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콱콱콱!
카펫이 깔린 바닥을 마치 찢어 버릴 듯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이 한껏 난 얼굴이 마치 마귀와도 같은 사내였다.
한껏 올린 사내의 금발 머리카락이 발걸음을 따라 흔들렸다.
사내의 이름은 제나디아 로란.
그는 근무를 하던 도중 짜증스러운 말을 들었다.
‘도로시 아가씨께서 돌아오셨습니다.’
하인을 통해서 말을 전해 들은 그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 담겼다.
본래도 성이 많은 편인 그이나, 도로시와 관련된 것은 유달리 더 신경질적인 그였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기어들어 와.’
가족 중 유일하게 그녀를 싫어하는 그는 도로시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떨었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 속.
천하오장성이라 불리던 마왕은 어느 날 어머니를 찾아와 희롱하고 사라졌다.
그 결과 어머니는 배 속에 아이를 품게 되었고, 지병으로 쇠약해진 몸으로 그 아이를 낳았다.
이후 그녀는 지병이 악화되어 죽었고, 그는 12살이 되는 해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어야만 했다.
어머니가 죽으며 생긴 갈 곳 잃은 큰 슬픔.
그 슬픔은 곧 도로시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어 온 원망은 풀리지 못한 채 아직도 그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런 순간이었다.
복도의 끝자락.
눈에 익은 붉은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2년이나 지나서일까.
차츰 성인의 몸과 얼굴이 되어 가는 도로시는 기억 속 어머니와 닮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이 로란을 더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도로시!”
그가 분노하듯 외친 순간 때마침 도로시를 따라 나가고자 방문을 열려던 서발광과 아카펠이 움찔거렸다.
“아카펠, 설마.”
“그래, 도로시가 그런 힘없는 표정을 지은 이유가 등장한 모양이야.”
서로를 돌아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시를 지켜야 한다.
그 생각을 품고 문을 열던 순간.
“아, 로란 오빠다!”
문틈으로 도로시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로란에게 가는 것이 보였다.
“꺼져! 달라붙지 말아라!”
“꺄하하, 로란 오빠다.”
아이러니하게도 여태껏 힘없는 표정만을 지었던 그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집 나간 녀석이 어디라고 기어 와!”
“어, 로란 오빠. 나 보고 싶었구나!”
“미친, 내가 너를 왜 보고 싶어 해!”
성을 내는 로란에 비해 도로시는 활짝 웃으며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을 본 서발광과 아카펠이 이게 뭔 상황이냐며 어리벙벙해졌다.
그리고 그 상황을 똑같이 겪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이게 뭔 상황이야.”
도로시를 걱정해 회의를 끝나자마자 뛰어온 서리스였다.
제나디아 로란.
제나디아 가문에 셋째이자 도로시의 바로 위 오빠인 그는 도로시에게서 어떤 의미인가.
첫째 도크만은 도로시의 존재 자체를 무시했다.
도크만이 보기에 도로시가 가진 마왕화는 위험했으며.
펜타니엄 대가문 아래 포함된 일반 가문인 제나디아에서 마왕의 핏줄이 있다는 사실은.
괜히 펜타니엄의 심기를 건드릴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타인 취급을 했다.
혹여나 펜타니엄 쪽에서 도로시의 처우에 대해 논의해 온다 한들 일말의 감정도 없이 그녀를 쳐 낼 수 있도록.
그리고 가주인 그의 그러한 행동 방식은 제나디아 모두에게 영향을 끼쳤다.
도로시가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을 나이가 될 때까지.
그의 영향을 받은 식솔들은 도로시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먹고 자는 것만을 챙겨 줄 뿐.
학문도 무술도, 다른 어느 것도 도로시에게 간섭하는 일이 없었다.
그 사실이 못내 도로시를 외롭게 하였다.
가문 어디에도 어울릴 곳이 없었고, 그 결과 그녀는 자기 마음대로 밖을 나다니기 시작했다.
외로움은 점차 자유로움으로 바뀌어 갔다.
그녀는 어느 날은 산짐승처럼 산을 다니기도 했고.
탑에 올라가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며 하루를 때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제나디아에도 유일하게 그녀에게 관심을 쏟는 이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로란이었다.
그는 도로시를 제 어미를 죽인 원흉이라 생각하여 어린 시절부터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녀가 산짐승 꼴을 하고 돌아다니면 가문의 수치라며 끌고 가 화를 내었고.
하루 종일 탑에 앉아 하늘을 보고 있으면 태평히 논다며 찾아와 성을 내었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에게 늘 무관심한 제나디아 가문에서 도로시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었다.
자신이란 존재 자체를 외면하는 이들과 달리 로란만큼은 그녀가 어디에 있든 찾아와 성을 내 주었으니까.
그래서 도로시는 로란이 좋았다.
매일같이 성을 내는 것만 봐도, 자신을 엄청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자신을 완전히 밀어내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
“로란 오빠, 나 저번에 들었는데 이렇게 화내면 얼굴에 주름진대. 인상 쓰지 말자.”
“야, 내 얼굴에 손대지 말라고!”
로란이 소리를 내지르며 도로시를 밀어내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도로시의 힘은 이미 일반인을 아득하게 넘어섰다.
별다른 무위를 가지지 못한 로란은 도로시의 힘 앞에서는 어린 양에 불과했다.
“아아악! 고릴라 같은 게!”
떡처럼 도로시의 손아귀 속에서 찌그러지는 로란의 얼굴을 보며 도로시는 마녀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예전에는 로란이 도로시를 일방적으로 괴롭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도로시가 무위에 재능을 보인 뒤로 오히려 로란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힘으로 도로시를 이기지 못하게 된 로란이 더욱 성을 내도.
도로시는 로란과 이런 장난을 치는 것만이 제나디아에서 지낼 수 있었던 버팀목이었다.
“걱정했던 거에 비해 서는 괜찮았다고 봐야 할까.”
서리스가 팔짱을 낀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서리스의 눈에는 탐탁지 않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저건 자학 행위다.
로란이 내뱉는 말은 비수가 될 만한 말들이 많았다.
고립이라는 최악이 싫었기에 분노라는 차악을 선택한 꼴.
도로시의 자유로운 성격이기에 그 비수가 덜 박힐 뿐이다.
서리스의 눈에는 여전히 곱게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뭔 놈의 가정사가.’
저렇게 귀찮게 꼬였는지.
서리스는 한숨을 내쉬곤 도로시에게 다가가 고양이처럼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그쯤 해. 네 오빠 그러다 얼굴 으스러진다.”
엉망이 된 꼴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로란을 두고 서리스는 도로시를 힐끔 봤다.
로란을 바라보며 헤실헤실 웃고 있는 도로시지만, 그 웃음이 행복이 아니란 걸 서리스는 알고 있었다.
나는 이런 게 즐겁다고 스스로 되뇌고 있을 뿐.
침대 위에서 뛰어다니고 덜 말린 머리를 강아지같이 자기들 옆에서 털어 댄 뒤 웃던.
도로시의 그 환한 미소가 아니었다.
“가자.”
로란을 두고 서리스는 도로시와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짐들을 힐끔 보며 셋에게 말했다.
“제나디아는 바로 떠날 거야.”
서리스의 말을 듣고 아카펠과 서발광이 동시에 고개를 주억이었다.
저쪽도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도로시, 넌 괜찮아?”
도로시도 문 쪽을 힐끔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청랑단이 더 즐거워.”
어딘가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똑똑.
그런 도로시를 보고 곧장 떠날 준비를 하려던 서리스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서리스가 대표로 문을 열자 거기에는 한 여성이 서 있었다.
금발의 머리카락을 지닌 그녀는 도로시와 매우 닮아 있었다.
곧 그녀가 도로시의 언니임을 눈치챈 서리스는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혹시 펜타니엄 서리스 님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이쪽도 로란처럼 해코지하러 온 거라면 서리스 선에서 정리할 속셈이었다.
그렇기에 경계하는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로란이 왔다 간 모양이네요.”
“아시고 계시는군요.”
“그 아이는 도로시를 싫어했으니까요.”
그리 말한 그녀는 어딘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도로시를 언급하는 모습이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어서일까.
서리스는 그녀에게 의문을 띄웠다.
“아, 제 소개를 아직 안 했군요. 저는 도로시의 언니인 제나디아 데이지입니다.”
그리 말한 그녀는 방문 쪽을 힐끔 보았다.
“……도로시, 그 아이는 안에 있나요?”
“그렇습니다만.”
도로시를 떠올린 그녀는 어딘가 서글픈 듯 미소를 짓더니 서리스를 올려다보았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서리스 님, 저와 조금 이야기를 나누실 수 없을까요?”
“도로시와 관련된 겁니까?”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제나디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도로시와 관련하여 다른 반응을 보인 사람이다.
‘이대로 가는 건 나도 찝찝하긴 하고.’
만약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결해두는 게 더 좋다.
서리스가 알겠다고 하고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다.
데이지는 방 하나로 서리스를 안내했다.
잘 정돈되어 보이는 방은 본인의 방인 듯하였고, 그녀는 다과를 준비하며 말했다.
“도로시가 지금 청랑단 소속이라고 들었어요.”
“네, 저와 같은 53기입니다.”
“후후, 신기하네요. 그 천방지축이던 아이가 청랑단을 다하고.”
예전 일을 추억하듯 하다가도 그녀의 얼굴 위로 수심이 깃들었다.
“……제나디아 가문에서 도로시는 홀대 받는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런 그녀의 반응은 의아스러웠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도로시가 이 정도로 가문에서 엉망으로 지냈을 거란 생각이 안 들었기 때문이다.
“보신 대로입니다.”
그리고 그녀도 그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의 저도 비슷한 짓을 했으니까요.”
그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비난받아도 마땅하다는 듯 그녀의 얼굴에는 죄책감이 묻어나 있었다.
“그게 잘못된 거란 걸 깨닫는 게 너무 늦었죠. 도로시가 5살이 되기 전에 저는 시집을 가서 제나디아를 떠났었거든요.”
도로시를 향한 홀대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른 채로.
그녀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하지만 가족이 생긴 후에 알았죠. 그게 얼마나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하지만 가족이 생기고, 그녀도 아이를 낳았다.
자신의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어느 날 문득 떠올렸다.
밖에서 혼자 나뭇가지 하나를 쥔 채 바닥에 그림을 그리던 한 꼬마를.
자신이 홀대했고, 가족이 홀대하여.
어디에도 기댈 수 없었던 너무도 어린 소녀가.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자신이 동생에게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던 그녀는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도 변명이나 하고 있는 저 자신이 한심하네요.”
그녀의 눈이 처량하게 아래로 떨어졌다.
도로시의 소식을 간간이 들어 왔던 데이지는 본가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돌아왔다.
하지만 도로시를 직접 마주하기에는 두려웠다.
이제와서 자신이 그녀에게 말을 걸 권리가 있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사과하기에는 늦었을까요?”
“늦었겠죠.”
서리스는 솔직하게 말했다.
도로시는 이미 많은 걸 겪었고, 지금의 그녀가 되었다.
이제 와서 사과 하나로 도로시의 인생에서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과에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도로시를 없는 사람 취급했듯이.
도로시도 가족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으니까.
데이지가 눈을 감았다.
그녀의 어깨가 천천히 떨렸다.
너무나 어린 동생이었다.
비록 아버지는 다르더라도 같은 배 속에서 태어난 동생.
그리고 그러한 동생을 너무도 오랫동안 혼자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적어도.”
서리스는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쌓아 나갈 수는 있을 겁니다.”
관계가 없다면 다시 처음부터 만들면 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