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용병이 말했던 대로 오팔하임을 가는 길목은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단지, 사람이 오지 않는 지역인 만큼 숲이 더 울창하다는 것 정도.
세계 침식도 길목을 아예 막고 있는 건 아닌지라, 살짝 우회하는 정도로 손쉽게 피해 갈 수 있었다.
“미개척 지역이라고 해서 꼭 그렇게 위험한 건 아니구나.”
잠시 쉴 겸 커다란 나무뿌리 아래 앉은 서발광이 말하자 서리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침식 발생률이 매우 높아질 뿐이지. 여기도 사람이 살긴 하니까.”
하지만 세계 침식은 발생 후부터 계속해서 몸집을 불리는 만큼 정기적으로 미개척 지역의 침식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그 역할은 용병들과 대가문의 지원, 그리고 워너힐 아카데미 인력으로 충당되고 있었다.
“나무가 막 큰 것 말곤 지루해!”
나무뿌리를 타고 쪼르르 내려온 도로시가 말해왔다.
사람이 자원을 쓰지 않은 덕분인지 생명력이 넘치는 숲이다.
그 덕분에 처음 숲에 들어올 때는 감탄하던 도로시도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금방 지루하단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조금만 가면 오팔하임이야.”
물을 한 모금 마신 서리스는 엉덩이를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라면 아마 한 시간 내로 오팔하임에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 듯싶었다.
‘뭐가 있으려나.’
솔직하게 말해 서리스는 오팔하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시피 했다.
미개척 지역이라는 게 워낙 정보가 부족하기도 하고.
미개척 지역 중 하나인 오팔하임 같은 경우 서리스 기억에 남는 거라곤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오팔하임과 관련된 정보는 딱 하나.
‘샬롯의 6성.’
그 열쇠의 실마리가 그곳에 있다는 것뿐.
덕분에 개인적으로 궁금증이 무한히 샘솟고 있기도 했다.
무려 검황 락로드가 직접 알려 준 정보다.
분명 샬롯을 6성으로 만들어 주었던 열쇠가 분명 그곳에 있을 터.
“다들 이제 다 쉬었지?”
“응, 출발하자.”
서발광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도로시도 따라 섰다.
청랑단을 통해 세계 침식에서 워낙 구른 덕분에 걷는 것 하나는 이골난 셋이다.
그렇기에 지친 기색 없이 셋은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고, 예상대로 약 한 시간 후 오팔하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오팔하임이라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나무에 절반에다가 거대하게 새겨진 오팔하임이라는 글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발광, 오팔하임이 왜 오팔하임이라 불리는지 알아?”
“여기에 사는 소수 민족 이름이 그렇다고 들었어.”
“잘 알고 있네.”
“오기 전에 미리 공부해 뒀거든.”
역시 서발광은 성격대로 준비성이 좋았다.
반면에 도로시 쪽은 그게 뭐냐는 표정으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오팔하임은 서발광이 말한 것처럼 소수 민족이야. 특징은 사람보다 좀 더 뾰족한 귀, 그리고 동공이 반전되어 있다는 것 정도가 있어. 그중에서도 특이한 점은.”
“가문별 없이도 세계 침식에 맞설 수 있는 종족.”
“맞아. 뭐, 오팔하임뿐만 아니라 미개척 지역에 사는 소수 민족은 대부분 별 없이도 세계 침식에 대처할 수 있는 수단이 있지만 말이야.”
서발광에게 미소 지어 준 서리스는 오팔하임이라 적힌 나무를 넘어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은 다리들과 함께 나무 여기저기에 지어진 집들이 보였다.
“와아.”
숲속에 지어진 나무집들을 보고 도로시가 눈을 반짝였다.
확실히 서리스가 보기에도 꽤나 신기한 광경이었다.
“……외부인?”
그런 순간 서리스는 입구 쪽을 서성이던 오팔하임 한 명을 발견했다.
일반 사람보다 뾰족한 귀와 반전된 눈.
확실히 오팔하임 족 사람이었다.
“와, 정말로 귀가.”
“도로시, 그거 종족 차별이야. 신기해하면 안 돼.”
“앗, 맞아. 미안.”
뒤에서 속닥거리는 둘을 보며 서리스는 볼을 긁적였다.
마수를 이용해 마왕화를 하는 도로시인데, 고작해야 귀가 조금 뾰족한 거로 신기해하는 것도 웃기다만.
그러는 사이 오팔하임 남성은 서리스 일행을 보곤 고개를 기울이더니 이쪽으로 다가왔다.
“용병들인가? 못 보던 얼굴인데.”
그는 경계하는 기색으로 허리춤에 달린 무기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는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일부러 싸울 수도 있다는 의사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미개척 지역은 범죄자가 숨어들기에 적합한 지역이다.
처음 보는 인물을 경계하는 것 정도는 당연한 일.
“죄송합니다. 입구에 아무도 없어서 우선 여기까지 들어왔습니다. 혹시 외부인은 들어오면 안 되는 걸까요?”
“……그건 아니오. 이곳에 온 목적과 어디서 왔는지만 밝히시오.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걸 보여 준다면 더 좋고.”
서리스가 자세를 낮춰 말하자 그는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대답해 주었다.
다행히 외부인을 완전하게 배척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목적은 오팔하임에 가 보라는 펜타니엄 가주의 명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펜타니엄 가문의 셋째 서리스라고 하고요.”
“……펜타니엄?”
서리스는 곧장 외투를 걷어 펜타니엄 문양을 보였다.
소수 민족이라고 하더라도 펜타니엄은 모를 수 없다.
대가문이라는 건 그런 법이니까.
그 덕에 신분을 밝히자마자 남성의 얼굴에서는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런, 손님을 몰라뵈었소. 펜타니엄과 관련된 거라면 장로님이 알고 계실 것이오. 안내해 주지.”
일이 생기고 더 쉽게 풀렸다.
락로드가 막연하게 가 보라 했기에 정보를 따로 조사해야 할까 싶었건만.
의외로 꽤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다.
“가자.”
안내하는 남성을 보고 서리스가 말하자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남성을 따라가자 마을 내부의 다른 나무보다 유달리 큰 나무가 보였다.
그 근처에는 오팔하임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그들은 외부인인 우리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는 길은 힘들지 않았소? 최근 세계 침식이 또다시 난리인데.”
“저희는 래빗 마을에서 출발했거든요. 괜찮았습니다.”
“아, 래빗 마을 쪽은 괜찮지. 다행이오.”
펜타니엄이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나 친절해지다니.
새삼 서리스는 가문의 위상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기분이었다.
이건, 펜타니엄이 그동안 쌓아 온 믿음이라는 거겠지.
‘소드란 시절 때는 조금 얄밉기도 했지만.’
펜타니엄이 되고 나니 대가문이라는 틀의 값어치를 느끼게 되었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가문에 속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올라가지.”
남성이 나무 계단을 밝고 오르자 서리스도 그 뒤를 따랐다.
조금 높은 계단을 한참 올랐을까, 그 끝에는 나무 안으로 파고들어 지어진 집 한 채가 있었다.
“장로님! 펜타니엄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남성은 곧장 다가가 문을 두들기자, 내부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덜컥 하고 열린 문에는 오팔하임 족 중년 남성이 서 있었다.
겉보기에도 예사롭지 않게 단련된 몸은 그의 경지를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하게 해 주었다.
장로는 서리스를 보더니 화색을 띠었다.
“딱 보니 펜타니엄 락로드 님 아들이구만!”
락로드와 아는 사이였나.
오팔하임과 락로드 사이에서 무슨 연이 있는지 몰라도.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락로드와 꽤 좋은 사이인 듯싶었다.
“들어 오게나. 펜타니엄에서 왔다면 무슨 일로 왔는지 알고 있으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넓다아.”
“도로시.”
해맑게 둘러보는 도로시와 핀잔주는 서발광을 두고 서리스는 오팔하임 장로를 따라갔다.
그는 대접실로 보이는 방문을 열곤 목제로 된 의자를 가리켰다.
“자자, 앉아서 쉬고 있게나. 차라도 준비하지.”
생각 이상으로 호의적이라 다행이다.
서리스가 그의 지시를 따라 의자를 빼 앉자 두 사람도 그 옆에 앉았다.
도로시가 나무로 이루어진 내부를 신기한 듯 볼 동안 서리스는 장로에게 물음을 던졌다.
“저, 장로님, 혹시 가주님과는 어떤 사이신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하하, 되고말고.”
서리스의 질문에 그는 찻잔을 우리에게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워너힐 아카데미 동창 되네.”
동창.
락로드와 나이대가 비슷하긴 했지만, 설마 동창이었다고는 생각 못 한 서리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긴, 워너힐 아카데미는 실력만 있다면 범죄자를 제외하곤 누구든 받아 준다.
오팔하임이라 해서 워너힐 아카데미를 다니지 않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우선 물어보겠네만 락로드 님과 관계가 어찌 되나?”
“셋째 아들입니다. 이름은 펜타니엄 서리스고요. 옆에 두 명은 제나디아 도로시, 그리고 서발광으로 제 동료들입니다.”
“올해 막 성인이 된 걸 보니.”
“예, 워너힐 아카데미 시험을 보고자 합니다.”
“아하핫, 이거 참 미래의 후배분들이구만.”
그는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별도 예사롭지 않군. 락로드 님께서 왜 자네를 보냈는지 알겠어.”
서리스의 경지를 짐작하며 그는 친한 친구의 아들을 보듯 서리스를 대했다.
그런 그를 보고 서리스는 조금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검황 펜타니엄 락로드는 가문에서조차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기본적으로 검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관심했고.
락로드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는 어느 누구도 그를 쉽게 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실제로 소드란 가주로서 몇 번인가 마주했으나, 락로드를 대하기 무척이나 어려워했다.
“……가주님과 친하셨습니까?”
“친하달까. 일방적으로 내가 따른 것에 지나지 않네. 락로드 님은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아무래도 둘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나도 락로드 님께 신뢰받았지. 그분이 지니셨던 것을 오팔하임에 맡겨 두신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고.”
‘이제 본론인가.’
오팔하임에 분명 무슨 기연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걸 받아 내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기도 하고.
서리스가 다음 말을 기다리자 장로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무엇인지 궁금할 테지?”
“예, 오팔하임을 찾은 이유도 가주님께 찾아가 보란 말을 들어서였으니까요.”
“그럼 자격은 충분하다는 소리겠지. 락로드 님께서 내게 맡긴 것. 그건 다름 아닌 과거 그분이 사용하셨던 검일세.”
‘검이라고?’
서리스는 그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기울였다.
그림자를 다루는 펜타니엄은 무기가 필요하지 않다.
그림자가 곧 무기이고, 그림자를 이용해 만든 검은 어떠한 명검이라도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락로드도 당연히 그림자 검을 쓸 텐데 그가 사용했던 검이라니.
“락로드 님이 쓴 검이라는 말은 펜타니엄 사람이 들으면 이상하게 느껴지겠지.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면 다를걸세.”
그는 딱히 숨길 것도 없다는 양 추가 설명해 주었다.
“그 검은 세계 침식자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검일세.”
그 말을 듣자마자 서리스의 몸이 굳었다.
“검으로 사용된 재료는 다름 아닌 세계 침식자의 검은별, 명장(名匠) 토르게아가 락로드 님을 위해 직접 만든 검이지.”
서리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명장 토르게아의 작품.
그것만으로도 검의 값어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만약 토르게아의 작품이 시중에 올라온다면 대가문조차도 앞다투어 거금을 쏟아부을 정도일 테니까.
‘토르게아는 대대로 전승되어온 명장 가문이고 그들이 만든 무기는 대부분 대가문의 보물들이니.’
불터렉스에서 발렌타인이 사용했던 보물 귀왕령 또한 토르게아의 작품이었으니 말 다했다.
거기에 더해 검은별이라니.
예상치도 못한 재료와 토르게아 덕분에 서리스도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서리스의 당황을 다른 의미로 해석했는지 장로는 말을 이었다.
“그런 검을 왜 오팔하임에 맡겨 뒀는지 궁금할 테지.”
이 부분도 궁금한 것이긴 했다.
“결국 명장이 만든 무기도 끝에 도달한 자에게는 무의미했던 걸세.”
그리고 대답은 간단했다.
락로드가 말도 안 되게 강해서 명장의 무기도 그의 그림자 앞에 쓸모없어졌단 소리다.
‘강한 거야 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 말을 듣고 있으니 락로드의 위엄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하지만 아무래도 만들어진 재료가 재료이다 보니 아무 곳에나 둘 수가 없어서 우리 쪽에서 보관하게 되었네.”
‘그런 걸 받게 되는 건가.’
생각보다 더 좋은 기연을 얻게 되었다.
서리스가 묘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장로는 그를 보고 수상한 웃음을 지었다.
“락로드 님께서 보낸 것은 분명 그 검을 자네에게 주기 위함이겠지.”
“예, 아마 그렇겠죠.”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네. 락로드 님께서는 검의 보관함 앞에 만약을 대비해 수호자를 하나 세워 두었네.”
“그 말은.”
간단하다.
오팔하임 장로가 말하지 않아도 서리스는 그 뜻을 눈치챘다.
“그렇네. 시험일세. 수호자를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검을 얻지 못할걸세.”
다름 아닌 자격 증명 시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