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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06화 (105/275)

106화

오팔하임.

펜타니엄의 성벽 너머에 자리한, 대가문조차 존재하지 않는 미개척지 중 하나.

이러한 미개척 지역들은 대부분 세계 침식 발생률이 너무 높아 버려진 경우가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최흉이 자리 잡은 장소는 일정 수준 이상이나 큰 규모의 세계 침식이 발생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최흉에게 몰리는 힘이 너무 강한지라 다른 세계 침식이 제힘을 못 낸다는 말이 있다만.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연구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습게도 현 세계는 최흉과 가까운 지역일수록 안전하여 문명이 꽃피우고 있었다.

이는 대가문들의 존재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

하지만 미개척 지역이라도 그곳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

대가문의 비호를 받지 못하는 범죄자나, 혹은 특수 소수 민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런 미개척 지역 중에서 가장 명망 높은 곳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워너힐 아카데미였다.

미개척 지역 중심부에 우뚝 세워진 천연 요새와도 같은 아카데미.

최흉을 제외하면 가장 흉악한 세계 침식들이 발생하는 미개척 지역에서.

영웅들을 길러 내고자 지어진 것이 바로 워너힐 아카데미였다.

거기에 더불어 미개척 지역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목표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최흉이라는 존재는 인류에게 있어서 위협이고.

최흉이 존재치 않는 미개척 지역은 세계 침식만 막을 수 있다면 사람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가 우리가 지낼 마지막 곳이야.”

미개척 지역의 바로 앞.

래빗 마을의 도착한 서리스 일행은 마차와 함께 마부를 돌려보냈다.

미개척 지역에서 마차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사람이 지나다니지를 않다 보니 마차가 갈 만한 길이 없었던 탓이다.

“일단 하루 정도 식량을 사고 움직이자.”

“와아, 휴식!”

마차 생활이 지겨웠던 도로시가 환호하며 마을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래빗 마을은 세계 침식 전문 용병들이 꽤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마을 규모가 꽤 크다.

대가문에 속한 영지에서 발생하는 세계 침식의 부산물은 전부 대가문이 처리하고 가져가다 보니.

용병들은 이렇듯 미개척 지역 근처 마을에서 숙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미개척 지역 부산물이 아무래도 값어치가 높긴 하니.’

운 좋으면 미개척 지역 마을에서 괜찮은 물건을 건지는 경우도 더러 있을 정도다.

‘나야 그림자를 다루니 물건 같은 건 상관없지만.’

서발광과 도로시에게는 좋은 무구가 필수다.

“서발광, 너도 다녀와. 여관은 내가 잡아 놓을게.”

“아, 응, 도로시는 내가 잘 챙길게.”

눈치 빠르군.

도로시는 은근히 넙죽넙죽 받는 스타일이니 물건을 사다 바가지 쓸 수도 있다.

그런 연유로 서발광에게 보호자 역을 맡겨 둔 서리스는 여관 안으로 들어섰다.

용병들이 많은 만큼 서리스 등장에 잠깐 시선이 모였지만, 그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어서 오세요.”

“세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방 하나 구하고 싶은데요.”

“지금 202호 하나 비어 있어요. 가격은 1인당 이 정도고요.”

익숙한 듯 점원이 간판에 적힌 가격표를 가리키자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불했다.

여관의 질에 비하면 가격이 세긴 했지만, 미개척 지역 근처 마을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이야, 형씨, 몸 좋은데.”

그러는 순간 서리스는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카운터 쪽에 앉아 맥주잔을 들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허리춤에 차고 있는 잘 벼려진 칼.

오랫동안 용병 일을 해 온 듯한 잔 흉터와 손 굳은살.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별을 보아하니, 꽤 베테랑 용병인 듯싶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이 시기에 얼굴이 좀 앳된 거 보면 혹시 워너힐 아카데미 지망생?”

“예, 맞습니다.”

“우와핫, 영웅님이시구만. 혹시 귀족이신감? 이거 평민이 함부로 말 걸어도 되나.”

“괜찮습니다. 점원분 이분께 맥주 한 잔 더 주세요.”

서리스가 돈을 건네자 점원은 곧바로 맥주 하나를 용병 남성에게 주었다.

그는 그걸 보곤 눈을 댕그랗게 뜨더니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사회생활 할 줄 아는 형씨구만! 이런 거 받고 입 싹 닦을 수는 없지. 그래서 뭐, 물어보고 싶은 거 있남?”

“오팔하임으로 가려 합니다만, 최근 그쪽 길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을까요?”

이런 건 현지인에게 정보를 조달받는 게 가장 좋다.

그렇기에 서리스가 서글서글한 미소와 함께 묻자, 그는 오팔하임이라 하며 턱을 쓰다듬었다.

“이봐, 만이 자네 일주일 전쯤인가 오팔하임 쪽에 다녀오지 않았남?”

그는 받은 술값을 톡톡히 해 줄 모양인지 다른 테이블에 있던 용병을 불렀다.

“음? 다녀왔지. 거기 사는 소수 민족 중에 아는 친구가 있어서 말이야. 왜?”

“여기 형씨가 오팔하임에 가야 한다고 해서 말이야. 무려 술까지 사줬다고.”

“오호, 가는 길에 별거 없었네. 근처에 세계 침식 몇 개가 발견되긴 했는데 조금만 우회하면 될 수준이거든.”

‘다행이다.’

괜히 세계 침식이 길목을 막고 있으면 뚫느라 시간이 걸렸을 테니 말이다.

“근데 마을 분위기가 좀 이상하긴 했어. 뭐라더라 외부인이 나타났다던가? 뭐, 나야 보지는 못했다만.”

외부인.

조금 걸리는 이야기긴 했지만, 서리스는 그러려니 했다.

저쪽도 자세히 아는 건 아닌 모양이니 굳이 더 물을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그쪽 테이블 분들께도 한잔 씩 돌리겠습니다.”

“하하핫, 거 통 크구만!”

역시 이런 건 적당히 주고받는 게 좋은 법이다.

호탕하게 웃는 용병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둔 서리스는 짐을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그러곤 짐을 대강 놓아둔 뒤, 침대에 털썩 앉아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서리스가 꺼낸 건 한 장의 편지였다.

편지를 보낸 건 천랑후였다.

내용은 20살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

더불어 서리스의 외할아버지인 드웨이진이 얼굴 한 번 못 본 걸 굉장히 아쉬워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고 보니 인사도 못 드렸나.’

드웨이진에게는 꽤 도움받은 게 많았던 만큼 서리스는 조금 쓴웃음을 지었다.

얼굴 한 번 정도는 보고 올 걸 그랬나 싶다.

‘아니, 왠지 얼굴 봤으면 더 끈질기게 달라붙었을 것 같은데.’

드웨이진은 서리스가 하체펠의 뒤를 잇기를 바라는 눈치였으니.

이만큼 성장한 서리스를 보고 무슨 짓을 해 올지 몰랐다.

‘그 인간, 눈 돌아가면 곤란하니까.’

오히려 이렇게 안 만나고 떠난 게 옳은 선택이었을 것 같다.

이후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서발광과 도로시가 돌아왔다.

도로시는 흥정이 재미있었다며 세계 침식 부산물 일부 몇 개를 서리스에게 자랑하듯 내놓았고.

반면, 같이 있었던 서발광은 어딘가 지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흥정이 힘들었나 봐?”

“으응, 그것도 있긴 했는데. 시장으로 가니 좀, 추파 같은 게 심해서.”

그러고 보니 래빗 마을은 용병들의 지갑을 쓰게 하고자 이런저런 시설이 많다.

귀공자 같은 느낌이 나는 서발광에 저래 보여도 귀족 여식인 도로시였으니.

여기저기서 가게 좀 들어와 보라고 상인들이 열심히 둘을 붙잡았겠지.

“난 재밌었는데!”

“……도로시, 우리 앞에서는 괜찮아도 다른 사람한테 너무 무방비하게 있으면 안 돼. 남자들은 늑대니까.”

“늑대?”

아직 그런 쪽 지식이 전혀 없는 도로시는 서발광의 조언에도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올해 스무 살이 된 도로시는 겉보기로는 남성의 눈을 충분히 홀릴 만하다.

용병들이 사는 래빗 마을은 거친 부분이 있으니 아무래도 시장에서 여러 일을 겪어 온 모양이다.

아무래도 미개척 지역 근처 마을은 대가문의 힘이 닿지 않는 만큼 치안이 썩 좋지는 않으니.

서발광이 옆에서 꽤나 고생했을 것이다.

“흠, 다음부터는 로브라도 쓰고 다닐까.”

“……솔직히 찬성이야. 난 도로시에게 그렇게 시선이 많이 몰린다는 걸 처음 알았어.”

눈이 보이지 않는 서발광은 시선에 예민한 탓인지 질린다는 양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긴, 서발광 입장에서는 도로시가 어떻게 생긴 줄 모르니.

펜타니엄에서는 청랑단 제복을 입고 다녔던 만큼 그런 노골적인 시선이 올 일이 없었던 탓에 이 정도라곤 생각 못 한 모양이다.

“내 눈에는 어떻게 해도 도로시는 도로시인데 말이야.”

“응? 직계님,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예뻐서 좋겠다고.”

“아항, 나도 알고 있어!”

그렇게 골머리 앓는 두 사람과 달리 여전히 천진난만한 도로시였다.

* * *

그런저런 일이 있었던 후 다음 날, 서리스는 여관에서 아침 식사를 때운 후 짐을 든 채 밖으로 나왔다.

시간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오팔하임으로 향할 속셈이었다.

길은 어제 확실히 알아 두었다.

별로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으리라.

“오, 어제 형씨잖아?”

그런 순간 출발 준비를 마친 서리스 앞에 어제 술을 사 주었던 용병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이제 막 일어난 듯 기지개를 켜고 있었고, 서리스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형씨들 오팔하임으로 가는 거라면, 내가 길 좀 안내해 줄 수 있는데 어때? 안전하게 모실게.”

‘돈 목적인가.’

그러면서 그는 슬쩍 다가와 서리스에게 속삭였다.

“형씨, 내가 어제 술 사 준 값으로 알려 주는 건데. 청부엉 용병단이 형씨들한테 관심 있어 보였어. 그놈들 청부업 일부터 시작해 인신매매도 하는 깡패놈들이니까. 조심해.”

‘친절하군.’

어제 술 한 잔 산 거로 큰 효과를 본 서리스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보면 또 한잔 사죠.”

“별거 아니야. 좋은 여행 되라고.”

손을 흔들어 준 그가 다시 여관 안으로 들어가자 서리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제 너무 눈에 띄게 돌아다녔던 모양이다.

확실히 거리에 몇몇 어수선한 놈들이 느껴지긴 했었다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노려 올 줄이야.

‘귀족을 납치하면 돈 좀 만질 수 있다 생각하는 건가.’

분명 워너힐 아카데미 지망생인 것도 어렴풋이 눈치를 챘을 텐데.

‘하긴, 그래봤자 막 스무 살 된 꼬맹이들 취급이라 이거지.’

서리스는 서발광과 도로시를 돌아보았다.

괜히 여기서 용병단이랑 맞붙으면서 시간 끌 필요는 없다.

“둘 다 좀 달리자.”

“엉?”

“알았어.”

도로시만 의문을 띄울 동안 서리스는 저쪽에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용병들을 보았다.

“이봐, 거기 셋.”

“좋은 말로 할 때……”

“달려.”

서리스가 짧게 말하자마자 세 사람이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당황한 용병들이 ‘자, 잡아!’ 하면서 소리쳤지만, 세 사람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한두 명은 서리스의 뜀박질에 휘말려 바닥을 나뒹굴며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뭐, 야. 저게.”

“사람 맞아? 저렇게 빠르다고…….”

광풍과 함께 내달리는 세 명을 보며 용병들이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야, 야! 미친, 망할 뻔했어! 그 세 명 건드리지 마!”

그 순간 저 멀리서 남자 한 명이 뛰어왔다.

뒤늦게 뛰어온 남성을 보고 다른 용병이 의아함을 품자 그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놈들 펜타니엄에서 온 놈들이야! 펜타니엄 직계라는 소문이 있다고!”

“그엑, 페, 펜타니엄?”

“그, 그 또라이 대가문이라고? 엿 될 뻔했다.”

용병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조금 전 자신들이 할 뻔했던 실수를 돌이켰다.

그 가문의 이름을 듣자마자, 불과 몇 년 전 래빗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래빗 마을을 주름잡던 붉은이리 용병단이 펜타니엄 직계에게 모조리 박살 나 해체된 사건이 말이다.

“그런데 붉은이리 용병 대장 그 양반 펜타니엄에 이 갈고 있지 않았나?”

그러는 순간 한 용병이 문뜩 떠올렸다는 양 물었다.

그의 물음대로 붉은이리 용병 대장은 언젠가 펜타니엄에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자다.

그 복수심 덕분에 몇 년간 엄청나게 강해진 인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이 근방 용병들은 그를 건드릴 생각조차 못 하기로 유명했다.

“어이, 너희들 다시 말해 봐.”

그 순간 스산한 목소리가 거리 쪽에서 울려 퍼졌다.

그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청부엉 용병들은 그 자리에 굳은 채 입을 다물었고.

이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왼쪽 눈 부근에 기다랗게 사선으로 흉터가 있는 그는 조용히 걸어와 얼어붙은 용병의 어깨를 손으로 짓눌렀다.

“방금 펜타니엄이라고 했지.”

“예, 예! 펜타니엄이 마을에 나타나서…….”

“어디로 갔냐?”

어깨를 짓누르는 힘이 더 강해지자 용병은 울먹거리는 표정으로 서리스 일행이 사라진 장소를 가리켰다.

그는 손가락이 가리킨 장소를 보고 그의 어깨에서 손을 떼곤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피바람 불겠다. 야, 빨리 철수해. 괜히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라.”

남성이 사라지자 청부엉 용병들은 바로 철수를 외쳤다.

저 멀리 보이는 미개척 지역에서 일어날 일들을 두려워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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