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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니엄 검황가 셋째 도련님-52화 (51/275)

52화

어두운 끝없는 초롱의 불빛 아래.

서리스의 그림자가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목덜미에서 흘러나오는 검은별의 먹물 같은 어둠.

그리고 날뛰는 그림자.

어둠의 아래는 모든 게 그림자였다.

달려드는 가후의 움직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검은별에 의해 한계까지 가속된 서리스의 사고가 주변을 느릿하게 만들었다.

다른 세계선을 엿보는 기분과 함께 서리스의 입에서 조그맣게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펜타니엄이 어째서 끝없는 초롱을 맡고 있는가.’

영원한 밤이 깃든 끝없는 초롱.

그림자는 밤일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목덜미가 불타는 듯했다.

어느 때보다 거칠게 부르짖는 검은별에 어둠과 함께 서리스의 다른 별들이 공명했다.

각자의 빛을 강렬하게 토해 낸 빛들이 모든 것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이거였구나.’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어쩐지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득한 경지를 제 손으로 쥔 기분과 함께 진짜 힘을 깨달은 것만 같았다.

펜타니엄와 검은별, 그리고 그걸 지탱해 주는 소드란.

세 개가 합쳐졌을 때 비로소 서리스는 검은별의 가치를 깨달았다.

“쏟아져라.”

나지막이 울린 목소리와 함께 서리스의 그림자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건 정말로 집어삼켰다는 말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가후를 쫓아 왔던 길목의 모든 숲이 서리스의 그림자 속에 잡아 먹혔다.

흑월귀명도(黑月鬼銘刀)

일식(一式)

흑월(黑月)

끝없는 초롱 숲속.

검은색 달이 떴다.

검은색 달 속에 갇혀 버린 가후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앞으로 손을 내밀어도 어둠 속을 휘적거릴 뿐.

가후의 몸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서히 자신이 발아래부터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흥!”

소리를 내어도 울리지 않았다.

영원한 어둠에 갇힌 듯한 감각 속에서 가후는 사라져 가는 자신의 육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사라지고 있는 것은 가후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가 숨겨 둔 돌기둥도 그와 같이 소멸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가후가 살고자 비명을 마구 질렀다.

그러나 그의 외마디 비명은 끝끝내 어디에도 닿지 못했다.

눈동자 속 눈물을 마지막으로 놈은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커흑, 컥.”

가후의 소멸 직후, 끝없는 초롱의 숲속 한쪽을 뒤덮었던 흑월이 사라졌다.

어느샌가 평온한 숲으로 돌아온 그곳에서 서리스는 입에서 흐르는 핏물과 침을 바닥에 토해 내었다.

“속 다 뒤 집어지겠네.”

식은땀이 뚝뚝 흘렀다.

검은별로 인해 한계까지 다다랐던 육체가 삐걱거렸다.

세 개의 별을 이용한 진정한 비기에 도달한 것은 좋았으나.

이건 체력과 별이 남들의 몇 배는 되는 서리스라도 한계에 도달할 만큼 힘든 비기였다.

시선을 아래로 돌리니 가후에게서 흘러나온 세계침식이 자신에게 흡수되는 게 보였다.

그러고 나니 몸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마수인지, 인간인지.”

기다란 한숨과 함께 서리스는 옆구리가 회복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세계침식을 검은별이 흡수하면 육체 수복도 같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검은별도.’

지금까지 검은별은 무조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이런 식으로 쓰는 거였어.’

이건 분명히 도움 된다.

‘검은별.’

아직까지 여러 의문이 많이 남아 있지만, 서리스에게는 지금까지 도움만 주고 있는 녀석이다.

언젠가 검은별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아직은 머나먼 일이라고 단언하며 서리스가 몸을 일으켰을 때.

저 멀리 구사조의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이쪽은 정리되었다.

몸이 엉망이긴 하지만,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 했다.

서리스가 다시 숲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저건 뭐야.’

구사조와의 싸움 와중.

도로시는 소름 끼치는 감각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눈동자에 보인 것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마왕화 때문인지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은 더더욱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서리스가 달려간 장소.

그곳을 어둠이 집어삼킨 것이다.

그녀가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을 느꼈을 때.

그녀는 자신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것을 느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구사조조차 전투를 멈추고 가만히 그 어둠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5성급 작은 주인의 시선마저 묶어 두는 강렬한 어둠.

도로시가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을 때, 구사조의 남은 머리가 거세게 울었다.

“기이이이이이이이익!”

강렬한 소리에 도로시와 나머지가 귀를 막자 구사조는 날개를 펼쳤다.

“어디를!”

도주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도로시는 정신을 되잡고 바닥을 쿠웅 찍었다.

그러자 마왕화로 인해 바닥에서 치솟은 뼈들이 구사조의 날개 한쪽을 사슬처럼 휘감았다.

“착쁜놈, 활쟁이, 미니 직계!”

자신이 붙잡을 동안 공격하라고 외치자 셋도 정신을 차리고 구사조에게 달려들었다.

이대로 구사조를 놓쳤다간 모든 계획을 망치기 때문이다.

저 어둠이 뭔지는 모른다.

그러나 지금 구사조를 쓰러트려야만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몰아쳐!”

저 어둠 때문에 구사조는 공포와 혼란 상태에 빠진 듯싶었다.

기회는 지금뿐.

아카펠의 화살이 마구잡이로 쏟아지고.

제로의 그림자 검이 구사조를 향해 휘둘러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보이는 것은 서발광이었다.

마치 구사조의 모든 행동이 보이기라도 한 듯.

구사조가 쏟아 내는 모든 공격을 서발광은 피해 나갔다.

그러는 순간 그의 목덜미가 빛났다.

자그마한 그의 체격이 한순간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비섬류(怌閃類)

금강잔월(金强虥狘)

형섬(螢閃)

섬광이 하늘을 갈랐다.

그에 따라 구사조 머리 하나가 하늘로 치솟고, 서발광이 다른 머리의 공격을 피해 바닥에 착지했다.

남은 머리는 앞으로 두 개.

서발광이 다시 도약하며 구사조의 머리를 몰아넣었다.

아주 짧은 틈.

그 틈에 도로시가 코피를 쏟아 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콰지지직!

“끼에에엑!”

칼날 같은 뼈들이 구사조 머리를 감쌈과 함께 그대로 짓눌러 터트렸다.

그 순간 남은 구사조 머리가 위기를 느낀 듯 마구잡이로 불길을 내뿜기 시작했다.

“윽, 불길이!”

불길에 당한 서발광이 추락하고, 아카펠의 화살도 닿지 못했다.

“썩을!”

어찌나 화살을 쏟아 내었는지.

어느샌가 손가락에 핏물이 맺힌 아카펠이 팔을 덜덜 떨면서도 화살을 계속해서 날렸다.

제로 또한 구사조를 제지하고자 다리를 향해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지만, 큰 타격 입히지 못했다.

남은 구사조의 머리로 모두들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었다.

구사조의 날갯짓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슬슬 한, 계인데!’

마왕화 시간이 거의 다 끝났음을 예감하며 도로시가 바닥에 무릎 꿇었다.

날개를 붙잡은 뼈 사슬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구사조를 놓친다.

어떻게든 머리 하나를 더 부숴야만 하는데.

모두가 한계인 듯 움직임이 굼떴다.

도로시 또한 지속된 마왕화로 별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나마 서발광이 선전하고 있지만, 그 혼자로서는 무리였다.

목숨을 걸고 날뛰는 구사조의 머리를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떻게 해야.’

도로시가 이를 아득 깨물었다.

별을 어떻게든 끌어내고 있지만 구사조를 잡을 방법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한 그 순간.

구사조가 내뿜었던 불길 사이로 남은 머리 하나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모두가 흠칫했을 때.

하늘에서 떨어진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후우.”

이어 누군가 짧게 내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서리스!”

서발광이 제일 먼저 그에게로 달려갔다.

옷도 여기저기 찢어지고 엉망인 그였지만, 큰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서리스가 여기에 왔단 건 그가 가후를 쓰러트리고 왔다는 거겠지.

“다들 괜찮아?”

쓰러진 구사조는 움직일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목이 잘리는 것으로 끝으로 생을 다한 것이었다.

‘그래도 거의 절반은 남아 있었는데.’

다들 제힘만으로 여기까지 구사조를 몰아붙인 건가.

서리스는 모두의 성장에 짧게 감탄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의 무리를 한 번 해서인지 몸이 삐걱거렸다.

이건 빨리 돌아가야 할 듯싶었다.

“서리스 형, 나 새로운 기술 만들었어! 이거, 구사조한테도 통했다니까!”

아직 체력이 남았는지 제로가 달려와 서리스에게 이것저것 자랑했다.

그래도 상태가 엉망인 걸 보니 이 녀석도 많이 노력했구나 하고 서리스는 느꼈다.

칭찬 삼아 제로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주자, 그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헤실헤실 웃었다.

실없는 녀석 같으니.

그걸 보고 안도한 아카펠이 한숨을 푸욱 내쉬며 다가왔다.

“고생했어. 서리스.”

“아카펠, 그걸로 힘들어하면 어떡해.”

“그러게나 말이야. 돌아가서 더 빡세게 수련해야겠어.”

아카펠은 떨리는 자신의 손을 아쉬운 듯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그사이 마왕화가 풀린 도로시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직계님 진짜 아슬아슬하게 왔어.”

도로시는 우리를 믿고 마왕화를 써줬다.

“도로시, 고맙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고마워 감사 인사를 전하자 잠깐 이쪽을 보던 도로시가 능글맞게 웃었다.

“맞아. 최강 무적 도로시한테 다들 감사해야 해.”

“그래서 아까 그거 뭐였냐?”

“미니 직계, 애는 알 거 없어.”

또다시 투닥거리는 도로시와 제로를 두고 서리스는 주머니를 뒤졌다.

이때를 위한 약품이다.

서리스는 모두가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약품들을 건네주곤 자신도 하나 입에 물었다.

‘그건 그렇고.’

서리스는 구사조와 아까 쓰러트린 가후를 떠올리며 잠깐 고민했다.

어쩌다 보니 두 마리 다 쓰러트리는 결과를 낳긴 했지만.

이대로면 레투앙이 독을 쓸 찬스가 없어진다.

애꿎게 먹는 거에다가 독을 타는 건 사양이고.

‘우선 아직 진행 중이라고 말해 두고 약품만 받아 볼까.’

원래도 하루 이틀 만에 끝낼 일은 아니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한시름 놓았다.

가후 쪽은 아쉽지만, 구사조의 재료를 수거해서 셀리앙에게 가져다주면 되겠지.

“모두 돌아가자.”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 * *

끝없는 초롱과 맞닿아 있는 성벽.

거기에는 가만히 끝없는 초롱을 바라보고 있던 청림단 병사 한 명이 있었다.

망을 보는 게 지루한 듯 기다랗게 하품을 내뱉던 그는 능선 너머에 무언가 보였음을 깨달았다.

그가 고개를 기울였을 때.

그것은 점점 커졌고, 그것은 곧 한 마수의 사체라는 것을 눈치챘다.

“허억!?”

마수의 사체를 끌고 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오늘 나갔다던 청랑단이었다.

‘와, 미친, 펜타니엄 직계라더니.’

설마 하루 만에 작은 주인을 처치했단 말인가.

괴물 같은 실력에 짧게 감탄하며 그는 서둘러 문부터 열고자 성벽 아래로 뛰어갔다.

이후 서리스 일행이 성공적으로 작은 주인을 처치했다는 소식이 오를레 전체로 퍼졌다.

그 소식은 당연히 레투앙의 귓속에도 들어갔고, 그의 눈동자는 더더욱 초조해졌다.

‘생각보다 더 빠르잖아?!’

구사조를 처치하는 데도 며칠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하루도 안 돼서 끝마쳐 버리다니.

레투앙은 서리스의 실력이 진짜배기임을 눈치챘다.

‘약품은, 약품은 다 썼을까.’

이번 약품에는 신뢰를 위해 일부러 독을 타 놓지 않았다.

만약 놈이 청랑단으로 돌아가기 전에 독을 탄 새 약품을 전하지 못한다면 그건 큰일이었다.

그가 그렇게 머리 아파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레투앙 님, 계십니까?”

노크 소리와 함께 하인 한 명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냐. 무슨 일이냐.”

괜히 짜증 난 그가 홱 하니 쏘아붙이자 하인 쪽이 조심스레 문을 열며 말했다.

“서리스 님께서 이번 약품이 매우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겠냐고 하십니다.”

그 순간 그 말을 듣자마자 레투앙의 기분이 급변했다.

설마 저쪽이 먼저 약품을 달라고 사정해 줄 줄이야.

‘이번 세계 침식에서 내 약품 덕을 톡톡히 봤구나!’

다음 작은 주인인 가후도 바로 죽여 올지도 모르는 마당.

“알았다! 바로 준비해 드린다고 하여라!”

레투앙은 서리스의 생각이 바뀔세라 서둘러 외쳤다.

평소라면 이것보다는 더 신중할 터인 그였지만.

생각 이상이었던 서리스의 실력과 더불어 매우 빠른 속도로 작은 주인을 잡은 탓에 급해진 마음이 의심을 배제해 버린 것이다.

결국 레투앙은 서리스가 자신의 계획을 눈치챘을 거란 걸 조금도 의심하지 못한 채.

제 발로 지옥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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