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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102화 (101/275)

102화

염호 바르크 아그닐.

바르크 가문의 가주이자 8성 초입에 오른 자.

그가 다루는 불길은 마치 호랑이와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 염호.

그러나 그런 아그닐도 천하오장성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분명 강했다.

바르크 가문에서도 나름 길이 남을 수준으로 강한 이였으니까.

그러나 그가 태어나고 자란 시대에는 아그닐보다 더한 천재들이 너무 많았다.

하늘 높이 올라가 버린 용과 같은 천상사성은 물론이고.

하늘 아래 존재하는 천하오장성 또한 높은 벽이었다.

노력 끝에 그 벽에 발 디딜 수준까지는 왔으나, 완전히 미치지는 못하였다.

결국 그가 도달할 수 있던 건 천하오장성 대신.

천하오장성에 이르지 못한 열 명의 무인을 새로이 부르는 월하십강(月下十强)에 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천상사성과 천하오장성이 괴물 같은 실력을 지닌 이들이기 때문일 뿐.

월하십강 또한 어디 내놓아도 손꼽힐 인물임은 변함없었고.

“크아아아아악!”

염호는 감히 광견 따위가 넘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뜻했다.

타오르는 불길 속 비명을 지르는 광견을 보며 아그닐은 냉혹하게 검을 들었다.

그야말로 호랑이 앞 하룻강아지 꼴.

아그닐의 검짓 한 번에 흘러나오는 불길은 가히 업화라고 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저게 바로 염호, 바르크 아그닐.’

내리던 빗물이 아그닐의 불길에 다가가지 못하고 증발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하늘 위 먹구름도 그의 불길에 놀라 서서히 도망칠 지경이었다.

“……서리스, 약속 지키지 못했다. 이 몸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곤 마법 밖으로 불을 피워 보내는 것밖에 없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바드라의 말을 듣고 서리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 덕분에 지금 눈앞에 가장 든든한 아군이 와 줬는데.

“서로 목숨 하나 빚진 셈 치자고. 그러니 지금은.”

서리스는 광견과 염호의 싸움에 두 눈을 고정했다.

“저거에 집중하자고.”

업화의 불길 속 광견이 뛰쳐나왔다.

피부가 까맣게 타오른 광견은 다 타 버린 시체와도 같았다.

“크학.”

입에서 새까만 연기를 내뿜은 광견이 분노한 듯 몸을 한 차례 떨었다.

“바르크를 적으로 돌려놓고 도망칠 생각 마라. 어차피 달아날 수 없겠지만.”

“하학! 그럴 생각 없다. 이빨 빠진 호랑이 상대로 도망은 무슨.”

그러는 순간 광견의 피부가 빠르게 수복되기 시작했다.

서리스를 상대했을 때 썼던 것과 같은 종류로, 자기 육체에 직접 거는 환상 마법.

그러나 그걸 두고 볼 생각 없었던 아그닐이 검을 들자 광견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그닐의 눈이 미세하게 찌푸려진 순간, 이바드라의 옆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어 올랐다.

“윽?!”

흠칫한 이바드라가 서둘러 불꽃에서 떨어져 거리를 두자, 불길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쫓아갔다.

그리고 한 지점에 도달한 순간 화륵 하고 거세게 타올랐다.

“이빨 빠진 호랑이 취급하는 것 치곤 비열하게 구는군.”

불길을 피하며 광견이 이를 바득 갈았다.

환상계 마법으로 세계에서 모습을 숨긴 광견이 이바드라를 노렸던 것이었다.

“이바드라.”

“그래.”

서리스의 부름에 이바드라가 재빨리 그에게 붙어 경계의 눈초리를 취했다.

그걸 본 광견은 양 주먹이 으스러질 듯 힘을 주었다.

일이 꼬였다.

갑자기 튀어나온 저 서리스라는 놈 때문에 생각 이상으로 시간을 너무 쓰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광견은 남은 염주를 바라보았다.

이 염주는 알 하나당 수복과 방어 쪽 환상계 마법을 즉시 발동할 수 있도록 응축시켜 놓은 것이다.

환상계 마법이 몸에 주는 부담을 줄이기 위한 도구.

이게 모두 깨지는 순간 당연히 그 부담은 고스란히 자신이 저야만 한다.

입으로는 도망치지 않겠다며 호언장담과 도발을 하고 있으나 광견은 도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거짓말 따위 아무래도 좋다.

‘저놈만 아니었다면.’

일곱별보다 더 뛰어난 놈이 등장한 탓에 시선이 너무 쏠려 버렸다.

이전의 선택에 후회하면서도 광견은 고민에 빠졌다.

‘저놈은 분명 나와 같은 세계 침식자의 조력자다.’

자신과 같은 검은별의 힘을 사용했던 게 그 증거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세계 침식자에게 빌린 검은별에 비해 어쩐지 순도가 더 높아 보인다는 걸까.

서리스를 상대로 일부러 힘 조절했었던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세계 침식자는 같은 세계 침식자라 해서 동료가 아니다.

오히려 제각기 다른 목표를 가진 적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서리스의 뒤편에 어떤 세계 침식자가 있는지 모르는 이상.

혹시나 이번 일로 문제가 생겨 자신이 따르는 분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발목을 잡을 줄이야.’

염호가 움직일 것은 예상하였다.

단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을 뿐.

세계 침식자의 조력자라는 놈이 어째서 대가문 쪽 일을 돕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다.

염주를 쥔 광견의 손이 들렸다.

지금 광견의 상태는 모든 감정을 연소한 두 번째 상태.

환상계 마법을 이용한다면 도주야 어렵지 않다.

“말했을 텐데.”

그런 순간 호랑이가 위협하듯, 염호의 목소리가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도망치게 둘 생각은 없다고.”

그리고 염호의 발아래에서 뻗어져 나온 모든불길이 숲을 뒤덮었다.

순식간이었다.

불의 장막처럼 치솟아 오른 불길이 염호는 물론 주위 모든 것을 가둬 버린 것은.

이글거리는 화염의 공간.

반응할 새도 없이 벌어진 상황에 광견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천하오장성에 미치지 못한 월하십강이라 무시했건만.

염호가 생각 이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초입이라 하더라도 8성이라 이건가.’

별은 한 단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진다.

1성에서 7성을 오르는 것보다 7성에서 8성을 오르는 게 더 힘들고 오래 걸리듯.

별 하나의 간격은 터무니없이 크다.

그렇기 때문일까.

광견은 염호에게서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별의 기운에 스스로가 짓눌리는 기분을 받았다.

저 화염의 장막을 뚫고 도망칠 수 있는가.

그의 입에서 확신이 흘러나오지 못했다.

“썩을.”

욕지거리를 내뱉은 광견이 손을 모아 합장을 취했다.

노리는 건 단 하나의 틈.

그 틈을 만드는 것만을 생각한다.

“호랑이 따위 사냥하면 그만.”

광견의 남은 검은색 염주가 거센 어둠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내가 직접 사냥꾼이 되어 주마.”

환상계 마법

붉은 머리 사냥개

염호의 불꽃으로도 밝혀낼 수 없는 어둠 속.

그 어둠을 뚫고 세 개의 개 머리가 튀어나왔다.

새빨간 개의 머리 아래 보이는 것은 붉은색 근육들이 뒤죽박죽 섞인 인체 형태의 거구였다.

보기만 해도 끔찍한 모습의 괴물이 두 다리로 바닥을 찍은 순간, 그걸 목격한 이바드라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뱃속부터 타고 올라오는 강렬한 위기감.

저걸 본 순간부터 전의를 상실할 것 같은 감각이 머리를 때렸기 때문이다.

이어 자연스레 돌아간 시선이 곁에 선 서리스를 봤다.

그에게는 공포라는 감정이 없는 걸까.

저 괴물을 보고도 그저 묵묵히 그 광경을 자신의 두 눈으로 담고 있는 서리스를 보며.

이바드라는 왜인지 모르게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인생에서 한평생 어느 사람에게도 작아진다는 기분을 느껴보지 못한 자신이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이야기였다.

서리스는 견딜 수 없는 공포를 이미 제 발로 넘어선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태악룡(太惡龍)

모든 것을 바쳐도 고작해야 단 한 번의 공격을 막는 것밖에 못 했던 존재.

그런 태악룡 앞에서도 서리스는 두 발로 섰었다.

그러한 태악룡에게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광견을 보고 서리스가 공포에 빠진다?

그 사실이 더 어불성설이었다.

그랬기에 서리스는 지금 오로지 모든 정신을 두 강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광견을 보며 서리스의 머릿속에는 미친 듯이 수많은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견이 지금 다룬 검은별의 힘은.’

세계 침식에서 나타나는 마수도 있지만, 어떠한 것은 침식으로 인해 변한 마수들도 있다.

광견은 그러한 세계 침식의 힘을 환상계 마법과 조합해 저 스스로 마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진짜 마수는 아니다.

환상계 마법에 덧씌운 것 뿐이기에 마법만 취소한다면 원래대로 돌아갈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라고 처음부터 저런 게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 새빨간 개 머리는 검은별의 힘을 얻었을 때, 숙련도가 부족해 실패했던 결과다.’

그러한 사실을 눈치챈 서리스의 눈이 좁혀졌다.

만약 광견이 사용한 것처럼 자신도 세계 침식의 힘을 다룬다면 어떨까.

‘내가 지금까지 다룬 검은별의 힘은 그저 세계 침식의 힘을 흡수하고 사용하는 거였어.’

응용은 없었다.

그저 단순하게 검은별을 이용해 다른 두 별의 힘을 강화했을 뿐.

‘하지만 저 방식이라면.’

위험한 건 당연한 사실이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려는 걸지도 모른다.

하나, 만약 오늘과 같이.

아니, 더 위험한 상황이 온다면?

그때 가서도 위험하니 할 수 없었다 하는 변명을 늘어놓을 것인가?

‘내게는 소드란과 펜타니엄이 있어.’

서리스의 시선이 발아래 그림자로 향했다.

제왕월영도는 청운귀명으로 만들 수 있는 검의 정수.

그러나 그것은 그림자가 휘둘러지는 것뿐이지, 제 손으로 제왕월영도를 휘두르는 것은 아니다.

‘아.’

무언가.

무언가 잡히기 시작했다.

검제였던 요치아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제왕월영도의 길이.

서리스의 눈앞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전에 느껴 본 적 없던 기분이 전신을 몰아쳤다.

금강귀명도도.

흑월귀명도도.

결국 청운귀명도와 금강잔월에 있던 기존의 것을 대입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어딘가 메말랐던 그 갈증.

어떤 것을 목 안에 삼켜도 없어지지 않던 그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깨달음을 한 방울을 삼킨 순간이었다.

진정으로 자신만이 걸어 나갈 수 있는 검의 길.

그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깨달음은 적인 광견을 통해서 얻었다.

그렇기에 봐야만 했다.

광견이 사용한 힘이 어디까지 통할 수 있을지.

그가 걸어온 길이 무엇인지도.

‘나를 세계 침식자라 욕해도 좋다.’

내가 삼킬 수 있는 건 모조리 삼켜 주마.

그리고 강해지겠다.

오늘과 같은 날이 다시는 없을 만큼 위로 올라가 주마.

세계 침식자든 천상사성이든 무엇이든 집어삼켜 정상에 오르겠다.

탐욕이라는 감정 속에서 전에 없던 전율이 피어오르며 서리스는 그렇게 또 한 번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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