 수가 없었다.

펜타니엄 서리스라는 그의 정신을 자극하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다.

서리스가 알게 모르게 끼친 영향이 다시금 락스카라는 그의 트라우마를 비집어 꺼냈다.

그런 와중 오늘, 마키나의 정기회의 소식은 그를 폭주시키기에 충분했다.

워너힐 아카데미를 졸업하는 대로 가문으로 돌아올 것.

그것이 뜻하는 바는 락스카와 달리 너는 단장이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그와 더 비교되기 전에 가문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그가 천옥지회에 조금 늦게 도착한 이유였다.

상황은 상황끼리 맞물리고.

오늘은 유달리 충동을 조절할 수 없었던 엑스널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행동했다.

알리즈가 조금이라도 지위와 힘을 가지지 못하도록 부숴 버리고자.

“엑스널, 날 이용해서 자존감을 채우려는 짓은 그만해라.”

“뭐?”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엑스널의 사정일 뿐.

알리즈에게 있어서 그의 행동은 그저 하찮은 자존감 채우기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그동안 내게 했던 모든 행동이 라스카에게 짓눌린 현 상황에서 도피하고자 벌인 치졸한 짓인 걸 모를 것 같아?”

그동안 알리즈는 엑스널의 괴롭힘 속에서도 묵묵부답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엑스널이 여러 상황이 맞물리며 충동적으로 행동했듯.

알리즈 또한 스스로 달라지겠다고 다짐한 상황이었으니, 그동안 꾹 눌러 뒀던 속내를 내뱉은 것이다.

드디어 찾기 시작한 자신의 검.

그것은 유약했던 알리즈에게 있어서 크나큰 변화를 야기했다.

입 밖으로 내뱉기 두려워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그 말을.

그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엑스널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용기를 얻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두 사람은 같은 날짜에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을 내뱉을 수 있게 되었다.

“언제까지 락스카한테 겁먹고 피할 생각이야.”

그리고 알리즈가 그동안 담아왔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엑스널이 뒷걸음질 쳤다.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기에 알리즈 또한 자신의 감정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알리즈를 얕잡아 보고 있었단 걸 자각함과 동시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동시에 불쾌감이 치솟아 올랐다.

감히 너 따위가라는 목소리가 입술 끝까지 올라왔으나, 엑스널은 이를 까득 깨물었다.

‘정곡이 찔려서 화를 내는 것만큼 추한 건 없어.’

그리고 이 순간 그는 자신이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있다는 것이 저주스러웠다.

차라리 단순하게 사고하며 이 감정을 털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망할 머리는 그런 것조차 허락해 주지 않았다.

엑스널은 눈을 감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러곤 입안에 맴도는 멍청한 말들을 가슴 속에 주워 담으며 발길을 돌렸다.

이 자리에 자신이 더 있어봤자, 유익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 나가는 길.

엑스널은 서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서리스는 웃지도, 딱히 그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와 눈을 마주쳤을 뿐이었다.

그렇게 엑스널은 그날 이후 더 이상 알리즈를 건드리지 않게 되었다.

* * *

엑스널은 떠났지만 천옥지회의 분위기는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 원인은 엑스널과 알리즈였다.

“알리즈 형님.”

“……서리스.”

“잠깐, 바람이나 쐬고 오죠.”

알리즈의 얼굴 위로 피로감이 깃들었기에 서리스는 그를 데리고 테라스 쪽으로 나갔다.

그가 사라져서일까, 천옥지회는 다시금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이리 만든 두 사람이긴 하나, 그 두 사람을 주제로 이야기할 거리가 넘쳤기에 자연스레 분위기가 다시 환기된 것이었다.

알리즈를 데리고 테라스 밖으로 나온 서리스는 놓여 있는 의자에 앉으며 그에게도 앉으라고 손짓했다.

알리즈는 어딘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서리스는 하늘을 보며 물었다.

“알리즈 형님, 후련합니까?”

“……후련하네.”

알리즈는 씁쓸하게 웃었다.

엑스널은 더 이상 알리즈를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열등감을 없앨 목적으로 괴롭혔던 알리즈가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 자체를 대놓고 언급했으니.

오히려 그의 앞에 얼씬도 안 하게 될 게 분명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한 번에 풀릴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서리스는 솔직히 오늘 엑스널이 알리즈를 그냥 내버려 둘 줄 알았다.

평소 감정 제어를 잘하던 그였으니 오늘도 당연히 그런 모습을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오늘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알리즈에게 좋은 일이 되긴 했지만, 뒷맛이 찝찝한 건 변함 없었다.

결국, 엑스널은 자신이 저질러 왔던 것들을 회피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

“나는 사실 엑스널을 동정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런 순간 알리즈가 입을 열었다.

서리스가 옆을 돌아보자 그는 헛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웃기지? 나 같은 게 엑스널을 동정하다니. 그런데 나도 조금은 알아. 엑스널이 나처럼 코너에 몰려 있었다는 것 정도는.”

그리 말하며 알리즈는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대었다.

“한 번쯤 서로 편하게 대화해볼 수 있었다면, 아카데미에서 만난 동기 사이 정도는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뒷말을 삼킨 채 알리즈는 저 멀리 밤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달빛이 너무 강해, 그 아래에서 제빛을 내고 있지 못 한 두 개의 별을 가만히 지켜보며.

“고마워. 서리스, 네가 고생 많았지.”

“뭐든 형님이 한 겁니다.”

“나도 바보는 아니야. 서리스가 날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준 지 잘 알아. 그리고 왜 그렇게 해줬냐고 물으면 뭐라 할 줄도 알고.”

작게 키득거린 알리즈는 서리스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 보였기에 서리스는 별말 하지 않았다.

가족, 거기에 같은 스승을 둔 제자.

이 두 가지면 서로를 도울 이유가 차고도 넘쳤기 때문이다.

‘내가 형을 도운 건, 꼭 그런 이유만 있는 게 아니긴 하지만.’

적어도 알리즈에게 있어서는 가장 납득하기 쉬운 이유였으리라.

“좋네. 가족. 나도 형을 좀 더 가족처럼 여길 수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사람 마음이란 게 마음먹는다고 다 됩니까? 원래 그렇죠.”

“그래도 서리스는 해냈잖아.”

가족의 재능 앞에 무너져 몰락해 버렸던 서리스를 언급하며 알리즈가 말하자 서리스는 어깨를 으쓱이었다.

알리즈는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원래 서리스는 이미 존재하지도 않으니 말이다.

단지, 락스카는 알리즈가 노력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서리스는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미안, 내가 너무 붙잡아 뒀네. 어서 친구들한테 가봐.”

“딱히 급한 일정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사교회잖아? 천옥지회는 2학년보다도 1학년의 주 무대인걸. 형이 아우 시간을 뺏어서 쓰나.”

어서 가라고 재촉하는 알리즈에 서리스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친구들, 다 좋은 애들이더라.”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리스는 조금 웃었다.

“네, 그렇죠. 뭐.”

알리즈가 혼자 남은 테라스에는 서리스가 회장으로 향하는 발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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