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서리스에게 바로 떠날 거라는 말을 들은 후.
도로시는 자주 올라가던 저택 나무 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새파란 하늘은 어디에서 보든 변함이 없었다.
“푸흣.”
그런 순간 도로시가 짧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제나디아에 오고 나서 자신을 염려하던 세 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들 나를 그렇게나 좋아해서 어쩌나 몰라.”
도로시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무 몸통에 머리를 기대었다.
어쩐지 가슴팍 안쪽이 간질간질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 줄 것 같은 동기들이 그녀의 입에 미소를 띠게 했다.
여긴 참 싫었던 곳이었다.
이곳에 자신이 있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언제나 떠나고 싶었고, 그렇기에 떠났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고 나서.
어쩐지 도로시는 딱히 별 신경이 쓰이지 않기 시작했다.
‘나도 변하는구나.’
새삼 자신도 변한다는 사실에 도로시가 짧게 놀랐다.
마왕별을 이어받은 아이.
너무도 평범한 이곳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존재였다.
그래서 외면 받았고.
도로시도 자신의 특별함을 숨겼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 말고도 특별한 사람이 많았어.”
그런 사람들 속에서 뒹군 덕분일까.
이제는 이 특별함이 꼭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나 숨겨 두던 마왕화를 연습하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힘을 체감했다.
마왕화는 이제 그녀에게 숨겨야 할 것이 아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언제든 꺼낼 수 있는 든든한 수단.
오히려 그녀에게 있어 자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내 힘으로 하고 싶으니까.’
마왕화보다는 자신의 힘에 더 집중하고 있지만, 도로시에게 마왕화는 더 이상 숨겨야 할 수단이 아니었다.
이에 청랑단 생활이 한몫했으리라.
그곳에 점점 좋은 쪽으로 변해 가는 자신의 모습을 체감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에게 있어서 청랑단은 돌아가야 할 곳이었고, 집이었다.
이곳보다도 더 행복함을 주는 집.
“도로시, 넌 밝은 아이잖아.”
도로시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이리저리 만졌다.
그러곤 곧 평소와 같이 장난기 묻은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묻혀 힘없는 얼굴을 짓지 않고 싶었다.
이제 자신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렇게 도로시가 결심한 순간이었다.
“도로시.”
아래쪽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무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거기에는 서리스가 있었다.
토옹.
나뭇가지에 다리를 걸고 백덤블링으로 뛰어내린 도로시는 서리스를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직계님, 이제 가려구? 나 데리러 왔구나.”
“그전에.”
서리스는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녀의 시선에 한 여성이 잡혔다.
안 본 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도로시의 언니인 데이지였다.
“도로시…….”
데이지가 도로시를 부르자 그녀의 눈이 다시금 서리스에게로 향했다.
마치 이 상황이 괜찮냐는 듯이 그녀의 눈동자가 묻고 있었다.
“괜찮아.”
그 한마디를 듣고 도로시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서리스는 은근히 무대포적인 면모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
일을 해결하기에 확실하다고 판단했을 때 움직이는 사람.
그렇기에 그는 믿음직한 동료였다.
도로시가 데이지에게 다가섰다.
서리스가 스리슬쩍 자리를 비켜 주자 데이지는 어딘가 우물쭈물한 기색을 보였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판단이 안 서 쉽사리 입을 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오늘 돌아가.”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다 못한 도로시가 먼저 말을 했을 때.
데이지의 떨리는 눈이 도로시에게 향했다.
“도, 로시, 넌 내 가족이야.”
횡설수설하듯 데이지의 입에서 가족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가족.
너무도 멀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무심한 도로시의 눈을 보고 데이지는 죄책감이 가슴을 조여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렸기에 주변 상황을 따라 같이 외면했던 도로시를 세월이 흘러 다시 보니,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한지 깨달았다.
자신이 직접 아이를 낳고 키워 보고 나서야 그것이 잘못됨을 깨달은 우둔한 머리를 욕하면서도.
데이지는 바로 고칠 기회를 놓지 않고자 고개를 들었다.
“너는 내 동생이고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가끔만이라도 집에 돌아와 주렴.”
사과는 내뱉지 않았다.
자신의 죄책감만 덜고자 내뱉는 사과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이건 도로시가 받아들여 줄 수 있을 때 해야 할 일.
그렇기에 데이지는 그 말을 남기고 힘겹게 웃었다.
설령 도로시가 거절하게 되더라도.
“나 청랑단에 들어갔어.”
그 순간 데이지의 가냘프게 떨리는 귀 언저리로 도로시의 목소리가 맺혔다.
데이지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도로시는 어딘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볼을 긁적였다.
“대단하지?”
그 말을 듣고 데이지는 눈물 젖은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외면했던 아이가.
저 스스로 성장해 얼마나 어른이 되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응, 너무 대단해. 우리 가문의 자랑이야.”
“그거면 됐어.”
그리 말한 도로시가 데이지의 옆을 지나쳐 걸어갔다.
어딘가 아쉬운 듯 데이지의 시선이 그녀를 뒤쫓았지만.
자신에게 그럴 권리가 없음을 깨닫고 시선을 내렸다.
“언니.”
하지만 떠나가는 도로시에게 돌아온 말은.
“한 번씩 돌아올게.”
그녀가 내보인 용기를 충분히 보답하는 것이었다.
“응, 응응, 꼭 돌아와. 연락하면 언니가 맛있는 거 해 놓을게.”
미안함과 죄책감이라도 좋다.
지금이라도 채워 나가자.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간극을.
그런 생각을 품은 채 데이지와 도로시의 관계는 다시금 이어졌다.
“끝났냐.”
“직계님, 나 쑥스러워.”
“너도 그런 걸 다 아냐.”
서리스는 도로시를 보고 픽 하고 웃은 뒤, 걸어가기 시작했다.
“하루 더 머무를래?”
“아니, 괜찮아.”
고개를 저은 도로시의 표정에는 이제 힘이 없지 않았다.
활기 넘치는 그녀를 보고 서리스가 만족한 듯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는 앞쪽에서 들려오는 달음박질 소리를 들었다.
서리스가 한숨을 쉬며 발을 멈춰서자 도로시도 그런 그를 따라 멈췄다.
“개, 같은, 도로시, 날 그 꼴, 로 만들고 어딜 도망가!”
거기에는 로란이 있었다.
도로시에게 엉망으로 당해 바닥에 쓰러졌던 그가 정신을 차린 뒤 다시 도로시를 찾아온 것이었다.
이쪽과도 전혀 건강치 못한 관계다.
방금 막 데이지를 통해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한 도로시가 겪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 서리스가 나서려던 찰나.
서리스는 옆에 있는 도로시의 표정을 보고 그만뒀다.
“적당히 해.”
“걱정하지 마. 직계님.”
도로시가 터벅터벅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로란이 ‘오냐. 잘 걸렸다!’라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오빠.”
그러나 언제나 장난치듯 웃고 있는 도로시와는 다르게.
지금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낮과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에 발걸음을 멈칫한 로란의 눈동자가 당황한 듯 흔들리자, 도로시의 입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그만해. 어리광 받아 주는 것도 오늘까지니까.”
“……뭔 개소리를!”
도로시의 말을 듣고 욱하듯 로란이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도로시가 불쑥 자신의 앞에 얼굴을 내밀자, 그는 말문이 막혔다.
“엄마가 죽은 거로 아직도 날 원망하고 있지?”
도로시의 예리한 말이 로란의 가슴에 비수가 꽂히듯 날아들었다.
그간 갈 곳 잃은 원망을 줄곧 도로시에게 쏟아왔다.
그렇기에 도로시를 대하는 방법은 원망한다는 것밖에 할 줄 몰랐다.
도로시는 그런 그의 태도에도 항상 웃었다.
그 모습이 더욱 화가 나 거칠게 대했던 그였지만.
도로시가 이토록 정색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나이도 많이 먹었는데 이제 엄마한테서는 벗어나야지.”
그의 눈에 당황이 서렸을 때 도로시가 그의 어깨를 툭툭 털어 주었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를 담아서.
“네, 까짓 게 어디서 훈수를.”
“로란 오빠.”
그러나 도로시는 그의 화를 더 이상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만하라 했잖아?”
노기가 서린 목소리가 진득하게 울려 퍼졌다.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아 청랑단에 들어갈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닌 도로시다.
반면에 로란은 무(武)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인물.
도로시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를 어떻게 하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다.
잠자던 범이 더 이상 소란을 참지 않는다고 나지막이 경고했다.
파르르, 눈가를 떤 로란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입술이 깨물어져 있었지만, 도로시는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다음에는 더 어른이 돼서 봐.”
그의 말을 듣고 도로시가 떠나자 서리스가 뒤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그런 둘이 떠나자 로란은 억울한 듯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한테 뭘 어쩌라고.”
도로시를 대하는 방법은 이런 것밖에 모르는 로란이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렸다.
그런 그의 앞에 때마침 데이지가 걸어왔다.
그녀는 로란을 보고 한숨을 내쉬듯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로란, 너도 알고 있잖니.”
이미 답을 알고 있지 않냐는 그 물음.
그걸 듣고 로란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 만 잘못한 게 아니잖아. 오히려 형은…….”
“잘못한 걸 안 시점에서 너도 바뀔 수 있는 거겠지.”
데이지는 씁쓸한 눈빛으로 떠나 버린 서리스와 도로시를 바라보았다.
부디 제 손으로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동생의 앞길에 축복만이 있기를.
그녀는 그런 것이라도 바라자고 조그맣게 고개를 내렸다.
“시원하냐.”
“개운해.”
자신의 옆에 서서 경쾌한 미소를 짓는 도로시의 말을 듣고 서리스와 헛웃음을 흘렸다.
“그냥 한 방 날리지 그랬어.”
“에이, 직계님, 그런 건 차근차근해야지.”
“똑똑해졌네.”
“그치. 나 직계님한테 많이 배웠어.”
어느샌가 괴팍한 성격이 닮아 버린 두 사람의 웃음소리는 그렇게 복도에 울려 퍼졌다.
* * *
이후 서리스는 말한 대로 곧바로 제나디아를 떠났다.
“언니와 대화 더 하지 않아도 되냐?”
마차를 오르던 서리스가 그녀를 배웅하러 온 데이지를 보고 묻자 도로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차피 앞으로도 이야기할 시간 많은걸.”
이제는 정말로 완전히 떨쳐 냈다는 소리겠지.
“잘했어. 도로시.”
서발광이 해맑게 웃으며 도로시를 칭찬하고 아카펠도 안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갈 시간인가.’
꽤나 먼 길을 갔다 왔다며 서리스는 불터렉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느새 여름도 막바지.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면 한 해가 끝마치게 될 것이다.
‘갈증 나는구만.’
흐르는 시간이 어딘가 그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예전과 다르게 그에게 이제 시간은 헛된 게 아니었으니까.
‘2년 반.’
세계 최고라 불리는 천재들이 몰려들 워너힐 아카데미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미래를 떠올린 채 서리스는 그렇게 펜타니엄으로 돌아가는 마차의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