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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20화 (119/275)

120화

피부조차 찢어 버릴 유리 조각이 몰아치는 폭풍.

세계 침식자로서 두 사람을 상대하게 된 미키는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이제야 막 워너힐 아카데미 시험을 치르고 있는 소녀가 부릴 기교를 아득히 넘어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키는 불터렉스에 대해 어느 정도 들은 바가 있다.

불터렉스는 사마독주라는 비기를 바탕으로 체내에서 독을 만들어 그것을 사용하는 대가문이다.

그들이 지닌 독은 만악의 질병을 통해 끊임없이 개량되었으며.

닿기만 해도 살과 뼈가 녹아내리거나, 공기 중에 흘려 놓은 독에 내장이 중독되어 으스러지는 등.

다양한 종류의 독이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대가문 중 가장 살상에 적합한 가문.’

지금은 귀왕령이라는 암기만을 다루고 있는 그녀지만, 여기에 독이 더해진다면 얼마나 위험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발렌타인 양.”

그렇기에 미키는 입을 열었다.

날아드는 유리 조각 암기를 모조리 쳐 내며 그녀의 두 눈이 호선을 그리듯 휘어졌다.

“시험감독관님 이야기를 잊으셨나요? 이건 시험이에요. 최선을 다해야죠.”

발렌타인의 두 눈이 흔들렸다.

아무리 시험이라지만 독은 위험했다.

상대를 얕보는 게 아니라 정말로 위험한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착용한 건 세계 침식을 응용해 만든 새로운 방어 무구니까요. 조언은 여기까지입니다.”

살상에 적합한 독이기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곳은 그녀의 전력을 보고 입학시킬지 말지를 결정할 시험.

미키는 마지막 조언과 함께 귀왕령을 지나쳐 발렌타인의 품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내 그녀가 망설임 없이 발렌타인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발렌타인은 급히 귀왕령을 불러들였다.

쩌억!

분명 방어했음에도 불구하고 미키의 압도적인 근력에 밀려 발렌타인이 귀왕령과 함께 날아갔다.

“윽.”

둔기를 얻어맞은 듯한 강렬한 통증에 헛구역질한 발렌타인은 숨을 한 차례 골랐다.

그녀가 보여 준 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발렌타인의 춤사위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락, 사라락.

방금까지는 그저 암기의 역할의 지나지 않았던 귀왕령 위로 새빨간 무언가가 묻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치 피바람이 부는 듯.

독을 머금은 귀왕령을 두른 발렌타인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시무시했다.

‘아이랑은.’

그러면서도 미키는 아이랑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했다.

윌즈베르크 아이랑.

암성이라는 별호까지 지닌 소녀.

어째서인지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미키의 눈에 스치듯 지나간 박쥐가 보인 것이.

그녀가 의문을 품기도 전에 미키는 전방에서 날아드는 독을 머금은 귀왕령과 함께 등 뒤에서 나타난 수천 마리의 박쥐를 보고 당황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서리스가 ‘그것’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윌즈베르크.

대가문 중 마왕만큼이나 특이한 비기, ‘노스페라투’를 사용하는 가문.

그리고 펜타니엄과 같이 유일하게.

그림자를 다루는 가문이다.

전방은 귀왕령, 뒤는 박쥐에 둘러싸여 당황할 찰나 그녀는 발아래 그림자가 일렁였음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림자에서 불쑥 튀어나온 다리가 미키의 배를 올려 쳤다.

그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미키의 몸이 한순간 부웅 떴고.

그 틈을 타 박쥐들이 미키를 몰아쳤다.

“저희 윌즈베르크는 우연인지 오대가인 펜타니엄과 같이 그림자를 다뤄요.”

박쥐들 속에 둘러싸여 모습까지 보이지 않는 미키를 응시하던 발렌타인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등 뒤에는 어느샌가 나타난 아이랑이 서 있었다.

“비록 펜타니엄만큼은 아니어도 그림자 이동을 할 수 있는 가문의 사람인 소녀가.”

면사포 아래 선홍빛 입술은 호선을 그렸다.

발렌타인의 감정을 읽어 내려는 듯 그녀의 눈동자가 재빠르게 훑었다.

“서리스 님과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아이랑의 말이 이어진 순간, 콰앙 하는 폭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전 박쥐에 먹히듯 가려진 미키가 박쥐를 모조리 날려 버린 것이었다.

미키의 흉흉한 기세에 ‘어머.’ 하고 소리 낸 아이랑을 뒤에 두고 발렌타인은 조용히 말했다.

“아이랑 님.”

어쩐지 살벌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그러나 발렌타인은 처음과 같이 무표정으로 그녀에게 고했다.

“그것보다 지금 시험이 우선이지 않을까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발렌타인이 말한 순간 아이랑은 어떠한 충동을 느꼈다.

살짝 붉어진 귀 끝이 그녀가 적잖이 동요하고 있다는 걸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발렌타인의 눈동자는 이성을 잃지 않은 채, 올곧게 현재 상황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 좋아요. 워너힐 아카데미에 오길 잘했네요.’

숨은 보석을 발견한 듯 몸을 떤 아이랑은 갈증을 삼켰다.

서리스도 그렇고, 그의 주위에는 아이랑의 취향인 사람이 잔뜩 있었다.

“저희 이따가 진득하게 이야기해 봐요.”

그 사실을 발렌타인은 알 수 없었지만, 아이랑의 기세가 달라졌음을 느낀 그녀는 전투에 집중했다.

“쯧, 하여튼 저 녀석은.”

그리고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이바드라 및 같은 일곱별인 뇌성은 동시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후 경기는 상당히 비등비등하게 진행되었다.

템포를 올린 아이랑에 맞춰서 발렌타인도 기세를 올렸고, 그 결과 치열한 접전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피해가 일정 이상 넘어간 미키의 마구가 부서지며 끝마쳤다.

5성급 수준에 마구였던 만큼.

그것만으로도 둘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잘 보였다.

승리 후 싱글벙글한 아이랑에 비해 발렌타인은 무표정이었지만.

아이랑은 발렌타인을 뒤따라가며 살갑게 굴었다.

“나는 시험 붙을 수 있으려나.”

“워너힐 아카데미 들어가면 저런 사람들이랑 경쟁하는 거구나.”

처음으로 직접 다른 시험생이 시험을 치르는 과정을 봐서일까.

몇몇 시험생들은 벌써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발렌타인과 아이랑은 누가 보아도 시험생들 중 최상위권 실력이었고.

덕분에 뒤에 이어지던 시험들은 아니나 다를까, 첫 시험에 미치지 못했다.

실제로 시험 중 조교가 착용한 마구를 끝내 부수지 못한 사람들이 더러 나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험이 차츰 무르익어 갈 때쯤.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두 명이 대련장 위로 올랐다.

한 명은 염성 바르크 이바드라.

또 다른 한 명은 뇌성 일렉시즘 호라이즌이었다.

“일곱별 둘이다.”

“와, 그럼 상대하는 조교는 대체 어떤 사람이야?”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사이, 대련장 위로 올라온 호라이즌과 이바드라는 서로 살짝 거리를 띄운 채 서 있었다.

대련장 위에 올라왔음에도 한마디도 않고 있는 두 사람은 딱 봐도 어색함이 느껴졌다.

“너희 둘, 일곱별인데 서로 아는 사이 아니니? 왜 그리 떨어져 있어.”

그런 순간 그들의 앞에 조교 한 명이 걸어왔다.

나긋나긋한 표정인 그는 손목에 쇠사슬 같은 것을 두르고 있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별이 느껴졌다.

강하다.

둘은 그를 보며 직감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아크리시아 오웬이야. 호라이즌은 아마 날 알려나.”

“……아크리시아 가주 후보.”

“오, 다행히 기억해 주네. 하긴 같은 대가문 마키나 소속이니. 어릴 때 몇 번 마주치긴 했지. 다시 봐서 반가워.”

오웬은 키득거리며 말해왔다.

그러나 어쩐지 호라이즌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특히 마키나 소속이라는 것에 호라이즌은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호라이즌, 아직도 영성의 말을 신경 쓰고 있나.”

그리고 그런 호라이즌을 본 이바드라가 말을 내뱉었다.

호라이즌은 침묵했고, 이바드라는 가볍게 혀를 찼다.

“속 좁은 녀석. 그런 걸 아직도 담아 두고, 피곤하지도 않나.”

“염성, 대가문인 너는 모른다.”

무뚝뚝한 호라이즌의 대답이 돌아왔다.

일곱별이 처음 모인 그날.

뇌성인 호라이즌은 같은 일곱별인 영성에게 무참하게 깨졌다.

그리고 그때 들었던 그 말.

소가문 따위가 대가문과 겸상하려 든다는 그 말은 아직까지도 호라이즌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영성(靈星)

마키나 뮤리널

자신이 속한 소가문 일렉시즘의 대가문이자 오대가인 마키나의 직계.

그녀 또한 자신과 같은 또래인 샬롯에게 느낀 시기와 질투를 풀어낸 것에 지나지 않다는 걸 뇌성은 알지만.

그때 느꼈던 모멸감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날로 그는 대가문 자체에 거북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 그래, 그렇게 평생 속 좁게 살아라.”

이바드라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며 오웬을 노려보았다.

“네놈 눈에 이 몸이 어떻게 비치는지는 몰라도.”

이바드라의 발아래 피어난 불꽃이 화륵 하고 타올랐다.

“그렇게 세상을 협소하게 보면 손해 보는 건 네놈일 거다.”

한때 자신이 그러했으니까.

같은 오대가 소속이고, 그만큼의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익히 알던 천재들과는 너무나 달랐던 사람을 이바드라는 알고 있었다.

“13번째 시험 시작.”

시험감독관의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이바드라는 바닥을 박찼다.

* * *

번개와 화염이 치솟는 대련장 위.

한창 전투가 진행 중인 세 사람이 보였다.

멸천화륜을 바탕으로 화염의 검을 다루는 이바드라.

뇌뢰천성을 바탕으로 번개의 창을 다루는 호라이즌.

둘의 공세는 멀리서 보는 이들조차 저릿하게 느껴질 만큼 강했으나.

상대가 너무 나빴다.

아크리시아 오웬.

워너힐 아카데미 졸업생이자 아크리시아 가주 후보인 그는 별로 꼬아 만든 사슬을 다룬다.

그의 사슬이 휘둘러질 때마다 단단한 철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화염도 번개도 파훼 당하기를 반복할 뿐.

이바드라, 호라이즌 둘 중 어느 누구도 오웬의 사슬을 뚫고 닿을 수가 없었다.

이바드라와 호라이즌이 각자 날아든 순간 오웬의 사슬은 그들을 한데 묶어 버리곤 공중으로 날려 버렸다.

그럼과 함께 그의 사슬이 양팔에서 쏟아져 나오며 둘의 몸을 정확히 강타했고, 두 사람은 추락함과 함께 바닥을 굴러야 했다.

“크윽.”

“윽.”

동시에 통증을 호소한 두 사람이 몸을 일으키자, 오웬은 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조별 시험이란다. 게다가 그렇게 호흡 하나 안 맞추고 날 상대하기에는, 너희 실력으로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생각 안 하니.”

친절하게 둘의 문제점을 집어 준 오웬은 사슬을 자기 팔에 묶었다.

이바드라와 호라이즌은 연계가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의 실력이 뛰어난 건 맞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동년배 수준이다.

천재들만 모이는 워너힐 아카데미.

하물며 그런 아카데미에서 졸업까지 한 오웬을 상대로 개인으로는 이기기 버겁다.

실력도 별도, 가진 힘도 지금은 오웬이 더 우위에 있는 것이다.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스무 살.

아무리 큰 고목으로 자라날 새싹이라 할지라도, 아직은 고목보다 한참 작은 나무 그늘에 가려지는 때이다.

적어도 지금은 두 사람은 힘을 합치지 않고서는 오웬을 꺾을 수 없다.

“아니면 진짜 세계 침식자처럼 해줘야 하나.”

한숨을 내쉰 오웬의 발아래 사슬이 늘어지니 시작했다.

뒤이어 그에게서 쏟아지기 시작한 별은 이바드라와 호라이즌도 바짝 긴장하게 했다.

3차 시험은 나중에 세계 침식자를 상대하는 걸 상정하여, 대인전이 얼마나 가능한지를 시험하는 것도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네 가문에서 천재 소리를 들어왔을 우물 안 개구리들을 일깨워 주기 위함도 있다.

미개척 지역에 세워진 워너힐 아카데미는 위험한 일을 주로 한다.

당연히 매년 사상자도 꾸준하게 나오고 있으며 세계 침식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싸워 나가야만 한다.

아무리 가문에서 세계 침식이 얼마나 위험하고, 그들이 맡아야 할 역할이 중요한지 말해 주어도.

이제 막 청소년을 벗어나 성인이 된 아이 중 그 사실을 자각하는 건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필요한 3차 시험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우물 밖에 얼마나 많은 강자가 즐비하고.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세계 침식과 세계 침식자들이 위험한 것인지.

“호라이즌, 이 몸에게 맞춰라.”

오웬이 진심으로 나오려고 하자 위험을 느낀 이바드라가 호라이즌을 향해 말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그가 판단한 것이었다.

자기한테 맞추라니.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에 호라이즌은 눈썹을 찌푸렸다.

“……헛소리 마라. 네가 나한테 맞춰라.”

“그럼 그렇게 하지.”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의 말이었다.

자기 말을 쉽사리 납득한 이바드라를 보고 호라이즌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그 이바드라가 자신에게 맞추라는 말에 저렇게 쉽게 납득한다고?

“뭐 하나. 맞추라며.”

얼빠진 호라이즌을 보고, 이바드라가 쏘아보자 그는 표정을 고쳤다.

“……이바드라, 못 본 사이에 뭔가 바뀌었군.”

“그러냐.”

이바드라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생각했다.

얼마 안 가 호라이즌 또한 바뀌게 되리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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