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1년 전 천옥지회.
입학 당시, 펜타니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기대감을 모았던 알리즈도 역시 천옥지회 초대장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가 겪은 일이라곤, 치욕스러운 것들뿐이었다.
오대가 펜타니엄의 직계임에도 불구하고, B반 중위권.
당시 4학년이자 발리움 단장이었던 펜타니엄 락스카와는 차이가 나도 너무 나다 보니.
알리즈는 형과의 적나라한 비교와 실망한 이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 결과, 알리즈가 작은 실수를 하자마자 그걸 빌미로 잡은 엑스널과 다른 이들이 그를 몰아세웠고.
그 결과 천옥지회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알리즈는 도망치듯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터덜터덜 걸어가던 그의 뒷모습을 당시 천옥지회에 참가했던 모두가 기억하고 있다.
4학년인 락스카조차 그를 딱히 신경 쓰지 않았던 만큼 아카데미에서는 그의 편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또 무슨 꼴을 당하려고 온 거야. 이번에는 1학년까지 있는데.”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에드먼이 벌써부터 미래가 보인다는 양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그를 두고 옴미아는 자기 입술을 매만지다 곧 무언가 떠올랐는지 입을 뗐다.
“펜타니엄 서리스.”
“아, 설마 동생 때문이라는 건가?”
그의 친동생인 펜타니엄 서리스는 이번 워너힐 아카데미 신입생 중 가장 유명한 이였다.
무려 월석을 깨트렸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소문이라 하긴 뭐하지만.
일단은 그랬다.
“하지만 펜타니엄은 형제간에도 첨예하게 경쟁하는 거로 유명하잖아. 쟤들 형제끼리 우애가 있긴 해? 락스카 단장만 봐도.”
에드먼은 알리즈를 아는 사람 취급조차 안 하던 락스카를 본 적 있다.
그렇기에 그가 동생을 위해 여기에 왔다는 건 좀 이상하게 들렸다.
“엑스널이라면 분명.”
“그래, 1학년이든 뭐든 펜타니엄인 시점에서 무조건 물어뜯으려 하겠지.”
충분히 예상 간다는 듯 에드먼도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기회.”
“동감이다.”
엑스널이 달려들든 말든 인재는 인재다.
오히려 엑스널을 의식해서 다른 이들이 손대기 꺼린다면 자신들에게 훨씬 이득인 것이다.
“가자고. 낚아 올릴 인재가 차고 넘치겠어.”
그가 신나게 계단을 타고 오르자 잠시 후 천옥지회 건물이 보였다.
마치 산속에 직접 지어진 듯한 3층의 건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럽기 그지없었다.
워너힐 아카데미 학생 중에는 당연히 귀족이 가장 많다.
그러다 보니 천옥지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천옥각에 돈이 투자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서자 얼굴이 낯익은 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를 이루는 건 2학년생들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들이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에이든은 2학년생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1학년생들을 훑었다.
일찍 온 탓인지 눈여겨보는 녀석들은 그다지 많이 없었다.
“하하, 뭐야. 저런 애들도 천옥지회에 올 수 있는 거였어?”
그러던 순간 어디선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드먼과 옴미아가 동시에 시선을 옮기자 아니나 다를까.
알리즈를 본 몇 명이 마치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다는 양 큰 목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대화 중 알리즈가 지칭 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누구를 말함인지 모두가 잘 알았다.
보아하니 전부 엑스널 쪽 사람.
이미 이런 행동이 익숙해져 있는 듯 그들은 알리즈를 욕보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치졸하긴.”
그런 말을 하면서도 에드먼은 딱히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엑스널 쪽과 척질 생각이 없기도 하고.
대가문이면서 실력은커녕 권력조차 휘두를 줄 모르는 알리즈가 한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무 말 없는 알리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시선을 떼곤 다른 사람을 찾았다.
‘아직 엑스널도 안 온 모양이구만.’
적어도 알리즈를 직접 건드릴만한 녀석은 아직 없는 모양이다.
소란은 적은 게 좋다.
그러던 순간이었다.
그가 늘 사용해두는 기감 확장 마법에 무언가 걸려든 것이.
“왔음.”
옴미아도 눈치챘는지 입을 열자마자 입구에서 한 남성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커다란 체격과 키.
눈매가 사나워 보이기도 하나 그것도 체격과 어우러져 남다른 아우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쟤구나.”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가 바로 펜타니엄 서리스였다.
그러는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잇따라 들어온 인물들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최근, 마왕의 숨겨진 딸로 유명해진 제나디아 도로시.
그리고 이번 기수 A반 중 유일한 평민인 맹인검사 서발광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세 사람 다 오래도록 친하게 지내던 모양이다.
그런 셋을 시작으로 1학년생들이 연이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인재들을 꼬드길 시간이 온 모양이었다.
“아가씨 왔음. 가봄.”
아이랑의 힘을 빌려 1학년을 소개받을 작정인 옴미아는 그녀가 오자마자 냉큼 사라졌다.
혼자 덩그러니 남은 에드먼이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목표는 펜타니엄 서리스.
로렐라이는 단장 때문에 마법사들이 많다는 이미지가 있긴 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실력 좋은 이들은 어딜 가든 대우받고, 세계 침식 전문 기관이라는 매리트는 누구에게나 크다.
‘꼬실 카드는 이쪽도 많거든.’
그가 그렇게 발을 옮기던 순간 갑자기 이쪽을 본 서리스가 화색을 보였다.
순간 자신에게 없던 매력이 발산되어 그를 휘어잡기라도 한 건가 착각한 찰나.
그는 서리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닌 뒤로 향해 있음을 눈치챘다.
그가 뒤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서있는 건 다름 아닌 알리즈였다.
“어쩔 거야. 이거. 펜타니엄이면 다야?”
그런 와중에도 알리즈는 시비라도 걸렸는지 한 남자에게 붙들려 있었다.
불쾌한 기색을 보이는 그의 옷에는 와인이 묻어 있었고, 알리즈와 부딪쳐서 그리된 듯하였다.
하지만 노골적인 시비는 의도된 것이 뻔했다.
‘잘됐군.’
서리스가 알리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볼 수 있는 기회다.
그것을 눈치챈 그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순간 에드먼이 고개를 기울였다.
잠깐, 화색?
‘형이 시비에 걸리고 있는데 화색을 보인다고?’
사이가 아무리 안 좋아도 무표정이라면 모를까, 화색이라니.
“넌 내가 펜타니엄인 걸 알고 있음에도 이러는 거야?”
그러던 순간이었다.
그의 귓가에 어이없다는 감정을 깊게 내포한 물음이 울려 퍼진 것이.
그 목소리의 주인은 알리즈였다.
지금까지 누가 뭐라 하던 아무런 말도 못 하던 그는 눈앞에 남성을 보며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마치, 감히 너 따위가 나한테 이런 무례한 짓을 하냐는 듯.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패도적인 기색은 보는 이를 무심코 움츠리게 할 기세였다.
“어, 어?”
당연히 그런 알리즈의 태도에 남성도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와서 부딪쳤잖아. 아니면 지금 이건 펜타니엄의 권위를 향한 도전인가?”
그의 발아래 그림자가 마치 그가 펜타니엄임을 되새겨 주듯 제멋대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기분 나쁜 감정을 듬뿍 담은 살기가 남성의 목을 옥죄었다.
락스카와 엑스널에게 밀려서 그렇지 알리즈의 실력은 절대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의 검조차 쥐지 못했음에도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B반이라는 성적을 기록했던 그다.
당연히 B반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패거리가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썩어도 준치.
오대가인 펜타니엄의 직계라는 이름은 한낱 일반 귀족이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 거라면 상대해줄게. 아니라면.”
알리즈의 눈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머리 숙이고 조용히 네놈 패거리로 돌아가라.”
남성은 입술을 깨물더니 무어라 한마디조차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그의 행동에 회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들의 기억 속 알리즈는 언제나 쭈뼛거리고, 욕먹어도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순한 양이었다.
그런 이가 갑자기 늑대의 이빨이라도 지니기라도 한 양 패도적인 기세로 나오니 다들 크게 당황한 것이다.
“뭐야. 저 사람 알리즈 맞지?”
“어떻게 된 거야.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이 한차례 소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상황인 에드먼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알리즈가 바뀌었다.
그 사실을 알아챈 순간 갑자기 1학년생 다수가 알리즈 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아주버님, 소녀를 기억하시나요? 윌즈베르크 아이랑이에요.”
“반갑습니다. 알리즈 님, 불터렉스 발렌타인이라고 합니다. 서리스와는 친구 관계입니다.”
“바르크 이바드라다. 서리스 쪽과는 친구고. 그쪽은 서리스의 형이라 들었다.”
“아. 다들 반가워. 우리 서리스랑 잘 지내줘서 고마워.”
그러자 방금까지 보였던 날 선 기세는 사라지고, 알리즈는 친절한 미소를 지은 채 선배로서 후배들의 인사를 받았다.
문제는 그게 한두 명이 아니었다.
1학년 A반에서 가장 눈여겨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알리즈 쪽으로 와서 그에게 인사하거나 말을 걸었다.
에드먼은 그나마 가까이 있었기에 그들이 알리즈에게 온 것은 서리스와 지인이라는 점 때문임을 알 수 있었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있는 이들은 천옥지회에 참가한 1학년생들이 전부 알리즈와 아는 사이처럼 보일 게 분명했다.
“뭐야? 알리즈 쪽에 1학년생들이 왜 저리 많이 가.”
“암성에다가 염성, 뇌성까지 갔는데, 뭔 일이야?”
“알리즈 동생 있잖아. 이번에 들어온 서리스라고, 형이니까 동생 동기들도 아는 사이다. 이런 거 아니야?”
그리고 그 점은 인재 등용을 노리는 2학년생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일 만한 상황이었다.
내 사람에게는 너그럽다는 듯 대하는 알리즈의 심성이 펜타니엄 치곤 매우 순한 편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방금전 시비를 건 남성에게 보인 태도는 의외였지만.
그런 태도와 대비되듯 행해지는 너그러운 모습은.
오히려 그에게 호감만 살 수 있다면 자리를 쉽게 주선해줄 거란 믿음이 생기기에 충분했다.
애초에 알리즈와 사이가 나쁜 쪽은 엑스널 쪽 녀석들이다.
대부분은 그저 방관자.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든 신경 안 쓰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런 만큼 엑스널과 관련된 이들만 아니라면 그들의 눈에는 알리즈가 기회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알리즈와 친해지면 1학년, 그것도 무려 A반과 다리를 놓기 쉬울 거라는 기회 말이다.
‘이거.’
에드먼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리스 쪽을 바라보았다.
지금 상황이 누구의 의도로 만들어졌는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자신만 눈치챈 것은 아닐 거다.
보는 눈이 이렇게 많다.
조금만 생각해 보더라도 지금 상황이 알리즈를 띄워 주려는 서리스의 의도임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아도 결론은 같았다.
가장 뜨거운 감자인 펜타니엄 서리스는 1학년 A반 인원과 상당히 두터운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알리즈를 형으로서 무척이나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이것 하나만으로도 알리즈의 이번 천옥지회 내의 중요도는 차고 넘칠 정도였다.
지금까지 의도치 않게 혼자 다닌 알리즈의 친구 자리를 꿰찰 수 있다면.
보다 많은 1학년 쪽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게 확실시되는 것이다.
“맹랑한 녀석 같으니.”
천옥지회를 이렇게 이용해 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에드먼은 헛웃음을 흘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서리스가 그의 형이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리겠지.
‘인재께서 원하시는 게 있다면, 거기에 맞춰주는 게 도리지.’
에드먼은 빙글 몸을 돌려 알리즈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미끼를 던져 주었으면 일단 거기에 다가가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이기에.
그리고 같은 상황.
서리스는 알리즈 쪽으로 슬그머니 모여드는 사람을 보곤 혀를 찼다.
의도한 것이긴 하나 몰려드는 그들이 하이에나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면 엑스널 쪽 녀석들이 섣불리 알리즈를 괴롭히지는 못하겠지.’
애초에 이제는 괴롭힘도 의미를 없을 것이다.
자신의 검을 찾은 알리즈는 변했다.
쭈뼛거리는 태도를 고수할 필요가 없었고.
더 이상 락스카의 그늘 아래에서 버둥거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알리즈가 지금까지 괴롭힘과 같은 행동에 아무런 대처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천옥지회를 권유했던 거고.’
서리스는 이곳에 오기 전, 알리즈를 따로 만났었다.
그와는 몇 가지 대화를 나눴고, 서리스는 알리즈에게 천옥지회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다.
처음에는 망설이던 알리즈였지만 서리스는 그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옛날 같았다면 알리즈는 고개를 저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검을 찾기 시작한 그다.
이번에라면 대답이 다를 거라 믿고 서리스가 물은 순간 알리즈는 입을 열었다.
「……갈게. 그러니 나 좀 도와줘. 서리스.」
형제, 같은 스승을 둔 제자.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이 깨닫지 못한 문제점을 꿰뚫어 봐준 사람.
그 세 가지가 맞물린 순간 서리스는 드디어 알리즈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동생이기 이전에 자기 사람으로서 알리즈는 스스로가 바뀌고자 서리스에게 도움을 청해 온 것이다.
‘아마 조금은 무리하고 있겠지.’
사람은 하루아침에 바뀌기 쉽지 않다.
알리즈가 지닌 유약한 심성은 자신의 검을 찾으며 많이 개선되었지만.
내면 깊숙한 곳에는 아직 그 성격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알리즈는 자신을 타파하고자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이었다.
패도와 여유로움을 내세우며 펜타니엄 둘째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자 노력한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알리즈의 변한 모습을 드러낼 만한 자리를 만드는 것뿐.’
그걸 위해 자신의 동기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형에게 인사하도록 부탁했던 것이다.
‘많이 컸구만.’
나이상으로는 알리즈가 형이긴 하나 정신연령은 서리스가 더 높았기에 그가 동생처럼 느껴졌다.
아직 제 앞가림조차 제대로 못 하는 어린 동생 말이다.
“왔네.”
그때, 새로운 인기척을 느낀 서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 한 남성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마키나 엑스널.
그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