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11화 (110/275)

111화

그렇게 우연한 계기로 영입하게 된 잔루크.

서리스는 그에게 자금줄을 지원해 주는 대신 다시금 용병당을 창설할 것을 명했다.

복수를 위해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잔루크인 만큼 그는 순순히 따랐다.

애초에 미치광이 취급이긴 했으나, 래빗 마을에서도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받는 잔루크였다.

그렇기에 과거 용병 단장인 것도 있고, 그의 실력이라면 용병단 창설도 그리 어렵지는 않으리라.

“사정은 알았고. 앞으로 용병단원 관리는 주의해. 단원을 뽑을 때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뽑아.”

“예, 서리스 님.”

어느새 존칭까지 사용하기 시작한 그는 서리스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

그에게 있어 찬란했던 과거를 다시 만들 수 있는 기회다.

게다가 복수까지 할 수 있으니 그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저는 단지, 칼릭스 그놈의 머리가 날아가는 것만 보면 됩니다.”

굳건한 의지를 보이는 그를 보고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서리스의 머릿속에서는 칼릭스가 왜 굳이 붉은이리 용병단을 찾았는지 그와의 대화를 통해 눈치챘다.

‘칼릭스는 악스판시온을 찾고 있었다.’

때마침 명분을 준 래빗 마을의 최고 용병단.

당연히 정보 줄은 쥐고 있었을 것이고, 칼릭스는 정보가 있을 장부를 노린 거겠지.

‘하지만 악스판시온은 사당에 그대로 남아 있었어.’

얻지 못한 이유는 그림자 무사가 너무 강했기 때문일까.

그 이유까지는 짐작하지 못한 서리스는 잔루크를 래빗 마을로 돌려보냈다.

그러곤 한숨 돌리고 있으려니, 아까부터 쭉 지켜 보고 있던 크라페가 눈에 들어왔다.

나른한 표정으로 나무뿌리에 걸터앉아 있던 그는 서리스가 자신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안 가고 있냐?”

“정체가 궁금해서.”

“펜타니엄 서리스라니까.”

“그거론 부족.”

뭐가 부족하단 건지.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난 이만 마을로 돌아갈 건데. 넌?”

“따라갈래.”

애초에 워너힐 아카데미로 가는 이상, 크라페와는 같은 길이다.

무엇보다 미개척 지역이 위험한 곳이니만큼, 일곱별 수준인 크라페가 따라온다면 서리스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었다.

“마음대로 해라.”

무엇보다 크라페는 같은 워너힐 아카데미 지망생이다.

그와 친분을 쌓아 두어서 나쁠 건 하나도 없었다.

‘친해져 두면 좋은 거지 뭐.’

크라페라면 무조건 붙을 테니.

‘어쩌다 보니 대가문 지인들이 꽤 생겼네.’

발렌타인도 그렇고, 이바드라도 그렇고.

묘하게 인연이 닿는 부분들이 있다.

“같이 온 사람은 없어? 그라말테의 소가문 직계들이라거나.”

“소가문에 내 또래는 없어.”

애초에 크라페 성격을 보아하니 사람이랑 살갑게 지내지도 않았을 모양이다만.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팔하임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나뭇가지를 들고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는 도로시가 보였다.

올해 성인이 된 녀석이 왜 저러고 있나 모르겠다만, 서리스는 다가가 그림을 그림자로 지웠다.

“악! 직계님!”

“난 그림에서도 안 진다.”

참고로 도로시가 그린 그림은 도로시가 서리스를 쓰러트리는 모습이었다.

“완전 유치해. 좀생이 직계님이야!”

“하하, 화나면 이기던가.”

장난치는 서리스와 투덕거리던 도로시는 얼마 뒤 크라페를 보았다.

그를 보고 고개를 기울인 그녀는 서리스의 옷깃을 꾹꾹 당겼다.

“누구야?”

“같은 아카데미 지망생. 이름은 그라말테 세라 크라페야. 크라페, 이쪽은 제나디아 도로시. 둘이 인사해.”

도로시와 크라페는 서로를 마주 보고 눈을 깜빡거렸다.

뭔가, 이 둘 묘하게 친해지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 다 개성이 너무 뚜렷하달까.

실제로 둘은 인사도 안 하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둘 다 눈싸움하냐.”

“응, 맞는데?”

“맞아.”

그런 건 왜 하는 거냐.

서리스는 그렇게 묻지 않고, 둘을 질질 끌며 오팔하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저 멀리 오팔하임의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서발광이 보였다.

다들 뭔가 이것저것 주며 말을 마구 걸어대는데, 그에 서발광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서발광의 귀공자 같은 얼굴은 오팔하임에서도 통하는 건가.

유달리 연상에게 많이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서발광, 바람 그만 피워. 불터렉스 루이지 씨가 서운해하시겠다.”

“서리스!”

서리스가 놀리려고 말을 걸자, 서발광은 구원이라도 받은 양 화색을 띤 채 그에게 뛰어왔다.

아무래도 연상의 아가씨들에게 둘러싸여 귀염받는 건 무엇을 해도 적응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루이지랑은 지금도 꾸준히 연락은 하는 것 같다마는.

‘불터렉스 쪽은 아직까지는 별 움직임이 없었지.’

서발광이 주고받는 루이지 편지를 통해 불터렉스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대강 알고 있는 서리스는 턱을 매만졌다.

‘이유는 몰라도 하운리는 아직 처형당하지 않았다.’

비선각 당주, 불터렉스 하운리.

추측 상 그는 본래 불터렉스 내부에서 조사 도중 세계 침식자에 대해 알게 되고, 처형당하는 거로 예상했는데.

어째서인지 그는 루이지의 편지 속에서 꾸준하게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건 내가 개입해서인가?’

하운리는 서리스와 일원에게 관심을 쏟고 있었다.

실제로 루이지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그의 입김이 꽤나 많이 작용하고 있으리라.

‘이쪽에 집중하느라 세계 침식자에게 닿지 못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 되는 걸까.

불터렉스 내에는 세계 침식자라는 잠재적 위험 요소가 있고, 이는 언젠가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보니.

서리스는 여전히 불터렉스 일로 고심하고 있었다.

‘해결 방법으로 짐작 가는 건 있지만.’

당장 이 수준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아쉬울 따름이다.

‘성장하는 수밖에 없겠지.’

서리스는 서발광에게 크라페를 소개해 준 뒤, 오팔하임 장로를 찾았다.

“어렵지 않게 찾은 모양이구만.”

“찾고 난 뒤가 더 힘들었어요.”

악스판시온을 그림자에 넣어 둔 서리스는 장로의 말에 옅게 웃어 보였다.

“그럼 이제 워너힐 아카데미로 가겠군. 아쉽네. 락로드 님의 이야기를 좀 더 나누면 좋을 텐데.”

그 부분은 딱히 아쉬울 필요 없을 것 같다.

서리스는 락로드에 대해 그리 많이 알고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소드란 때도 지금도.’

락로드는 여전히 그저 먼 존재로 보일 뿐이었다.

“출발은 언제 하겠나?”

“우선 식사를 하고 잠시 휴식한 후, 오늘 안에는 다시 출발해 볼 생각입니다.”

“바쁘구만. 알겠네. 그래도 식사는 우리 쪽에서 준비해도 괜찮겠나?”

“저야 감사하죠.”

호의를 너무 무시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감사 인사를 남기고 밖으로 나온 서리스는 세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어쩌다 보니 크라페가 일행에 갑작스레 합류하게 되어 자잘한 마찰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긴 했으나.

다행히 그는 남들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하였다.

정확히는 서리스가 움직일 때만 반사적으로 움찔거렸다.

‘혹시 검은별을 눈치를 채 버린 건가.’

저러고 있으니 괜히 찔리게 된다.

그래도 행동하는 걸 보니 해를 끼치려는 건 아닌 모양인데.

‘자꾸 신경 쓰이게 만드네.’

식사하는 와중에 물 한 잔 마실 때도 저러고 있으니.

“크라페, 혹시 할 말 있냐?”

결국, 견디지 못한 서리스가 물음을 던지자 크라페는 처음과 같은 나른한 얼굴로 말했다.

“악취가 안 나는 게 이상해.”

“안 나면 좋은 거 아니냐?”

“너무 안 나니까.”

수상쩍은 이유다.

그것보다 서리스는 스스로에게도 의문이 들었다.

왜 자신에게는 악취가 느껴지지 않는가?

‘나는 분명 세계 침식자다.’

의문은 계속 있었다.

전생에서의 죽음으로서, 과거로 돌아와 명문가 자식에 빙의해 버린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

거기에 더해 목에 새겨진 검은별의 정체까지.

‘처음 며칠간은 내가 세계 침식자에게 당했었고, 전생이라 여기는 소드란의 기억은 사실 망상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어.’

이 세계에서 소드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기억을 의심했다.

‘하지만 의심은 곧 의미 없어졌지.’

과거의 기억과 현재에 벌어지는 사건들이 전부 같았으니까.

‘나는 과거로 돌아온 게 맞아.’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를 따지기 이전에 과거로 돌아온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자신에게 검은별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세계 침식자들은 세계를, 제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어.’

대부분의 세계 침식자들이 하는 행동은 인류에게 있어서 멸망을 초래하는 행동들이다.

물론 모든 세계 침식자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세계 침식자를 통해 일어난 사건들은 인류에게 위기였다.

검은별은 세계 침식자에게 힘을 준다.

힘을 받은 세계 침식자는 인류를 멸망시키려 한다.

즉, 검은별은 인류를 멸망시키고 싶어 한다.

‘삼단논법은 명제에 따라 도출되는 결과의 오류가 많으니, 이리 쉽게 내릴 결론은 아니긴 하지만.’

일단 지금까지 정보를 통해 나온 결론은 이러하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꼭 자신에게만 예외적일 거란 생각은 사람이 하는 흔한 실수다.

나는 괜찮겠지.

나는 다를 거야.

도박꾼들이 도박에 발을 들일 때 내뱉는 핑계처럼, 사람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하지 않은 건 아니긴 한데.’

과거로 돌아오는 일까지 겪었으니, 자신이 특별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의문이 든다.

‘왜 나인가?’

세상사 억울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사람은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남들에게 공감하기보다는 제 생각만 한다.

‘내 인생은 분명 불행하다면 불행했지.’

그리고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꽤나 많을 것이다.

‘감정적인 건 제외하고.’

서리스는 소드란 시절, 자신에게 놓여 있던 남들에게는 없는 특수한 상황을 몇 가지 짚었다.

하나는 최흉 별 가루 평원의 주인 월사자에게 가문별이 저주받았다는 것.

둘은 그런 저주받은 가문별에도 불구하고 몸이 박살 날 정도로 별의 힘을 끌어 사용한 것.

셋은 끝없는 초롱의 큰 주인 태악룡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것.

세 가제 사건을 모아서 결론을 도출했을 때 나오는 건?

‘없지.’

알았으면 진작 자각했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워너힐 아카데미에서 교장으로 일하는 성위를 찾아가려는 것이고.

서리스는 머리카락을 조용히 쓸어 올렸다.

세계 침식자인 자신은 인류 멸망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세계 침식을 막고 방해하고 있는 쪽에 더 가깝다.

‘……흡수하는 상황이니 폭발할 위험은 있지만.’

최근 검제 요치아를 통해 검을 다루며 서리스는 검은별을 보다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됐다.

여전히 위험성은 있으나, 당장 검은별이 폭발할 가능성은 없는 셈이다.

‘그런 와중에 크라페가 내게 악취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정확히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크라페는 그걸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였다.

그렇다는 건 일반적인 별을 쓰는 사람들과도 차이점이 있다는 소리겠지.

‘머리에 과부하 오겠군.’

해답은 없고 의문만 있으니 서리스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단지, 지금 할 수 있는 건 강해지는 것뿐.

과거로 돌아온 후 새로이 얻은 삶인 만큼 제 뜻대로 살고 싶다.

그것 하나로 서리스는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것이기도 했다.

‘의문은 해결하되 거기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의문에만 집착하다간 언젠가 그걸 해결해도, 정작 중요한 것들을 모두 놓치게 돼 버릴 테니까.

“그래, 그런 셈 치자.”

서리스는 크라페 질문에 확답 없이 얼버무렸다.

크라페는 그 사실이 불만스러운 듯하였으나, 자신도 모르는 답을 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직계님! 이거 엄청 맛있어! 직계님 것도 내가 먹어도 돼?”

“도로시, 내 것 줄 테니까 서리스 꺼 뺏어 가려 하지 마! 서리스도 어서 먹어. 그냥 두면 도로시가 빼앗을 거야.”

“착쁜놈 것도 먹고, 직계님 것도 먹으면 되지! 아, 나른골드 네 것도 나 줘!”

“거절.”

밥상에서 투덕거리는 도로시와 서발광을 보며 서리스는 웃었다.

과거로 돌아오건 뭐건 아무렴 어떤가.

지금은 단지 이렇게 있는 것이 즐거우니 된 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