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알리즈 형님도 그걸 배운 겁니까?”
“하핫, 그게 아무나 될 줄 아느냐?”
혹시나 하여 묻자 요치아는 거센 웃음을 토해 냈다.
“노부가 젊은 시절에도 이걸 쓸 수 있는 놈은 노부 말곤 없었느니라.”
그러면서 요치아는 과거를 회상하듯 중얼거렸다.
“하물며 노부 시대보다는 평온한 너희 시대에 배울 수 있는 놈이 있을 턱이 있나.”
요치아는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다.
가르칠 만한 녀석이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반응이었다.
“알리즈는 당연하고, 솔직히 네놈도 아슬아슬하지.”
그 정도인가.
서리스는 자신이 보기에도 또래 중에서는 압도적이라는 걸 체감하고 있다.
그런 자신조차 아슬하다는 건 대체 어떤 검술일지 가늠이 안 갔다.
“노부가 네놈에게 이 검술을 가르치려는 건 어디까지나 흥미이니라.”
그러나 서리스에게는 기회였다.
“이대로 시대에 묻혀 버리기엔 아까운 검술이니, 네놈이 그 흥미를 부디 채워 줬으면 하는구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말은 번지르르하니 좋구나.”
요치아는 큰 기대는 안 한다는 듯 낄낄 웃었다.
“대신 익히고 나면 그릇의 문제는 전부 해결될 게다. 제왕이 되면 신하가 제왕의 별빛 정도야 얼마든지 떠받들어 줄 테니까.”
그것참 서리스에게는 다행인 소리였다.
문제는 이렇게 겁을 준다는 건 배우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는 점이겠지만.
“그래서 제가 뭘 해야 합니까.”
할 거면 빠르게 하자고 서리스가 묻자 요치아가 마귀와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불안하여 서리스가 얼굴을 굳히자, 요치아는 검지를 들어 올려 서리스가 쥔 목검을 가리켰다.
“1만 번.”
“……예?”
서리스가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지만, 요치아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그 목검을 1만 번 휘두르면 되느니라.”
이 무게로 1만 번이라는 숫자도 말이 안 되는데,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라고.
참고로 해는 앞으로 2시간 안에 떨어질 예정이었다.
“……검술 가르쳐 주신다 해 놓고. 이건 단순 육체 단련 아닙니까?”
“휘두르다 보면 깨우치는 것도 있느니라.”
무슨 강제 주입식 교육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며 서리스가 허망한 표정을 짓는 동안 요치아는 뒷짐을 지고 걸어갔다.
“노부는 해가 떨어질 때쯤 올 테니 그리 알고 있거라.”
서리스가 입술을 짓이기듯 물었다.
‘망할, 방법은 없고.’
하라면 해야겠지.
그나마 다행이었다.
단순 무식한 일은 이쪽도 자신 있었으니까.
“어디 해보자고.”
서리스의 목검이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해가 떨어지고 찾아온 밤.
목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렸다.
자신보다도 많은 무게가 나가는 검을 별 없이 휘두르고 있어서일까.
평소 같았으면 한껏 부풀어 올라 위용을 드러냈을 근육이.
미친 듯이 떨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리스의 정신도 마찬가지였다.
전투에서 곤욕을 치르며 한계에 몰리는 것은 할만했다.
그러나 이 무거운 목도를 오롯이 자기 육체 힘으로만 만 번을 휘두르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후우, 후.”
거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젠 탈진 직전인 듯 땀조차 흘러내리지 않고 있었다.
몸이 별이라는 편한 길이 있음에도 왜 이리 고생하냐며 비명을 질렀다.
‘버틴다.’
그러나 불굴의 정신이라고 해야 할까.
서리스는 입술을 까득 깨물며 악착같이 검을 휘둘렀다.
소드란 때는 이것보다 고통스러웠다.
노력조차 허락받지 못하던 세계에서 살아왔지 않는가.
‘재능까지 있고 노력까지 쏟을 수 있는 지금.’
서리스는 이걸 수백만 번도 휘두를 수 있었다.
“만!”
커다랗게 마지막 숫자를 외친 순간.
서리스의 몸이 허물어지듯 무너졌다.
머리를 바닥에 박은 채 서리스는 폐부 깊숙이 산소를 공급했다.
가쁜 숨에서 단내가 느껴졌다.
“끝났느냐?”
그런 순간 머리 위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서리스가 누운 채로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요치아가 늘 그렇듯 뒷짐 진 자세로 있었고, 서리스는 머리를 겨우 끄덕이었다.
“쯧쯧, 태양이 저물었잖으냐. 이래선 의미가 없건만.”
“그, 러면 말, 리시지 그러셨, 습니까.”
“눈이 무서워서 말릴 수가 있겠느냐.”
그 순간 서리스는 결정했다.
체력이 돌아오면 되든 안 되든 한 번 덤비기로.
“그래도 고생했다. 하루 만에 채울 거라곤 생각 안 했었으니.”
하지만 마지막 말을 듣고 서리스는 마음을 접고 한숨을 옅게 내쉬었다.
“내일도 합니까?”
“매일 할 거니 그리 알 거라.”
죽겠군.
한순간 청랑단 생활이 그리워진 서리스였지만, 고개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할 테니 따라오너라.”
“밥은 제대로 주십니까?”
“한 그릇당 만 번 추가다.”
‘성격 고약하긴.’
그리 말하면서도 앞서가는 요치아는 서리스에게 보이지 않게 웃고 있었다.
‘이놈이라면 정말로 익힐 수도 있겠어.’
별 없이 정말로 하루 만에 저 목검을 만 번이나 휘두를 줄이야.
‘일부러 그 횟수만큼 휘두르기에는 아슬아슬할 정도의 무게로 만들어 놓았건만.’
기어코 하루 만에 전부 휘둘렀다.
그걸 버티는 육체도 무시무시하긴 하나.
그걸 해내게 하는 정신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요치아가 즐거운 기분을 느낄 동안 서리스는 걷는 것도 힘이 빠져 고개가 자꾸 아래로 내려갔다.
‘기절할 거 같다.’
낮에는 전력 질주에 세계 침식까지 해결한 데다가, 해가 질 때까지 이런 무게의 목검을 휘둘렀기 때문일까.
서리스의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기절하는 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요치아가 얼마나 막무가내인 사람인지 다시금 체감하며 서리스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꿈에서 서리스는 새까만 그림자 위에 누워 있었다.
이상할 정도로 폭신한 그림자는 서리스의 몸을 감쌌고, 그는 기분 좋은 감촉을 느끼며 그림자 속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영원히 헤어날 수 없는 듯한 기분.
그 기분에 사로잡히던 순간, 서리스는 그림자보다도 새까만 무언가를 마주했다.
‘검은별.’
녀석은 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걸까.
그림자 속에서도 더 짙은 어둠을 꾸역꾸역 내뱉고 있는 검은별을 마주한 서리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지금이라면 잡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품은 그 순간, 서리스의 눈이 번쩍 떠졌다.
낯선 천장이다.
그러나 천능선목으로 만들어진 지붕은 서리스가 쉬이 이곳이 어딘지 짐작하게 만들어 주었다.
요치아의 저택이겠지.
정신 차릴 겸 마른세수를 하고 있으니, 무언가 코끝을 간질이는 고소한 냄새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탁자 옆에 식은 수프와 빵이 놓여 있었다.
보아하니 일어나면 먹으라고 두고 간 모양이었다.
“고기라도 주시지.”
냄새를 맡자마자 배고픔에 일어난 서리스가 탁자 앞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근육통은 없었다.
아무리 별을 임의로 막아 두었다고 해도 금강잔월로 단련된 육체는 뛰어난 회복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은 수프에 빵을 찍어 먹자 그럭저럭 맛있었다.
고기는 없어도 탄수화물은 많다는 듯 바구니에 빵 하나는 잔뜩 들어 있어 배를 채우는데 용이했다.
‘시간은.’
아직 새벽인 듯하였다.
몸이 회복을 위해 강제로 긴 시간 수면한 거겠지.
‘그렇게나 무식하게 휘둘렀으니.’
배를 다 채우고 입가심으로 물을 벌컥벌컥 마신 서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밖으로 걸어 나오자 그의 귓가에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리스의 시야가 닿은 곳에는 한 남성이 있었다.
올곧게 휘두르는 그림자 검.
그 검의 주인은 다름 아닌 알리즈였다.
살짝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 덕분에 푸른빛이 옅게 감돌기 시작한 하늘 아래서 알리즈는 그렇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 서리스, 일어났구나.”
서리스의 기척을 느낀 알리즈가 옷으로 땀방울을 닦으며 말을 걸었다.
‘5성에는 이르지 못했나.’
알리즈에게서 흘러나오는 별을 눈여겨보며 서리스는 볼을 긁적였다.
어떻게 하면 알리즈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까.
막연하게 생각해 보아도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제 기절한 거 같아서 걱정했어. 요치아 님도 참 첫날부터 여기까지 몰아붙일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서리스가 어떤 훈련을 하고 왔는지도 모르는 듯 알리즈는 해맑게 말했다.
다시 봐도 그는 순박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펜타니엄 직계라곤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말이다.
“알리즈 형님.”
“응?”
“형님은 왜 검을 휘두르십니까?”
분명 알리즈는 펜타니엄 직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검에 재능 있는 편이 아니다.
발아래 일렁거리는 그의 그림자를 보면 별 또한 마찬가지다.
펜타니엄 밖이라면 그는 재능 있는 사람으로서 높게 평가받겠지만.
펜타니엄이라는 가문이 그의 앞에 붙어 있는 이상, 그는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궁금했다.
그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검을 휘두르는지.
“어,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그, 뭐랄까. 개인적으로 강혼 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천상사성 중 한 명이자 무황(武皇)이라 불리는 강혼.
“그렇다면 전제가 잘못되지 않았습니까? 무황은 가문에 속해 있지도 않은데요.”
“그렇긴 하지.”
무황은 일인 전승이라는 특이한 별을 물려받았다.
그렇기 때문일까.
그에게는 가문이 없기에, 대가문들의 힘이 닿지 못하는 곳들을 주로 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그는 분명 많은 무인들의 우상이다.
하지만 그건 그가 특별한 거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펜타니엄을 나가기라도 하실 겁니까?”
“……그건 아직 모르겠는걸. 그래도 언젠가는 그럴지도 몰라.”
그는 어딘가 지친 표정으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서리스는 그 표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비교당하고 억압당하며 짓눌린 자들이 언젠가는 올지 모르는 막연한 희망을 바랄 때.
사람은 그런 표정을 짓곤 한다.
그 얼굴을 서리스는 거울을 통해 수없이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눈앞에 다가오는 희망을 절대로 놓치지 못할 것이다.
‘알리즈가 세계 침식자와 손을 잡은 건.’
모든 게 마모된 그 순간.
눈앞에 유일한 희망이 찾아왔으니.
알리즈는 결과를 알면서도 그 어둠과 손잡을 수밖에 없었겠지.
그것이 타의든 자의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다른 이들에 비해 너무 간절한 것이었으니까.
“형님은 샬롯과 큰형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기에 서리스는 물었다.
그를 가장 억누르고 있을 두 사람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받은 알리즈는 서리스를 보고 곧 옅은 웃음을 지었다.
“자랑스러운 형이고 여동생이야. 부럽기도 하지.”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지만.
그가 내뱉은 말에는 포기가 담겨 있었다.
자신의 노력으로는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이란 것처럼.
‘자랑스럽다고.’
저건 가족 이전에 그냥 다른 존재로 취급하는 말이었다.
알리즈에게 있어서 펜타니엄은 가족이자 지켜야 할 가문이 아니었다.
“알리즈 형님, 저는 천상사성을 뛰어넘을 겁니다.”
“하핫, 그거 기대되는데. 서리스라면 할 수 있을 거야.”
“기대만 하실 겁니까? 무황을 동경한 형님도 되실 거지 않습니까.”
“어, 나는…….”
알리즈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말문이 막혔다.
그러나 서리스는 상관없었다.
“큰형님도 샬롯도 저는 상관없었습니다. 어느 누가 있던 저는 넘어서고, 그 위에 있을 거니까요.”
그들이 하늘 위 빛나는 별이라면.
서리스는 그 별조차 뒤덮어 버릴 별이 될 것이다.
“그러니 알리즈 형님도 포기하지 마십쇼.”
“서리스.”
“대답은 안 듣겠습니다. 술이나 진탕 먹으며 뒹굴던 아우로서 그냥 토로한 거니까요.”
알리즈를 막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서리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씨앗 하나 정도는 그에게 심어 두고 싶었다.
“저는 알리즈 형님도 부러워하고 자랑스러워했단 것 정도는 기억해 주세요.”
그 말을 마치고 서리스는 알리즈의 시선을 뒤로한 채 집 안으로 들어갔다.
“새벽에 시끄럽게 뭐 그리 떠드느냐.”
그러자마자 서리스는 복도에 서 있는 요치아를 보곤 흠칫했다.
그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바깥쪽을 힐끔 보더니 몸을 돌려 걸어갔다.
“동생으로서 잘했다.”
그리고 들려온 말은 그답지 않게 칭찬이었다.
‘잘한 건지 아닌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가 세계 침식자와 손잡기 전.
한 번쯤 자신을 떠올려 줬으면 좋겠다고 서리스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