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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66화 (65/275)

66화

서리스를 뒤덮었던 독기가 모조리 사라지고, 그가 그림자 속에서 유유히 자세를 되잡았다.

청운귀명도의 검술식 중 딱 하나 있는 유일한 방어 검술, 청운잠영.

그림자의 포용력을 통해 원거리 공격을 흡수하는 데 특화된 검술이었다.

독기를 흡수한 그림자 몇 개가 부서져 내렸지만.

남은 그림자들은 계속해서 서리스의 주위를 맴돌았다.

“서리스 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서리스가 무사하다는 것을 본 발렌타인이 기다랗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죽었을까 싶어 간담이 다 서늘했다.

“발렌타인 님, 계속 공격 부탁드립니다.”

서리스가 검을 재차 휘두르며 그림자를 흩뿌렸다.

그 모습을 보고 발렌타인은 탄력을 받은 듯보다 격렬한 춤사위를 시작했다.

그녀의 손길을 타고 날아드는 귀왕령의 조각들이 독운낭인을 마구잡이로 찢어 나갔다.

그에 따라 열을 받은 독운낭인이 발렌타인을 공격하고자 독기를 쏟아 내었으나.

서리스의 청운잠영에 번번이 막혔다.

“우우우웅!”

그러는 상황 독경 쪽에서도 비명이 울려 퍼졌다.

서발광과 아카펠, 도로시의 협공으로 독경도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다른 사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독산천귀, 루니릴의 우산 앞에 모조리 쓸려 나가고 있었다.

천랑후와 동급인 만큼, 일반 사자들은 루니릴의 상대가 전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륵.”

위기감을 느낀 독운낭인이 소리를 내었다.

이대로라면 당한다.

그 사실을 인지한 독운낭인의 움직임이 기묘해지기 시작했다.

흠칫!

그 움직임을 보고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발렌타인이었다.

그의 움직임이 오래전 사마독주에 적힌 비기와 똑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독운낭인의 전신이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했다.

저건 사마독주의 금술 중 하나였다.

“서리스 님, 모두를 데리고 당장 도망쳐야 합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발렌타인이 외쳤을 때, 서리스는 이미 독운낭인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의 감이 독운낭인을 보자마자 저건 막아야 한다고 인지했기 때문이다.

서리스의 몸 위로 그림자 망토가 둘렸다.

땅에 한 발짝 디딜 때마다 서리스의 속도가 더욱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걸 본 발렌타인은 반사적으로 귀왕령을 서리스를 향해 움직였다.

서리스가 달린 시점에서 그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귀왕령의 조각들이 별빛에 빛나며 서리스의 앞을 은하수처럼 수놓았다.

그런 귀왕령과 함께 서리스의 돌진이 일순간 소리를 넘어섰다.

뒤늦게 나타난 후폭풍이 주위 사자들을 수수깡처럼 날려 버렸다.

하지만 그때.

독운낭인의 식이 먼저 끝마치고 말았다.

사마독주(死魔毒主)

금술(禁術)

사독화산(死毒火山)

독운낭인을 중심으로 새까만 빛이 몰려들었다.

그 빛은 이윽고 화산구에서 뿜어지는 것처럼 맹렬히 분출됐고, 곧 주위를 모든 것을 집어삼킬 용암이 되었다.

독운낭인 속 몇백 년을 삭혀진 극독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늦었어!’

서리스의 입술이 짓이겨졌다.

음속과 같은 속도임에도, 독운낭인에게 닿지 못했다.

폭발을 시작한 극독의 화산에서 나온 것들이 독운낭인마저 집어삼키며 일대를 뒤덮을 것이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등 뒤에는 모두가 있다.

이대로라면 극독의 용암에 휘말려 죽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죽기 직전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순간이었다.

토옥.

검은별에서 먹물 한 방울이 그림자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일대의 공기가 역류하듯 흐르기 시작했다.

서리스가 바라기도 전에 먼저 움직인 검은별의 힘이 그림자에 깃든 그 순간.

아주 미약하지만, 그를 중심으로 새까만 구체가 만들어졌다.

마치 그를 죽음의 위기 속에서 구하기 위한 것처럼.

서리스가 검을 들어 올렸다.

일대의 빛이 후욱 하고 그의 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 앞에 펼쳐진 극독의 폭발 앞에.

어느 때보다도 새까만 그림자 검이 내리그어졌다.

흑월귀명도(黑月鬼銘刀)

일식(一式)

흑월(黑月)

검은색 달이 서리스의 검에 깃들었다.

독운낭인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던 극독의 용암이 서리스의 검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렇게 순식간에 서리스의 앞에서 종적을 감추자.

저가 지닌 독이 텅 비어 버린 듯 독운낭인이 당황한 채로 그 자리에서 몸을 굳혔다.

“그르륵!”

이내 분노에 젖은 침 끓는 목소리가 그에게서 울려 퍼졌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어떻게 금술을 막은 거냐고.

그가 그렇게 묻고 있었지만, 서리스의 검은 이미 그를 양단한 지 오래였다.

스걱!

점토를 짓이기는 듯한 감각과 함께 잘린 독운낭인의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걸 본 서리스가 잦아드는 먼지 사이로 멈추어 서곤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검 속에 한계까지 압축된 검은별의 힘이 아직도 느껴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눈치챈 사람은.’

위기였기에 무심코 써 버린 검은별의 힘이었다.

모두를 등지고 있었다곤 하나,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사용한 것은 처음이다.

서리스가 서둘러 다른 사람들을 확인하자, 그의 앞으로 달려오는 발렌타인이 보였다.

“서리스 님! 괜찮으십니까!”

걱정하는 그녀의 음색에는 서리스를 의심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순수한 걱정만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서리스는 옅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급박한 상황이었던 만큼 검은별의 힘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저 멀리 다른 아이들도 보였다.

“우우우우웅!”

때마침 독경이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같은 시각 사자들을 정리한 루니릴이 우산을 접었다.

사자를 상대하면서도 독운낭인 쪽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던 그녀의 눈빛은 묘했다.

‘예사롭지 않은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작 17살의 나이다.

그런데 저런 경지라니.

마지막 순간 쏟아진 별은 마치 유성과도 같았다.

하늘에서 직접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힘.

‘이건.’

펜타니엄에 보물이 하나 태어난 모양이다.

루니릴의 눈동자가 재물을 탐하듯 번뜩이기 시작했다.

놓쳐서는 안 될 인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는 사이 발렌타인과 서리스가 붙어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발렌타인을 어여뻐 하는 루니릴이나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휘어졌다.

‘아가씨도 싫은 눈치가 아니고.’

그녀의 허리춤 뒤로 여우 꼬리 아홉 개가 휘적휘적 휘날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그런 흑심을 품은 사이 서리스는 발렌타인과 마저 대화하고 있었다.

“발렌타인 님 고생하셨습니다. 끝난 모양입니다.”

“……저희가 독운낭인을 쓰러트렸군요.”

독운낭인의 시체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발렌타인이 중얼거렸다.

자신이 만악의 질병 속에서 해낸 일이 실감이 안 나는 듯하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 말을 내뱉은 서리스가 웃었을 때였다.

오싹.

서리스의 고개가 지평선 저편으로 돌아가더니, 그대로 굳었다.

새까만 무언가가 지평선 끝자락에서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났다.

보기만 해도 기분 나쁜 그 감각에 서리스의 몸 위로 소름이 쫘아악 돋았다.

‘세계 침식자.’

만악의 질병 지평선 악해 너머 끝자락에 세계 침식자가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아득한 영역을 본 듯한 감각 속에서 서리스가 주먹을 쥐었다.

‘설마 내가 검은별을 써서.’

저쪽도 내 존재를 눈치챈 건가.

하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마치 호기심을 가진 듯 이쪽을 주시할 뿐이었으니까.

‘올 생각은 없다. 이건가.’

그나마 안도하며 서리스는 기척에서 시선을 떼었다.

지금 기운이 불터렉스와 관련된 녀석일까.

그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지금 건드려서는 안 될 녀석이란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이만 돌아가시죠.”

만악의 질병에서 별의 소모는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서리스는 이 이상 수색은 무리라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유모에게 빠르게 길 안내를 맡기겠습니다.”

발렌타인도 같은 생각인지 그녀는 루니릴에게로 서둘러 뛰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서리스의 시선이 문뜩 아래로 향했다.

그의 시선 아래 독운낭인이 보였다.

새까맣게 그을린 독운낭인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척이 달라 보였다.

아까와 같이 시체는 시체이나, 그에게서 사자의 기척이 전혀 안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마.’

서리스는 검은별이 새겨진 목덜미를 살짝 잡았다.

검은별의 힘이 이전보다 강해졌다.

조금 전 흑월을 휘두르는 그 순간, 검은별이 독운낭인의 세계 침식 힘을 흡수한 것이었다.

그래서 독운낭인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흔한 시체가 된 것이다.

‘사자 쪽도 흡수가 되는 거였나.’

묘한 눈길로 독운낭인을 보던 서리스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그렇다고 한들 결국 시체는 시체.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저 오래전 망령이 되어 후예들을 죽여야만 했던 저주에서 풀려난 것뿐이니.

그를 위로하기 위해 그림자로 그의 시체를 이 세상에서 놓아 줄 뿐이었다.

“직계님, 여기로 와 봐.”

그러는 사이 도로시가 서리스를 부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언가 일이 있나 싶어 그쪽으로 가보자 거기에는 사자 한 명이 있었다.

정확히는 청랑단의 제복을 입고 있는 사자가 말이다.

“이건.”

“역시 그렇지?”

서리스의 중얼거림에 아카펠이 안타까운 듯 혀를 찼다.

수색으로 누군가 살아 있을 거란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역시 아니었다.

세계 침식자 덕분에 용천이 살아남았을 뿐이지, 청랑단은 전부 이렇게 사자가 되었으리라.

애초에 만악의 질병에서 그토록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 리도 없는 노릇이고.

‘용천 녀석이 준 정보를 토대로 수색은 계속해 보겠지만.’

결과는 뻔하겠지.

“일단 돌아가자.”

어쨌든 오늘치는 여기까지다.

* * *

이후 서리스 일행은 빠르게 성벽 밖으로 귀환했다.

발렌타인의 첫 만악의 질병 출정식을 무사히 끝마친 것이다.

서리스는 자기 몸에 희미하게 남은 만악의 질병의 잔적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별로 보호한다 한들 조금씩이나마 이렇게 묻어 나오는 모양이었다.

‘검은별을 지닌 내가 아니고서야 알아차리기도 힘들 정도로 적긴 하지만.’

만악의 질병에 반복해서 들어가게 된다면 이런 것도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다.

서리스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검은별로 모두에게서 잔적을 흡수해 놓았다.

독운낭인에게 했던 것과 크게 차이가 없었기에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발렌타인 님, 이만 귀환할까요.”

“네, 아, 서리스 님, 루니릴을 통해 독운낭인 건을 위쪽에 알리면 보상이 나올 겁니다. 독운낭인은 저희 쪽에게서도 곤란한 사자였으니까요.”

“그를 쓰러트린 건 발렌타인 님 덕이 컸습니다만.”

“칭찬해 주신 마음은 감사하나 이러시면 저도 서운합니다.”

“말이 이전보다 느셨네요. 감사히 받겠습니다.”

서리스와 잠시 지낸 시간 덕분에 능청스러움을 배워 버린 듯.

발렌타인을 보고 서리스는 못이겠다는 양 보상을 받기로 하였다.

이쪽도 이렇게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아가씨.”

그러는 순간 루니릴이 갑자기 발렌타인을 품으로 당겼다.

발렌타인보다 머리 하나 정도 키가 더 큰 그녀는 발렌타인을 감싼 채로 어딘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서리스와 발렌타인이 동시에 의문을 품었을 때, 발렌타인도 잇따라 어깨를 움찔거렸다.

근방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색 손을 통과한 암기가 새겨진 문양.

독왕의 직속 부대 독수였다.

“발렌타인 아가씨!”

한쪽 안대를 낀 그가 노한 듯 발렌타인의 이름을 불렀다.

분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눈에 발렌타인을 알아본 것이다.

그 목소리에 담긴 분노는 굳이 추론하지 않아도 듣자마자 짐작할 수 있었다.

불터렉스 쪽에서 발렌타인이 만악의 질병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가뜩이나 하얀 발렌타인의 얼굴이 더욱 새하얗게 질렸다.

독왕의 명령을 거스른 것이기 때문이니까.

‘이런.’

서리스는 상황이 골치 아파졌음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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