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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53화 (52/275)

53화

“신나서 가져오는구만.”

오를레에서 서리스가 머무는 숙소 앞.

그는 문 앞에 준비된 레투앙의 약품을 보며 따분하게 하품을 내뱉었다.

어제 일 때문인지 밤을 새워 준비한 레투앙의 특제 포션은 이전보다도 품질이 좋았다.

마치 어떻게든 마셔 달라는 듯한 포션을 보며 서리스는 머리를 긁적이었다.

‘참 극진하게 자기 손으로 숨통을 조이네.’

찰랑거리는 약품을 들고 서리스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정신없이 자느라 까치집이 생긴 머리카락 때문에 모자를 눌러쓴 그는 이 길로 셀리앙을 찾아갈 속셈이었다.

“그래서 어제 그거 정확히 뭔지 말해 줄 수 있어?”

그러는 순간, 오를레 정원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리스가 정원 쪽으로 다가가자 거기에는 아카펠과 서발광, 도로시가 있었다.

“다들 그냥 잊어 줄래?”

“잊고 싶어도.”

아카펠이 서발광을 보자 그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자기들끼리 이야기 중이었나.

어제 검은별을 쏟고 나서 밀려온 피로감에 하루 종일 잤던 탓인지, 일부러 부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 게 있어. 아직은 나도 좀 그래.”

도로시는 말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스윽 돌렸다.

평소에도 텐션 높은 도로시가 이렇게 나오는 거면 사정이 있을 거다.

그들도 걱정해서 물어본 거지 도로시를 추궁해서까지 알아낼 마음은 없었다.

‘나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을 뿐이지만.’

서리스도 도로시의 과거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애초에 과거 시점 서리스는 도로시를 기억해 내지 못했을 정도니까.

‘그러고 보니 이전에 도로시는 무얼 하고 있었던 거지.’

재능은 확실한 도로시다.

무엇보다 마왕화라는 카드는 그녀를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비장의 수였다.

그런 그녀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 전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건.

‘굳이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사람 인생이라는 건 사소한 계기로 바뀔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아, 서리스!”

그러는 순간 서리스를 발견한 서발광이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볼 때마다 강아지 같은 녀석이었다.

“어디가?”

“셀리앙 좀 만나러.”

불과 어제 셀리앙의 약품 냄새를 경험했기 때문일까.

서발광은 무심코 어깨를 움찔거렸다.

“걱정 마. 안 따라와도 되니까. 금방 하고 올 테니 애들이랑 있어.”

눈이 안 보이는 만큼 다른 감각이 더 예민한 서발광에게 있어서 냄새는 고통스러울 거다.

애초에 따라오라고 할 생각도 없었기에 서리스는 미리 말해 두곤 배웅을 받으며 오를레를 나왔다.

‘쫓아 오는 놈들은 없고.’

평소라면 사람 한 명 붙여 볼 텐데.

아무래도 어제 조제 일로 진이 다 빠져 버린 듯 레투앙 쪽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나한테 어떤 걸 쥐여 준 건지도 모른 채로 말이지.’

설마 서리스가 셀리앙과 연을 다지리라곤 그도 예상 못 했을 테다.

그리고 그가 외면했을 셀리앙이 어느 수준까지 올랐는지도.

어제와 같이 셀리앙의 가게를 찾은 서리스는 약품을 한 손에 든 채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오늘도 시시덕거리는 셀리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아하니 어제 가져다준 구사조의 재료로 무언가 만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셀리앙.”

한창 제조에 정신이 팔린 듯 서리스의 부름에도 나올 기색은 없었다.

결국 어제처럼 서리스가 안으로 들어갔고, 거기에는 제조에 미친 천재가 있었다.

광기에 젖어 무언가를 만들 때마다 깔깔거리는 건 서리스가 보기에도 오싹했다.

“셀리앙.”

“우와, 아! 서리스 님! 오셨나요!”

얼굴 여기저기가 검은색으로 얼룩진 셀리앙이 서리스를 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여기까지 다가올 때까지 눈치를 못 챈 건지 그는 만들던 걸 허둥지둥 내려놓았다.

“잘 오셨어요! 마침 제 걸작이 준비되었거든요! 한 번 보실래요?”

“나중에. 그것보다 이거 좀 어제처럼 확인해 줄 수 있을까.”

엉뚱한 화제로 대화가 흘러가지 않게 화근을 사전에 차단한 서리스는 약품 상자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셀리앙은 놓인 약품을 보고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양 하나하나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병들을 각자 다른 곳에 분류하기 시작했는데.

“이쪽은 다 독이 섞여 있네요.”

왼쪽에 모인 것들이 전부 독이 있는 약품들이었다.

서리스는 왼쪽 약품을 스윽 훑었지만, 다른 병들과 전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이놈은 뭘 보고 이렇게 잘 뽑는지 모르겠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셀리앙, 너 독왕의 독을 구분할 수 있는 거냐?”

“못하죠.”

“그런데 어떻게 바로 아는 거냐?”

“조제된 약품의 성분이 다르니까요.”

그런 걸 눈으로 보고 잘도 알아챈다.

독왕 그리건은 무려 천하오장성이다.

그런 인간이 만들어 내는 무미, 무취의 독이건만 약품 전문가에게는 다른가 보다.

“저라도 일반 음식에 섞으면 모를 거예요.”

“그렇겠지.”

그걸 대비해 음식은 전부 따로 공수해 온 것만 먹었다.

서리스는 철저하게 독에 대비한 것이다.

“그럼 여기 있는 것들은 아예 독을 없애줄 수 있을까.”

“이 정도 독은 저도 어쩔 수 없는데. 새로 만들어도 될까요.”

하긴, 독왕의 독이니 당연한 건가.

“그래 줘.”

그거라면 충분하다.

셀리앙의 말에 서리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금방 제조해서 약품 하나를 들고 왔다.

표본이 있는 만큼 새로 만드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때마침 영약도 아까 전에 조제를 마쳤거든요.”

서리스가 약품 상자 안에 약품을 담던 도중 셀리앙이 영약 하나를 들고 왔다.

아무래도 어제 부탁한 것인 모양이다.

“그런데 부작용이 생각보다 더 심할 거 같아요. 서리스 님에게 맞춤으로 하다 보니 애가 이렇게 돼서.”

그가 그리 말한들 서리스 눈에는 그냥 평범한 영약이었다.

“부작용은 어떤 건데?”

“먹으면 머리가 깨질 거 같고, 속이 울렁거리고, 구토 증상을 호소하거나 혹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를 거 같네요.”

괜히 미리 겁주는군.

서리스는 손을 들어 셀리앙에게서 영약을 건네받았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영약은 검은색과 흰색이 뒤섞여 있었다.

살짝 매캐한 냄새가 먹는 걸 본능적으로 꺼리게 만들었다.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 드시면 돼요. 맛은 딸기 맛이랍니다.”

이런 모습을 하고 딸기 맛인가.

어이없어하면서도 서리스는 셀리앙의 영약을 들어 입에 넣었다.

셀리앙이 만든 거다.

효과 하나는 확실하겠지.

살짝 걱정되는 마음은 있었지만, 서리스는 영약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딸기 맛이네.’

셀리앙의 말대로 정말로 딸기 맛이 났다.

그러곤 곧 꿀꺽하고 삼키자, 셀리앙이 기대 섞인 눈초리로 서리스를 지켜보았다.

그러고 얼마 뒤.

서리스는 조용하게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라?”

셀리앙이 고개를 기울였다.

분명히 아파야 할 텐데 아무렇지 않다고 하니, 이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서리스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영약이 흡수될수록 감각이 예민해져 감을 느꼈다.

‘별들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서리스가 내는 너무 강한 출력 때문에 느껴지지 않았던 미세한 별의 흐름이.

아주 조금씩 잡혀가기 시작했다.

그건 오히려 기분이 편안해질 정도였다.

“잠깐, 앉을게.”

“네엡.”

서리스는 셀리앙의 약 제조가 방해되지 않도록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러곤 눈을 감아 별의 기운에 집중하자 별들이 그를 반겼다.

왜일까.

기분이 편해지다 못해 육체를 이탈한 듯한 감각이 들었다.

마치 은하수에 누워 있는 듯한.

깊은 포근함이 서리스를 감쌌다.

지금까지 너무나 멀게 느껴졌던 별들이 지금은 한층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검은별도 마찬가지였다.

늘 폭발할 것만 같았던 검은별이 서리스가 주의를 기울이자 아주 잠시 동안은 잠잠해졌다.

덕분에 서리스의 내면이 오랜만에 고요해졌다.

검은별의 폭주로 매일같이 소란스럽던 그의 우주에 포근함이 깃들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검은별은 금방 다시 칠흑 같은 어둠을 꾸역꾸역 내뱉었고.

별들의 빛은 그에 반발해 거세게 빛났다.

그래도 조금은 안정감을 되찾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았다.

‘내가 강해진다면.’

언젠가 검은별도 억누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서리스는 그렇게 별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가 조용하게 눈을 떴을 때.

어느덧 하루의 절반이 지나가 있었다.

저녁해가 뉘엿뉘엿 저가며 붉은색 노을이 가게 창문 쪽으로 흘러들어 왔다.

그사이 셀리앙은 아직도 무언가 만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꽤 지났네.’

셀리앙의 영약은 훌륭했다.

6성이라는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지만.

조금은 갈피를 잡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때마침 제조를 마친 셀리앙이 쭈우욱 기지개를 켰다.

그는 고개를 슥 돌리더니 서리스를 보곤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다 끝나셨나요. 어때요. 제 작품 끝내주죠?”

“그래.”

그 말대로 끝내줬다.

갈피조차 잡기 힘들어 했던 일을 한 번에 해결해 줬으니.

녀석 덕분에 다음 성장이 1년은 앞당겨졌으리라.

그나저나 생각보다 오래 이곳에 머물렀다.

제조 중에 거슬렸을 텐데 그에게는 미안한 일을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후에 돌아가시나요.”

“얼마 안 남았어.”

레투앙의 일이 끝나면 그대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셀리앙은 딱히 아쉬워하는 눈치 없이 그렇구나 하며 순순히 납득했다.

남에게는 여전히 그다지 관심 없는 녀석다웠다.

“셀리앙, 돌아가기 전에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오, 뭔가요?”

셀리앙은 새로 만든 약품을 선반 위에 올리며 대답했다.

“나는 앞으로도 여러 세계 침식으로 가게 될 거야. 그리고 거기서 구한 재료를 가능하면 너한테 맡기고 싶어.”

이 녀석이라면 세계 침식에 대항 할 새로운 약품을 완성 시킬지도 모른다.

그 말을 듣자마자 셀리앙이 서리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서리스의 옷깃을 꽉 잡은 채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거렸다.

“꼭 좀, 꼭 부탁드려요!”

재료라면 영혼이라도 팔 기색이로군.

서리스는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이런 녀석이라 오히려 믿을 수 있었다.

셀리앙의 약품 사랑 하나만큼은 믿을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한 가지만 더.”

서리스가 꿍꿍이가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레투앙 녀석을 까무러치게 만들어 줄 게 있어야겠지.

“하핫, 뭐든 맡겨만 주세요!”

오늘도 신나게 대답하는 셀리앙을 보며 서리스는 기대감에 빠졌다.

지금쯤 서리스가 언제쯤 독약을 먹을지 손가락을 빨고 있을 한 남자가 망가질 그 날을 기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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