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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69화 (68/275)

69화

서리스는 깔끔하게 결정을 내렸다.

서발광과 아카펠, 그리고 도로시도 나름대로 불터렉스 내부에서 이런저런 걸 들어 전해 주긴 했지만.

이 이상 쓸 만한 정보는 얻지 못할 듯싶었다.

‘어차피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세계 침식자가 있는데 괜히 들쑤시고 다녔다가 피 보고 싶지도 않다.

‘무엇보다 독왕의 그 눈은 아직도 소름이 돋으니까. 그때 아직도 왜 그렇게 나를 노려봤는지도 모르겠고.’

수확이 있을 때 만족하는 게 좋겠지.

끼익.

객실 문을 열고 나온 서리스는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슬슬 모두를 만나 돌아가자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던 도중 수상한 두 사람을 보고 서리스의 발걸음이 멈추어 섰다.

벽에 딱 달라붙은 채 무언가를 훔쳐보는 이들의 생김새가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아카펠, 도로시.”

서리스가 이름을 부른 순간 흠칫한 아카펠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 하하, 서리스.”

그러곤 서리스와 눈이 마주치더니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도로시 쪽은 서리스가 오거나 말거나 한 방향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뭐 하는 거야?”

“아, 그게.”

아카펠이 자기 입으로 설명하기에는 그렇다는 듯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아카펠의 손가락을 따라 서리스의 시선이 향하자 거기에는 그가 익히 아는 얼굴이 있었다.

문제는 그 옆에 처음 보는 사람이 붙어 있었던 것이지만.

“서발광?”

거기에는 얼굴을 붉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는 서발광이 있었다.

그런 서발광의 옆에는 한 여식이 있었는데, 그보다 한두 살 어려 보였다.

그녀의 머리카락 색은 잿빛으로 불터렉스 쪽 사람임이 분명했다.

‘하운리가 드디어 움직였나.’

그가 서발광을 눈독 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눈치챘었다.

한동안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지만, 1년 뒤 처형당하는 그를 서리스도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불터렉스의 진실을 알 수 있는 큰 열쇠였으니까.

‘서발광 쪽을 유혹해 보겠다 이거지.’

아무래도 그는 서발광을 데릴사위로 들여 자신 쪽 사람으로 끌어들이려 한 모양이었다.

“서발광에게도 봄이 오다니.”

아카펠이 어딘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착쁜놈, 표정 겁나 웃겨.”

그 와중에 도로시는 부끄러워하는 서발광 표정이 웃긴 듯하였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서리스는 그의 옆에 있는 여식에게 시선을 두었다.

살짝 붉어진 귓불, 부끄러운 듯 장난스레 움직이는 손짓.

‘저건 진짜로 서발광이 마음에 든 모양인데.’

하운리의 명령으로 움직였겠지만, 의외로 서발광이 그녀 취향인 모양이다.

서리스가 자신에 턱을 살짝 매만졌다.

이거 오히려 역이용할 수 있을 듯싶었다.

“직계님, 웃음이 사악한데.”

“뭔가 소름 돋는 계책이 생각난 모양인데.”

도로시와 아카펠이 서리스의 얼굴을 보고 짧은 평을 내뱉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리스는 두 사람을 두고 공원으로 나아갔다.

“서리스!”

그러자 서리스의 기척을 알아챈 서발광이 구원자를 만난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아쉽게도 서리스는 서발광이 바라던 구원자가 아니다.

오히려 악독한 악마에 가까웠다.

“서발광, 지금부터 잘 들어.”

“응.”

서리스가 진지하게 말하자 서발광의 표정도 변했다.

수하 모드로 바뀐 서발광을 보며 서리스는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쟤 꼬셔.”

“어?”

“꼬시래도.”

아니, 이게 무슨 헛소리지.

서발광의 얼굴에는 그런 의문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서, 서리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말 그대로야. 서발광, 넌 내 수하지?”

“응.”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는다고 서발광이 대답했다.

“그럼 내 명령도 착하게 잘 듣겠지?”

“하, 하지만 서리스. 나는 꼬신다거나 그런 거 할 줄 몰라.”

“괜찮아. 지금처럼 부끄러워하면서 말만 다 잘 들어주면 돼. 저쪽은 네가 이미 마음에 든 모양이니까.”

“루이지 님이 내, 내가 어디가 마음에 들어서?”

서발광은 진심으로 묻고 있었다.

자신에게 그런 점이 어디 있냐고.

그러고 보니 서발광은 눈이 안 보여서 자기 얼굴이 어떤지 모르지.

서발광은 여자들에게 인기 많을 곱상한 얼굴이다.

거기다 금강잔월을 통해 근육이 붙어 예쁘면서도 남성적인 느낌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서리스는 걱정하지 말라는 양 서발광을 다시 루이지 쪽으로 밀었다.

이 나이대 서발광 얼굴이면 백전백승이다.

루이지도 이미 서발광에게 마음 품은 듯하니까.

“그럼 잘 부탁한다. 정보 많이 빼 와.”

“서, 서리스으!”

오늘만큼은 서리스를 향해 원망 섞인 외침을 토해 낸 서발광이 루이지에게 돌아갔다.

그런 그의 반응과 다르게 루이지가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주도하며 분위기 좋게 잘 흘러가고 있었다.

저건 저대로 두면 되겠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리스는 미소를 꺼트리곤 함께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이유로 저를 찾아오셨을까요.”

벽과 벽 사이, 그림자가 진 곳.

서리스가 그 장소를 빤히 바라보자 거기에서 불터렉스의 무복을 입은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는 묵례를 올리며 서신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서리스 님, 가주님의 서신입니다.”

서리스가 얼떨떨한 표정과 함께 서신을 받았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람.

* * *

같은 시각 발렌타인의 방 안.

엽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있는 그녀의 눈이 창문 밖으로 향했다.

서리스가 온 지 벌써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최근에도 그와 종종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발렌타인은 어제쯤 서리스에게 곧 떠날 거란 말을 전해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거구나.”

어딘가 살짝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서리스는 발렌타인 입장에서 처음으로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또래였기 때문이다.

똑똑.

그런 순간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와.”

발렌타인이 찻잔을 내려두고 대답하자 문이 열리고 한사람이 들어왔다.

“유모.”

그녀는 발렌타인의 유모 루니릴이었다.

루니릴은 발렌타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아가씨, 어딘가 신경 쓰이는 게 있으신 모양입니다.”

“서리스 님이 떠나셔서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발렌타인이 착잡한 눈으로 솔직히 말하자 루니릴이 웃었다.

늘 솔직한 발렌타인이다.

“서리스 님과 계속 같이 있으시고 싶으십니까?”

“……욕심이라면 욕심이겠지만 그와 있는 시간은 좋았으니까요. 친구란 건, 즐거운 거였네요.”

먼발치를 바라보는 발렌타인 앞에 루니릴이 의자를 빼 앉았다.

그러곤 그녀는 자기 손목 위에 턱을 괴며 빙그레 웃음을 띠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 유모가 아가씨께 한 가지 제안 드릴 게 있습니다.”

“제안이라면?”

발렌타인이 의아함을 품자마자 루니릴은 놓칠세라 본론을 꺼내 들었다.

“서리스 님을 데릴사위로 들이는 것입니다.”

“어?”

그 말을 듣고 발렌타인은 두 귀를 의심했다.

설마 루니릴이 서리스를 데릴사위로 삼자고 말했을 리 없다고.

발렌타인이 귀가 어두워졌나 싶어 자신의 귓불을 매만졌을 때, 제대로 들은 게 맞는다는 듯 루니릴이 한 번 더 말해 주었다.

“서리스 님을 데릴사위로 들이죠.”

“유모,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입니까.”

“왜요? 아가씨는 서리스 님이 마음에 안 드시나요?”

“마음에 들고 안 들고에 문제가 아니라, 서리스 님은 펜타니엄 직계세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오히려 데릴사위로서 더 확실한 조건이죠.”

실제로 먼 과거 펜타니엄과 불터렉스 사이에 데릴사위 건은 종종 있었다.

물론 그건 방계끼리일 뿐, 직계 간에는 데릴사위와 관련하여 얘기가 오간 것은 아직 단 한 번도 없었긴 하나.

“서리스 님이라면 충분히 데릴사위로서 가치가 있죠. 펜타니엄과도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을 테고요.”

예외로 둘 수 있을 만큼 서리스는 탐나는 존재였다.

루니릴이 적극적으로 데릴사위 건을 밀어붙이자, 발렌타인이 당혹스러운 눈빛을 취했다.

“무엇보다 가주님께서도 허락하신 일이고요.”

“아버지께서.”

거기다가 그릭슨이 허락까지 했다니.

발렌타인은 일이 급격히 커지고 있음을 깨닫곤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서리스가 데릴사위로 온다.

그렇게 되면 어떨까.

‘믿음직하신 분이니까.’

불터렉스 일 뿐만 아니라 여러 일을 맡아 주실 거다.

게다가 어른스러운 분이다.

분명 배울 점도 많겠지.

무엇보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은 편안했다.

늘 모두를 불터렉스 직계 첫째라는 위치에서 상대해야 했었지만.

그렇게 스스로 해 오던 몸가짐을 서리스 앞에서라면 하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

서리스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조건이라고는 하나.

발렌타인은 언젠가 데릴사위를 들여야 한다면 서리스 같은 사람이기를 바랐다.

왠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뒤숭숭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지만.

만약 데릴사위로 다른 사람이 오게 된다면, 썩 기분이 좋지 않을 것만 같았다.

“지금쯤 서리스 님에게 데릴사위 건으로 서신이 도착했을 겁니다.”

그 순간 청천벽력 같은 말이 떨어졌다.

깜짝 놀란 발렌타인이 인생 처음으로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모, 그걸 먼저 말했어야 하지 않습니까!”

“깜빡하고 말았네요. 서리스 님은 지금쯤 독호당 장원을 지나치면 나오는 공원에 있을 겁니다.”

수상할 정도로 자세한 위치 설명에도 발렌타인은 너무 당황하여 의심조차 하지 않고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런 그녀를 보던 루니릴이 여우 같은 눈웃음을 짓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아가씨?”

“어머, 저분이 저렇게 급하신 건 처음 봐.”

하녀들의 의아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복도를 내달린 발렌타인은 손님 객실 쪽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고개를 휙휙 돌려보니 때마침 거기 서 있는 서리스를 발견하고 화색을 띄웠다.

그러면서 그녀는 달려오느라 엉망이 된 머리카락을 깨닫곤 서둘러 머리 정리하며 그에게로 다가섰다.

“서리스 님.”

“아, 발렌타인 님.”

조심스레 서리스를 부른 순간 발렌타인은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서신을 보고 흠칫하였다.

봉투가 뜯겨 있는 것을 보니 그가 이미 서신을 전부 읽어 버린 듯하였다.

갑자기 심장이 콩닥콩닥 뛰며 발렌타인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서리스가 무슨 대답을 할까.

입안이 바싹 타는 느낌과 함께 발렌타인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서신 내용은 보셨나요?”

“발렌타인 님도 아시는 내용이었나 보네요.”

알다마다 그녀는 방금 유모에게 듣고 오는 길이었다.

“……혹시 그에 대답은.”

말을 내뱉은 발렌타인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을까.

그런 발렌타인을 보고 빙그레 미소를 지은 서리스의 입이 열렸다.

“네, 좋네요.”

발렌타인의 두 다리가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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