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앙켈니우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험생들은 전원 침묵하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드디어 워너힐 아카데미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긴장된 기색을 보이는 와중 서리스는 흥미가 돌고 있었다.
시험관이라고 서 있는 앙켈니우스에게서 느껴지는 별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게 워너힐 아카데미 수준인가.’
시험감독관을 할 위치라면 꽤나 높은 위치에 있을 터.
서리스는 워너힐 아카데미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떠올렸다.
워너힐 아카데미는 총 다섯 개의 단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수단(角宿團) 로렐라이
규수단(奎宿團) 테르넬
귀수단(鬼宿團) 플레미아
위수단(危宿團) 악스달
남두단(南斗團) 발리움
1년간의 육성 과정을 거친 뒤 각 단장에 의해 뽑히며.
만약 어느 단에도 뽑히지 못할 시, 자퇴하거나 1년 육성 과정을 다시 거치게 된다.
이후 육성 과정이 끝나 단에 뽑힌 이들은, 그곳에 속한 채 4학년까지의 모든 수료 과정을 밟는데.
이때 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도 있는 반면.
졸업한 뒤에도 각 단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자도 더러 있었다.
‘각 단의 위용은 말할 것도 없으니까.’
세계 침식 전문 조사 협회라는 수식어를 걸고 있는 로렐라이도 이쪽 소속.
워너힐 아카데미가 현재 아카데미 지부 말고도, 4개의 단이 운영되는 건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달리 말해 각 단 간의 파벌 싸움을 방지하고자 새롭게 설립한 남두단 발리움을 제하고.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주요 역할을 하는 것이 4개의 단이었다.
‘1년 뒤긴 하지만.’
시험생들 중 대부분은 어느 정도 마음에 정해 둔 단이 있을 것이다.
‘나야 로렐라이만 아니면 아무래도 좋아.’
거기에는 천구 아리즈 아리온이 있다.
서리스로서는 그가 자신의 검은별을 눈치챈 상태이니, 그쪽으로는 절대 갈 마음 없었다.
“그럼 첫 번째 시험의 방식을 이야기하지.”
그가 고개를 뒤로 돌리자 단상에는 때마침 시험 조교로 보이는 이들이 커다란 월석(月石)을 들고 올라왔다.
“첫 번째 시험 방식은 간단하다. 월석 위에 손을 올리고 너희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별 출력을 내면 된다.”
그의 말마따나 정말 간단한 시험 방식이었다.
문제는 이런 시험 방식은 절대적인 재능으로 나누는 방식.
“통과자는 상위 50%. 그 이하는 거론할 가치가 없으니 전원 탈락이다.”
세계 침식을 막을 수 있는 영웅을 키우기 위해 설립된 워너힐 아카데미인 만큼.
재능이 없는 이는 다음 시험을 볼 자격조차 없다는 듯 확고하게 말했다.
기본조차 넘어서지 못한다면 기교 따위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뜻이었다.
“측정은 개인으로 이루어진다. 걱정하지 말고 모든 힘을 다 쏟아라.”
그런 거라면.
서리스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힘을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저쪽 배려의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 * *
1차 시험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
이번 시험생들을 보기 위해 온 각 단의 학생들이 시험장의 모습이 투영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꽤나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고, 반면에 관심 없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올해는 수준 높네요.”
“그 일곱별 중에 네 명이나 있는 해니까.”
그 말대로 올해는 확실히 수준이 높았다.
무슨 황금의 해라도 되는 양 시험생들 중 눈에 띄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같은 일곱별 생각은 어떤가요? 누가 가장 강하죠?”
그 순간 구석에서 안대를 끼고 잠을 청하던 이에게 몰렸다.
일곱별 중 가장 연장자이자 작년에 입학한 그는 시선이 거슬렸던 듯 혀를 찼다.
“마성, 스타리즈. 그놈이겠지.”
“새벽 마탑주 마황의 아들 말이죠? 그 정도인가요?”
“그 정도야. 규격 외. 그놈이랑 붙어 볼 수 있는 건 펜타니엄의 그 꼬맹이밖에 없겠지.”
그 말을 듣고 다들 마성에게 관심을 보였다.
일곱별 중 한 명인 그는 작년 워너힐 아카데미 성적 1위를 당당히 쥐었다.
그런 그가 단언할 정도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재능의 소유자이리라.
“마침 나오네.”
그러자 우연히도 화면에는 스타리즈가 비추고 있었다.
백발의 머리카락과 후줄근한 옷차림이 눈에 띄는 그는 성큼성큼 걸어와 월석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곤 마치 화면을 보는 이들을 이미 눈치채고 있다는 듯 이쪽을 보곤 빙그레 웃었다.
화악!
그 순간 화면이 새하얀 빛에 휩싸였다.
한순간 마법 고장을 의심케 할 정도로 강렬한 빛에 모두가 놀란 찰나.
그 빛이 스타리즈의 별 출력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들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했다.
시험생이 보일 수준을 아득히 넘은 별 출력이었기 때문이다.
“별 출력 9999…… 미친, 시험 월석으로 체크할 수 있는 최대 수치잖아.”
안경을 쓴 남성이 표시된 수치를 믿을 수 없다는 양 중얼거리자 나머지도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워너힐 아카데미 역사상 저런 수치를 기록한 이는 손에 꼽았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저 수치를 기록한 이는 전부 천상사성이라는 자리에 오른 괴물들이었다.
“얘, 천상사성급 인재란 소리야?”
“하, 하하, 진짜 세상은 넓구나.”
몇몇 이들은 한편으로 질린 표정을 짓기도 했다.
워너힐 아카데미는 그야말로 재능의 집합소다.
그런 이들조차 질리게 만드는 스타리즈의 재능을 그야말로 규격 외 수준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내년, 그를 차지하는 단이 입지를 굳건하게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섰다.
워너힐 아카데미는 각 단이 경쟁하며 성장하게끔 하기 위해 여러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세계 침식에서 성과를 내면 각지의 대가문을 통해 수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기에 각 단들은 경쟁에서 이기고자 필사적이었다.
특히 정식 단원이 아닌 학생들로만 이루어진 단에서는 그 경향이 더 심했다.
자신이 소속된 단의 학생 단장이 된다면 가문의 위상을 널리 알릴 수 있거나.
혹은 평민으로서는 인생 역전의 찬스였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한 남성이 1차 시험을 위해 월석 앞으로 걸어왔다.
한창 스타리즈 이야기로 꽃피우는 이들 탓에 그를 주목하는 이는 얼마 없었지만.
그가 월석 위로 손을 올린 순간,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화면이 아까 전보다 더한 빛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너무도 강렬한 빛에 놀란 이들이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남성은 이미 월석에서 손을 뗀 뒤였다.
“……방금 건?”
“뭐야. 누구야. 쟤.”
“수치는?”
깜짝 놀란 사람들이 어수선 말하는 사이 처음으로 안대를 벗은 일곱별 최연장자가 물어왔다.
그러자 화면 앞에 있던 시험 조교는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9999…….”
스타리즈와 똑같은 수치.
아니, 시험 월석으로는 그 이상의 수치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둘의 수치는 엄밀히 같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아까 전 내가 했던 마성만 규격 외라는 말은 취소하지.”
안대를 손으로 올린 그는 실소를 내뱉으며 화면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운 괴물이 나타난 모양이다.”
마성 스타리즈급의 인물.
“펜타니엄 서리스.”
화면 아래 출력된 이름을 보며 그가 내뱉은 말은 이 순간 모든 이들에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쩌적 하고 월석이 갈라졌다.
화면에서는 월석이 갈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었으나.
그것이 뜻하는 바는 월석이 서리스의 별을 전부 담아 내지 못했다는 소리였다.
만약 그들 중 월석이 갈라진 걸 발견한 이가 있었다면 그들은 발칵 뒤집혔으리라.
“아, 부서졌네.”
정작 본인은 찝찝한 표정으로 월석을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거, 이렇게나 내구성이 약한 거였나’.
분명 앙켈니우스가 출력을 최대치로 내라고 했었는데, 그러기도 전에 부서져 버렸다.
“물어 줘야 하나.”
당연히 대가문의 자제인 서리스가 돈이 없을 리 만무하지만,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건 그와 별개였다.
“저기, 조교님.”
“응? 무슨 일이지?”
하는 수 없이 앞에서 대기 있던 조교를 부르자, 그는 서리스의 부름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피곤에 찌든 듯한 그를 보고 서리스는 월석이 자리한 안쪽을 가리켰다.
“월석이 부서졌습니다.”
“뭐? 그럴 리가 없는데.”
그는 무슨 황당한 소리냐는 양 서둘러 월석을 확인하고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안쪽에서 새된 비명이 들려왔고, 서리스는 말없이 쓰게 웃을 뿐이었다.
다행히 예비 월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시험의 지장은 없었다.
“서리스 님.”
그러는 순간 들려온 목소리에 서리스는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1차 시험을 마치고 온 발렌타인이 서리스와 마주친 것이었다.
“아, 발렌타인 님, 시험은 잘 보셨나요?”
“어려울 것 없는 시험이었습니다.”
발렌타인의 덤덤한 말에 서리스도 동의했다.
이건 순전히 자격 있는 시험생을 골라내려는 시험이었으니까.
발렌타인과 같이 타고난 별이 많은 이들은 당연하게 통과이리라.
진짜 시험은 2차부터인 셈.
“2차 시험은 뭘까요?”
서리스가 조금 궁금증을 표하자 발렌타인이 말해 왔다.
“2차 시험은 제가 조금 들은 바가 있습니다.”
“정말요?”
서리스가 발렌타인에게 바짝 다가서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눈을 한 차례 빙글 굴렸다.
“네, 네, 팀원 단위로 세계 침식에 들어간다는 말이 있어요.”
‘세계 침식이라.’
하긴,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세계 침식을 상대하는 것이니.
‘워너힐 아카데미 쪽 정보는 나도 적단 말이지.’
소드란 시절 워너힐 아카데미와는 너무도 먼 인생을 살았던 덕분에 이쪽 지식은 전혀 없는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발렌타인 님과 같은 팀이 되면 좋겠네요.”
그녀는 우수하다.
일곱별 재능에도 밀리지 않을 만큼의 실력을 지니고 있고.
앞으로 귀왕령의 숙련도가 더 올라간다면 그들을 넘어서는 것도 가능하리라.
심지어 합을 한 번 맞춰 본 적 있으니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발렌타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몸을 굳힌 채 자기 손으로 입술을 꾹 누르는 그녀를 보고 서리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 하긴, 시험이지.’
합을 맞추는 것도 좋지만, 세계 침식 안에서 활약을 보여야 시험 점수가 높게 나올 것이다.
그걸 감안하면 이미 서리스의 실력을 알고 있는 발렌타인 입장에서 같은 팀이 되면 오히려 난처하리라.
배려가 부족했다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직계니임!”
서리스가 무어라 말하려 한 순간, 시험을 끝내고 뛰어오는 도로시가 보였다.
그 뒤에는 나른한 표정인 크라페와 근심, 걱정 가득한 서발광이 함께 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다들 시험을 다 끝마친 모양이었다.
“어쩌지. 서리스, 나 붙을 수 있을까.”
전투가 아닌 이런 쪽으로는 유달리 불안해하는 서발광만 제외하면 다들 시험에는 아무 걱정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여기 모인 이들이 1차 시험을 걱정하기에는 너무 수준 높긴 했다.
“1차 시험 종료다. 합격자 명단을 보여 줄 테니. 탈락자는 전원 돌아가라.”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샌가 시험이 끝마친 듯 앙켈니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바닥에 있던 마법 제품을 이용해 하늘 위에 합격자 명단을 띄웠고, 서리스는 금방 자기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어렵지 않게 붙은 모양이다.
“서, 서리스! 나 붙었어!”
“착쁜놈, 당연한 거로 왜 이리 좋아해?”
“어, 도로시는 안 기뻐?”
“어른 도로시는 이런 사소한 거로 이제 안 기뻐하기로 했어.”
그러자 크라페가 킁킁거리며 말했다.
“기쁨의 냄새가 나는데.”
‘도로시 녀석 기쁜 모양이구만.’
크라페가 더 말하지 않아도 도로시의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표정 참 못 숨기는 도로시다웠다.
“붙었습니다.”
옆에서 발렌타인도 조금 편해진 목소리로 말해 왔다.
결국 여기 있는 사람 전원이 다 붙은 셈이었다.
“젠장, 감히, 나를 떨어트려?!”
“엄마, 어떡해.”
반면 한편에서는 안타까운 목소리들도 들려왔다.
자기 이름을 찾지 못한 이들은 자기 눈을 믿지 못하고, 합격자 명단을 계속 살폈고.
누군가는 부정하기도, 울기도, 씁쓸해하기도 했다.
극과 극의 감정.
5년 전까지만 해도 저쪽에 있었던 서리스는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2차 시험 내용 발표다.”
그러는 사이 탈락한 시험생들이 얼추 빠져나가자, 앙켈니우스가 말했다.
1차 시험은 딱히 한 건 없었던 만큼 따로 휴식 시간도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2차 시험은 두 마탑이 힘을 합쳐 만든 세계 침식에서 1차 시험 결과를 통해 임의로 짠 팀원과 들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발렌타인이 말해 준 시험 내용이 그의 입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