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동굴 어딘가.
고목같이 비쩍 마른 몸에,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장물아비는 환호하고 있었다.
망자들을 합쳐 세운 망자 거인을 보자마자 당황한 청랑단의 시선이 거인에게 꽂힌 틈을 타서.
자신이 목표로 하던 것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의 목표는 다름 아닌 도로시.
처음부터 그녀만을 노리고 있던 장물아비는 모두의 시선이 망자 거인에게 쏠리자마자 그녀의 발아래 망자의 늪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나타난 망자의 늪에 당황한 도로시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늪에 빠져들었다.
그걸 확인하자마자 장물아비는 곧장 도로시를 자신의 앞으로 데려왔다.
반반한 얼굴의 붉은 머리 소녀는 아직 약관을 넘지 않은 듯하였다.
저 붉은 머리는 누가 보아도 마왕의 핏줄.
천하오장성의 핏줄을 지닌 자를 망자로 만들 생각에 장물아비는 무척이나 설렜다.
그렇기에 그는 정신을 잃은 그녀의 별을 검은별로 틀어막고 목숨을 취할 생각이었다.
“너구나?”
그녀의 입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잘도 정신을 차리고 있었군.”
망자의 늪은 정신 착란과 호흡 마비를 일으키는 능력이 있기에 빠지는 순간 제정신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그렇기에 당연히 도로시가 기절해있었을 거라 생각한 그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뿐.
도로시를 붙들고 있는 망자들은 생전에 위업을 달성한 특급 망자들이었다.
아무리 도로시가 날고 긴다 한들 고작해야 성인도 안된 꼬마가 빠져나갈 수도 없다.
“그래도 정신 잃었을 때 곱게 망자로 만들어 주려 했건만. 불쌍하게 됐어. 쯧쯧.”
“와, 목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고목 할아범, 목소리 진짜 쇳소리 같아.”
“망자들과 대화하려면 죽음을 노래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도로시의 도발에도 장물아비는 같잖다는 듯 대답할 뿐이었다.
어차피 곧 망자가 될 녀석이다.
떠들고 싶은 만큼 떠들라고 생각하며 장물아비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에게 뻗은 손이 잘려 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른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바닥에 나뒹구는 고목 같은 손이 자기 손이라는 것을 알자 부아가 미친 듯이 치밀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생긴 것은 의문이었다.
분명 특급 망자들이 도로시를 제압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자신을 공격했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그의 의문을 해결해 주듯 눈앞에 도로시는 뼈로 된 손가락 하나를 물고 있었다.
[고목 할아범, 그래서 나도 똑같이 내 봤어.]
배시시 웃은 도로시의 목에서 나온 목소리는 다름 아닌 죽음의 노래였다.
망자들을 조종하기 위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도로시가 냈다는 것에 장물아비가 경악했다.
설마 그녀가 자신과 같은 망자지기였다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도로시의 입에 물린 손가락뼈를 다시금 본 순간, 장물아비는 그녀가 마왕의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대로 도로시는 마왕화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손가락의 주인은 만악의 질병에 있었던 네임드 중 한 명이자, 망자지기의 것이었다.
만악의 질병에서 사자가 되어 버린 그는 마수였기에.
만약을 대비해 여러 마수의 일부를 챙겨 다니던 도로시가 망자들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꺼내 들었고.
도로시는 그의 손가락뼈를 이용해 마왕화를 발동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뭐 때문에 고목 할아범이 나를 노렸는지는 몰라도.]
도로시는 멍하니 있는 특급 망자들을 지나쳐 식칼과도 같은 검을 각각 역과 정으로 각각 하나씩 쥐었다.
[최강 도로시를 골랐으면 안 됐어.]
도로시를 보고 멍하니 있던 장물아비는 곧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웃음소리에 도로시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자.
장물아비는 어느새 핏물이 멈춘 손을 스윽 들어 올렸다.
절단면이 선명한 손목은 어느샌가 불투명한 무언가로 메꾸어져 있었다.
[놀랐다. 솔직히 놀랐어. 방심한 건 인정하지.]
그 말이 들리자마자 도로시는 바닥을 박찼다.
그러나 그녀는 곧 앞을 가로막은 특급 망자 탓에 그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작해야 망자들의 주도권을 잠깐 빼앗은 거로 승리했다고 확신하다니. 어린 게 죄긴 하구나.]
다시 주도권이 빼앗겼다.
그 사실을 알아챈 도로시가 검을 꽉 쥐었다.
아까까지는 장물아비와 이어져 있던 특급 망자들에게 신호의 혼선을 줘 마비시켰었으나.
이제는 신호에 마치 단단한 막으로 씌워진 듯 들어갈 틈이 없었다.
확실히 급조된 망자술 정도로는.
평생 망자술에 모든 걸 바쳐 온 망자지기인 장물아비를 이길 순 없는 노릇인 모양이다.
‘손목 하나 가져간 거로 만족해야 하나.’
그게 목이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살기를 그렇게 대놓고 드러내면 손목조차도 못 베었을 거다.
도로시는 퉤 하고 뼈 손가락을 뱉었다.
그동안의 수련으로 이제는 제 마음대로 마왕화를 조절할 수 있게 된 그녀에게 돌아오는 반동은 없었다.
[두려워 마라. 너도 곧 이 아이들과 같은 모습이 될 테니. 내 너를 친히 귀여워해 주마.]
“으웩. 고목 변태 할아범으로 바꿔 줄게.”
징그럽다는 양 질색한 표정을 지은 도로시를 향해 특급 망자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놈은 검사.
다른 한 놈은 권법가.
아주 짧게나마 둘의 전투 방식을 망자술로 공유했던 도로시는 그들의 파악을 마쳤다.
그럼과 함께 망설임 없이 입 안에 끈적한 정육면체의 무언가를 던져 넣었다.
‘이건 최대한 안 쓰려 했는데.’
푸욱! 쾅!
그 순간 날아든 검과 주먹이 동시에 도로시를 덮쳤다.
검은 그녀의 몸을 양단했고, 주먹은 그녀의 배를 산산조각 내 놓았다.
“됐군!”
도로시의 죽음을 보고 환희에 빠진 장물아비가 외친 순간, 그는 멈칫하고 몸을 굳혔다.
특급 망자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던 도로시의 형태가 마치 액체처럼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허공에서 일그러져 바닥으로 추락하던 액체가 구의 형태가 되었다.
장물아비가 도로시가 마왕화를 사용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반사적으로 방어하려 한 순간.
파바바바바박!
구가 조각조각 나 구슬이 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 코앞에 있던 특급 망자들은 몸 여기저기가 구멍이 숭숭 뚫려 무너져 내렸고.
급히 원혼 방패를 사용했던 장물아비는 마치 장대비와 같은 구슬이 방패를 미친 듯이 두드리는 두려운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으으으, 인간형 아닌 건 아직도 적응 못 하겠어어.”
그렇게 원혼 방패를 때리던 소리가 줄어들었을 때쯤.
장물아비가 시선을 옮기자, 조금 전 액체가 한데 모여들어 아슬하게 형태를 이룬 도로시가 보였다.
“네, 네년은 괴물이냐!”
“망자나 다루는 고목 변태 할아범에게 들을 말은 아닌데.”
도로시가 삼킨 것은 타락한 늪의 정령의 일부다.
몸이 끈적한 액체가 되어 버리는 만큼 도로시 입장에서도 다루기 까다로운 마왕화이나.
물리 공격만 가진 상대로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단점은 인간의 모습에서 거리가 생긴 만큼 별을 더 잡아먹는다는 거지만.
‘고목 변태 할아범은 몰라.’
특급 망자 두 명을 순식간에 잃은 만큼 장물아비도 당황한 상황이다.
지금이 기회임을 눈치챈 도로시는 어느샌가 늪의 정령 조각을 뱉고 새로운 것을 입에 물고 있었다.
마왕화는 하루 세 번 교체가 한계.
그것도 이중으로 쓴다면 한 번이다.
‘이번에 끝장내야 해.’
망자지기는 망자를 다루는 자지 망자 대신 싸우는 자가 아니다.
장물아비의 함정에 일부러 빠져 준 것도 그런 이유.
그녀의 몸 위로 새까만 비늘이 뒤덮이기 시작하고, 이마 위로 새하얀 뿔 하나가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그녀의 다리는 이제껏 없을 정도로 단단한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그 위용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크흥.”
코에서 연기를 후욱 뿜어 낸 도로시의 눈이 장물아비에게 꽂혔다.
흑각룡우(黑角龍牛)라 불리는 마수의 비늘로 돌진력과 육탄전 하나만큼은 도로시가 가진 수 중 최고였다.
‘방패랑 함께 통째로 꿰뚫어 버리겠어.’
식칼 같은 검을 마치 뿔과 같은 형태로 쥔 도로시가 다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동굴 바닥을 짓이길 정도로 다리가 폭발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장물아비가 데려온 이곳은 도망칠 곳이 일절 없는 동굴이다.
저쪽은 자신을 이곳에서 몰래 죽일 속셈으로 데려온 거겠지만.
그건 실수였다.
흑각룡우의 돌진을 피할 방법이 없는 협소한 공간이라는 소리였으니까.
투쾅!
도로시가 쏘아졌다.
포탄이 날아가듯 쏘아진 도로시는 과거 서리스가 보여 주었던 귀영분신 급의 위력을 품고 있었고.
동굴 벽째로 장물아비를 날려 버릴 듯하였다.
하지만 도로시는 한 가지 실수했다.
장물아비란 존재가 얼마나 미쳐 있는지를 미처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을.
“커흑!”
배를 강렬히 때린 충격.
뱃속에 모든 걸 게워 낼 듯한 충격과 함께 도로시는 이를 아득 깨물었다.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에 비춘 것은 다름 아닌 로브를 벗어던진 장물아비였다.
“나를 얕봐도 유분수지.”
로브를 벗어던진 장물아비의 몸은 보기만 해도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수많은 얼굴들이 그의 배와 가슴, 등을 타고 서로가 절규하듯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몸에 망자를 직접 새겨 놓은 거야?’
자신을 괴물 취급하더니.
‘지금 누가 누굴 보고 괴물이래.’
경악스러운 짓을 한 장물아비를 보며 도로시는 자신의 배를 두드린 것이 그의 주먹임을 깨달았다.
뒤이어 얼굴을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곤 그녀는 잽싸게 검을 휘두르며 응수했다.
채엥! 쾅!
주먹과 검이 부딪쳤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쩍 말라 모든 힘이 쇠한 고목 같은 몸이건만, 망자에게서 얼마나 힘을 끌어낸 건지.
그 힘으로 흑각룡우의 방어력마저 꿰뚫고 있었다.
만약 흑각룡우가 아니었다면 첫 일격에 도로시는 죽었을 것이다.
“내가 왜 광견의 밑에 있을 수 있는지 아나?”
휘두른 다리를 피하자마자 옆구리에 주먹이 꽂힌 도로시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연이어 쌓인 충격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나도 광견만큼이나 미쳐 있기 때문이다!”
광기 섞인 웃음이 그의 얼굴 위로 깃들어졌다.
그런 그를 보고 도로시는 입 안에 생긴 핏물을 퉤 뱉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고목 변태 할아범은 최강 도로시가 왜 청랑단에 들어간 줄 알아?”
장물아비가 얼마 남지 않은 눈썹을 치켜뜨자, 도로시는 입가에 흐르는 핏물과 함께 도발적인 미소를 그렸다.
붉은 머리카락에 더해진 그녀의 핏물을 머금은 미소는.
마치 새빨간 장미가 꽃을 피우듯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동료란 건 중요한 순간에 빛을 발하거든.”
“헛소리를…….”
콰앙!
그 순간 장물아비의 말을 끊듯 천장이 무너졌다.
천장에서 내려온 빛과 함께 쏟아진 화살에 눈살을 찌푸린 장물아비가 물러서고.
그 자리에 어느샌가 한 남성이 검을 늘어트린 채 착지했다.
두 눈을 꼭 감은 남성은 차갑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은 채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착쁜놈, 늦어!”
“미안. 위의 상황을 정리하는 데 좀 걸렸어. 그리고 아래에 이런 동굴이 있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거든.”
도로시의 외침에 답한 서발광을 보며 장물아비의 두 눈이 희미하게 떠졌다.
“……정리했다고?”
서발광의 제복은 분명 청랑단의 것.
지금 위에 있는 것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역작, 망자 거인이다.
못해도 수만 명 이상을 사용한 망자 거인을 이렇게 단시간 내에 정리했다는 소리인가?
“그럴 리가!”
헛소리다.
기감을 끌어 올린 장물아비가 서둘러 자신이 자유롭게 풀어 놓은 망자 거인을 찾았다.
하지만 왜인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망자 거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장물아비의 얼굴이 사색으로 짙어지는 순간.
도로시는 그런 그를 비웃듯 한 차례 웃음소리를 흘려보냈다.
“차라리 숨어서 망자나 뒤에서 조종하지, 그랬어?”
“망할 년이, 상관없다! 전부 죽여 망자로 만들어 주마!”
망자 거인을 잃은 울분을 토해 주리라 마음먹은 장물아비가 분노를 내비쳤다.
“얼마나 더 할 수 있겠어.”
“최강 도로시는 언제든 풀 컨디션이야.”
“믿음직하네.”
벌떡 일어나는 도로시를 보고 씩 하니 웃은 서발광은 검을 천천히 발검했다.
“끝내고 어서 서리스를 도우러 가자.”
“찬성. 직계님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활쟁이도 다 들었지!”
“들었다마다.”
뻥 뚫린 동굴 천장 위에서 이미 활을 겨누고 있는 아카펠의 대답을 시작으로 도로시와 서발광은 동시에 바닥을 박찼다.
그리고 그것이 산속 가득 메운 망자들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