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그럼 둘 다 받아들인 걸로 알겠습니다.”
의지를 불태우는 두 사람을 보고 하다크가 미소를 지었다.
둘에게는 이런 단판전이 가장 잘 어울릴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트론.”
그런 순간 하다크의 부름에 밖에서 대기 중이던 다트론이 걸어 들어왔다.
“청랑단 인원을 모아오도록. 청랑호법 후보를 가리겠네.”
“예, 알겠습니다.”
그는 하다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곤 밖으로 걸어 나갔다.
“두 사람 다 결과에는 확실하게 승복해야 할 겁니다.”
두 번은 없다.
하다크는 미리 으름장을 놓았다.
사람을 모으는 이유도 이번 대결로 청랑호법 후보를 확실시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럼 둘 다 나가서 휴식하고 있으면 됩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불러들일 테니.”
“예.”
서리스와 용천은 동시에 대답한 뒤, 집무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싸구려 도발이나 하고.”
그러자마자 용천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서리스를 노려보았다.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알아? 내가 청랑호법이 되는 순간 청랑단을 확실히 바꿔 주마.”
개혁의 의지를 활활 불태우는 용천이 홱 하니 돌아서서 걸어가 버렸다.
‘도발이라.’
감히 누구에게 싸구려 도발을 한 건지 똑똑히 알려 줘야 할 모양이다.
* * *
서리스와 용천이 청랑호법 후보 자리를 놓고 대련을 펼칠 거란 소식은 금세 퍼졌다.
모두에게 청랑호법 후보가 누가 될지 확실하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청랑단 전원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이길 거 같냐.”
“나는 서리스.”
그러는 사이 드문드문 내기 같은 것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 용천 선배도 만만치 않아. 저 인간 저렇게 보여도 유명했었어.”
“네? 서리스랑 호각일 정도에요?”
그런 순간 48기 한 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의 말을 듣고 다른 이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리스의 능력은 정말 압도적이었으니까.
“그래, 후배 입장에서는 개 같지만. 실력은 진짜야. 만악의 질병 지원 당시 리더를 맡은 것도 저 인간이니까.”
그는 과거를 생각하는 듯 혀를 찼다.
끔찍한 기억이었던 모양이다.
“와, 그럼 서리스가 질 수도 있단 거네요.”
“결과는 두고 봐야 알 거다. 솔직히 나도 서리스를 더 응원하거든.”
용천이 청랑호법이 되는 순간 청랑단의 악습은 그대로 부활한다.
그 사실을 다들 잘 알고 있기에 모두가 은근히 서리스를 응원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는 사이 대결 시간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서리스는 대결장 끝에서 윌리엄과 함께 서 있었다.
반대편에는 용천이 가볍게 몸을 푸는 게 보였다.
“서리스.”
그런 순간 윌리엄의 부름에 서리스가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후줄근한 모습이지만,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인 윌리엄은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청랑호법이 될 놈은 너 같은 녀석이라 생각한다.”
이건 조금 놀랐다.
설마 윌리엄 쪽에서 서리스를 응원해줄 거라곤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저놈은 처음에는 잘하다가 나중에는 일 똑바로 못할 놈이거든.”
그럼 그렇지.
자기 일이 늘어 나기를 바라지 않았기에 해 준 응원이었다.
“그러니 이겨라.”
하지만 응원이라면 응원.
“예.”
“서리스, 용천 앞으로.”
서리스는 짧게 대답하자 다트론이 그와 용천을 불러들였다.
“이번 대결은 청랑호법 후보를 가리기 위한 대결이다.”
“힘내라!”
“서리스, 이기라고!”
그 말에 청랑단원들이 호응하듯 외쳤다.
다트론은 그들을 조용하라는 양 찌릿 노려보았고, 좌중이 조용해지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승자는 내일 아만다가 은퇴하고 나서 바로 열릴 즉위식을 통해 청랑호법이 될 예정이니. 잘 봐 둬라.”
후보 결정 후 바로 청랑단 취임식인가.
일사천리라고 생각하는 사이 용천이 위협적으로 목을 두둑 풀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별의 기운은 확실히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저쪽만큼이나 이쪽도 괴물 취급받는 사람인지라.
서리스에게서도 별의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서리스의 뒤에 후광이 떠오르자 청랑단 모두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몇 번을 봐도 적응 안 되는 출력량이었다.
용천도 이 정도는 예상 못 한 듯 얼굴을 굳혔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서자 다트론이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럼 둘 다 시작해라.”
다트론이 시작을 알리는 순간 용천이 먼저 급습해 왔다.
그의 손에 쥐어진 그림자 검은 뱅글뱅글 휘어진 특이한 형태였다.
서리스도 그의 특이한 검의 형태를 눈여겨본 순간.
그가 검을 내질렀다.
수욱!
압축한 것이 폭발하듯 순식간에 뻗어 나온 검날이 서리스의 볼을 스쳐 지나갔다.
그 속도가 상당히 빨라 서리스도 한순간 반응이 늦었을 정도였다.
보기와는 다르게 꽤나 재미난 검술을 쓰는 녀석이다.
‘하지만.’
이런 잡 기술로는 서리스를 상대할 수 없다.
채엥!
서리스와 용천의 검이 맞부딪치기 시작했다.
연신 울려대는 연격 속 서리스의 검의 그림자가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윽?”
신음이 먼저 튀어나온 것은 용천 쪽이었다.
서리스의 금강귀검로에 대해 전혀 모르는 그다.
그렇기에 되돌아오는 충격이 상상 이상이라 한순간 당황한 것이다.
서리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맹렬하게 그를 몰아세웠다.
지금까지 행방불명이었던 용천은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른다.
그렇기에 서리스는 가진 수를 망설임 없이 퍼부었다.
하지만 용천도 청랑호법 후보 자리를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곧 그의 그림자 검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서리스가 검을 내지르는 타이밍에 맞춰 검이 흐릿하게 변한 것이다.
마치 그림자 자체가 충격을 완화하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서리스의 생각은 옳았다.
이건 청운귀명을 바탕으로 용천이 새롭게 만들어 낸 방어술.
청운흡성(淸雲噏盛)이었다.
그림자가 모든 충격을 흡수해 버리는 이 기술로 용천은 수많은 사선을 넘었다.
“내 청운흡성을 너 따위가 뚫을 수 있을 거 같냐!”
그리고 서리스를 상대로도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까다로운 걸 다 쓰네.’
서리스 쪽도 용천의 기술에 혀를 찼다.
하지만 이건 충격을 흘려 내는 게 아니다.
흡수에는 반드시 한계치가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흡수하지 못할 수준으로.’
서리스의 금강귀검로가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동시에 서리스의 별이 귀기가 서리듯 거세게 빛났다.
‘모든 일격에.’
금강잔월 박살을 담는다.
콰앙! 콰앙! 콰앙!
이걸 검이 두드리는 소리라 표현할 수 있을까.
마치 하늘에서 암석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가 연거푸 울려 퍼졌다.
보는 이들마저도 질릴 만큼 서리스의 박살 연격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걸 받아 내고 있는 용천도 마찬가지였다.
‘이 새끼!’
보통내기가 아니란 건 알았지만, 진짜배기 괴물이다.
청운흡성으로 아무리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지만, 이딴 연격을 지치지 않고 퍼부으니 용천도 죽을 맛이었다.
육체가 어떻게 되먹은 건지.
일격을 날릴 때마다 보이는 그의 팔에 서 있는 핏줄과 근육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용천도 노림수는 있었다.
‘멍청한 놈, 내가 흡수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꼬락서니하곤!’
차곡차곡 쌓여 가는 충격의 힘은 그림자 속에 직접 축적된다.
자신을 상대하는 적들은 흔히들 이런 실수를 한다.
청운흡성만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뛰어넘으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용천의 청운흡성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오롯이 충격의 흡수만을 반복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 받았던 모든 충격을.’
폭발하는 형태.
용천의 눈빛이 변했다.
그의 발아래 그림자가 폭주하듯 치솟은 그 순간.
그의 별이 강렬하게 빛을 토해 내었다.
용천의 검날이 마치 짓눌린 용수철같이 꾸그그그극 하는 기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리스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동안 쌓아 온 모든 충격이 용천의 검에서 폭발했다.
청운폭성(淸雲爆盛)
쿠콰앙!
충격이 대련장 전체를 뒤덮었다.
번개라도 떨어진 듯 멀리 있던 청랑단원 마저 휘말려 넘어질 정도였다.
“미, 미친, 이게 뭔.”
“저게 가능해?”
청랑단원이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자신의 청운폭성의 위력의 놀라 감탄한 걸 테지.
“후.”
용천에게도 이 정도 급의 청운폭성은 처음이었다.
이런 위력이면 당한 놈이 죽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도발한 죗값을 똑똑히 느껴 봐라.’
괴물 같은 놈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해 보라지.
서리스를 비웃은 용천이 그의 엉망일 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용천은 전신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눈앞에 눈으로 전부 담을 수가 없을 것만 같은 거대한 별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방금 전 청랑단원들의 반응이 자신을 보고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인식했다.
금강잔월은 방어와 흐름이 기본이다.
용천은 청운흡성을 최강의 방어술인 것처럼 떠들고 있는 모양이지만.
“진짜는 이쪽이야.”
금강잔월 앞에서 그건 우스울 따름이었다.
청운폭성이 터진 그 직후.
서리스는 금강잔월 반류의 다음 단계를 밟았다.
금강잔월(金强虥狘)
월반(月反)
청운폭성의 강렬한 폭발이 깃든 그의 검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별빛을 모조리 머금은 듯 그 강렬한 빛 앞에 용천은 무심코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이 물러섰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그는 얼굴을 붉히고 다시 섰다.
【움직여라.】
그 순간 용천의 머릿속에 무언가 울려 퍼졌다.
그의 표정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개자식이! 어디 와 봐!”
방금전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 외친 용천의 발아래 그림자가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청운흡성이 마지 갑옷처럼 그의 몸을 감쌌을 때였다.
하늘 위 검은별 하나가 어둠을 한 줌 토해 내었다.
세계 침식자에게 잠식된 자들은.
자신이 잠식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마치 그림 속 인물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눈치채지 못하듯.
그는 세계 침식자가 풀어 낸 먹물에 의해 그려질 뿐이었다.
용천이 청랑호법이 되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자.
딱 한 번.
어딘가에 있을 세계 침식자가 움직였다.
그러한 검은별의 움직임은 이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딱 한 명.
용천의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는 달랐다.
서리스의 입 위로 미소가 그려졌다.
‘찾았다.’
네놈이구나.
세계 침식자.
하늘 위 떠오른 검은별과 이어진 용천을 보며 서리스는 세계 침식자의 존재를 확신했다.
한편, 용천은 자신이 아닌 너머를 보는 서리스의 스산한 미소에 서늘함을 느꼈다.
“네놈 뭘…….”
“시끄러워.”
짧은 한 마디와 함께 서리스가 검을 들어 올렸다.
용천이 급히 갑주에 힘을 끌어 올리고 있을 때도 서리스는 오직 그의 너머만을 노려보았다.
‘거기서 기다려라.’
이윽고 서리스의 검이 움직이고.
‘내 손으로 직접 죽이러 가 줄 테니까.’
대련장은 빛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