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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54화 (53/275)

54화

끝없는 초롱 속.

서리스는 눈앞에 달려드는 마수를 향해 천천히 검을 내질렀다.

내지른 검격에는 검은별이 깃들어 있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어둠과 그림자가 함께 휘둘러졌을 때.

마수는 그의 검격 속에 사라졌다.

“하아.”

조그맣게 숨을 내쉰 서리스가 검을 내려다보았다.

지난 며칠.

서리스는 끝없는 초롱을 매일같이 방문하며 검은별을 시험하고 있었다.

끝없는 초롱이라면 검은별을 사용해도 누구에게 들킬 염려가 없으니.

훈련하기 가장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확실히 점점 응용력이 늘고 있어.’

검은별은 한 번 사용할 때 육체에 부담이 가지만.

파괴력만큼은 어느 것도 비교 불가한 수준이었다.

서리스는 검을 거두고 그림자 망토를 둘렀다.

그러자 그림자 망토 위로 또 다른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망토에서 먹물 같은 어둠이 뚝뚝 떨어졌다.

청운귀명도의 그림자와 검은별은 둘 다 조합이 너무 잘 맞았다.

‘다루는 방법도 그림자 덕분에 수월해.’

제대로 된 비장의 무기를 쥔 기분과 함께 짧게 웃음 지은 서리스는 망토를 지웠다.

슬슬 돌아갈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된 거 같고.’

서리스는 챙겨 놨던 약품 하나를 확인해 두었다.

셀리앙을 통해 새롭게 조제한 약품이었다.

레투앙 녀석이 더 초조해지도록 일부러 오늘까지 뜸을 들였다.

검은별도 숙련이 됐고.

오를레에서의 볼 일은 사실상 끝났다.

서리스는 물약을 챙긴 채로 성벽 쪽으로 걸어 나왔다.

거기에는 때마침 훈련 후 귀환한 서발광이 있었다.

“서발광.”

“아, 서리스!”

서리스의 부름에 서발광이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그런 그를 보고 서리스는 말을 했다.

“명령이다.”

서리스가 말을 하자마자 서발광의 태도가 변했다.

순식간에 부하로서 서리스의 앞에 무릎 꿇은 서발광은 분부만 하라는 양 고개를 숙였다.

“지금 본 것을 그대로 오를레 쪽에 알려. 의문은 굳이 가질 필요 없다. 전부 의도된 거니까.”

“예.”

질문 하나 없이 대답한 서발광의 말과 함께 서리스는 미소 지었다.

셀리앙에게 부탁해 만들어 둔 물약.

그것은 바로 독왕의 독과 증상이 모두 같지만, 치사율이 제로인 독약이었다.

‘자, 지독하게 놀릴 시간이다.’

서리스는 그 즉시 물약을 들이켰다.

그렇게 독이 깃든 물약을 삼킨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

그리고 잠시 후, 오를레 전역에 서리스가 쓰러졌다는 소식이 퍼졌다.

* * *

오를레 레투앙의 가게 집무실.

레투앙은 눈앞에 쌓인 장부를 보면서도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오늘로 나흘.

서리스는 매일같이 끝없는 초롱을 방문하고 있었지만, 희소식이 들려오지를 않았다.

‘왜지?! 이제 슬슬 때가 되지 않았나?!’

혹시나 약품을 안 쓰는 게 아닐까.

아니면 독을 탄 걸 눈치챘나.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초조함의 머리카락이 다 빠질 것만 같았다.

오장육부가 쓰린 기분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그런 레투앙의 귀에 드디어 희소식이 들려왔다.

“서리스 님께서 끝없는 초롱에서 당하셨답니다!”

오를레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소식의 레투앙의 얼굴에 드디어 웃음꽃이 활짝 폈다.

매일같이 놈이 죽기만을 바랬건만, 오늘에서야 드디어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그럼 그렇지! 멍청한 놈!”

그러나 속이 후련한 기분과 함께 기뻐하던 것도 잠시.

서리스가 오를레로 이송된 지 하루.

본래라면 독 효과로 진작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건만 서리스는 아직까지도 숨이 붙어 있었다.

분명 서리스는 독왕의 독을 섭취했을 때 나오는 증상과 같은 병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놈은 죽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 있었다.

본래라면 1시간 내외로 사망했을 극독인데 말이다.

‘생명력이 뭐 이렇게 끈질긴 거야!’

서리스가 죽지를 않으니 레투앙은 다시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벌써 하루다.

일각에서는 곧 쾌차하셔서 일어날 거란 말까지 들려오고 있으니, 레투앙 입장에선 미칠 노릇이었다.

‘놈이 눈 뜨기 전에 죽여야 한다.’

서리스는 칼릭스 님에게 반드시 방해될 존재.

이러다 혹시나 눈을 뜰지도 모를 일이다.

바퀴벌레 같은 놈이니 확실하게 해야만 했다.

‘이번이 분명 마지막 기회다.’

독을 섭취해 정신을 잃은 지금.

다른 놈들에게 맡길 틈은 없다.

지금만이 암살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기에 둘째 날 밤.

레투앙은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 조용히 서리스의 방을 찾았다.

새근새근.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창백한 얼굴, 이마에 맺힌 식은땀.

정말 별거 없지만 죽음에 드는 독왕 그리건의 독다웠다.

‘그런데 죽지를 않으니.’

독의 양이 치사량보다 적었던 걸까.

레투앙은 혀를 차며 장갑을 낀 손으로 독을 꺼내 들었다.

용해혈법을 이용해 몸 전체에 직접 주입해 줄 속셈이었다.

‘이걸로 끝이다.’

손가락 끝에 독을 묻히고 레투앙이 서리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서리스의 죽음을 기대한 그 순간이었다.

텁!

갑자기 누군가에게 손목이 잡혔다.

붙잡힌 자신의 손목을 보고 레투앙이 의아함을 품었다.

이 방에는 독으로 죽어 가는 서리스와 자신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곧 그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 칠흑 같은 눈동자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 어.”

펜타니엄 서리스.

그가 눈을 뜬 것이었다.

낭패다.

설마 이 타이밍에 눈을 뜰 줄이야.

하지만 그는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었다.

분명히 독의 효과로 정신이 혼미할 터.

“서리스 님! 정신 차리셨습니까!”

레투앙은 곧바로 표정과 행동을 고쳤다.

그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걱정한 티가 묻어 나왔다.

“끝없는 초롱에서 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어서 빨리 치료해드리겠습니다!”

이대로 치료를 위해 용해혈법을 쓸 거라고 서리스에게 밀어붙인다.

그걸 위해 레투앙은 손목에 힘을 주었지만, 마치 암석 사이에 손이 끼인 듯 꿈쩍도 안 했다.

“서, 서리스 님, 손을 좀…….”

“레투앙, 멍청한 연기는 이쯤 하지.”

레투앙이 당혹스러워 한 그 순간 서리스가 입을 열었다.

자신을 전부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레투앙은 모든 계획을 파기시켰다.

그의 몸 전체에 붉은 핏기가 감돌았다.

스스로에게 발동시킨 용해혈법이 그의 육체를 급격히 강화시켰다.

독에 중독된 서리스다.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닐 터.

‘그냥 이대로 죽인다!’

설령 이 일이 문제가 되더라도 칼릭스 님에게는 반드시 도움이 되겠다.

그런 결심과 함께 독을 묻힌 레투앙의 손이 휘둘러졌다.

퍼억!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용해혈법으로 육체를 강화한 레투앙은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튕겨 날아가 벽과 부딪쳤다.

몸이 달달 떨렸다.

코뼈가 부서졌다.

거기다 이가 몇 개 부러진 듯 입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서리스의 주먹질 한 방에 어안이 벙벙해진 레투앙이 흠칫했을 때.

서리스는 어느샌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용기는 가상하군. 펜타니엄 직계를 암살하려 할 줄이야.”

마치 오늘 그의 계획을 처음 알았다는 듯 서리스는 그를 농락하며 말했다.

그런 서리스의 말에 모멸감을 느낀 레투앙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언제부터 알았지?!”

서리스는 멀쩡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언제부터라. 너야말로 언제를 말하는 거냐?”

“뭐?”

“네가 2년 전 나를 암살 시도하려 했던 때를 말하나?”

레투앙의 눈이 커졌다.

설마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고.

레투앙이 덜컥 겁을 먹었을 때.

“아님 네가 칼릭스의 심복으로 처음 들어간 날을 말하냐.”

그의 입에서 절대 나와서는 안 될 말이 흘러나왔다.

레투앙의 표정이 고쳐졌다.

그의 속 안은 타들어 갈 것만 같았지만, 이것만큼은 절대로 들켜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천연덕스럽게 이것만큼은 처음 듣는다는 듯 눈을 깜빡이었다.

그런 그를 보고 서리스는 짧게 코웃음 쳤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에게 있어서 레투앙의 연기는 애처로워 보일 뿐이었다.

“그럼 어디 네 입으로 말하게 해 볼까.”

그 말을 하고 서리스는 레투앙의 목을 잡았다.

서리스의 목덜미에서 검은별이 서서히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검은별은 세계 침식과 유사하다.

실제로 서리스는 본인을 세계 침식자라고 인정하고 있으며.

자신의 육체는 세계 침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면 이 힘을 타인에게 흘러 넣을 때는 어떨까.’

세계 침식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정신을 박살 내 놓는 것을 시작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심는 것이다.

자신은 이곳에 있어선 안 되고.

존재해서도 안 되며.

살아서도 안 된다는 감각을 계속해서 심고 그들을 몰아붙인다.

실제로 별이 없는 인간은 세계 침식 속에서 정신이 붕괴한 채로 발견되는 게 허다하다.

하지만 별이 있는 사람은 어떨까.

분명 일반인들의 비하면 세계 침식의 영향을 덜 받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도 분명하게 영향을 받는다.

단지, 별이 지켜 주고 있을 뿐.

‘그러나 그 별도 한계점은 명확하지.’

특히 전투계와는 거리가 먼 레투앙이라면 더더욱.

“아, 어, 어헉?!”

서리스의 검은별이 레투앙에게 스며드는 순간 그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겁은 먹어도 여유 있었던 그의 얼굴은 삽시간에 새파랗게 질려 나갔다.

그와 함께 그의 눈동자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검은별이 가진 세계 침식의 힘이 오로지 레투앙에게만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익, 익!”

레투앙의 입에서 제대로 된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서리스가 그의 눈동자에는 마치 신화 속에서 나올 법한 거대한 늑대와도 같아 보였다.

그의 몸 전체를 짓누른 검은색과 푸른색 털로 뒤덮인 거대한 손.

금방이라도 머리를 뜯어 먹을 것만 같은 새하얀 이빨.

거기다 자신을 노려다 보는 샛노란 눈동자는 오금을 지리게 만들었다.

늑대의 입에서 조용하게 울림이 들려오자 레투앙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보아서는 안 될 것을 본 듯한 감각 속.

공포를 견디지 못한 그의 얼굴에 순식간에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이 백발이 되며 빠지기 시작했다.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그의 정신은 물론 육체마저 노화하게 해 버린 것이다.

【레투앙, 날 암살하라고 사주를 한 건 누구냐.】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서리스의 목소리에 레투앙이 넋이 나갔다.

곧이어 그가 입술을 달달 떨며 말했다.

“없, 없습, 없습니, 다.”

레투앙을 내려다보며 서리스는 헛웃음을 흘렸다.

멍청하긴 해도 심복 녀석의 충성심 하나는 제대로 인 모양이다.

어차피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서리스 입장으로서는 지금 하는 건 독살하려는 게 괘씸해 한 화풀이였으니.

서리스는 레투앙의 목을 조르던 손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바닥을 나뒹군 레투앙이 벌벌 떨며 텅 빈 머리를 감쌌다.

이걸로 더 이상 자신에게 반기조차 들지 못할 것이다.

칼릭스의 심복으로서는 더더욱 활동 못 하겠지.

일상생활로 돌아오는데도 몇 년이 걸릴 테니까 말이다.

‘칼릭스.’

사촌 형을 떠올리며 서리스는 턱을 매만졌다.

지금은 워너힐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그가 계속 맴돌았다.

‘직접 만나게 된다면.’

누구를 건드렸는지 똑똑히 알려 줘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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