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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31화 (131/275)

131화

서리스는 이후 아이랑에게 말했듯이 곧장 알리즈를 찾았다.

그동안 악스달에서 지내며 통성명을 한 단원들에게 물어보는 거로 서리스는 큰 어려움 없이 알리즈를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서리스와는 다른 훈련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고.

서리스는 창을 통해 그를 지켜볼 수 있었다.

‘요치아님께 배웠던 대로인가.’

알리즈는 훈련장에서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는 심상의 적을 상대로 스승인 요치아에게 배웠던 검로를 그려 나가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리스의 눈에는 역시 좀 어정쩡해 보이는 부분이 많아 보였다.

검에 자신감이 없다는 게 보는 것만으로도 여실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래서는 안 휘두르느니만 못하다.

별조차도 그가 자신의 검에 확신이 없다시피 하니 부름에 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정신적으로 핀치에 몰려 있다는 게 검에 그대로 다 드러나네.’

안 좋다.

그의 검은 산을 떠날 때보다도 훨씬 심각해 보였다.

‘이거,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그가 폭주해서 자기 학년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는 장면이 훤히 보였다.

“소년, 형이 신경 쓰이느냐.”

그러던 순간이었다.

서리스는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조금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기에 들려온 목소리가 당황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현무 모양의 귀걸이가 눈에 띄는 중년 여성이 있었다.

그리고 서리스는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독후, 불터렉스 윈터.’

발렌타인의 작은할머니 되는 사람이었다.

악스달 단장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서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서리스는 그녀에 대해 많은 걸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를 조심하라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뭐라고 했더라. 잘못해서 한 번 밉보이면 그날부터 밥숟가락 뜨는 것도 노심초사하게 될 거라 했던가.’

게다가 그녀는 서리스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걸어왔다.

알리즈와 형제 관계를 물어온 것부터가 이미 그 증거였으니까.

“본녀가 어떻게 너를 알고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구나.”

그녀는 단장의 위치.

고작해야 이제 막 입학한 아카데미 1학년생을 알고 있단 건 조금 의아스럽긴 했다.

“소년은 월석이 깨진 일 때문에 아카데미가 얼마나 떠들썩했는지 모르나 보지?”

그게 단장 귀에 들어갈 정도였나.

힘 조절할 걸 그랬다.

“그리고 흑마녀 때, 소년을 받아 준 게 본녀였느니라.”

“아.”

서리스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말대로 흑마녀로부터 도주 후 기절 직전.

서리스는 그녀의 얼굴을 본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동료 둘을 데리고 필사적으로 도주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는지라 개인적으로 이름을 물어봐 놨지.”

웃음을 흘려 보인 윈터는 서리스를 요리조리 뜯어 보기 시작했다.

타고난 육체는 완성에 무르익어 말할 것도 없고.

몸에서 흘러나오는 별은 평생 봐온 이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

거기다 흑마녀 사건 때 보여준 동료를 살리려는 의지까지.

‘보면 볼수록 물건이로다.’

윈터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느 단에 들어갈지는 정했느냐?”

“아직 다른 단을 돌아보지는 않았어서요.”

서리스가 입학한 지 아직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른 단을 눈으로 확인 못 한 그로서는 섣불리 대답할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악스달에 온다면 4학년이 되는 그 순간, 바로 학생 단장 자리를 주마.”

“예?”

뜬금없이 내민 학생 단장 자리에 서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녀가 미리 해두는 제안이니라. 소년의 재능이 어디서 가장 꽃피울 수 있을지 잘 생각해 보거라. 후후.”

작게 웃어 보인 윈터는 몸을 돌리려다 문뜩 떠오른 게 있는 듯 서리스를 다시 바라보았다.

“혹시 발렌타인을 아느냐?”

“아, 네, 친구 사이입니다.”

그래도 작은할머니라서일까.

발렌타인을 언급하는 윈터를 보고 서리스가 답하자 그녀의 눈매가 살짝 휘었다.

“오호라. 시간이 될 때, 그 아이와 함께 본녀를 찾아오너라. 좋은 선물을 줄 테니.”

뭔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서리스가 고개를 주억이자 윈터는 웃음소리와 함께 복도 저편으로 가버렸다.

뜬금없이 윈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서리스는 눈을 깜빡이곤 아차 하며 훈련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알리즈는 계속해서 검술 수련 중이었고, 그는 훈련장 안으로 발을 옮겼다.

“알리즈 형님.”

“아, 서리스.”

검을 휘두르던 자세에서 멈춘 알리즈는 서리스를 보곤 얼굴에 화색을 띄웠다.

역시 한눈에 보기에도 그는 수척해 보였다.

“검은 언제부터 휘두르고 계셨습니까?”

“어, 아침부터였던가? 어라, 벌써 저녁 시간이네.”

알리즈의 말을 듣고 서리스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그거다.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노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되는대로 계속 검만 휘두르는 것.

근육에는 무리를 주고, 피로는 쌓이며 그 와중에 성장의 압박이 정신을 몰아세우는 자해와도 같은 쓸모없는 짓.

“……알리즈 형님, 저와 잠깐 얘기 좀 하지 않겠습니까.”

“응?”

알리즈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는 곧 미안한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미안, 어쩌지. 곧 중간 평가가 있을 예정이라. 좀 더 검을 휘두르고 싶은데.”

알리즈가 말한 중간 평가는 아직 한 달이나 남았다.

그가 얼마나 초조한지 여실히 느껴진 서리스는 한숨을 내쉬곤 그의 반대편에 섰다.

동시에 그림자 검을 만들어 손에 쥐곤 알리즈를 향해 말했다.

“그럼 검을 휘두르면서 대화하죠.”

지금 알리즈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상태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언제나 착하기만 한 알리즈가 아닌.

마음에 담아둔 걸 솔직하게 털어 낼 수 있는 알리즈다.

“……하지만 서리스, 나는.”

“걱정하지 마십쇼.”

서리스의 그림자가 알리즈를 집어삼킬 듯 거세게 일렁였다.

“혼자 수련하는 것보다 백배는 나은 경험을 하게 해드릴 테니까요.”

알리즈를 일깨울 시간이다.

* * *

채엥, 챙!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진원지는 악스달의 훈련장.

그리고 소리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서리스와 알리즈였다.

“윽.”

“계속 갑니다.”

여유로운 서리스에 비해 알리즈는 그의 검을 한 번 받을 때마다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검이 무겁다.

입안에서 단내가 느껴졌다.

이건 아침부터 검을 휘둘러서일까.

아니다.

눈앞에 서리스가 내뿜는 흉흉한 기운에 지금도 몸이 움츠러들고 있지 않은가.

알리즈는 언젠가 외면했던 사실이 머리를 밀고 들어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서리스는 약한 게 아니었어.’

스승이었던 요치아가 서리스를 보던 그 눈빛.

그것은 자신의 미래를 맡겨 볼 법한 제자를 바라보는 스승의 눈빛이었다.

그리고 서리스가 입학하자마자 들려온 월석을 깨트렸다는 소문까지.

알리즈는 서리스가 자신과 같은 범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전부 착각이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아니, 진작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단지, 형제 중 자신만 못났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거다.

현실을 깨닫게 되자, 알리즈는 온몸이 심연 속 나락에 빠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외면한 듯한 이 더러운 기분은 무슨 짓을 해도 떨쳐낼 수 없을 거 같았다.

‘그럼 그렇지.’

내 주제에 무슨, 알리즈는 그런 생각을 품은 채 검을 쥔 손에서 힘을 빼기 시작했다.

그냥 죽고 싶다.

그런 생각이 문뜩 들었다.

아무런 쓸모도 재능도 없는 자신이 이렇게 고생하며 얻을 수 있는 건 놀림과 동정뿐.

오대가의 직계이면서도 아카데미 B반이라는 애매한 위치.

하물며 B반에서 1등조차 되지 못하는 중위권.

그렇담 자신의 생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따악!

그 순간 알리즈는 손목에서 저릿하고 올라오는 통증에 눈살을 찌푸렸다.

서리스의 검이 그의 손목을 타격한 것이었다.

“알리즈 형님.”

서리스의 목소리를 듣기 두려웠다.

형제들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자신의 부끄러운 민낯을 동생이 알까 봐 노심초사했다.

“검, 그따위로 쥘 거면 차라리 쥐지 마십쇼.”

갑자기 들려온 비난에 알리즈는 흠칫하고 움츠러들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 알리즈를 보며 서리스는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주위에서 누가 검 휘두르랍니까? 어릴 때야 집사들이 검을 가르쳐주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 어느 누구도 검을 강요 안 합니다.”

서리스는 검면으로 자기 손을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알리즈 형님 검에서 느껴지는 게 뭔지 아십니까? ‘아, 세상 엿 같다.’ ‘검 진짜 싫다.’ 하는 잡생각만 듬뿍 묻어 나옵니다.”

알리즈가 침묵하자 서리스는 그에게 검을 겨누었다.

“그대로 세계 침식 들어가면 객사 당하기 딱 좋을 팔자란 겁니다.”

“……차라리 그게 낫지 않을까.”

그 순간 침묵을 깨고 입을 연 알리즈가 부서질 듯이 위태로운 미소를 보였다.

“나 같은 건 그냥 그렇게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잖아.”

“뭔 개소립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서리스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제가 왜 알리즈 형님께 지금 이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까?”

“……검을 들지 말라며. 이렇게 검을 들면 죽을 거니까.”

“그건, 진짜 그만두라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바꾸라는 겁니다.”

알리즈는 서리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형님, 재능만이 전부인 세계에 남아 있는 건 형님의 선택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건 가문이나 주위 의지가 아니라 형님의 의지로 검을 쥐라는 겁니다.”

알리즈는 스스로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면 분명 사실이었다.

그는 범인이다.

대가문 펜타니엄의 직계이기에 검을 쥐었을 뿐.

단 한 번도 그의 뜻으로 검을 쥔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의 검은 늘 비어 있었다.

남이 시켜서, 주변 환경에 맞춰서, 그렇게 쥔 검이 대체 무슨 의미를 가진단 말인가.

검이란 심상의 영향을 무척이나 많이 받는다.

요치아가 검을 만병지왕이라 평했듯.

의지를 담지 못하는 검은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그 영감님도 알리즈에게 그 이상 검을 가르치지 못한 거겠지.’

아무리 일깨워주려 해도 본인이 두 발로 서지를 않는데 무얼 가르치랴.

“……내 의지로?”

“예, 제가 보기에 형님은 단 한 번도 검에 자기 의지를 담아 본 적이 없습니다.”

“서리스, 나도 검을 쥔 지 벌써 16년이야. 5살 때부터 검만 쥐었는걸.”

“5살이 무슨 자기 의지 피력이 그렇게 강하다고 검을 쥔답니까? 그냥 주위에 맞춘 거지.”

서리스는 가잖는다는 듯 콧방귀를 내쉬곤 알리즈를 바라보았다.

알리즈도 과거로 돌아온 서리스가 보기에는 그저 애였다.

펜타니엄이라는 거대한 집단에 잡아 먹혀, 자기 의지를 상실해 버린 어린애.

그러니 지금 알리즈에게 필요한 건 독립이었다.

“그러니 오늘부터 한 번 펜타니엄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 알리즈라는 사람에 집중해 보십쇼.”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야 할 시기.

이제 막 성인이 된 아이들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

“그림자도 쓰지 말고, 별도 쓰지 말고, 청운귀명도도 잊고, 그냥 평범한 검을 휘둘러 보는 겁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검을 휘둘렀고.

앞으로 그 검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리즈는 저 스스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가 멍하니 서리스를 보고 있자 서리스는 그림자 검을 지웠다.

“당분간은 꾸준히 찾아올 거니까. 농땡이 피울 생각 하지 마십쇼. 형님 괴롭히는 엑스널 그놈은 제가 어떻게든 한 번 정의 구현해 줄 생각이니까.”

이쪽도 당한 게 있는지라 한 방 먹일 생각을 여전히 품고 있는 서리스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러다 문뜩 이 말 정돈해줘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죽으면 어머니가 제일 슬퍼할 테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시고.”

정곡이 찔린 듯 알리즈의 몸이 한차례 움찔 떨렸다.

어느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삶을 붙잡게 만드는 존재이니 말이다.

“물론 저도 말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서리스가 훈련장을 떠나자 알리즈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오랫동안 검을 쥔 탓에 굳은살이 배이고 흉터가 남은 손이 보였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서리스의 말을 듣고 나니 이 손에 제 의지가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조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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