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작전의 내용은 간단했다.
가후와 구사조의 싸움이 결판이 나기 직전.
서리스와 모두가 난입하는 것.
그때라면 가후와 구사조의 상태가 엉망일 테니.
둘 다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이 작전에는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비록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5성급 작은 주인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리스 일행 중 5성급의 오른 자는 서리스 한 명뿐이다.
그 말은 즉.
‘한 놈은 반드시 내가 맡아야 한다.’
5성급 작은 주인을 혼자서 상대하라는 건 서리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말이 같은 5성 취급이지 인간과 마수는 애초에 급이 다른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서리스가 다른 한 마리를 상대한다 한들.
나머지 5성급을 나머지가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이건 믿는 수밖에 없겠지.’
변수가 많은 작전이다.
우리 팀을 내가 안 믿으면 누가 믿으리.
서리스가 뒤를 신경 쓰지 않고 눈앞에 가후에게 집중했다.
거친 숨소리.
그을린 검은 털.
분명 구사조와 싸우느라 힘을 많이 소모했을 텐데도 가후의 눈동자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오히려 정신 상태는 최고조인가.’
서리스는 시간을 끌지 않기로 했다.
끝없는 초롱에 사는 마수들은 모두들 자가 치료 능력이 있다.
시간을 끌어 봤자 저쪽이 회복할 시간을 줄 뿐이다.
서리스는 바로 바닥을 박찼다.
곧 그가 그림자 검을 휘두른 순간, 가후도 돌기둥을 휘둘렀다.
콰앙!
그 순간 가후의 돌기둥과 서리스의 검이 맞부딪쳤다.
거친 소음과 함께 서리스가 몇 걸음 물러서자, 가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이 서리스보다 힘에서 우위라는 점을 알아차린 듯하였다.
하지만 이건 오히려 서리스의 노림수였다.
‘최대한 방심하게 한다.’
구사조와 싸우느라 힘을 많이 소비한 시점.
가후에게 있어서 새로운 적은 무조건 피해야 할 상태다.
마수의 생존 본능은 강하다.
그러니 구태여 이 상황에 목숨을 거는 것보다 도주를 택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만약 상대가 자신보다 아래라면.
방해꾼만 처리하면 구사조라는 가장 큰 먹잇감이 손에 들어오게 된다.
가후가 혀로 입술을 스윽 훑었다.
원숭이 녀석 주제에 머릿속에서 대강 계산을 마친 거겠지.
‘그래, 그거다.’
서리스는 뱀처럼 스스로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먹잇감이 깊숙하게 머리를 들이밀었을 때.
그 목을 한 번에 물어뜯기 위해서.
‘와라.’
그 순간 가후가 도약했다.
원숭이답게 탄력성 넘치는 육체로 뛰어오른 가후는 맹렬하게 돌기둥을 휘둘러 왔다.
동시에 돌기둥에서 비산한 돌조각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의지를 가진 듯 돌조각들은 가후의 주위를 회전하며 서리스에게 계속해서 피해를 줬다.
과연 5성급이다.
방심하게 만들기 위해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긴 하지만, 가히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고.
5성의 성취를 보인 서리스도 가후의 공격을 막는 게 쉽지 않았다.
‘조금 더. 조금 더 구사조에게 정신이 쏠리도록 해야 한다.’
귀찮은 것은 어서 정리하고 싶을 정도로.
강렬하게 구사조를 원하도록.
“끼이에에엑!”
그 순간 구사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리스의 동료에게 머리 하나를 당한 구사조가 분노하며 소리를 내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 짧은 틈.
가후의 귀를 때린 구사조의 소리가 그의 정신을 빼앗았을 때.
서리스의 두 개의 별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의 근육이 거칠게 부풀어 오르고.
동시에 서리스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일격이 그의 검 안에 담겼다.
금강귀명도(金强晷銘刀)
오식(五式)
일도(一刀)
바로 앞 가후의 목을 향해.
혼신의 힘을 담아 일도가 휘둘러졌다.
후웅!
그러나 검이 가른 것은 다름 아닌 허공이었다.
거칠게 울부짖은 검의 여파와 함께 서리스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거기에는 일도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회피한 가후가 있었다.
녀석의 새까만 눈동자가 반달 형태로 휘었다.
“망할, 원숭이 새끼.”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이 소리냐.
서리스가 재차 검을 휘두르려 한순간, 복부에 강한 충격을 느끼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꼿꼿이 선 가후의 꼬리가 쇠망치처럼 그의 복부를 때린 것이었다.
“큭!”
일반 사람이었다면 복부가 터졌을 충격이었다.
“크흥!”
서리스를 보고 콧방귀를 내쉰 가후가 몸을 빙글 돌렸다.
그와 함께 놈이 내달리기 시작하자 서리스가 상체를 곧추세웠다.
“이 자식이.”
조금 전 서리스의 일격을 보고 가후는 그 수준을 짐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놈은 도주하는 것일까.
‘아니다.’
놈은 방금 걸로 서리스가 구사조를 쓰러트릴 수준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렇담 간단한 일이다.
자신이 숨고 서리스가 구사조를 쓰러트리기를 기다린 뒤.
그 뒤에 나타나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둘을 본인이 삼키면 될 일이라고.
‘영악한 놈.’
구사조는 상처를 입어 도망치기 쉽지 않다는 점을 노리고 서리스와 똑같은 어부지리의 수를 쓴 거다.
그렇담 가후를 놓쳐서는 안 된다.
놈이 자신도 목표로 포함한 이상 회복하게 두어서는 안 되었다.
“모두 잘 들어! 난 지금부터 가후를 쫓아간다!”
몸을 추스르자마자 뒤돌아볼 새도 없이 외쳤다.
그와 함께 검은색 망토가 서리스의 전신을 뒤덮었다.
“도로시, 숨길 거 없이 가진 수를 다 써! 안 그러면 네가 죽는다!”
“직, 직계님! 그거 비밀인데!”
그건 말하지 말라는 듯 도로시가 소리쳤지만, 서리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먼지 바람을 휘날리며 달려간 서리스를 보고, 도로시의 시선이 구사조에게로 향했다.
가장 강한 전력인 서리스가 이탈한 이상, 구사조는 자기들끼리 쓰러트려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으으, 어쩔 수 없네.’
도로시가 숨을 내쉬고 주위를 살폈다.
서발광, 아카펠, 그리고 서리스의 동생.
그들은 자신의 남매들처럼 마왕화가 있다고 해서 자신을 이상하다고 취급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결심이 선 듯 도로시가 자신의 볼을 검을 쥔 주먹으로 꽈악 눌렀다.
‘괜찮아.’
도로시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마왕화는 이미 두 번이나 사용했다.
애니쉬아도, 서리스도 마왕화에 대해 캐묻지 않고 평소와 같이 대해 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분명 그와 같을 것이다.
“활쟁이, 착쁜놈, 미니 직계! 오늘 보는 거 비밀로 해! 비밀!”
“나는 어차피 안 보여.”
도로시의 외침에 서발광이 농담으로 받아쳤다.
나머지도 별달리 대꾸하지 않았다.
다들 도로시에게 무언가 있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짐작했기 때문이다.
도로시가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리고 그녀는 주머니에서 하나 남은 백련골의 뼈를 꺼내 들었다.
그걸 입에 문 순간 도로시의 몸 위로 뼈들이 치솟아 갑주와 같이 그녀를 감쌌다.
“저게 뭐야?!”
유일하게 상황을 전혀 모르는 제로만이 기겁하듯 소리 질렀다.
“이제 천하무적 도로시니까! 무조건 이기는 거야!”
“하하, 듬직하네!”
짧게 웃은 아카펠이 활시위를 거세게 당겼다.
* * *
목숨이 걸린 일인 만큼 바로 결정을 내려줬다.
‘기특한 녀석.’
도로시에게 짧게 감사하며 서리스가 달렸다.
전신을 그림자 망토로 뒤집어쓴 서리스의 돌진은 그야말로 악귀와 같았다.
하지만 가후는 원숭이답게 나무를 타며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다.
서리스도 그 못지않았지만, 숲에서는 가후가 우위였다.
‘늦어!’
이대로라면 가후를 놓친다.
그렇다면.
서리스는 발아래 그림자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발밑에 마찰력이 사라진 순간 전신을 감싼 그림자 망토가 폭발했다.
콰앙!
커다란 폭음과 함께 망토가 사라진 서리스가 엄청난 속도로 올렸다.
한순간에 가후의 속도를 뛰어넘은 것이다.
순식간에 가후의 등 뒤를 잡은 서리스가 검을 휘둘렀다.
서리스의 기척을 느낀 가후가 가까스로 피했을 때, 그는 상대의 앞에 착지하며 자세를 잡았다.
“크흥!”
가후가 거칠게 콧소리를 내었다.
한 번 따라잡힌 이상, 이후에도 계속 따라 잡힐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벌써 회복하고 있나.’
과연 끝없는 초롱에서 사는 놈이다.
아까 구사조에게 당했던 상처가 그사이에 회복되고 있었다.
‘빨리 끝낸다.’
서리스가 검을 들어 올리는 순간 가후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크흐흥!”
놈의 기묘한 웃음소리의 서리스가 눈살을 찌푸렸을 때.
서리스는 놈의 손이 텅 비었음을 깨달았다.
‘돌기둥은?’
놈이 쥐고 있던 돌기둥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도망치는 틈에 어딘가에 숨기고 온 건가.
“하, 하하, 썩을 원숭이 놈이.”
“크흥!”
가후가 어째서 가짜 원숭이라고 불리는가.
가후의 몸은 두 개다.
하나는 지금 저기 있는 원숭이 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돌기둥이었다.
비록 돌기둥이 없으면 본신의 힘을 백 퍼센트 쏟아 낼 수 없지만.
돌기둥과 가후는 약 10초 사이에 동시에 죽이지 못한다면.
‘한쪽은 바로 복구된다.’
가후는 지금 불사 상태가 된 것이다.
‘돌기둥과 너무 멀리 떨어지면 안 된다고 듣긴 했지만.’
서리스도 가후의 존재를 책으로 알뿐.
직접 상대하는 건 처음이다.
그러니 돌기둥과 어느 정도 떨어져도 괜찮은지는 모르는 일인 것이다.
“킁!”
그 순간 가후가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놈은 이곳이 제집이라는 걸 몸소 보여 주듯 사방팔방으로 숲을 오고 가며 공격해 왔다.
끝없는 초롱의 특성상 초롱 불빛 근방 말고는 주위가 어두웠고.
특히 검은색 털인 가후는 더더욱 안 보였다.
“쯧!”
서리스가 혀를 찼다.
확실히 놈의 힘은 이전보다 약해져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작은 주인이었다.
쾅쾅쾅쾅!
서리스의 검과 가후의 주먹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둘의 공방에 나무들이 뒤흔들리고, 가후는 자유자재로 숲을 누비며 서리스를 몰아세웠다.
이윽고, 가후가 서리스의 등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짧은 틈.
서리스의 검이 섬광과도 같이 움직였다.
푸욱!
가후의 심장 부근을 서리스가 꿰뚫었다.
‘됐…….’
하지만 흔들린 것은 다름 아닌 서리스의 눈이었다.
왈칵.
서리스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시선을 아래로 옮기니 옆구리가 꿰뚫려 있었다.
서리스와 마찬가지로 핏물을 머금은 가후의 눈동자가 휘었다.
자신은 죽지 않으니 심장을 내주고 옆구리를 꿰뚫은 것이다.
서리스의 검이 가후의 심장에서 빠져나왔다.
놈은 숨이 끊긴 듯 바닥에 쓰러졌지만, 10초 뒤 부활할 것이다.
서리스가 비틀거리며 몸을 돌렸다.
기회가 생겼을 때 돌기둥을 찾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서리스의 발걸음이 몇 걸음 채 떨어지기도 전에 가후의 몸이 움찔거렸다.
녀석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가후를 쓰러트리고 10초 안에 돌기둥을 찾을 가능성은.’
없다.
서리스는 이번 걸로 조용하게 단언했다.
그는 입에 찬 핏물을 뱉었다.
안 좋은 곳이 꿰뚫린 것 같다.
몸이 빠르게 무거워지고 있었다.
아무리 금강잔월이라도 이런 상처는 당장 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니, 금강잔월이라 이 정도에 그친 건가.’
원래라면 배 근육과 뼈, 내장이 통째로 찢겼겠지.
서리스가 헛웃음을 흘린 사이, 가후가 몸을 일으켰다.
얼굴 가득 차오른 악의에 찬 웃음이 징그럽기 그지없었다.
찾아야 했다.
가후와 놈의 돌기둥을 한 번에 없애 버릴 방법을.
하지만 내게 그런 게 있나.
서리스가 식은땀을 흘렸을 때였다.
그의 또 다른 별 하나가 빛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
서리스의 눈이 살며시 떠졌다.
검은별.
녀석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염병.”
죽을 때마다 나타나고, 저승사자냐.
하지만 서리스는 인정했다.
지금 검은별의 힘이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저 망할 원숭이 놈을 쳐 죽여 버리려면 말이다.
하늘 위 검은별이 자신의 어둠을 거칠게 토해 내었다.
동시에 서리스의 검은별에서 강렬한 힘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서리스는 새까맣게 변해 가는 눈앞과 함께 입술에 호선을 그렸다.
“세계 침식자가 뭔지 보여 주마.”
“크하라라라락!”
가후의 노성과 함께.
먹물 같은 어둠이 세상을 뒤덮었다.