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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78화 (77/275)

78화

검제는 괴물이다.

서리스는 한 문장으로 요치아를 정리했다.

“썩, 을, 차이가 나, 는 건 당연한 건데.”

전생에서는 평생토록 느껴본 누군가와의 차이였지만.

서리스에 빙의하고 나서 처음 겪는 압도적인 차이에 그는 조금 기가 죽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별을 전력으로 쏟아 달린 지 한 시간 째.

요치아는 시야의 끝자락에서 살랑살랑 뒷모습만 보여 주며 절대로 따라 잡히지 않았다.

처음 그가 별을 쓴다고 하자마자 쏟아져 나온 기운은.

서리스가 앞으로 몇 년을 단련해야 도달할 영역인지 가늠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아득하다.

그것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요치아는 괴물 같은 사람이었다.

과연 과거 시대 최강자인 삼무제에 속하는 괴물답다.

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힘을 유지할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인간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락로드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지.’

모르겠다.

락로드를 두 눈으로 본 것은 소드란 가주 시절 때뿐이었으니까.

별을 느끼지 못하는 당시에 수준을 가늠하리란 어려웠으니, 락로드와 요치아를 같은 비교 선상에 둘 수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서리스의 눈에는 결국 둘 다 괴물 같은 인간임은 다름없다.

5성에 올랐다고 좋아했더니.

시대를 호령하는 괴물들 옆에 다가가기에는 아직 한참 먼 모양이다.

동시에 그런 요치아의 힘을 눈으로 느끼고 있으니 서리스의 오기가 끓어 올랐다.

배우고 싶다.

그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워 제 것으로 만들고 싶다.

답답하게 느껴지던 벽은 잊고 무위에 대한 욕심이 몽실몽실 샘솟았다.

요치아에게 검을 배운다면 자신은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 걸까.

‘어째서 많은 사람들이 스승을 찾는지 알겠어.’

이런 걸 두 눈으로 체감하면 배우고 싶어 안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사이 요치아가 속력을 올렸다.

그러자 놓칠세라 서리스도 따라 속도를 올렸다.

육체가 별을 한껏 머금었다.

불터렉스 이후, 청랑호법으로 활동하며 이 정도로 별을 소모할 일이 없었기 때문일까.

별을 쏟아 낼수록 도리어 육체에 활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하, 하하, 이걸 위해서였나.”

노린 거라면 영악한 사람이었다.

내가 무엇에 막힌 건지 한눈에 꿰뚫어 봤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러는 순간.

앞서 얼마 지나지 않은 일들을 돌이킨 탓일까.

문득, 서발광과 같은 청랑단원들이 잇따라 떠올랐다.

이 산에서 내려갈 때쯤 녀석들을 보면 얼마나 성장해있을까.

모두 다 재능 있는 녀석들이다.

전생의 내가 봤다면 부러워 죽으려 할 만큼이나.

‘그런 재능 있는 녀석들이 바짝 쫓아 오고 있으니.’

이쪽도 마냥 시험만 당하고 있을 수는 없다.

“흐읍.”

욕심을 내기로 한 서리스가 숨을 한껏 들이켰다.

그와 함께 다리 근육이 거칠게 부풀어 올랐다.

요치아가 별을 쓰라고 했다.

‘그렇담 전력으로 써 주마.’

서리스의 등위로 어느샌가 그림자가 펄럭였다.

목 뒤 두 개의 별 문신이 포효하듯 빛을 내뿜은 찰나.

서리스의 몸이 일순간 소리를 넘어섰다.

금강귀명도(金强晷銘刀)

삼식(三式)

귀영분신(晷影奮汛)

파앙!

뒤따른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지고, 서리스를 앞지르던 요치아가 처음으로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요놈 봐라.’ 하는 식으로 휘어졌다.

서리스가 한순간에 도약하여 요치아의 방심을 틈타 따라잡은 것이다.

한 발자국.

그 한 발자국을 내딛는 순간, 서리스는 요치아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

그러나.

“노부가 후기지수 놈에게 앞을 내어 줄 성싶으냐.”

말 한마디와 함께 요치아가 사라졌다.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발동작과 함께 요치아가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

서리스의 입에서 허망한 듯 탄성이 한 줌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서리스가 날고 기어도 검제는 검제였다.

하지만 한순간이나마 따라잡았다.

분명 그것에 만족해야겠지만.

‘내가 당신만큼이나 성깔이 더럽거든!’

서리스가 이를 아득 깨물며 도약의 반동으로 힘이 빠져나가려는 다리에 재차 힘을 불어넣었다.

동시에 바닥을 박차며 별을 불사 지르듯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고얀 것. 제 아비를 닮아 절대 지고는 못 사는구나.’

나무까지 부숴 먹으며 자신의 뒤를 최선을 다해 쫓아오는 서리스를 보고 요치아는 짧게나마 웃었다.

의지는 인정한다.

저 와중에도 제 몸 하나는 확실히 아는 듯 호흡과 힘을 고르게 쓰는 건 칭찬할 만했다.

그러나 역시 아직 따라 잡혀 줄 생각은 없었다.

“수고했느니라.”

말 한마디와 함께 요치아의 발이 멈추어 섰다.

그의 앞에는 어느샌가 요치아가 머물던 가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콰광!

달려온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서리스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얼굴 위로 분함이 가득 차올라 있었다.

아직은 서리스가 자신을 따라잡지 못하겠지만.

“꼴에 자격은 있어 보이니 노부가 조금은 가르쳐 주마.”

언젠가는 기어코 아득바득 넘고 말리라.

그때까지는 조금 가르쳐 주겠다고 요치아는 생각했다.

“내, 뱉은 말 돌리, 기 없는 겁니다.”

“놈, 노부를 뭐로 생각하는 거냐.”

“…….”

“왜 말이 없느냐? 제자로 받아 준 기념식이라도 열어 주기를 바라는고?”

“그럴 리가요. 감동에 젖어 잠깐 할 말을 잊었습니다.”

숨차다는 것도 잊고 대답한 서리스는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별을 쏟아 낸 덕택인지 어딘가 개운한 기분이 물씬 느껴졌다.

숨을 내뱉고 들이키자 육체적 피로감이 도리어 편안하게 느껴졌다.

“따라오거라.”

그렇게나 별을 쏟아 내고도 금방 회복해 따라오고 있는 서리스를 보며 요치아가 가옥으로 걸어갔다.

“간단한 시험을 하겠느니라.”

“앞에서 그렇게 해 놓고요?”

“그건 그거고. 이건 또 다른 것이니 잔말 말고 보기나 하거라.”

좀 예뻐해 주고 나니 싹수가 노래졌다.

그런 생각을 품은 채 요치아는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의 손아귀에 그림자가 몰려들었다.

청운귀명으로 만들어진 것은 얇은 도신에 새까만 구름이 문양처럼 그려진 아름다운 검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풍겨 나오는 기운은 서리스조차 꿀꺽 침을 삼킬 만큼 두려운 것이었다.

별을 쥐고 있다는 게 저런 느낌일까.

그런 생각이 들 만큼 요치아의 검에서는 숨 막힐 듯한 압박감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부터 노부가 두 번 휘두를 것이다. 보고 휘두른 검에 차이점을 말하면 되느니라.”

그 말과 함께 요치아가 검을 들어 올렸다.

첫 검이 아래로 천천히 내리그어졌다.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고요하게 그어진 검은 서리스의 눈을 홀리게 만들 정도였다.

분명 단순한 내려치기였다.

그러나 서리스는 지금의 자신으로는 저 모습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 확신했다.

호수 위 청명하게 떠오른 달.

그러한 달 아래 휘두른 검과 같이 아름다운 내려치기였다.

“두 번째니라.”

그리고 곧이어 두 번째 검이 내리그어졌다.

두 번 다 별을 담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검이 휘둘러졌을 때, 서리스는 스산한 기운이 머리카락을 지나갔음을 깨달았다.

서리스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 이마에 송골송골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백 년 이상 살아온 태산 같은 호랑이가 자신의 눈앞에서 앞발을 내려치면 이런 느낌일까.

뱃속이 꿈틀거리는 감각에 서리스의 눈이 떨리자 요치아가 그를 돌아보았다.

“꼴을 보아 하니 감 하나는 어지간히 타고난 모양이구나.”

“어떻게 아예 다른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겁니까?”

요치아는 별을 담지 않았다.

하지만 두 번의 검은 같은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극과 극이었다.

“5성이라는 경지가 무인의 시작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느냐.”

5성.

누군가에게는 꿈의 목표라 할 수 있으나.

누군가는 5성을 시작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는 기점이 바로 5성이기 때문이다.”

무인으로서 사람을 초월할 때.

그것을 일컫는 것이 5성이라는 경계다.

실제로 수많은 이들이 5성 앞에서 좌절하고 무너진다.

그 벽을 부수는 것은 5성까지 올라오며 겪어 온 모든 일과 깨달음을 무가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별 말고도 일류다. 절정이다 하는 식으로 시답잖게 여러 말로 나누긴 했다만.”

요치아는 검을 들어 다시금 두 번의 내려치기를 했다.

“노부가 보기에는 별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도 인간의 범주를 넘어설 수 있을 때부터를 6성이라고 보고 있다.”

두 번의 내려치기는 그러한 초월지점을 각기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첫 번째 검은 오롯이 검술로 인간을 넘어섰을 때를 가리키고 있다.”

고요하고 청아한.

검술의 극치에 다다랐을 때 지닐 수 있는 영역.

“두 번째 검은 오롯이 육체로 넘어섰을 때를 가리키고 있지.”

포악하고 패도적인.

육체의 정점에 다다랐을 때 지닐 수 있는 영역.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전부 지니게 되었을 때.”

홀리듯 서리스의 시선이 요치아의 검에 닿은 순간.

소리 없는 검로와 함께 바람이 서리스를 휘감았다.

무엇을 본 지 이해 못 할 정도로 아득한 영역 앞에.

서리스가 넋을 놓은 순간 요치아는 말했다.

“범주에서 벗어난다.”

아직은 서리스가 닿지 못할 아득한 영역에 있는 요치아는 걸터앉아 가벼이 웃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네 녀석은 이 두 가지를 전부 지닐 기회가 있지. 참, 기연이란 결국 가질 놈이 다 가지는 모양이로다.”

부럽다는 양 입맛을 다신 요치아는 서리스의 앞으로 걸어왔다.

“육체는 노부가 보기에 딱히 가르칠 거 없다. 그릇만 키운다면 이대로 둬도 어련히 알아서 개화하겠지.”

그러면서 요치아는 자신의 검을 툭툭 두드렸다.

“노부가 네게 가르칠 것은 검술이다. 감에 의존하기만 하는 무식한 검술을 죄다 뜯어 고쳐 주마.”

“……요치아 님은 검제가 맞으셨군요.”

“뭐야? 네놈이 제 발로 찾아와 놓고 노부를 의심했던 게냐.”

그건 아니었다.

서리스는 그저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아무 말이나 내뱉었을 뿐.

고개를 저어 환상 속에서 빠져나온 서리스의 눈동자가 빛났다.

요치아에 아래에서 배워 나간다면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이걸 목 뒤에 붙여라.”

그러는 사이 요치아가 주머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주었다.

“네 녀석이 별 하나만큼은 콸콸 흘러나오는 건 알았으니. 당분간 별은 쓰지 않을 게다. 그릇을 만드는 데 방해될 테니.”

“이걸로 별을 막을 수 있는 겁니까?”

“당연히 조절은 네가 해야 하느니라. 그건 단지 새는 걸 막을 뿐이니.”

서리스는 부적을 받아 별문신 위에 붙였다.

그러자 확실히 의식하지 않았을 때도 별이 흘러나오는 일이 줄었다.

하지만 문제는.

“저, 요치아 님, 부적을 하나 더 받을 수 없겠습니까?”

“뭐냐? 다 안 가려지더냐?”

“예, 좀 작네요.”

서리스가 어색한 웃음과 함께 부적을 하나 더 받았다.

두 개의 별은 부적 하나로 분명 가려졌다.

그러나 검은별은 보다 아래에 있었기에 부적에 가려지지 않던 것이었다.

‘다행히 검제의 눈에도 검은별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고.’

가려 놓으면 별문제 없으리라.

“요치아 님.”

그러는 순간이었다.

서리스가 요치아의 뒤를 따라 가옥을 향하던 도중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린 그 장소에는 한 인물이 서 있었다.

“음, 훈련 마치고 왔느냐.”

“예, 끝내고 왔습니다. 그런데.”

“네 동생 녀석이니라. 그놈들 참 돌아가며 오는구나.”

요치아와 친숙하게 대한 그를 보고 서리스의 몸이 한 차례 크게 경직되었다.

“동생이라면.”

서리스보다는 조금 작은 키.

목까지 내려오는 덥수룩한 흑발과 조금 순해 보이는 눈.

그와 달리 전체적으로 얇은 선을 지닌 남성의 정체는 다름 아닌.

“설마 서리스?”

“……알리즈 형님.”

펜타니엄 알리즈.

펜타니엄 직계 중 둘째이자.

세계 침식자와 손을 잡고 워너힐 아카데미에 속한 동급생을 모조리 학살하고 사라진.

전대미문의 학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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