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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09화 (108/275)

109화

그라말테 세라 크라페.

올해로 스무 살이 된 그는 예민한 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러 방면으로 예민한 그의 코는 어떻게 보면 재앙과도 같았다.

음식부터 시작해 여러 일상생활에서 맡은 악취가 그의 행동의 제약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악취였다.

아버지에게서 흘러나오는 너무도 깊디깊은 악취에 크라페는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고.

아버지 옆에만 가면 악취를 참지 못하고 울기 일쑤였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세계 침식의 냄새라는 것이었다.

그의 예민한 코는 세계 침식이 나타나기 직전에도 알아차릴 수 있는 특수 능력이었다.

그럼 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악취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했다.

그가 세계 침식자라는 것.

자신을 숨기고 어머니 신왕 그라말테 세라 에이징에게 사랑을 속삭인 변절자.

그리고 자신은 그 핏줄을 이어받은, 세계 침식자에게서 태어난 자식.

크라페는 그러한 능력을 아버지에게 무심코 뱉고 말았고.

그날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조용히 종적을 감추었다.

어머니는 낙담했고, 크라페는 입을 다물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가 이 사실을 밝히는 순간, 자신 또한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홀린 듯 악취를 쫓았다.

혹시나 아버지를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꼭 도망쳤어야만 했냐고.

어머니를 사랑하던 그 모습은 정말 거짓이었냐고.

그걸 묻기 위해 크라페는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리고 현재. 그가 사당을 찾게 된 것은 그런 악취를 쫓게 돼서였다.

사당에서 너무도 지독하게 흘러나오는 악취.

‘하지만 아니야.’

아버지에게 났던 그 냄새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건 마치 고인 탓에 썩어 버린 구정물과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악취 사이로 그는 한 남성을 발견했다.

자신과 같이 이제 막 성인이 된 듯 아직 앳된 외모와 다부진 체격에 흑발을 지닌 청년.

처음 보는 남성, 서리스는 어째선지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사람은 저마다 냄새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서리스는 크라페 입장에서도 신기한 존재였다.

혹시 사당에서 나오는 악취가 너무 심해 가려진 걸까.

아니, 그건 분명 아니다.

자신의 예민한 코는 사당에서 흘러나오는 악취 정도로는 막을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그에게 무언가 특별한 힘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 의문과 함께 크라페는 서리스의 전투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특별한 힘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세간에 알려진 천재들보다도 더 위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크라페 본인이 꾹꾹 눌러 놓은 반쪽 힘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서걱!

휘둘러진 서리스의 검이 재차 그림자를 갈랐다.

벌써 9번째.

서리스가 그림자만 집요하게 노리는 만큼.

그림자 무사도 대처해 오는 탓에 체력이 생각 이상으로 많이 소모되었다.

만약 상대가 그림자 무사가 아닌 별을 쓰는 자였다면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을 테다.

‘그래도 마지막이다.’

숨을 한 차례 돌린 서리스는 그림자 검을 겨누었다.

그에 따라 그림자 무사도 마지막 일격을 받아 내고자 자세를 잡았고.

그걸 본 서리스의 몸 위로 그림자 망토가 휘감기기 시작했다.

파락―

그림자가 휘날리는 소리가 느지막이 울려 퍼진 순간.

서리스의 몸은 이미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금강귀명도(金强晷銘刀)

삼식(三式)

귀영분신(晷影奮汛)

콰앙!

뒤늦게 따라온 소리가 충격파와 같이 울려 퍼졌다.

그림자 무사도 뒤늦게 검을 휘둘렀으나, 이 순간만큼은 서리스가 더 빨랐다.

가속한 몸과 함께 서리스의 눈은 정확히 그림자 무사의 그림자를 포착했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귀령참을 담아 그림자를 갈랐다.

“……!”

그 순간 갈라진 그림자가 생선같이 크게 퍼덕였다.

그리고 끝을 고하듯 그림자가 바닥 안으로 스며들어 더 이상 형상을 갖추지 못하자.

머리 없는 무사 또한 그대로 쓰러져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아, 하.”

거칠어진 호흡을 내뱉으며 서리스는 볼에 맺힌 땀방울을 훔쳤다.

락로드의 그림자 무사 상대하기도 이렇게 힘들어서야.

허리를 쭉 펴며 한숨 돌린 서리스의 눈에 크라페가 닿았다.

역시 다시 봐도 나른한 얼굴.

저 녀석이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르겠다.

어깨를 으쓱인 서리스는 꽂여 있는 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에 온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저 검 때문.

검의 이름은 장로가 말해 주지 않았다.

‘뭐랬더라.’

잡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조금 미심쩍지만, 무려 명장이 만든 검이니 서리스는 검의 앞으로 다가섰다.

‘다시 봐도.’

진하게 흘러나오는 검은별의 기운은 영 꺼림칙하기 그지없다.

마치 세계 침식자를 눈앞에 둔 기분이랄까.

‘세계 침식자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검이라고 했는데.’

보기에는 그저 큰 장식 없는 새까만 흑도일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그림자 검에 가까웠다.

‘뽑고 나서 확인하자.’

감상평은 넣어 두고 서리스는 검에 손을 뻗었다.

그러곤 손잡이를 잡아 쑤욱 하고 뽑아 든 그 순간, 몸을 저릿하게 하는 기운이 팔을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하, 이것 봐라?’

그 감각을 느끼자마자 서리스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아무래도 검은별로 만들어진 검이라서일까.

서리스가 뽑자마자 검에서 쏟아져 나온 기운이 순식간에 팔을 타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마치 서리스를 자기 숙주라도 삼으려는 양.

‘그냥 검인 줄 알았더니, 이거 사실상 마검이잖아.’

만약 이대로 손 놓고 있다면, 서리스는 검에게 조종당하는 검귀가 되어 버리리라.

만들어도 이런 걸 만들다니.

일반 사람들은 쥐지도 못하겠지만 확실히 이런 곳에 봉인해둘 만한 무기였다.

눈살을 찌푸린 서리스가 한순간 별을 끌어 올렸다.

서리스의 등 뒤로 별빛이 후광과 같이 떠올랐다.

‘검이면 검답게 얌전히 있어.’

그 거센 빛 앞에 검이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먹물 같은 어둠을 꾸역꾸역 쏟아 내며 놈은 제멋대로 굴었다.

“반항하지 마라.”

서리스의 입에서 경고를 담은 스산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서리스의 별이 더욱 환한 빛을 토해낸 순간, 흠칫한 검의 기운이 서둘러 자신에게로 되돌아갔다.

우우웅!

그러자 갑자기 검에서 한 차례 떨림이 일었다.

어딘가 주인에게 호되게 혼난 개가 투정 부리듯 떠는 느낌이라 서리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름은.”

서리스가 조용히 물음을 던지자 검은 한 차례 울려왔다.

<악스판시온>

녀석은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장로가 말했던 대로 뽑자마자 검 이름이 무엇인지 저절로 깨달을 수 있었다.

‘뭔가 했더니 세계 침식의 일종이군.’

인간과 같은 말로 의사소통하는 방식과 다른, 상대 의식에 직접 의사를 전달하는 느낌이다.

‘처음에 기를 눌러 버린 덕분인지 지금은 고분고분하고.’

서리스는 곧장 악스판시온을 그림자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자 잠시 후, 청운귀명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자 검과 같이 서리스의 그림자로 덮인 악스판시온이 나타났다.

탁!

그림자에서 올라온 악스판시온을 낚아챈 서리스는 짧게 감탄했다.

명장이 어째서 락로드를 위해 만들어 낸 검인가 했더니.

악스판시온은 사실상 그림자 검과 큰 차이가 없었다.

즉, 오로지 펜타니엄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이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아직 성능은 알 수 없었다.

이 녀석이 어떤 효력을 지녔는지는 좀 더 다루어 봐야 알 수 있을 듯싶었다.

“그 검은?”

그런 순간 깜빡 잊고 있었던 크라페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악스판시온을 잠깐 바라보더니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악취가 사라졌어.”

“그래? 보관을 잘해 놨나 보네.”

크라페가 무엇을 맡을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는 서리스지만.

그 사실은 지금 세간에 퍼진 것이 아니기에 자연스럽게 딴청을 피웠다.

그러자 크라페는 묘한 표정을 띠더니, 서리스를 직시했다.

“당신, 정체는?”

“펜타니엄 서리스라니까.”

“……대가문으로는 설명 부족.”

설명이 부족하다고.

설마 검은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건가.

서리스는 긴장하였다.

혹시 자신이 악스판시온을 회수하며 그가 검은별의 향을 맡은 게 아닐까.

‘쓰러트릴까.’

하지만 그것도 마냥 쉽지는 않다.

그림자 무사와 싸우느라 소모한 체력은 꽤 크고, 크라페는 숨겨 둔 힘이 있다.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그가 도주만 택해 신왕을 찾아가 버린다면.

낭패다.

‘어떻게든 둘러댄다.’

“너야말로 설명이 부족한 거 아니야? 다짜고짜 악취라니, 뭐니…….”

서리스가 화제를 돌리려 말을 늘어놓던 순간, 그의 입이 다물어지며 어딘가로 시선이 향했다.

그러자 크라페도 무엇인가 느낀 듯 시선이 뒤로 향했고.

이내 두 사람은 동시에 움직였다.

콰앙!

뒤이어 사당이 폭발했다.

모락모락 나는 연기 속에서 서리스는 자신의 옆을 바라보았다.

크라페가 기도하듯 손을 깍지를 끼자 그의 앞에 반투명한 황금색 방패가 떠올랐다.

그 방패는 폭발이 일어나자마자 모든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하여 크라페를 지켰다.

‘그라말테가 자랑하는 비기 아우레우스 파르마.’

펜타니엄이 동쪽을 대표하는 오대 대가 중 하나라면.

그라말테는 서쪽을 대표하는 오대 대가 중 하나.

그 명성답게 휘황찬란한 황금의 방패에서 느껴지는 별의 힘은 강렬했다.

한편, 서리스 또한 폭발에서는 멀쩡하기 그지없었다.

폭발 전 두른 그림자가 그걸 모두 집어삼켜 버렸기 때문이다.

애꿎은 사당만 날아갔다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시선을 옮겼다.

거기에는 비루한 모습의 한 남자가 있었다.

왼쪽 눈썹에 기다랗게 흉터가 있는 것 말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그는.

서리스의 주위에서 일렁이는 그림자를 보고 가증스럽다는 듯 치를 떨었다.

“역시, 펜타니엄이냐!”

그가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외치자 서리스는 눈을 깜빡였다.

왜냐하면 자신의 기억에 전혀 없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

“아니.”

크라페도 처음 보는 얼굴이기에 질문을 던져 오자, 서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왠지 모르게 펜타니엄을 향한 증오가 느껴진다만,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내 눈을 이렇게 만들고. 내 용병단을 박살 내 놓고서 감히 래빗 마을을 다시 찾아오다니. 고맙군!”

“어이.”

다짜고짜 공격한 상대에게 예의를 차릴 속셈은 없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인상을 팍 찌푸린 채 그에게 쏘아붙였다.

“네가 무슨 원한으로 날 공격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서리스가 쥔 악스판시온이 우웅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마치 오랜만에 무기로써 사용될 수 있겠다는 양.

“내가 마침 검을 시험해 봐야 하거든?”

서리스의 얼굴 위로 악의적인 미소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잘됐다. 너 실험 쥐 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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