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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61화 (60/275)

61화

발렌타인이 설독화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예부터 차디찬 성격을 지닌 그녀는 주위 어느 누구도 곁에 두지 않았으며.

오직 홀로 전장에 나가 독의 눈을 흩뿌려 전장을 휘어잡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소문대로.

직접 본 발렌타인은 호칭을 받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표정이 안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펜타니엄 서리스라고 합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리스 님께서 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서리스는 발렌타인과 동갑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울드렌 시절 때도 동갑이었다보니 기억 났던 것이다.

서리스는 곧바로 발렌타인에게 검은별이 흘러나오는지 확인했다.

‘없다.’

다행히 그녀에게 흔적은 없었다.

직계 중 첫째인 그녀가 세계 침식자에게 잠식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불터렉스 전부가 세계 침식자에게 잠식된 것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지만.’

그때 본 독수들만이 세계 침식자에게 잠식되어 있던 거라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럼 바로 이동하시죠.”

그는 감정 없는 눈동자로 말한 그녀를 보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세 사람 다 오랫동안 마차 생활을 한 터라 하루 정도는 여기서 쉬고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발렌타인 님, 죄송합니다만.”

발렌타인이 고개를 기울이자 서리스는 미안한 미소를 지었다.

“동료들이 마차를 오래 타 힘들어해서요. 하루만 쉬어가도 괜찮을까요?”

그 말을 들은 발렌타인이 그의 뒤편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카펠과 서발광 그리고 도로시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다가 곧 아 하고 입으로 소리를 내었다.

“죄송합니다. 신경을 못 썼습니다.”

“아뇨. 발렌타인 님도 오래 기다리셨을 테니까요.”

“여관에 방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자신의 불찰을 사과했다.

사과할 일은 아니라는 듯 서리스가 손사래 치며 대답하곤 모두에게 돌아왔다.

“객잔에서 하루 정도 쉬고 가기로 했어.”

“한 달 넘게 마차에만 있었는데. 다행이다.”

아카펠이 안도를 하자 도로시가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맞이하러 온 사람 눈치 없다.”

누가 할 소리인지.

“도, 도로시, 그런 말 하면 못써!”

화들짝 놀란 서발광이 도로시를 다그쳤다.

나중에 설독화라고 불리는 그녀라 해도 그렇게 융통성 없는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다.

“일단 짐부터 풀자.”

그리 말하던 서리스는 문뜩 시선을 느꼈다.

그러곤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발렌타인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서리스가 그녀의 시선에 의문을 가졌을 때 발렌타인은 그 시선을 알아차리곤 고개를 돌렸다.

왜 저러는 거지.

서리스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점원의 안내를 받아 곧장 여관방에 짐을 풀었다.

하루만 머무르는 만큼 짐이라 해 봤자 간단한 옷 정도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서리스, 아까 그 사람도 세계 침식자와 관련 있을까?”

서발광의 질문에 서리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불터렉스에 오고 나니 아무래도 서리스가 말했던 세계 침식자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아직 확신은 못 하겠지만. 너무 그렇게 예민하게 굴 필요는 없어. 불터렉스에는 세계 침식자를 확인하러 온 거지 싸우러 온 게 아니니까.”

“그렇구나.”

그래도 긴장은 되는지 서발광은 짧게 숨을 내쉬어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세계 침식자라는 건 이런 의미였다.

‘내가 세계 침식자가 되어 버린 걸 알게 된다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일까.

서리스는 짧게 쓴웃음을 지었다.

“침대다! 침대!”

그사이 안을 새의 깃털로 가득 채운 이불 위로 도로시가 뛰어올랐다.

다른 건 몰라도 저쪽은 세계 침식자고 뭐고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도로시, 먼지 날린다.”

이불 위를 방방 뛰어다니는 도로시를 핀잔하던 서리스는 노크 소리를 들었다.

서리스가 문을 열자 거기에는 발렌타인이 있었다.

“서리스 님, 잠깐 마을을 돌며 담소를 나눌 수 있을까요?”

불터렉스의 직계 첫째인 그녀다.

당장은 펜타니엄과 불터렉스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니.

무언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도 있을 수 있었다.

‘정치 쪽은 돌아오기 전에도 질리도록 해서 귀찮지만.’

그의 몸에는 이미 깊숙이 정치가 배여 있다.

서리스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감사하다는 듯 고개 숙이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참 다시 봐도 예의 바르면서도 감정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갔다 올게.”

“조심히 다녀와.”

어느샌가 침대 위를 날아다니던 도로시를 제압한 서발광의 배웅을 받으며 서리스는 발렌타인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마을의 거리를 서리스보다 앞서 걸었다.

목조 건물들이 눈에 띄는 거리를 거닐고 있었을까.

서리스는 발렌타인이 자신을 힐끔힐끔 뒤로 보는 게 보였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듯한데 묻는 걸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하는 수 없이 서리스는 발렌타인의 옆에 다가와 섰다.

그러자 그녀가 여전히 차가워 보이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고, 서리스는 미소로 대해 주었다.

“무슨 담소를 하시려고 부르셨나요?”

발렌타인이 세계 침식자와 관련 없다는 사실을 안 만큼 서리스는 그녀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불터렉스 직계 중 첫째인 그녀는 내에서도 이례적인 사람이었다.

남자만 가주가 되던 불터렉스에서 처음으로 여자로서 가주에 가장 근접한 케이스.

그것이 바로 설독화 불터렉스 발렌타인이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불터렉스가 방향을 달리했단 걸 보여 주는 대표적인 케이스 중에 하나고.’

그녀를 가주로 추대함으로써 인재라면 누구든 사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보이는 개혁이었다.

그런 만큼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녀와는 척을 두고 싶지 않았다.

“……서리스 님.”

그렇기에 서리스가 최대한 친절함을 듬뿍 담아 말하자, 발렌타인이 결국 결심한 듯 주먹을 쥐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서리스가 긴장했을 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서리스의 긴장을 의미 없이 만드는 것이었다.

“수하들과 어떻게 해야 그리 터 놓고 지내실 수 있습니까?”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발렌타인의 말을 들은 서리스의 두 눈이 깜빡이었다.

왜냐하면 서리스가 예상한 질문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수하들이라면 방금 본 세 명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했지만.

발렌타인의 눈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저는 수하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합니다. 어째서인지 제가 말을 걸면 겁먹거나 도망치기 바빴는지라.”

살짝 풀이 죽은 듯 발렌타인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녀는 마치 상처 입은 잿빛 여우 같았다.

설독화, 홀로섬의 극치.

서리스의 머릿속에서 혼자서 세계 침식에 들어가 쓰러트리는.

설독화의 그런 이미지가 한순간에 깨지는 순간이었다.

‘발렌타인은 일부러 혼자서 다닌 게 아니었어.’

그냥 남들과 어울릴 방법을 몰랐기에 자신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까지도 혼자서 다녔던 것이다.

설독화라는 호칭이 붙을 지경이 될 때까지도 말이다.

발렌타인이 서리스를 빤히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관자놀이를 긁적인 서리스는 솔직하게 말해 주기로 했다.

그녀 같은 타입은 에둘러 말해 봤자 이해 못 할 확률이 높았으니까.

“표정이 굳어 있는 게 사람을 못 다가오게 하는 거라 봅니다.”

“표정.”

혼잣말을 중얼거린 발렌타인은 서리스를 돌아보았다.

“저는 항상 웃고 있습니다만.”

“예?”

웃고 있다고?

서리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지금도 웃고 있습니다.”

발렌타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육체에는 통달한 서리스다.

얼굴이라 한들 같은 근육.

그걸 서리스가 놓칠 리가 없는데.

‘어.’

그 순간 서리스는 발렌타인의 얼굴 위 특이점을 발견했다.

아주 미세하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이 여자는 지금 이걸 웃는다고 표현하고 있는 건가.

살짝 두통이 일어날 것 같다.

“발렌타인 님 웃는다는 건 입꼬리만 올리는 정도로 나오는 게 아닙니다.”

“혹시 제가 웃지 않고 있는 걸로 보입니까?”

“예.”

발렌타인이 살짝 침울해졌다.

본인 딴에는 진심으로 웃는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한 번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어쩌다 발렌타인에게 웃음 강의를 하게 된거지.

서리스는 어이없어하면서도 그간 그녀가 이런 사소한 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묻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불터렉스의 직계 중 첫째.

그 자리는 막중하며 어느 사람과도 쉽사리 어울리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나마 같은 대가문의 직계인 서리스라면.

조언을 들을 수 있다 판단하여 이렇게 물어 온 것이리라.

‘이쪽도 이쪽 나름 고생인가.’

어차피 원활한 관계를 원했던 서리스다.

일 이야기보다는 이쪽이 더 친해지기 좋을 테니 좋게 생각하자.

“알았어요. 잘 보세요. 웃으려면 이렇게 웃어야죠.”

서리스가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소드란 때부터 단련해 온 웃는 얼굴은 매우 부드러웠다.

발렌타인은 그런 서리스의 얼굴을 커다란 눈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잿빛 속눈썹이 한 차례 깜빡여졌다.

살짝 부담스럽지만, 서리스는 참아 주었다.

“안 것 같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무언가 깨달은 게 있나.

서리스가 표정을 풀고 기다리자, 그녀는 아까와 똑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습니까?”

“똑같습니다.”

“왜죠?”

“같으니까요.”

발렌타인이 또 한 번 침울해졌다.

재능이 없군.

“발렌타인 님 잘 보세요. 입꼬리도 좀 더 올리고 눈도 이렇게 웃으셔야죠.”

서리스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직접 자기 얼굴들을 가리키며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발렌타인은 더 얼굴만 진지해질 뿐 도저히 웃지 못했다.

“서리스 님.”

서리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때 발렌타인이 한껏 내려앉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러곤 서리스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도움을 청했다.

“저는 도저히 웃는 얼굴을 모르겠습니다. 웃는 얼굴이 되도록 직접 손으로 표정을 만들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남의 얼굴을 막 만지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대체 얼마나 웃는 얼굴을 하고 싶은 걸까.

서리스는 하는 수 없이 발렌타인의 얼굴을 양손으로 쥐었다.

아직 볼살이 살짝 남아 있는 그녀의 하얀 볼은 구름같이 부드러운 촉감이었다.

“제가 하는 대로 유지해 주세요. 입꼬리는 이렇게. 광대는 이렇게. 눈은 이런 식으로.”

서리스는 발렌타인의 얼굴을 이리저리 만지며 그녀의 웃는 얼굴을 완성했다.

그 결과, 발렌타인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웃음을 그리고 있었다.

완벽하다.

“됐습니다. 기억하실 수 있으시겠나요?”

“저 지그 웃그 있스니까?”

얼굴형을 유지하느라 입을 잘 못 여는 발렌타인을 보고 서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실하게 웃고 있어요.”

“드디어.”

서리스가 확신해 주자 발렌타인이 감격한 듯 양손을 모았다.

문제는 그사이에 얼굴이 풀려 평소와 같이 무뚝뚝 해졌다는 점이지만.

“그럼 다시 한 번 웃어 보시겠나요?”

그런 발렌타인을 보고 해 본 김에 잊지 말자는 듯 서리스가 제안했다.

서리스의 제안에 발렌타인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곤 곧바로 아까와 같은 웃음을 만들려 했다.

문제는.

“안 나오네요.”

결과는 참혹할 정도로 실패였다.

오히려 원래 웃던 얼굴보다 더 무서워진 그녀의 얼굴은 웃음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던 것이다.

“어, 어째서. 분명 저는 아까와 같이.”

“한 번 해 본 걸로 쉽게 되지는 않는 법이니까요.”

그래도 노력은 가상했다.

“얼굴이 땡깁니다.”

다시금 침울해진 발렌타인은 얼굴 근육을 너무 많이 썼는지 자기 양 볼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실망감이 가득한 발렌타인을 보다 못한 서리스는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어차피 불터렉스 본가로 가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도착하기 전까지 제가 표정 연습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웃기만 하는 것보단 다른 표정도 지을 줄 알아야 할 테니까요.”

서리스가 선심 쓰듯 말하자 발렌타인의 눈이 오늘 제일 커졌다.

“정말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커다란 눈망울로 발렌타인이 눈을 깜빡거리자 서리스는 친절한 웃음을 지었다.

“네, 어차피 가는 동안 시간이 남으니까요.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서리스 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불터렉스 사람으로서 맹세코 이 빚은 갚겠습니다.”

이런 무거운 점도 아마 그녀에게 사람이 못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라 생각 들지만.

그래도 예의 바른 사람은 싫지 않은 서리스였다.

“마을 안내를 마저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네, 부디.”

여전히 무표정인 그녀지만 서리스는 그 얼굴이 조금 즐거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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