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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71화 (70/275)

71화

“오랜만에 식욕 좀 부려 볼까.”

아카펠이 가장 먼저 눈을 번뜩였다.

별이란 무릇 육체의 그릇이 충분하여야 깃들 수 있다.

그러한 육체를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서리스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식사와 단련이다.

서리스 덕분에 별을 왕창 쏟아붓게 된 뒤로 아카펠의 식사량은 무척이나 늘어났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그조차 53기 중에서는 가장 적은 식사량을 지녔다는 거다.

“도로시, 오늘은 마음껏 먹어도 된대.”

대식가 중 세 번째를 담당하는 서발광이 미소를 지었다.

서리스에게 금강잔월을 전수받은 뒤 발달한 육체와 더불어 늘어난 그의 식사량은 이전에 세 배 이상이었다.

“흰 두건 말라깽이 아저씨, 후회할 거야.”

그리고 마차 내내 힘없던 도로시도 먹을 거에 눈이 돌아간 듯 반짝이었다.

마왕화라는 극단적인 별의 소모 방식 때문일까.

다른 사람 몰래 최근 마왕화를 단련하고 있던 도로시는 고삐 풀린 망아지였다.

최근 그녀의 식사량은 곰도 고개를 저을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도 한 수 접는 존재가 있었으니.

“내려가 볼까?”

이중 가장 많은 식사를 소화해 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서리스였다.

금강잔월의 단련을 가장 오래해 온 서리스는 타고난 별과 육체 유지를 위해 그 식사량이 어마무시했다.

실제로 청랑단 식당에서는 53기가 오는 순간 모든 요리사가 바짝 긴장한다.

그들이 고삐를 풀면 얼마나 많은 요리를 쏟아 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서리스의 영향력인지 53기 전원 별의 출력이 넘쳐나는 대식가 집단.

“하핫, 마음껏 드시죠!”

그 사실을 모르는 제이록은 호탕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곧 객잔 주인이 와서 음식이 없다고 눈물을 흩뿌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불터렉스에서는 나름 조절했던 네 사람은 만찬을 즐길 생각에 웃으며 1층으로 내려왔다.

덕분에 도로시의 기운도 조금 돌아온 듯싶고 서리스도 잘됐다고 생각하던 도중.

서리스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어딘가로 향했다.

마치 영혼이 이끌리듯.

그의 고개가 돌아간 장소에는 어향과 두반장을 입힌 가지 튀김을 우물거리고 있는 한 사내에게 멈췄다.

머리를 덮는 망토를 쓴 한 남자는 젓가락이 불편한 듯 꼬챙이처럼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거대한 뿔을 지닌 푸른 용의 머리를 관통한 새하얀 검 한 자루가 선명하게 그려진 문양.

세계 침식 전문 조사 협회.

로렐라이.

그 일원이 이곳에 있었다.

가지 튀김을 마저 우물거리던 그는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러곤 서리스와 눈이 마주친 순간 곧 서서히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각도가 90도에서 철커덕하고 멈춘 그 순간.

그의 새파란 눈 위로 서서히 웃음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썩을.’

서리스는 어째서 지금 자신이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서리스가 그의 정체를 눈치챘기 때문이다.

천칭을 움직이는 자

천구(天球)

아리즈 아리온

그가 바로 워너힐 아카데미 교장 성위의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서리스가 경계한 이유가 무엇인가.

해답은 간단했다.

‘놈은 더 많은 것을 본다.’

그에게 천칭을 움직이는 자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바로 별을 자유롭게 들여다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별들은 그의 부름에 자연스럽게 답하고, 그는 언제나 별의 관측자로서 살아갔다.

천구가 어떻게 그런 힘을 지니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때는 보지 못했지만.’

하늘에는 가문별과 집단별같이 사람에게 이로운 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별들의 아래 짙은 어둠에서 어둠을 쏟아 내는 검은별.

그들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리온이 검은별조차 들여다볼 수 있다면.

‘내 검은별도.’

그라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코를 벌렁거린 채 서리스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어떻게 하지.’

성위를 노망난 영감탱이 취급하는 서리스지만 그의 인성을 안다.

그라면 서리스의 상황 설명을 듣고도 섣부르게 움직일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아리온은 어떨까.

로렐라이의 상층부 천문의 간부 중 한 명인 그에게 있어서.

세계 침식자란 반드시 배제해야만 하는 존재일 것이다.

성위를 닮아 자유분방한 성격이라는 것은 들었지만, 어딜 가든 사고를 친다는 소문도 같이 들려오는 게 그다.

‘대화로 풀리지 않고 부딪치게 된다면.’

그건 전혀 원하지 않는 방향이다.

그의 뒷배에는 로렐라이가 존재한다.

세계 곳곳에 그 힘을 떨치고 있는 거대한 집단을 적으로 두는 건.

서리스 입장에서도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흐으으음.”

어느샌가 서리스 앞에 다가온 아리온이 고개를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마치 무언가 냄새라도 맡은 듯 벌렁거리는 그의 코가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서리스?”

그러는 사이 서리스가 자리로 가지 않자 의아함을 느낀 서발광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서리스는 아리온에게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뱀과 같은 푸른색의 눈이 서리스의 몸을 이리저리 훑고 지나갔다.

그 행동에 소름마저 우수수 돋았을 때 아리온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재밌네요. 당신, 별을 몇 개나 품고 계신 거예요?”

들켰다.

서리스가 침음을 삼켰을 때 그는 입술 위에 검지를 올려 보였다.

“이야기를 좀 할까요.”

“……이야기는 좀 들어 주는 편입니까?”

“소란을 피우면 별님들이 혼내시거든요.”

마치 별이랑 대화라도 한다는 양 그는 어린애 같은 웃음을 지었다.

서리스는 우선 고개를 끄덕이었다.

상대가 우선 대화를 들어주겠다고 한 상황.

괜히 부딪쳐서 좋을 건 없었다.

“서발광, 애들이랑 식사하고 있어.”

“어, 응.”

무언가 사태가 좋지 않음을 느낀 서발광이 서리스를 걱정하는 표정을 했다.

그리고 그런 서발광을 보고 아리온이 눈웃음을 지었다.

“괜찮아요. 주인분 좀 잠깐 빌려 갈게요.”

주인.

그 말을 듣자마자 서리스와 서발광이 동시에 굳었다.

방금 전 대화만으로 서리스와 서발광이 주종 관계라는 건 전혀 표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희 저기로 가죠.”

바깥을 가리키는 그를 보고 서리스는 대답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걱정하는 서발광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온 서리스는 아리온과 마주했다.

그는 소매에서 꺼낸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연기를 한 모금 마시더니 가볍게 웃었다.

“불터렉스에서 구한 물건이랍니다. 여기는 재밌는 물건이 많아서 즐거워요.”

“……물건 자랑이나 하려고 나를 부른 건 아닐 거라 봅니다만.”

“맞죠.”

그러면서 그는 곰방대에서 흘러나온 연기를 재미난 듯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불터렉스에서는 어디까지 보고 오셨나요.”

서리스는 표정을 굳혔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아주 짧은 틈이었지만, 아리온은 이미 눈치챈 듯 웃었다.

모든 걸 꿰뚫고 있는 듯한 저 눈이 서리스에게는 지독하게 느껴졌다.

“검은별 하나가 불터렉스 쪽으로 기울었거든요.”

“당신이 여기 있는 이유는 그걸 해결하기 위함입니까?”

“그런 것도 있고. 조금 수를 써 놓은 것도 있죠.”

“그렇다면 당신이라면 불터렉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서 그의 곰방대가 갑자기 허공에서 사라졌다.

태양이 저물어 검어진 하늘 아래.

내리쬐는 별빛들을 올려다보며 아리온은 머리를 긁적이었다.

“저는 별들끼리의 다툼에는 끼지 못하는지라.”

세계 침식자가 불터렉스에 스며든 것을 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은 그를 보고 서리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별을 들여다보는 힘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될 텐데요?”

“그거랑은 다른 이야기죠. 별들은 저마다 정해진 이유에 따라지거든요. 운명이라는 서사에 함부로 머리를 들이밀어선 안 되는 법이죠.”

그 말을 들은 순간 서리스는 왜인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별들이 지는 게 운명이라고?’

서리스는 소드란이 떠올랐다.

최흉 중 하나, 별가루 평원에 세계 침식 주인 월사자를 막기 위해 출전했던 소드란.

그리고 그런 월사자에 의해 저주받아 몰락해 버린 소드란이.

저 말대로라면 그것은 운명이란 소리지 아니한가.

“제게 여러 별이 보인다고 말했죠.”

“네, 참 다채로운 분이네요.”

“제가 지닌 한 별은 이 세상에 존재치 않던 별입니다.”

“네, 2년 전쯤에 떠오른 별이죠.”

역시 이놈은 다른 것을 본다.

뭇사람들과는 다르게.

천구는 하늘에 드리워진 구름에 의해 생긴 그림자 아래에서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그 별이 언제 지는지 궁금한가요?”

서리스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세계에서 소드란은 존재치 않는다.

소드란의 별도 서리스가 이곳에 나타났기에 새로 생겨난 별.

그런 별이 어째서인지 소드란이 쌓아 올린 힘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면 소드란은 정말로 없는 것인가.

월사자에게 저주를 받았던 소드란의 별은.

“저도 몰라요.”

담담하게 아리온은 자기가 알아낸 바를 내놓았다.

“모른다는 건.”

“그 별은 운명이 보이지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운명을 거스른 별인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리온은 서리스의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하지만.”

그러곤 그 새파란 눈을 서리스에게 마주치며 옅게 웃었다.

“언젠가 새까만 별에 잡아 먹힐지도 모르는 노릇이죠.”

“두루뭉술한 소리만 던지지 마십쇼. 결국 당신은 어디까지 보이는 겁니까?”

서리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되묻자 아리온은 태연자약하게 어깨를 으쓱이었다.

“보이는 것도 안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죠. 누구든 그렇잖아요. 단지 확실한 건.”

그리고 그의 입에서 서리스가 조금 안도할 말이 흘러나왔다.

“제가 지금 당신을 적으로 두지는 않을 거라는 답 정도는 드릴 수 있겠네요.”

“……당장이 아니란 건 수틀리면.”

“그건 당신이 하는 행동에 따라 다르겠죠. 그래도 적으로 두지 않을 거란 건 진심이에요.”

그리 말하며 그는 웃음을 흘린 채 몸을 돌렸다.

“가지 튀김은 아쉽지만, 떠나야겠네요. 제가 같이 있으면 제대로 밥 드시기 힘들 거 같으니까요. 제가 원체 시선을 끄는 사람이라.”

“생각해 줘서 참 고맙군요.”

그는 손을 살랑거리곤 그렇게 등불 아래로 사라져 갔다.

서리스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목덜미를 스리슬쩍 눌렀다.

검은별의 존재가 드러났다.

그걸 아는 건 비록 아리온 한 명뿐이지만.

‘그는 로렐라이의 일원.’

방금 건 경고였다.

서리스가 허튼짓하는 순간 로렐리아를 데리고 나타나겠다는 경고.

“하.”

어이없는 실소가 흘러나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서리스는 조금 전 대화를 통해 확인한 것이 있다.

‘그는 내가 소드란 울드렌이었다는 사실과 과거로 돌아온 것, 그리고 저자마저 소드란의 별을 모른다.’

서리스가 일부러 정보를 꺼내며 대화를 유도한 것은 이것을 확인하기 위함.

지금은 적으로 두지 않겠다고 했지만 언제 마음이 돌변할지 모른다.

‘언제가 적이 된다면.’

밤하늘 아래 서리스의 두 눈동자가 별빛을 받아 번뜩이었다.

자신이 아는 모든 기연을 잡아먹으며 강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다.

그런 생각을 품은 채 서리스가 여관으로 돌아온 순간.

서리스는 뒤통수를 한 대 맞아야 했다.

“아까 방금 나가신 객분과 아는 사이입니까? 가지 튀김값을 지불하지 않으시고 갔는지라.”

아리온이 돈도 내지 않고 튄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잠시나마 같이 있던 서리스에게 그 값이 청구되었다.

“하, 하하.”

다음에 만나면 내 쪽에서 죽인다.

그런 다짐과 함께 서리스의 두 눈은 다른 의미로 불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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