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우선,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되었나를 설명해 보자면 학교 지부를 제외한 4지부를 열심히 돌아다녀 봤지만 남은 방은 없었다.
애초에 워너힐 아카데미가 미개척 지역 중심부에 있는 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이 적기에, 여관의 숫자도 그와 맞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입학 기간을 대비해 빈 건물들을 여관으로 임시 운영하기는 했지만.
그마저도 꽉 찬 게 지금 상황이었다.
“왜 방부터 먼저 잡아 두지 않은 거냐?”
“……솔직히 생각도 못 했어.”
셀링과 함께 방을 미리 잡아 뒀던 이바드라는 서리스에게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서리스는 지금 이바드라가 잡은 여관 식당에 앉아 있었다.
그를 걱정한 발렌타인도 함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시험만 생각했어.’
워너힐 아카데미가 워낙 딴 세상 이야기였던 게 버릇이 되어 버려서일까.
서리스는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도 워너힐 아카데미를 너무 멀게 생각했다.
‘아니면 들뜨기라도 했었나.’
아무리 그래도 기본적인 것을 잊었다는 사실이 내심 부끄러웠다.
그런 서리스를 보고 서발광과 도로시가 바로 위로해 주었다.
“서, 서리스는 잘못 없어. 나도 잊고 있었는걸!”
“히, 난 밖에서 자도 괜찮아.”
하지만 그래도 서리스는 나름 리더 역할이다.
두 사람이 믿는 만큼 해 주지 못한 것에 미안했다.
게다가 내일은 3차 시험이 있다.
도로시와 서발광의 컨디션을 고려하면 제대로 된 곳에서 재워야 했다.
“서리스 님, 그럼 차라리 제 방에서 주무시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워너힐 아카데미에 혼자 온지라 방에 몇 명 더 재울 수 있습니다.”
그러자 보다 못한 발렌타인이 말해 왔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상황이 급하다.
발렌타인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네, 물론이죠. 서리스 님에게 빚진 게 많은걸요.”
“그럼 도로시와 서발광만이라도 우선 부탁드립니다. 저는 좀 더 방을 알아보겠습니다. 넷이서 쓰기에는 힘들 테니까요.”
서리스가 미안한 듯 말하자, 발렌타인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면서 발렌타인은 왠지 모르게 어딘가 아쉬운 듯 자신의 옆머리를 매만졌다.
“……정작 중요한 네가 그러면 어쩌잔 거냐.”
“상황이 이렇긴 하지만, 서리스 님도 약한 부분이 있네요.”
그러자 이바드라와 셀링이 묘한 눈으로 서리스를 바라보곤 서로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행동이 의아했던 서리스는 이바드라를 보며 물었다.
“왜, 뭔데? 남은 방 못 구해서 급하건만.”
“하, 이 몸이 이런 녀석에게 진 거냐.”
이바드라가 기가 찬다는 듯 한숨 소리를 낸 순간 여관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크라페가 서 있었고 후드를 눌러쓴 그는 코를 한 차례 움찔거리곤 서리스 쪽을 보았다.
저놈 사람을 냄새로 찾는 건가.
“뭐 해.”
“너야말로 어디 갔다 오냐?”
2차 시험이 끝나고 줄곧 보이지 않았던 그이기에 서리스가 의문을 품자 크라페는 코끝을 매만졌다.
“악취가 나서.”
악취.
설마 그사이에 세계 침식이 나타나기라도 했었나.
크라페를 힐끔 보니 옷이 이리저리 더러워져 있었다.
아무래도 크라페는 혼자서 세계 침식을 막고 온 모양이었다.
‘역시 힘을 숨기고 있는 건 맞는 모양이군.’
자기랑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일지 감은 안 잡힌다만, 서리스는 크라페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만은 확신했다.
그가 본심을 내면 일곱별을 상대로도 밀리지 않을 것이란 것도.
“크라페, 넌 방 잡아 둔 거 있어?”
서리스와 함께 왔던 크라페다.
당연히 잡아 둔 건 없으리라 생각한 서리스가 안쓰러워하며 묻자 크라페가 대뜸 고개를 끄덕였다.
“있어.”
“너 우리랑 쭉 같이 있지 않았냐?”
“지인.”
지인 찬스인가.
나른한 표정으로 말하는 크라페를 보고 서리스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미안한데 혹시 지인분 쪽에 남는 방이 있을까. 도로시와 서발광도 포함해서. 우리가 잡아 둔 방이 없거든.”
“가능. 방 많으니까.”
그 말을 듣고 서리스는 화색을 띠었다.
설마 기대도 안 했던 크라페 쪽에서 일을 해결해 줄 줄이야.
“다행이다. 고맙다. 크라페!”
서리스는 아쉬운 듯 자신을 바라보는 발렌타인의 속도 모르고 기뻐했다.
“발렌타인 님, 여러모로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네, 다행이네요.”
하지만 서리스가 더 고생 안 해도 된다는 것에 발렌타인도 따라 기뻐하며 웃어 보였다.
정말 예전보다 웃는 표정이 매우 자연스러워진 발렌타인이었다.
“이 몸이 복장 터져 죽으면 저놈 탓이지 않을까?”
“아카데미에서도 저러실까 두렵네요.”
이바드라와 셀링은 아직도 쑥덕거리고 있었지만, 서리스는 무시했다.
“바로 안내해 줄 수 있을까?”
“따라와.”
크라페가 말하자 서리스는 이바드라와 셀링, 발렌타인에게 인사를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해도 저문 지 오래라 봄 날씨임에도 추워지고 있다.
가능한 한 빨리 휴식을 취해 두는 게 내일 시험을 위해서라도 좋았다.
하나둘 문 닫기 시작하는 가게들을 지나 한참을 간 결과.
크라페가 도착한 곳은 위수단 악스달의 지부였다.
악스달 지부에서도 상당히 구석인 이곳에는 크라페가 말한 지인의 집으로 추정되는 허름한 집이 하나 있었다.
‘왜 방이 있나 했더니.’
저 다 무너져 가는 꼴을 보라.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집을 보고 있으니 어째서 방이 남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와, 무너지겠다!”
뭐든 솔직하게 말해 버리는 도로시가 이럴 정도니 말 다했지.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저런 집이라도 감지덕지였다.
“가자.”
크라페가 앞장서자 서리스는 그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펼쳐진 것은 서리스도 흠칫하게 만든 광경이었다.
분명히 바깥 모습은 허름한 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부는 화려하기 짝이 없는 호텔처럼 너무도 고품질의 복도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거, 설마.”
“마법. 마왕이 지내던 곳이야.”
마왕이라는 말에 서리스는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마왕 아라한.
그는 도로시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걸 떠나 서리스는 그 이름이 여기서 나올 줄은 몰랐다.
“마왕.”
도로시가 마왕을 곱씹었다.
“크라페, 마왕이랑 아는 사이야?”
“응, 서리 마탑은 우리 가문 안쪽에 세워져 있으니까.”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새벽 마탑과 달리 서리 마탑은 그라말테 대가문 내부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그가 마왕과도 아는 사이였는 모양이다.
마왕은 서리 마탑주였으니까.
“그래서 여기 알려 줬어. 학창 시절에 썼다고.”
나른한 표정으로 답한 크라페를 보고 서리스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도로시가 마왕의 딸이라는 건 크라페는 모르는 일일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었겠지.
어딘가 착잡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도로시의 옆에 서발광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것만으로 도로시는 충분한 듯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와 서리스의 옆에 섰다.
“직계님, 나 목표 하나 생겼어.”
“뭔데.”
“아빠, 나중에 한 번 만나러 가볼래.”
예상했던 대답이다.
그리고 서리스는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도로시가 마왕을 만나게 될 거라고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서리스는 도로시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어 주곤 앞으로 걸어갔다.
마왕의 예전 거처는 크라페가 말했던 대로 방이 무척이나 많았다.
덕분에 각자 여유롭게 방을 하나씩 쓸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내일로 시험은 끝나겠지.’
서리스는 침대에 누운 채 내일 있을 시험을 떠올리며 그렇게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운성조식을 한 차례 돌린 서리스는 가볍게 숨을 내쉬곤 밖으로 나왔다.
마왕의 거처는 마치 마수가 사람이 된 듯한 인형들이 존재했는데, 그들은 식사 및 청소 등 여러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그들을 본 도로시의 말대로라면 인형들에게는 마왕의 별이 새겨져 있다고 하며.
내부에는 마수의 일부분이 있다고 한다.
잘도 저런 걸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그들이 차려 준 음식을 먹고 워너힐 아카데미로 향했다.
적당한 시간에 움직인 만큼 입구에는 벌써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입구 쪽에는 어제 명시한 대로 합격자 명단이 적혀 있었고.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한 이들이 씁쓸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었다.
“다 있네.”
당연하지만 서리스 일행은 전원 명단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애초에 크라페도 그렇고 셋 다 또래 중에서는 압도적이기도 하니 당연한 결과였다.
“드디어 3차구나.”
서발광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서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워너힐 아카데미 시험은 3차까지만 존재하므로 이번이 마지막 시험이기 때문이다.
“서리스.”
서리스가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고 사람들 틈 사이로 나오자, 때마침 지나가던 이바드라와 셀링과 마주쳤다.
그는 합격자 명단을 힐끔 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서리스를 바라보았다.
“2차 합격자 명단을 확인할 필요 있나? 어차피 너나 이 몸이나 붙었을 텐데.”
이를 들은 건지, 명단에 이름이 없어 낙심하던 탈락생은 몸을 움찔거리며 이바드라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곧 그가 염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더 침울해질 뿐이었다.
확실히 일곱별은 다들 규격 외 취급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바로 아레나로 가면 된다. 저걸 보는 건 시간 낭비다.”
‘부정은 하지 않겠다만.’
이바드라는 저 자신의 오만한 발언으로 인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한몸에 받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아침부터 참, 말에서 오만이 뚝뚝 떨어지네요.”
그런 순간 서리스는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아이랑이 서 있었고, 그녀는 어제 대동한 세 명을 함께 데리고 있었다.
“너도 확인 안 한 거 뻔히 안다만?”
“부정은 안 하겠지만요.”
오늘도 면사포를 쓰고 있는 아이랑은 서리스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어제 방을 못 찾으신 듯하였는데 괜찮으셨나요?”
“네, 크라페가 도움을 줬거든요.”
“다행이네요. 정 안되면 소녀한테 도움 청하라고 염성에게 말씀드려 놨는데. 보아하니 전하지도 않은 모양이네요.”
아이랑이 이바드라를 보자, 그는 콧방귀를 내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역시 사이가 안 좋은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합류한 이들과 함께 아레나로 가자 서리스보다 먼저 도착한 발렌타인이 보였다.
잿빛 머리카락 아래, 너무도 무표정한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어 그 옆자리에는 차마 아무도 앉지 못했다.
“발렌타인 님.”
“아, 서리스 님!”
그러나 서리스가 그를 부르자마자 발렌타인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순식간에 변한 그녀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넋을 잃은 표정을 지었지만, 서리스는 익숙한 듯 발렌타인의 옆에 앉았다.
참고로 뇌성은 또 저 멀리 구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이바드라, 뇌성이랑 사이가 안 좋냐?”
이제는 한 번 물어봐야겠다 싶어 이바드라에게 말하자, 그는 사자 같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정확히는 저 녀석이 우리를 싫어한다는 것에 가깝겠지.”
“싫어한다고? 이유는?”
“네 동생과 동갑인 일곱별은 알고 있겠지.”
‘알다마다.’
이바드라가 말한 그자는 샬롯과 줄곧 비교되던 탓에 미쳐 버려 좋지 않은 일을 치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왔었다.
“그 녀석이 뇌성에게 지랄한 적이 있다. 소가문 주제에 대가문과 겸상하려 한다면서.”
“이바드라 님, 욕은 쓰시면 안 됩니다.”
“넌 쓰면서 이 몸한테는 쓰지 말라는 거냐.”
“이바드라 님은 특별하니까요.”
셀링과 한 차례 투닥거린 이바드라를 보며 서리스는 뇌성 쪽을 바라보았다.
그 이후로 대가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건가.
일곱별 중 소가문은 고작 둘.
가문의 차이는 알게 모르게 짓눌릴 수밖에 없는 법이지.
‘그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왠지 뇌성과 이야기해 보면 잘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제군들 주목, 지금부터 3차 시험에 관해 설명하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 9시 정각이 되자마자 어제의 시험감독관 앙켈니우스가 단상 위에 올랐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모으곤 발을 쿵 굴리자 그의 뒤편에 시험 조교들이 우르르 올라왔다.
그들은 어딘가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물건들을 제각기 착용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의문을 가지기 전에 앙켈니우스가 말했다.
“3차, 이번 회 마지막 시험은 세계 침식자와 싸우는 것이다.”
쉽지 않은 시험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