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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08화 (107/275)

108화

오팔하임의 숲속 지역에는 사당이 하나 있다.

그곳에 봉인된 것은 펜타니엄 락로드가 사용하던 검 한 자루.

그 검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은 어쩐지 사당에 사람이 접근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여긴가.”

자기 문제인 만큼 서발광과 도로시를 내버려 두고 온 서리스는 혼자서 사당이 있는 숲속에 도착했다.

‘수호자는 사당 안에 있을 걸세. 일정 이상 다가가면 나타날 테니 그리 알게나.’

그의 조언을 듣고 서리스는 숲속에서 빠져나왔다.

오팔하임이 말했던 금줄 덕에 이곳이 사당임을 눈치챘다.

‘확실히.’

서리스는 코끝을 저릿하고 울리는 검은별의 기운에 인상을 찌푸렸다.

검은별로 만들어진 검이라더니 기운이 보통이 아니다.

‘락로드는 내가 검은별을 지녔단 걸 알고 저 검을 주려 했던 걸까.’

모르겠다.

알고 있었다면 목을 벨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었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검은별에 대해 눈치챈 건 천구 녀석밖에 없었으니까.’

다음에 락로드를 또 보게 된다면 조금 걱정되긴 했으나.

서리스는 스스로 검은별에 조종당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있을 상황을 대비하듯 저 자신을 계속 의심하는 시점에서 세뇌당한 건 아닌 셈이니.

당장 락로드와 좋지 않은 일로 조우할 일은 없으리라.

“내 인생이 어쩌다 이리 기구해졌는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소드란 시절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다고 자부할 수 있다.

“당신.”

그런 순간이었다.

서리스가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새하얀 로브를 뒤집어쓴 남성이 있었다.

그의 로브에는 황금색의 방패 새겨져 있었고, 그 방패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는 서리스는 눈을 깜빡였다.

황금색 방패, 오대 대가 그라말테.

서쪽 끝에 있는 대가문의 이름이었다.

“이 사당에 볼일 있는 사람이야?”

“……그쪽은?”

수상쩍은 기색에 서리스가 도리어 질문을 던지자 남성은 로브 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로브 아래로 조금 긴 황금색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황금을 갈아 만든 것과 같이 빛이 나는 외모를 지닌 그는 나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난 그라말테 세라 크라페. 이 사당에서는 안 좋은 악취가 느껴져.”

이름을 듣자마자 서리스는 번쩍하고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올랐다.

천하오장성 중 하나인 신왕 그라말테 세라 에이징의 유일한 아들.

그라말테 세라 크라페.

일곱별에는 들지 못했으나, 서리스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크라페는 자기 힘을 숨기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이 밝혀진 것은 간단했다.

그가 스물다섯이 되는 해에 그의 손에 세계 침식자가 죽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그 일을 계기로 천하오장성 후보 자리에 누구보다 빠르게 올라섰다.

‘나랑 동갑인 건 알고 있긴 했는데.’

설마 여기서 마주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어째서 그가 힘을 숨기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단지, 확실하게 기억하는 건 그의 코가 매우 예민하다는 것이다.

세계 자체를 배척하는 은신술을 지닌 세계 침식자 은둔사(隱遁死)를 알아낸 건 다름 아닌 그의 코였으니까.

그리고 그 뜻은 천구와 같이 자신의 검은별을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당신은.”

자신은 소개했으니 그쪽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듯 그가 질문을 던져 왔다.

의심 사서 좋을 건 없다.

“펜타니엄 서리스.”

“……펜타니엄.”

저쪽도 펜타니엄의 이름을 아는지 한 차례 곱씹은 그는 자기 코를 손으로 짓눌렀다.

“목적은.”

길게 말할 생각은 없는 걸까.

나른한 표정 아래 오로지 할 말만 내뱉는 그를 보고 서리스는 고개를 기울였다.

“제가 처음 보는 분에게 그걸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긍정, 그래도 의심돼.”

이런 타입이었나.

속을 숨길 생각 없이 대놓고 드러내는 그를 보고 있으니, 오히려 편한 기분을 느꼈다.

그의 눈에는 악의 없이 순수한 답만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악취 심해. 좋은 목적이 아니라면 적.”

크라페는 흰색 장갑을 낀 손을 서리스에게 겨누었다.

마치 조준을 하는 듯 중지와 검지는 앞으로 내밀어져 있고, 그의 엄지는 방아쇠처럼 들어 올려져 있었다.

그 자세가 그라말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서리스는 입을 열었다.

“저 사당 안에 검황의 무기가 있어.”

이런 타입은 괜히 말을 돌리거나 해서 좋을 게 없다.

그러니 직설적으로 의문을 풀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쉽게 납득해 주는 타입이었다.

“무기? 하지만 악취가.”

“검은별로 만들어진 무기야. 이 정도면 의문은 해소됐겠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크라페는 겨누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역시 직설적인 대답이 가장 잘 먹히는 타입이었다.

‘일단 내 검은별은 눈치채지 못했나.’

사실 이래 보여도 서리스는 꽤 긴장하고 있었다.

혹시나 크라페가 검은별의 존재를 눈치채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사당 근처에는 크라페가 말한 악취와 같이 검은별의 기운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인지.

그 악취에 묻혀 서리스의 검은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하였다.

실제로 그는 서리스를 보지 않고 오직 사당에서 나오는 악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담 무기를 얻게 되면 검은별의 기운을 느껴도 무기에서 나오는 거라고 얼버무릴 수 있겠는데.’

락로드는 이걸 예상한 걸까.

크라페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서리스에게는 때아닌 희소식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더더욱 무기를 반드시 얻어야만 한다는 이유도 생겼고.

‘크라페까지는 괜찮아.’

하지만 만약 그가 자신의 어머니인 신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간.

천하오장성이 죽이러 올지도 모를 노릇.

서리스는 이 기회에 방지책 하나 정돈 반드시 쥐어야만 함을 느꼈다.

“그쪽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그렇게 해. 딱히 비밀이랄 것도 없으니까.”

크라페의 눈으로 검을 직접 확인시켜 놓으면 나중에 딴말이 나오지도 않을 터.

오히려 알리바이를 만들도록 봐주리라고 생각하며 서리스는 사당 앞으로 다가갔다.

크라페는 악취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당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서리스에게는 중압감이었다.

‘세계 침식자의 검은별로 만들어졌다더니.’

과연, 검인 주제에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사당 안에 마치 천년 묵은 거대한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느낌.

‘꺼림칙하구만.’

사당에 처진 금줄이 바깥으로 기운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일부러 쳐져 있음을 서리스는 깨달았다.

이 정도 기운에 노출되면 일반인은 오금을 지리며 실신했을 테니까.

“후우.”

자신을 보고 있는 크라페를 뒤로하고 서리스는 숨을 한 차례 내쉰 뒤 사당의 문을 열었다.

후욱!

사당 안에서 흘러나오는 뜨뜻미지근한 기운이 서리스의 볼을 스쳐 지나갔다.

사당 내부는 생각보다 널찍했다.

그런 낡은 사당에서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중심에 꽂힌 매우 새까만 검 한 자루였다.

서리스는 보자마자 저것이 검은별로 만든 검이란 것을 짐작했다.

뒤이어 그의 눈이 검의 앞쪽으로 향했다.

가부좌를 틀고 있는 목 없는 무사.

그자가 그곳에 있었다.

‘장로가 말했던 수호자.’

목은 없지만, 무사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그가 수호자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저게 무엇?”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을 줄 알았더니 따라 들어왔나.’

크라페의 질문을 듣고 서리스는 대답해 주었다.

“검을 지키는 수호자.”

그 말을 내뱉고 서리스는 그림자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스산한 바람이 크라페의 머리카락을 휘날렸다.

그 바람이 불어온 곳이 서리스 쪽임을 눈치챈 크라페는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서리스는 그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청운귀명으로 만들어진 검을 쥐었다.

그 순간 목 없는 무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는 낡디 낡은 검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온다.’

생각을 마치자마자 무사가 몸을 앞으로 쑤욱 내밀었다.

채엥!

간결한 동작으로 움직인 무사의 검을 맞받아친 서리스는 첫 일격만으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금강잔월의 힘을 끌어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힘만 보면 광견급이잖아.’

수호자가 쉬운 상대는 아님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검을 맞받아치며 밀린 서리스는 어느샌가 사당 밖으로 뒷걸음질 치는 형세가 되었다.

쇄도하는 공격 사이로 서리스의 검이 몇 번이고 빈틈을 노렸으나.

무사는 기이한 각도로 팔을 움직이며 번번이 검을 막았다.

빠르다.

힘만 있으면 모를까, 스피드까지 가지고 있으니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수호자가 검을 부딪쳐 올 때마다 서리스는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기본기의 완성형.’

7성 언저리까지 되지 않을까.

대체 어떻게 머리 없이 움직이는 것인지는 몰라도 서리스는 수호자가 자신보다 위라는 걸 자각했다.

‘그런데 이 느낌을 나는 어디선가 느껴 본 적 있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이 특유의 압박감.

이러한 압박감을 겪어 본 적 있는 서리스의 눈이 해답을 찾고자 이리저리 굴렀을 때.

그는 곧 자신의 머릿속에 번쩍 떠오르는 인물이 있음을 깨달았다.

‘락로드.’

상대는 수호자이지만, 놈의 검에서 서리스는 락로드를 떠올렸다.

혹시 락로드가 사용한 검을 지키는 수호자 때문에 그런 선입견이 생긴 게 아닐까.

‘아니, 아니다.’

보다 본질적으로 락로드의 기운이 수호자에게서 느껴졌다.

그리고 곧 서리스는 깨달았다.

수호자의 몸에 심겨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락로드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상대하고 있는 건.’

락로드가 만들어 낸 그림자 무사다.

‘2년씩이나 검제 밑에서 굴러왔는데.’

설마 그림자 무사 상대로 검술 대결에서 수세에 몰릴 줄이야.

고작해야 2년으로는 락로드가 만든 그림자 무사에게도 닿지 못한다는 이 소리인가.

한순간 허탈감이 몰려들었으나, 서리스는 이를 부딪치며 털어 내었다.

조바심 느낄 필요는 없다.

그저 눈앞에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

‘그림자 무사라면 파훼법은 오히려 간단해.’

어찌 보면 이 시련은 펜타니엄 직계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오직 펜타니엄 직계만이 그림자 무사를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

휙!

목을 향해 날아드는 검을 아슬하게 피한 서리스는 그 즉시 별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그의 근육이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르며, 그림자 검 또한 마구 별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노리는 건.’

폭주하듯 검에서 흘러나온 그림자가 서리스의 팔까지 에워싼 순간.

서리스의 검이 휘둘러진 것은 다름 아닌 그림자 무사의 그림자였다.

청운귀명도(淸雲晷銘刀)

칠식(七式)

귀령참(晷靈斬)

서걱!

그림자임에도 불구하고 서리스의 검이 그의 그림자를 가른 순간.

그림자 무사는 큰 타격을 입은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본래 귀령참은 상대의 그림자를 베어 피해를 주기보다는.

그림자가 베어진 상대가 강렬한 탈진감을 느끼게 하는 검술에 가깝다.

굳이 말하자면 상대를 약화하는 검술.

그림자가 본체인 그림자 무사에게 귀령참은 그야말로 최적의 검술이었다.

‘다 베지 못했다.’

하지만 그림자 무사는 금방 기세를 되찾고, 다시금 서리스를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락로드가 만들어 낸 그림자 무사답게 한 번의 검격으로는 그림자 무사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쓰러질 때까지 그림자를 베면 그만.

‘어디 해보자고.’

파훼법을 안 이상 어려울 필요가 없다.

호승심이 끓어오른 서리스의 두 눈이 번뜩였다.

저벅저벅.

그러는 사이 사당에 다가오기 시작한 또 다른 그림자의 존재는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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